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6권 15화 – 오행관 최종 관문 중토관(中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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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6권 15화 – 오행관 최종 관문 중토관(中關)

오행관 최종 관문 중토관(中關)

“드디어 마지막 관문이로군.”

비류연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좋은 아침, 맑은 공기였다. 폐부까지 깨끗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옆에서는 효룡이 자신을 흉내 내고 있었다.

타의 모범이 된다는 것은 참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번 수화관에서 많은 조가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지. 덕분에 금요관에서 잃었던 점수를 만회할 수 있었어. 이번 관문에서 일 위를 한다면 우리가 이번 화산지 회에서 우승할 승산은 충분해!”

마지막 관문의 개시를 앞두고 중앙 연무장에서 연설과 훈시가 있을 예정이었다. 동료들과 합류한 비류연은 함께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고, 단상 위에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혁 노야였다. 사람들은 각기 표시된 조 앞에 가서 정열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모였음을 확인하자 혁중은 연설을 시작했다.

“주지하시다시피 이번 관문이 마지막 관문입니다. 전 여러분이 아무 사고 없이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는 사실을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상생상극의 순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만 너무 탓하진 말아주십시오. 이번 관문은 시간이 좀 많이 걸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지막에 배치해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도대체 얼마나 오래 걸리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천율령의 수장인 혁중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중토관의 진행 방식과 규칙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참가자들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혁 노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노야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관문은 지금까지의 성적을 한 번에 뒤엎는, 대역전극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관문의 내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자연 속에서 십사 일 동안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한다. 그것이 제일 규칙입니다. 그 이외의 규칙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대자연 속에서 각 조는 스스로의 힘으로 주거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침상을 마련해주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특별 봉사로 모포 한 장씩은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식량 역시 각자의 몫입니다. 수렵이든 채집이든 좋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식량을 확보하고 물을 확보하세요. 토기를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중토관 이 실시될 장소 주위에는 상당수의 맹수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분에 의해 호랑이가 잡히기도 했죠. 호환을 당한 사람도 나왔었습니다.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주의해주세요. 늑대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곰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천둥, 번개, 호우, 산사태, 바람, 그 어떤 돌발적인 위협에도 맞서 싸워야 합니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곁에 있는 동료들뿐입니다. 동료를 믿고 협력하여 무사히 이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 기를 빕니다.”

혁 노야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 살아남느냐. 그것은 채점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모두들 이 ‘천율패(天律牌)’를 자신의 조 앞쪽에 서 있는 율령자들로부 터 받도록 하세요.”

혁중이 주머니에서 호패 크기의 나무패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이 천율패에는 조와 이름, 그것이 진품임을 확인하는 천율인(天律印)이 찍혀 있습니다. 앞으로 이 주일 동안 이 천율패를 잘 간수하시기 바랍니다. 이 천율패를 잃어버리는 사태 역시 탈락으로 간주하도록 하겠습니다.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장치로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화산규약지회 오행관 마지막 토의 관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각 조를 담당하는 율령자들의 인솔에 따라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열한 개 조는 각기 다른 장소로 이동해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선 1조부터 출발해주세요. 이 각(30분) 간격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1조 출발해주십시오.”

1조를 담당하는 율령자의 지시와 인솔에 따라 대공자를 위시한 아홉 명이 그 뒤를 따랐다. 비류연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측면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비류연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고, 그 옆에 서 있던 혈심란 교옥도 대공자 비를 향해 무운을 빌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교옥의 인사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비의 시선이 비류연과 마주쳤다. 비의 눈동자는 차갑고 무정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일종의 도전이나 도발이라 봐도 좋은 것일까? 대공자 비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마천칠걸 모두는 경악하고 말았다. 저 실없어 보이는 인 간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두고 봐야 아는 일이죠.”

첫 번째 목요관, 1조 승리. 두 번째 금요관, 2조 승리, 1조7조 실격. 세 번째 화수관, 7조 승리, 1조 2위.

현재 대공자 비가 속한 1조, 용천명·마하령의 2조, 모용휘·임성진의 3조, 비류연의 7조, 마천각 출신자들이 중심을 이루는 11조, 이렇게 다섯 개 조가 선두를 다투 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승부가 결정될 곳은 화산지회 오행지관 최후 최종의 관문 중토관뿐이었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무기와 일 인당 모포 한 장, 수저 한 벌, 부싯돌 하나뿐이었다. 홍매곡의 비품은 이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다. 냄비조차도 능력에 따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단 그것들 중 개인 물품은 가져가도 상관없었다.

드디어 시험이 시작되었다. 아니 이번 관문은 시험이 아니라 시련이라 하는 편이 오히려 더 어울렸다.

