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휘의 고민
-친애의 정
기(氣)란 무엇인가?
팔괘(八卦)란 무엇인가?
음양(陰陽)이란 무엇인가?
자연(自然)이란 무엇인가?
태극(太極)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그러한 것, 즉 자연(自然)이란 어떤 다른 원인도 가지지 않는 자기 자신을 원인으로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유(有)의 반대 개념인 무(無)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인가? 자연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무(無)라 칭하는 것은 상대적인 무(無)인가 아니면 절대적인 무(無)인가? ‘유생어무(有 生於無)’에서의 ‘무’는 없는 것조차 없는 무, 즉 상대적인 무가 아니라 고정되어 있지 않는 무형성(無形性)을 뜻하는 절대적인 무(無)를 의미하는 것인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제일 원인이라고도 감히 칭할 수 있는 도(道)의 성질을 무형성이라고 봐도 이상은 없는 것인가?
그런데 이런 사변적인 사고가 무공의 발전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처럼 난해한 것에 대한 해답을 굳이 찾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무사(武士)는 그저 근골 (筋骨)을 강철처럼 단련하고 검을 바람처럼 빠르고 날카롭게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멋모르던 어린 시절, 세상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던, 그저 주어진 대로 흘러가던 그때라면 그렇게 제멋대로 납득해버리는 데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참된 고수는 육체의 단련만으로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금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눈앞에 닥친, 어느 날 문득 깨닫고 보니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거대한 문제점을 회피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비겁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미 비겁자인지도 몰랐다. “후우…….”
모용휘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요즘 이 천재 청년(누구와는 다른 타칭)은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그를 괴롭히고 있는 화두들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행위는 엄청난 심력의 소모를 가져왔다. 그렇 다면 성과가 있었는가? 이런 화두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열받는 점은 쏟아부은 고민만큼의 해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밑지는 장사였 다. 이렇게 절망적으로까지 밑지는 장사는 세상을 다 뒤져봐도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에 대한 결론이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단순명쾌하게 매듭지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면, 그에 대한 담론(談論)이 수백 년 동안 이어지지는 않았 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화두를 뛰어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강요된 현실이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모든 성질은 그 극(極)에 이르면 반대로 변한다는 뜻. 그것은 세상이 순환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물(物)이 극에 이르면 우기성(偶奇性: 패리티)은 보존되지 않는다. 음과 양이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균형은 어떤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존재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곧 세계 의 정지, 동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대칭성은 보존되지 않고, 그 때문에 세계는 끝없는 순환을 반복하며 결코 멈추는 일이 없다.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나를 이해하는 것이고, 나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곧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지. 괜히 인간의 몸을 소우주라 하고, 스스로 그러한 것, 즉 자 연(自然)을 대우주라 칭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혁중이라 소개한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정체불명의 노인.. 노인은 현 강호 최강의 무공을 전수해주겠다고 했다. 그 진전을 이은 자는 명실상부한 강호 제일인자가 될 수 있다는 호언과 함께. 그리고 지금 자신이 말한 것은 그 무공으로 들어가는 입문 과정과도 같다고 했다. 나중에 그 노인이 율령자를 통솔하는 장이 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었던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정말로 태극신군 무신 혁월린의 진전이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노인의 신분이 그 말의 신빙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말씀은 고맙습니다. 미숙한 반쪽짜리 무사인 저를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전 아직 제가 익히고 있는 것조차 완 전히 소화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신공을 전수받을 자격이 되겠습니까??
거절해버리고 말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전수받는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떠안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도 그것은 감내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확인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자기 불확신의 두려움이었다. 자신의 미숙함을, 한계를 자각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그 는 벌써 번의 좌절을 맛보았다. 한 번은 자신이 한때 멸시하던 친구에게, 한 번은 어둠 저편의 얼굴 없는 존재에게.
그렇다. 솔직히 말해 그 신공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할지 모를 자신의 미래가 두려웠던 것이다. 또 한 번 좌절을 맛보면 그때는 정말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래 서 움츠러들었고, 본심과는 다른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워 거절했던 것이다.
