묵향 38권 11화 : 추격전 – 2
추격전(追擊戰) – 2
“헉헉……, 이렇게 애를 먹이더니, 결국 애새끼가 아무리 수련을 해봤자 뻔한 거지.”
자신도 기절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기에 클리프 바그룩은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라이가 도망을 포기하게 된 직접적인 존재인 용기사의 접근을 그는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라이가 이젠 지쳐서 포기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라이가 쓰러지는 것을 멀리서 확인한 클리프는 속도를 늦추며 거친 숨을 애써 고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 녀석이 포기한 척 연기하면서 가까이 다가갔을 때 기습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애송이와 싸워 자신이 질 리는 없겠지만, 놈을 쫓아오느라 너무 지쳤기에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해 놓은 상태로 싸우고 싶었다.
언제 다시 도망치기 시작할지 몰랐기에 라이를 예의 주시하며 한 10여 분을 걸었을까………….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라이가 쓰러져 누워있던 곳의 모래가 갑자기 폭발하는 것처럼 치솟아 오르더니, 강철판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거대한 뭔가가 모래 먼지를 뚫고
우뚝 솟아올랐다.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게 금속으로 만든 원형 건물처럼 보였지만, 그게 건물이 아니라는 걸 클리프는 알았다.
그것은 잠시 서 있는 듯하더니 서서히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완만한 속도였지만, 그 거체가 모래 위에 부딪힐 때쯤에는 엄청난 가속도가 붙어있었다.
거체가 모래와 충돌하며 처음보다 훨씬 더 엄청난 모래 먼지를 피워 올렸다.
“저게 혹시……?”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클리프는 저 거체의 정체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현재 콘도르 기사단이 발칵 뒤집힌 이유가 323정찰조 생존자들의 보고서에 나온 샌드 웜 때문이다.
거체는 클리프가 알고 있던 샌드웜과는 완전히 다른 외양을 하고 있었다.
금속질 외피로 보이는 건, 샌드웜의 뼈대였다. 이미 오래전에 죽어 뼈대만 남은 샌드웜이 언데드가 되어 저렇게 활동을 시작할 줄이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모래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샌드웜의 거체는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가 버린 후였다.
녀석이 남긴 거대한 흔적이 없었다면 방금 전에 자신이 본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클리프가 마치 혼이라도 빠져나간 듯 망연히 그 흔적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늘 위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그룩 자작님, 거기에 서 계시면 안 됩니다!”
마나에 음성을 실어 날린 것이었기에 근처에서 외친 것 같았지만, 클리프 바그룩이 고개를 돌려보니 상대와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거대한 와이번을 탄 용기사가 자신을 향해 화살과도 같은 속도로 강하해 오고 있었다.
그가 클리프를 향해 경고성을 보낸 것이다.
그제서야 클리프는 자신이 이 자리에 계속 멍하니 서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이를 잡아먹은 샌드 웜이 노릴 두 번째 목표물이 자신이 될 게 뻔했으니까.
클리프는 전속력으로 용기사가 날아오고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용기사가 와이번의 고도를 급속히 낮추고 있는 걸로 봐서 자신을 태워주려고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클리프가 와이번을 향해 전력질주로 달리다 공중으로 도약해 와이번 등에 탈 때까지 모래사막 위에는 그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괜히 겁먹어서 와이번 등에 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클리프를 향해 용기사 뒤쪽에 앉아 있던 마법사가 공손하게 말했다.
기존에 탑승하고 있던 마법사가 아니라 콘도르 기사단의 마법사였기에 클리프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놈이 자작님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마법사의 탐지마법에 보이지 않는 샌드웜이 잡혔었던 모양이다.
“웜은 지금 어디에 있지?”
마법사는 손가락으로 지면 한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 근처에서 위치를 놓쳤습니다.”
마법사들의 탐지마법이 강력하긴 하지만, 지하 깊은 곳까지는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걸 클리프는 잘 알고 있었다.
먹잇감인 클리프가 와이번에 탑승해 하늘 위로 날아오르자, 샌드 웜은 클리프를 추격하는 걸 포기하고 땅속 깊이 내려가 버렸다는 것이다. 참으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몬스터였다.
타이탄에 탑승한다면 상대하지 못할 몬스터가 없었지만, 샌드 웜처럼 땅속을 파고 들어가는 언데드를 상대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지면을 내려다보고 있던 클리프가 중얼거렸다.
“웜에게 잡아먹히고도 놈이 살아나올 수 있을까?”
“에?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방금 전에 샌드웜에게 잡아먹힌 녀석 얘기를 하는 걸세. 그 녀석이 살아나올 수 있을 것 같나?”
“샌드웜에 포식당한 이상 살아있을 가능성은 아예 없습니다.”