사람들 대부분 이런 자연 속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드물었다. 아무리 산속에 자리한 문파에서 수업을 받았다고 해도 그 안에는 인간의 사회가 있었고, 인간의 문명 이 있었다. 적어도 비바람을 피하게 해주는 지붕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불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량이 있었다.

그랬던 이들이 일순간에 자연 속에 방치된 것이다. 맨 처음 그들은 무엇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우왕좌왕해야만 했다.

이때 길을 가르쳐준 것은 놀랍게도 비류연이었다. 그는 인간이 자연 속에 방치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심산유곡에 내팽개쳐진 상태에 서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생기가 넘쳐 있었다. 자연 속에 떨어지자 갑자기 그는 모든 방면에 유능해졌고 또 능숙해졌다.

그 동굴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마른 장작을 주워야 한다는 비류연의 제안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그 일을 하다 작은 계곡 물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풀숲에 가려져 있던 것을 나예린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꽤 넓고 깊은 동굴이었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게다가 곰이나 호랑이 같은 선객도 없는 모양이었다.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미리 터를 잡고 있던 선객들에게는 말이다.

“이거 좋은데요. 일부러 임시 초옥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아도 되겠어요.”

비류연이 공로자인 나예린을 칭찬하며 말했다. 거주지, 물, 식량, 이 세 가지가 생존을 위해 가장 최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과제였다. 만일 동굴이 발견되지 않 았다면 진짜로 만들 작정이었다.

“일단 이곳에다가 본진을 치도록 하죠!”

모두가 동의했다. 곧 풀과 나무들을 모아 입구를 봉쇄하고 위장했다. 괜히 노출시켜 귀찮은 경우를 불러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일단 물과 거주지, 가장 먼저 해야 할 세 가지 중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이제 식량은 어떻게 하죠?”

나예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녀 역시 이런 생활은 처음이었다.

“사냥을 해야죠. 산나물이나 과일 같은 것이 있는지도 살펴보구요.”

“사냥?”

“걱정 말아요. 나한텐 든든한 우군이 있으니깐요!”

“우군이라뇨?”

나예린의 반문에 비류연은 싱긋 웃었다

“휘이이이익!”

비류연이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댄 다음 힘차게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이이익!

다음 순간 푸른 깃털을 지닌 늠름한 하늘의 왕자가 바람을 가르며 활공해 내려와 비류연의 오른팔에 내려앉았다. 그의 애매인 우뢰매였다.

“어머, 오랜만에 보네요. 그러고 보니 데리고 왔었죠? 다른 사람들은 거의 다 자기 매를 두고 왔는데.”

비류연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린은 잘 모르겠지만 이녀석은 본래 매우 유능한 사냥꾼이에요.”

비류연의 우뢰매는 무척 똑똑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학관에다 자신의 전서응을 맡기고 왔는데, 유독 비류연만 그러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천 무학관에 많은 수의 전서응이 있었지만, 우뢰매만큼 유능한 사냥꾼은 드물었다. 그리고 동시에 뛰어난 길잡이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언제나 날카로운 눈으로 사냥감이 있는 곳을 알려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사냥을 갈 건가요?”

“아뇨! 아직 한 가지 남은 게 있어요.”

“뭔데요?”

“가장 중대한 위협에 대비해야 돼요!”

“가장 중대한 위협? 그것이 도대체 뭔데요?”

비류연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바로 인간!”

산은 깊고 수목은 울창하다. 감시자는 멀리 있고 칼은 가까이 있다. 세상의 험악함을 모른 채 들판에 풀려 있는 사냥감들……. 이 기회에 어떻게든 경쟁자들을 떨 구고 우승한다. 이런 상황에 방치되면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생각뿐만 아니라 충분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만큼의 결단력과 욕심을 겸비 한 사람 중에 삼흉(三凶)이라 불리는 악질적인 패거리도 끼여 있었다.

사납고 흉폭한 애들이 적지 않은 거친 기질의 마천각 내에서도 그들은 문제아였다. 어린놈들 주제에 하는 짓이 흉신악살 못지않았던 것이다. 그런 놈들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한데 모인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삼흉(三凶)이 되었다. 마천삼흉. 이들은 마천각 내에서조차도 배척받고 기피되고 있는 존재 였다.

흑도 최고의 기재들이 모이는 마천각 안에서 나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단숨에 멸살당하고 만다. 그러나 그들 은 삼 년 이상 그 흉명(名)을 이어왔다. 그들의 실력과 수단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긴 그런 실력이 있었으니 화산지회 대표로도 뽑힐 수 있었을 것이다. 품위보다는 힘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그들은 우연히 한 조에 들어가게 되었고, 다시 한 번 그들의 우정을 돈독히 할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중 토관은 그들의 폭력성과 비겁함과 저열함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실로 완벽한 환경이었다.