노인은 크게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한 것 같지도 않았다. ‘하늘이 내린 이런 절호의 기회를 차버리다니, 정신나간 놈!’이라고 욕하지 않은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다만 화두 하나를 인연의 끈으로 남기고 떠났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시작과 끝에 남기고 떠난 의문은 뇌리 속에 각인이라도 된 듯 잊혀지지 않았고, 덤으로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용한 재주가 되었다. 해답이 보이지 않는 의 문은 출구 없는 어둠의 미로나 매한가지였다.
“나의 그릇[器]이라는 게 겨우 이 정도였나? 겨우 이따위 인간에게 사람들은 함부로 영재니 천재니 하는 말을 낭비했단 말인가?”
자신에 대한 불신의 싹이 트자, 이 잡초는 무서운 속도로 번식을 시작하더니 금세 그의 마음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이처럼 회의해본 적은 아직 까지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좌절을 겪어보지 못한 만큼 내성도 부족했다. 때문에 이번에 그가 느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지경이 었다.
물론 그는 평소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자만하지도 않았고, 겸허의 미덕을 잃고 오만방만해졌던 적도 없었다. 그런 상태로 심신이 쏠리는 것을 그는 철저한 자기 통제를 통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태산북두보다 높고 까마득한 존재인 할아버지의 위광이 섣부른 자만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세대에서는 한 번도 업신여김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녹록한 수업을 쌓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는 혈통의 그림자에 의존할 만큼 나약하지도 뻔뻔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실천은 더더욱 안 되는, 방치된 진리를 제대 로 터득하고 있었다. 그가 검술 정진에 쏟은 땀은 한두 말짜리 저울로 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는 것 역시 재능이라고 했던가? 천부적인 재 질에 부단한 노력까지, 그것이 지금껏 칠절신검 모용휘를 만들어온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그 재능과 노력이 최초로 벽에 부딪힌 것이다. 충격이 없을 래야 없을 수 없었고, 그 충격은 그의 정신의 근간까지 뿌리째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번에 그가 느낀 무력감은 일찍이 그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충격이었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는 그 순간 세상은 모든 희망을 잃고 회색빛으로 변한다. 답답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갑갑했다. 일찍이 이토록 고독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할아버지…….?”
모용휘는 그의 무인으로서의 표본이자 목표인 검성 모용정천을 떠올렸다. 조부는 힘들 때면 언제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어주는 든든한 지주였 다. 하지만 이번에는 약발이 다했는지 더더욱 외로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길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걷는다는 것은 망망대해에 홀 로 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등대의 불빛을 찾아 헤매는 표류 선원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미칠 듯이 보고 싶었다. 그리움이 범 람한 황하(黃河)처럼 그의 마음을 휩쓸었다.
“왜 그러느냐?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서? 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라도 있느냐?”
처음에는 환청幻聽)인가 싶었다. 무척이나 그리운 울림, 자애가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한참을 멍하니 있은 후에야 그는 그것이 착각에 의한 귀울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모용휘의 고개가 세차게 뒤로 돌아갔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배후를 내준 것이 화산에 와서 벌써 두 번째였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눈을 비볐다.
“…할아버지?”
손을 뻗으면 닿을 그곳에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친애하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조부인 검성 모용정천이었다.
“혹시 이거 꿈인가요?”
얼떨떨한 목소리로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허허, 녀석하고는. 너답지 않게 왜 그리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게냐?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구나!”
실제로 그런 느낌이었다. 가장 보고 싶었으면서도, 가장 만나보기 괴로운 사람이 의식을 뛰어넘어 현실 속에 나타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허허허, 녀석! 꿈인지 아닌지, 실제인지 가짜인지는 직접 확인해보면 되지 않겠느냐?”
백발의 노인은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띤 채 천하를 안을 듯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꿈이… 아니었다.
