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연과 그 일당들의 좌담회
劍 :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는.
비 류 연 : 앗, 당신 누구야? 누군데 감히 남의 고정역할을 빼앗는 거야? 시간과 공간이 생겨난 이래로 첫 인사는 주인공의 몫이라고 정해져 있었다고! 정체가 뭐 야?
劍 :나?
비 류 연 : 그래, 당신!
劍:The 作家!
비류연 : 뭐야? 그 ‘The’라는 것은……?
劍 : 음…. 뭐 일종의 개체특정을 위한 표식이라고 할 수 있지. 고대에는 ‘M’이라 불린 적도 있었지.
비류 연 : 여긴 당신의 무대가 아니라고. 남의 ‘나와바리(왜국어입니다.)’에서 뭐하는 짓이야? 엉?
장 홍 : 옳소. 안 그래도 비중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아서 찝찝하구먼. 이제는 유일한 안식처인 이곳까지 침략해? 난 인정할 수 없어! 효
룡 : 맞아 맞아! 배후인물이면 족해!
비류 연 : 이거 혹시 음모 아냐? 이번 권은 특히 나까지도 비중이 작았다고.
劍그래서 몰래 욕한 건가?
비 류 연 : 욕이라니? 무슨 이야기인지……. 통 모를 소리를…….
劍 휘파람 불며 유야무야 넘어가려 해도 소용없어! 다 알고 있어! 망할 ‘존재’라고 덧붙인 게 설마 날 노리고 그런 건 아니었다고 발뺌하진 않겠지? 몇 페이지 몇 째 줄인지도 말해줄까? 음…….
(파라라라락!)
184페이지 15째 줄이로군! 자, 눈이 있으면 보라고!
비류연 : 칫, 들킨 건가!
劍 : 당연하지. 그런 적나라한 표현을 쓰고도 들키지 않을 거라 여겼단 말이야? 날 너무 만만하게 봤군.
비 류 연 : 다음번엔 좀더 꼬고 좀더 각색해야겠군. 좀더 은밀하게 말이야. 장막도 여러 번 겹치고…….
劍 : 또 할 생각이냐…, 너…….
비류 연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번 권은 독고령의 독무대나 다름없었잖아! 너무한 거 아냐?
劍 : 그런 걸 보고 작가의 편애라고 하는 걸세. 게다가 꼭 필요하기도 했고. 나로선 어떻게든 그 부분을 다루고 넘어가야 했다고.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허술해져 버리는걸. 일층 놔두고 이층부터 지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냐? 부실공사를 작정한 게 아니면.
장 홍 : 음…, 작가가 그걸 쓰고 싶어 10권에 낌새만 띄워놓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고 하더군. 설마설마 했지만……
효 룡 : 10권?
장 홍 : 왜 있잖아? 그 환마동 사건! 그게 이번 권을 위한 포석이었던 게지. 독고령을 띄워주기 위한. 이건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음모야. 우리는 점차 우리의 영 역을 잠식당하고 있어.
효 룡 : 그, 그랬던 건가……. 이건 음모였던 건가…….
劍 : 어허, 아무리 중국 우주개발 관련 과학자가 벽돌에 맞아 죽었다고는 하지만… 음모론에 몸을 맡기는 건 좋지 않아! 건전하게 살아야지.
비 류 연 : 그럼 아니라고 부인할 텐가?
劍 : 왜, 왜 이래? 나, 난 안 죽였어!!!
비 류 연 : 그거 말고, 이거!
劍 아니! 난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이건 중요한 에피소드였다고. 그럼 젊은 처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애꾸가 되었을 것 같아? 우주해적도 아니고 말이 야.
장 홍 : 큭! 왠지 설득력이 있군. 설득력이 있어.
비 류 연 :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劍 : 뭐, 자표이리(自表而裏), 모든 사물의 표면(겉)에는 그 이면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을 관통하는 원인과 결과의 상호 감응(感應) 법칙인 인과율(因 果律)이 존재하고…….
비류 연 : 하긴 편애도 원인은 원인이지. 그 논증이 타당하다 해서 꼭 그 결과가 참이 되어야 하는 법은 아니니깐 말이야.
劍 : 그렇게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매우 좋지 않아.
비류 연 : 현상의 한 단면밖에 보지 못하는, 지식은 주입해주는 것만이 진짜인 줄 아는 바보들보다는 낫잖아? 무뇌아도 아니고 말이야. 뇌는 쓰라고 있는 거지 두 개골과 몸체의 무게중심 잡으라고 넣어놓은 게 아니라고.
劍 : 뭐…,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장 홍 : 그럼 혐의를 인정한다는 거군.
劍 험악하게 혐의씩이나……. 자, 자, 넘어가자고 넘어가! 자, 그럼 여러분…….
비 류 연 : 잠깐! Just wait a moment!
劍 : 또 왜? Why?
비 류 연 : 지금 방금 마지막 인사를 하려 했지?
劍 : 물론이지! 무슨 문제라도?
비 류 연 : 그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장홍 & 효룡 : 암, 뻔뻔하고 말고!
劍: 이번엔 또 뭐지……?
비 류 연 : 첫 시작 인사를 주인공의 허락도 없이 탈취한 주제에 끝마무리 인사까지 하려 든단 말이야? 시작과 끝을 모두 차지하려 하다니……. 신이라도 되고 싶 은 건가! ‘나는 알파(a)며 오메가(2)다’ 라면서 말이야.
劍 : 그건 과장이라고, 과장! 오버야 오버!
비 류 연 : 어쨌든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절대 인정할 수 없어.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지. 일반적으로 말이야. 공평하고 분쟁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자신이 얻은 이익에 대한 대가를 사회에 환원하지 않으면 안 돼. 욕망이 과잉된 사회는 혼란이 오기 마련이지.
劍 : 겨우 인사 하나 가지고 그 정도씩’이나…….
비 류 연 : 겨우라니! 만류귀종(萬流歸終)도 모르나?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궁극에 가서는 하나로 귀결되기 마련이지. 그것은 곧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 완전한 분리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때문에 사소한 것을 무시하는 녀석은 큰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아니, 할 수 없어!
劍 : 중시와 집착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비류연 : (찌릿!) 뭔가 불만이라도?
劍 : 아냐, 아냐! 알았어, 알았어! 항복! 내가 포기하지. 그러니 그런 무서운 눈으로 보지 말게. 내가 양보하지. 마무리 인사는 너희들이 하라고. 더 이상 버텼다가는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겁나는구먼.
효 룡 : 현명한 판단이로군.
장 홍 : 하지만 양보라는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 우리는 우리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건데 왜 저 사람에게서 ‘양보’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비류 연 : 뭐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劍 : 이… 이봐! 아까랑 이야기가 틀리잖아!
비류 연 : 도와줬으면 고마워해야지, 원망할 처지인가?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겠지?
劍 : (얌전한 목소리로) 네…….
비류연 & 장홍 & 효룡 : 독자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마침내 저희들은 저희들의 권리를 지켜냈습니다. 역시 지킬 것은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劍 : (그런 소리 하라고 양보한 건 아닌데…)…….
비류연 & 장홍 & 효룡 : 다음 권에서 뵙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꾸벅!
劍 : 야, 겨우 그 짧은 말 하나 하려고 그 난리를 친 거냐?
비류 연 : 길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 가끔은 좋잖아? 심플한 것도!
劍 : 그거 혹시… 14권 권말을 겨냥한 말 아니냐?
비류연 : 응! 당연하지!
劍: ……
찰나(刹那)를 영원(永遠)처럼 기다려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