규칙은 오직 생존뿐. 생존에 사냥은 필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먹잇감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한 명은 이 인간 형상을 지닌 짐승들조차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였다. 마치 얼음을 조각해놓은 것 같은 차가운 아름다움과 그 이면에 자리한 보이지 않는 마력이 그들의 욕정을 맹렬히 자극했다. 그 옆에 붙어 있는 앞머리가 긴 놈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놈이 갑자기 얼굴을 들더니 정확히 그들이 은신하고 있는 곳을 향하여 외치는 게 아닌가.

“어이, 나무 위의 세 놈, 이제 그만 모습을 드러내시는 게 어때?”

앞머리가 긴 녀석은 의외로 감이 좋은 모양이었다. 매복하고 있던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낼 줄이야……. 그래도 두려울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흐흐흐, 용케도 눈치챘군!”

이 셋은 아편 중독자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좁쌀만한 홍채와 지나치게 넓은 흰 자위는 그런 소문이 정말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 다. 사백안이라고 하던가. 상하좌우 네 방위 모두가 하얗다는 이야기였다.

쭉 찢어진 눈동자에는 핏발이 어려 있었고, 뾰족한 턱 위에 귀까지 닿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길게 찢어진 얇은 입술 가에서는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그중 한 놈이 자신의 칼에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주욱 핥았다.

“이거 피를 볼 생각을 하니 흥분돼서 참을 수가 없구나. 헤헤헤!”

독사보다 더 추잡한 눈이 여인을 훑고 지나갔다. 그자는 발정 난 수캐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머리통 속에서 지금 무슨 잡스런 생각이 난무하고 있는지는 모르 는 쪽이 오히려 더 정신 건강에 좋았다.

“몇 조 놈들이냐?”

“헤헤헤, 그게 그렇게 알고 싶으냐? 죽음의 사조(死組) 어르신들이다.”

“네놈들에게 지옥을 보여줄 세 분이시다. 마천삼흉의 이름은 너 같은 촌놈도 들어봤을 테지?”

“몰라! 그런 쓰잘머리 없는 것까지 시시콜콜 알아야 할 만큼 난 한가하지 않아!”

비류연이 차갑게 대답했다. 그의 비아냥거림은 그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네놈은 특별히 더 잔인하게 죽여주마! 우선 나무에 하루 동안 거꾸로 매달아놓은 다음 피가 머리에 몰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게 되면 그때 산 채로 내장을 끄 집어내고 살을 발라낸 다음 마지막에 가서야 목을 따주마!”

광기가 희번덕이는, 듣는 것만으로 소름이 짝 끼치는 협박이었다.

“할 수 있다면 해보는 것도 좋겠지!”

“아, 저쪽 여자는 살려줄 테니 걱정하지 마! 저 여자는 살아서 이 몸들에게 이것저것 봉사해줘야 될 게 잔뜩 있거든! 흐흐흐흐흐!”

세 마리 짐승의 눈이 색욕으로 붉게 빛났다. 두꺼비가 혀로 핥는 듯한 혐오감에 나예린은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그것은 생리적인 혐오감이었기에 무공의 고하와 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그 말로 네놈들의 운명은 정해졌다!”

겨울 한기가 깃든 싸늘한 목소리로 비류연이 말했다.

삼흉의 말은 옳았다.

그들의 장담대로 확실히 하루 동안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고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피가 머리에 쏠리자 연약한 뇌가 비명을 질렀고, 붉게 충혈 된 눈은 당장에라도 안와를 뛰쳐 나올 것만 같았다.

“커억… 이… 개새…끼…들… 다… 주…거…써……”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비명이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치 없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저것들 어떻게 할 셈인가?”

오비완이 대롱대롱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마천삼흉을 흘깃 바라보며 물었다.

“당분간 저렇게 둬야죠! 아무래도 그러길 원하는 것 같으니깐.”

장작에 불을 붙인 후 막 그 위에 냄비를 걸어놓으려던 비류연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우리 마천각에서도 악명이 자자하던 저 삼흉이 저런 비참한 꼴이 되다니… 그러니깐 그냥 잘라버리자고 그랬잖나!”

자신들은 우는 아이도 벌벌 떨게 만드는 마천각의 삼흉 어르신들이라고 떠들던 이들은 지금 온몸에 밧줄이 칭칭 감긴 채 홀딱 벗겨져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궁형에 처해야 한다는 오비완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지만, 여성들의 정신 건강과 저녁 밥의 입맛을 위해 기각되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는 그런 추잡한 것 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이 비류연의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비류연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엄살이 좀 심하군요!”