“하, 할아버지!”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남아 대장부로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런 추태를 할아버지 앞에서 보일 수는 없었다. 검성의 핏줄 은 함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용휘는 끝내 참지 못하고 아이처럼 검성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강호에서 칠절신검이라 불리며 완벽에 가깝게 절제된 생활과 절도 있는 행동을 해온 바른생활 청년도 조부 모용정천 앞에서는 귀여운 응석받이 손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평소 그를 냉막하기 그지없는 인물로 알 고 지내던 사람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허허허, 녀석. 이 년 정도 안 봤다고 그새 어리광이 늘었구나!”
검성은 자애롭게 웃으며 품안에 안겨온 손자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북받쳐 오르던 그리움이 어느 정도 가시자 그제야 모용휘는 자신을 놀라게 한 지금의 상황이 어떤 연유로 발생되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의문을 해 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당사자에게 직접 묻는다’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강호 나들이가 뜸하던 검성이 이곳에 온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녀석, 내가 누군지 그새 잊은 모양이구나.”
질문에 대한 검성의 대답이었다.
“검성(劍聖)의 칭호를 가지고 계신 무림 최고의 검호(劍豪)이자 천무삼성의 한 분이며, 저의 자랑스런 조부님이십니다. 소손이 어찌 그 사실을 잊을 수 있겠습니 까?”
모용휘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허허, 그런데도 너는 그런 질문을 하느냐?”
조부의 핀잔에 모용휘는 그제야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렇군요. 소손이 우문(愚問)을 던졌습니다.”
현 무림에서 검성 모용정천이 가지 못할 장소 따위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나 그곳이 화산규약지회가 열리는 화산 천무봉이라면 더욱 그랬다. 지난 백 년 동안 화산지회 최고의 귀빈으로 대접받았던 천무삼성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본가로 정중한 초청장이 보내졌을 것이다. 다른 시시한 행사는 몰라도 삼성이 참 석하지 않은 화산지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항상 이 일에만은 변함없는 신경과 관심을 쏟고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이곳뿐만 아니라 강호에서 열리는 모든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천무삼성에게는 가장 극진한 예를 담은 초청장이 보내진다. 세 사람이 참석하든 안 하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쪽에서는 크나큰 광영이 되겠지만 그런 큰 기대는 잘 품지 않았다. 요는 그것을 보냈느냐 보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무림의 전설에 대한 최소 최저한의 예의인 것이다.
“아참, 저쪽에서 할애비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더 기다리게 만들었다가는 무슨 객쩍은 소릴 들을지 모르니 얼른 가봐야겠다. 너도 나와 함께 가도록 하자. 오 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라 그 친구들도 좋아할 게다.”
“할아버지의 지인들이시라면..
조부 검성의 지인으로 이곳 화산 천무봉에 함께 올라올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금세 두 사람의 형상이 그려졌다.
“설마 그 두 분께서…….”
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들 아니면 또 누가 있겠느냐? 백 년이 지나도록 끊어지지 않은 끈질긴 인연이지, 허허허. 너도 인사는 해야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예, 그 두 분과는 십 년 만에 뵙게 되겠군요.”
“그래, 네가 그 지붕에서 굴러 떨어진 지도 벌써 십 년이로구나!”
“하, 할아버지… 그 이야기는…….”
검성이 추억에 잠긴 눈으로 중얼거렸고, 모용휘는 당혹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랐던 것이다.
옛날 그 세 사람과 처음 조우했을 때 모용휘는 열두 살짜리 코흘리개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무가의 자손이었고, 다섯 살 때부터 체계적으로 무공을 익 혀 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다른 무가의 핏줄들과 마찬가지로 무림에 관련된 수많은 기인이사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으며 자라났다.
수많은 기인이사나 전설적인 고수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목표를 설정해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서 항상 장려되고 있었다. 하긴 그런 이 야기들 이외에 또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인기 있었던 것이 현 강호의 살아 있는 전설 천무삼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었다. 모용세가의 자손으로서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문중 어른들은 시간이 날 때나 아이들이 이야기를 조를 때면 언제나 검성 모용정천의 신화와 같은 무용담을 귀 에 못이 박히게 들려주었다.