마법사는 물론이고 용기사조차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돌려 클리프를 쳐다보았다. 설마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왜냐하면 저 녀석이 샌드 웜에 삼켜졌음에도 살아서 귀환한 놈이거든.”
“설마… 웜의 뱃속에서 살아서 탈출했다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용기사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 때, 마법사 역시 그 의견에 동감이라는 듯 반박을 했다.
“자작님께서는 사막의 모래 먼지 때문에 샌드 웜의 움직임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상공에서 접근했기에 그
모든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었죠. 샌드 웜의 입안은 칼처럼 생긴 뾰족한 이빨들이 빽빽이 돋아나 있습니다. 그냥 삼켜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지면에 처박기까지 했죠. 설혹 단장님이라 해도 그런 상황에서는 무사하기 힘들 겁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운이 좋아서 살아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에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저런 상황이라면, 저 속에서 살아나올 수 있는 생명체는 그 어떤 것도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봤기에 클리프는 용기사와 마법사의 의견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샌드웜의 입속에 삼켜졌다고 생각하면, 살아나올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자신보다 한참 하수라고 할 수 있는 어린놈이 저 엄청난 놈의 뱃속에서 살아서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젠장. 그나저나 단장님께는 뭐라고 보고하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클리프가 난감하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자, 그런 속도 모르고 용기사와 마법사는 클리프를 위로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단장님께서도 이해하실 겁니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모래 밖으로 나와 있다고 해도 잡기 힘든 게 샌드 웜인데, 모래 속으로 도망친 놈을 어떻게 잡을 수 있습니까.”
지상으로 올라와 있기만 한다면 본부에 연락해 타이탄 1개 분대쯤 동원해서 잡을 수도 있겠지만, 모래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금은 콘도르 기사단 전체가 와도 잡는 건 불가능했다.
클리프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라이를 포기하고 본부로 돌아갈 것을 용기사에게 지시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돌아가자.”
***
“디겔님, 연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자신을 찾는다는 전언을 듣자마자 아르티어스는 툴툴거리며 홉킨스 연대장의 임시 집무실로 걸어갔다.
사막 부족에 대한 원정 작전이 끝난 것으로 링카 영주와의 계약은 종료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다음 의뢰를 받아 목적지로 출발했어야 했지만, 작전에 참가했던 모든 용병단은 아직도 링카 성에 머물고 있었다.
링카 영주가 용병단들을 재고용했기 때문이다.
휘하의 대병력이 전멸당한 데다, 새로운 전쟁이 예상되고 있었기에 링카 영주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찾으셨습니까? 연대장님.”
“리오 프라이스 님은 떠나셨나?”
아르티어스는 사막 원정이 끝나는 즉시 스승이 용병단을 떠날 거라고 윗사람들에게 말은 해놨었다.
용병단 소속이 아닌 늙은 마법사의 출발을 연대장이 파악하고 있다는 게 좀 의외였지만, 아르티어스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이틀 전에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흠, 그거 잘됐군.”
“……?”
뭐가 잘됐다는 것인지 아르티어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르고 있을 때, 홉킨스의 말이 이어졌다.
“콘도르 기사단에서 파견 요청이 왔다네. 자네를 콕 찍어 파견해달라고 말이야.”
“기사단에서 저를 찾는 이유가 뭡니까?”
홉킨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뭐, 자네가 워낙에 유능하니 뭔가 도움을 받을 일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 영주의 허접한 기사단도 아니고, 마도왕국 알카사스의 정규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의 능력은 대단히 뛰어났다.
휘하에 그런 마법사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용병단의 삼류 마법사를 굳이 파견해 달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아르티어스의 지능이 뛰어나다 해도 이건 도저히 유추가 불가능했다.
“그쪽에서는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하더군.”
그러면서 홉킨스는 아르티어스에게 찾아갈 장소가 적혀있는 종이를 건네줬다.
“저를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아르티어스를 맞이한 건 147분대장이었다.
일개 용병 마법사를 맞이하는 데 분대장급이 직접 기다리고 있도록 한 것만 봐도 수석 마법사가 아르티어스의 능력을 아주 높게 사고 있다는 증거였다.
“수석 마법사로부터 얘기는 들었네. 자네가 큰 힘이 되어줄 거라고 말이야.”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147분대장은 용병단 소속 삼류 마법사가 도움이 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자기 분대에도 3명의 우수한 마법사가 있었고, 기사단 전체로 본다면 그보다 더 뛰어난 실력의 마법사들이 수두룩했다.
마도왕국이라 불리는 알카사스였기에 마법사의 자원이 대단히 풍부했다. 그런 마법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에서 첫손에 꼽히는 게 바로
기사단이다.
가장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타이탄 생산 시설에 배치되고, 남은 인원이 각 기사단에 배치된다. 실력이 나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엘리트 마법사들도 사막 속에 숨어있는 언데드와의 숨바꼭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데, 용병대 소속의 삼류 마법사가 도움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