“원래 남에게 상처 주기만 한 사람은 자신이 고통받을 경우 저항력이 떨어진다네. 자신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평소 그들은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저 것도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겠지.”

“후회는 언제나 상습 지각생이죠. 언제나 빠른 법이 없어요. 후회하고 있을 때는 언제나 이미 늦었을 때니깐!”

남에게 위해를 가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위해를 입을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형평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역지사지의 마음가짐 을 지닌 사람은 결코 남을 해치는 법이 없다.

“저녀석들은 시작에 불과할거야. 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시작한 것일 뿐이지.”

비류연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마 앞으로 줄줄이 나오겠죠. 이래서는 습격 차례를 정하기 위해 번호표를 발부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러더니 갑자기 괴이한 미소를 흘리며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이럴 땐 경고와 교훈이 필요하지. 남을 해코지하고 싶으면 자신도 그만큼 해코지당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애들은 그런 각오가 전혀 없단 말이야. 저 세 놈들처럼!

그러고 보니 저놈들이 우리를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우선 거꾸로 매단 다음에… 이건 했고, 다리를 자른다고 했나? 아냐아냐, 피부를 벗기는 게 먼저였나…….” 비류연이 가물가물한 기억을 뒤적이자 옆에서 나예린이 도움을 주었다.

“먼저 산 채로 내장을 꺼낸 다음 살을 발라내고 마지막으로 목을 딴다고 했어요.”

나예린이 정확하게 그때의 사실들을 되짚어주었다. 감정의 기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그래서 더욱 무서운 목소리였다.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혀지지 않았다.

“아, 맞다! 그랬었지! 이제 기억이 나네요. 역시 예린의 기억력은 비상하군요. 흐흐흐흐, 목을 딴다라……. 저녀석들 좋은 발상을 가지고 있군요. 그럼 우선 녀석 들의 목을 자르고 내장을 꺼낸 다음 경고용으로 걸어둘까?”

비류연의 두 눈동자는 염화지옥에서 타오르는 겁화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자 오비완도 덩달아 음산하고 음습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매달린 세 명의 귀에 아 주 잘 들리도록 신경쓰면서 맞장구를 쳤다.

“크크크크크!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로구만. 그러면 이곳이 우리의 영역이며,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놈들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겠지. 이것 이야말로 ‘역지사지’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조금 틀린 것 같지만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안하무인으로 날뛰던 세 명의 개망나니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근성도 없이 처 절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용서를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요, 나으리! 나으리를 몰라본 소인들이 어리석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삼흉이 동시에 비명을 토하며 울부짖었다. 피가 쏠려 붉게 변해 있어야 할 그들의 얼굴은 무슨 조화인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제발 이제부터 새사람이 되겠으니 부디 용서를. 형님! 나으리! 대협!”

비류연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모른 척했다. 오비완은 정신을 집중하여 톡톡 손톱을 다듬었다. 효룡은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져서야 잘못했다는 시늉을 하는 삼흉의 목소리는 그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하루아침에 진심으로 자신들의 잘못 을 뉘우쳤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던 것이다. 삼흉의 애걸복걸은 만장단애 아래로 떨어지는 돌멩이처럼 허무의 나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으리, 하느님, 형님, 부처님, 제발 살려주세요!”

마침내 얼굴을 맞대며 쑤군거리던 세 남자의 얼굴이 굴비처럼 매달린 삼흉 쪽을 향했다.

크크크크크크!

켁켁켁켁켁!

삼흉은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 했다. 자신들은 향해 다가오는 세 명의 눈빛과 웃음은 그들의 주관적 시점으로 볼 때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의 등 뒤로 지옥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들은 절대 적으로 삼지 말아야 할 자를 적으로 삼고 말았다는 것을. 하지만 비류연의 말대로 후회는 언제는 빠른 법 이 없는 만년 지각생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후회는 지각한다.

비류연은 무심한 얼굴로 칼을 들었다. 보기만 해도 한기가 돌 정도로 날카롭게 갈린 칼이었다. 그는 충분한 뜸을 들이며 천천히 칼을 치켜들었다.

오랜 고통을 안겨줄 생각은 없었다. 단숨에 끝내는 것이 자비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사의 경계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일격이 필요하다. 오직 쾌속만이 그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올려진 칼이 정점에 다다르자 비류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칼이 내리쳐졌다.

푸와아아아아악!

목 부위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지켜보던 여인 셋이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졌을까? 하지만 세계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에 구속되어 있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그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만은 잊지 않기를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욕심을 내지 말기를…..

비류연이 능숙하게 가죽을 벗겨내며 말했다.

“예린, 물은 다 끓었어요?”

“예! 다 됐어요, 류연!”

나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은 토끼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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