세가와 분가와 호법가의 자손들 중 그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검성의 이야기에는 감초 같은 두 조연 – 두 사람이 들었다면 분명 길길이 날뛰었을 – 검후와 도성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모용휘 역시 전설적인 무림의 영웅 검성 모용정천과 그의 믿음직스런 동료이자 조력자인 도성, 검후의 이야기를 나무가 햇살을 받듯 자연스럽게 들으면서 자랐고, 그들은 그의 마음속 영웅들이 되었다.
때문에 그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도성과 검후가 모용세가를 방문해 천무삼성의 회합을 집 뒤뜰에서 가졌을 때 얼마나 선망 어린 눈빛으로 세 사람의 회합을 지켜 봤던가……. 그 회합을 가장 열렬하게 훔쳐봤던 당사자가 바로 모용휘였다. 그리고 결국 들켰던 것이다. 하지만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를 나무라거나 하지 않았 다. 오히려 훔쳐보다 들킨 것에 당황하다 지붕에서 굴러 떨어지는 그를 구해주기까지 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더니… 네가 그 지붕에서 굴러 떨어지다 검후의 도움을 받은 것도 벌써 십 년이 되었구나! 그 두 사람도 좋아할 거다. 똘똘하다며 널 무척이나 귀여워했었지.”
“예, 그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시기도 많이 받았지요.”
어린아이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샘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는 전설과의 만남이 기뻤었다.
“모용씨 집안에 잘난 애들이 많지만 자네의 검을 이을 아이는 이 아이뿐인 것 같군.”
“허허허,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이 아이는 장손도 아닌 셋째 손자인데?”
“흥, 왜 이러시나? 자기도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음흉하게시리.”
“허허허, 이거 탄로나 버렸나? 사실 저 아이에겐 기대가 크다네. 내 진전은 저 아이에게 돌아갈지도 모르겠군.”
“그게 실전되는 것보다 낫지.”
“그러고 보니, 이 누이에게도 진전을 이을 만한 아이가 있다고 했잖은가?”
“분명 나가 녀석의 딸내미라고 들었는데……?”
“그래요. 그 아이라면 저의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을 거예요. 더 나아가 저를 뛰어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 마음이 닫혀 있으니… 그 닫힌 마음이 열 리기 전에는 새로운 경지로 진입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 어떤 좋은 계기가 있어야 할 텐데…….”
그때 결심했다. 절대 할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이가 되겠다고. 절대 그 이름을, 그 세 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절대로!
“그런데 지금 이 한심한 모습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모용휘?”
괜찮을 리 없지 않은가! 심장에 비수를 꽂고 어떻게 멀쩡할 수 있겠는가!
“그때의 맹세를 잊어버렸단 말인가?”
물론 잊지 않았다. 그 맹세를 잊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자아를 폐기한다는 것과 다름없는 의미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차피 세상을 규정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야! 식(識)의 전변(轉變), 즉 마음의 인식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어차피 세계란 마음의 체를 거치지 않고 서는 아무런 의미도 획득할 수 없으니깐. 무의미 그 자체지. 뭐, 그게 또 세상의 매력이긴 하지만.’
그렇게 말한 게 누구였더라? 비류연이었나? 그녀석의 가벼운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너무 유식하고 지나치게 심오한 기색이 있어 오히려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 던 말이다. 그의 말대로였다. 자기를 바꿀 수 있는 건 최종적으로 자기뿐이다. 남이 대신해 바꿔줄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친절하지 못하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 던 세계라는 백색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은 자기뿐이었다.
“이대로 세 분의 기대를 저버려도 되는 것인가? 너는 너 자신이 누구의 손자인지 잊고 있었던 게 아닌가? 너는 자랑스런 모용세가의 자부심을 망각하고 있지는 않 았나?”
그런데 지금 모습은 어떠한가? 자신이 더욱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 자신의 피를 믿고, 자기 자신을 믿어라!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놈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역시 이대로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결심을 굳히고 나자 갑자기 온몸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찬 활기가 샘솟아 나왔다.
길이 정해지면 그 위를 걸어갈 뿐. 필요한 것은 미지의 길에 발을 내딛을 용기와 중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 지루함과 싸워 이길 끈기였다.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인내와 끈기라면 남들보다 조금 자신이 있는 모용휘였다.
‘그래, 아직 시간은 충분해. 난 아직 젊어.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 거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뿐!’
풀이 죽어 있던 마음이 기지개를 펴고 다시 용기가 솟아났다. 덩달아 표정도 밝아졌다.
“녀석, 드디어 고비를 극복한 모양이구나!’
무인이라면, 아니 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고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손자를 믿었고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자는 그의 기대에 충분히 보답했다. 검성은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사랑스런 손자를 바라보았다.
남의 손에 이끌려 가기만 하던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이제 자신의 두 발로 자신의 길을 걷는 어른이 된 것이다.
웅성웅성웅성!
함께 걸어가고 있던 모용씨의 조손 눈앞으로 일단의 무리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앞쪽이 상당히 소란스럽구나.”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짓고는 시시각각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면 복잡해 보이는 움직임이 한 지 점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일단의 인간군은 어느 한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모여 있었던 것이다.
중인의 술렁거림이 십 장 이상 떨어진 검성과 모용휘의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수다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황당과 경악이 일시에 폭발한 후 남겨진 잔향에 가까웠다.
그리고 두 사람 역시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이, 이것은!!!”
자신이 목격한 광경에 모용휘는 할 말을 잊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의 상황을 표현할 만한 어떤 언어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왜 그리 어처구니없어 하는지도 납득할 수 있었다. 저런 상황을 보고도 황당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무엇 하느냐? 어서 검을 뽑아라!”
고아하게생긴 중년 여인이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지목한 채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모용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친구 비류연이었다.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는 여인은 남에게 어떤 강압적인 요구를 할 그런 성격의 소유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확실히 단호한 목소리로 그것 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용휘가 혼란을 느낄 정도로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 중년 여인의 얼굴이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그 여인의 얼굴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십 년이 지났는데도 세월이 그녀를 비켜갔는지 그 여인은 전혀 나이를 먹은 흔적이 없었다. 세월의 풍상도 그녀의 얼굴에 나이를 새기는 데는 실패한 듯했다. 한편, 저편으로 나예린이 얼음의 봉황이라는 별호에 걸맞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초조하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 에선 동문 사자인 독고령이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모용휘는 무심결에 검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부 역시 약간 굳은 얼굴로 그 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허허, 이건 또 무슨 짓궂은 장난인가?”
검성의 입에서 나지막한 실소가 흘러나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이 거인에게도 의외의 사태로 분류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비류연에게 검을 들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여인. 그녀에게는 무수히 많은 칭호가 따라다녔다.
관음보살의 수호신, 여중제일검, 검각의 주인, 천무삼성의 일좌..
그녀를 부르는 이름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를 존경과 경의를 담아 이렇게 불렀다.
검후(劍后)!
도성은 인의 장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초립을 쓰고 있던 탓에 유명세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검성 역시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 난 곳부터는 초립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낭패를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유명인은 언제나 피곤한 법이다.
도성이 서 있는 그곳은 ‘현장’이 매우 잘 보이는 명당 자리였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선택에 매우 흡족해하며 그곳에서 검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다녀왔나?”
가까이 다가선 검성의 존재를 살짝 고개를 돌려 확인한 도성이 말했다.
“다녀왔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장난인가?”
천하의 검후가 새파란 젊은이 앞에서 투기를 내뿜고 있다니, 상식적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아, 좀 문제가 있어서 말이야.”
“문제?”
“제자 사랑이 곧 자식 사랑이라는 거지. 어느 부모나 다 한 번쯤 겪는 일일세.”
“음……”
“언제나 딸이 데리고 온 사위는 맘에 안 든다는 거지.”
나름대로 검성의 이해를 돕기 위한다고 한 것 같은 도성의 말은 이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빼고는 괜찮은 설명이었다. 그래서 검성은 지극히 당연하게도 자신이 불가해한 영역을 빠져나와 이해 가능한 영역으로 화제가 바뀌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도성이 물었다.
“그보다 ‘그’는 어떻게 되었나?”
“아, 의료반에 부탁해 특별히 우리 셋의 방에다 데려다놓았네. 그편이 안전할 듯해서.”
“정신은 차렸나?”
검성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생명은 건졌네. 하지만 여전히 혼수상태야. 가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잠꼬대처럼 지껄이고는 있는데, 너무 단편적이라 아직 전체 맥락을 파악하지는 못했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도성이 반문했고, 친절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용(龍)을 찾더군.”
“용?”
도성은 다시 한 번 반문했고, 검성은 확인 차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직 그것은 풀리지 않고 있는 수수께끼였고, 부지불식간에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 었다. 그래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넘겼다.
“아, 근데 자네 옆에 쫄랑쫄랑 붙어 있는 저 강아지는 누구인가?”
그제야 도성의 시야에 백발이 성성한 친구 옆에서 멀뚱히 서 있는 모용휘의 모습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내 셋째 손주 녀석일세!”
“아아, 이녀석이 그때 그 코흘리개 꼬맹이인가?”
아직 모용휘에 대한 인상이 기억의 한 켠에 기적적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인사드려라, 휘야! 기억나니? 도성 어르신이시다.”
“어찌 어르신을 잊을 수 있겠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
모용휘는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오냐, 너도 많이 컸구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성이 대꾸했다. 사실 검성이 소개해줄 때까지만 해도 도성은 모용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백 년 넘게 살다 보면 그런 일은 비일비재한 것이다
“요만할 때였던가.. 거 왜 내 허리쯤에 올 때 말이야! 그때 보고 처음인 듯하군. 한 십 년은 족히 된 듯하이. 십 년… 십 년이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 나…….”
소년이 청년이 된 것을 보니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의 흐름이 다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다 자네의 방랑벽 때문이지! 하긴 자네 방랑벽을 누가 말리겠나. 하지만 주변 사람도 좀 생각하게. 자네의 변덕 때문에 자네 사위가 자넬 찾기 위해 항상 분주하 게 뛰어다니지 않나?”
“아아, 마진가 녀석 말인가? 그녀석은 천무학관 관주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그곳이나 잘 돌볼 것이지 왜 이런 별 볼일 없는 늙은이 뒤나 밟는단 말인가?”
“쯧쯧, 고집불통하고는…….”
검성이 안정하고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친구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도성이 발끈했다. 아무리 무림의 전설이라도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것 이고, 그는 모함에 대해서는 분연히 일어나 의연하게 항의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의였다.
“뭐, 고집불통? 그러는 자네는 고집불통 아닌 줄 아나? 멋대로 빠질 생각일랑 하덜 말게. 나보다 더한 쇠고집이 자네니까.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이 세상에서 자네뿐 이야!”
“내가 무슨 고집불통이란 말인가? 난 항상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지키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네.”
“흥, 다른 사람은 다 자네의 그 찬란한 위광에 혹해 그 말을 믿거나 권위가 두려워 그 말을 믿는 척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아.”
도성의 말투는 매우 신랄했다.
“어째서인가? 난 여전히 자네가 그런 오해를 품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군그래.”
“왜냐고? 정말 그걸 몰라서 묻나?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가? 자네 옛날에 나한테 뭐라고 했나? ‘이보게, 후식! 검으로 강을 벨 수 있을 것 같지 않나?”했 던가?”
“그런 적이 있었지. 그때 자네는 열렬히 비웃었고, 한 팔십 년 전쯤의 이야기 같군.”
검성이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여덟 번씩이나 더 바뀌기 전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 건가?”
“그 뒤가 문제였지. 괜히 내가 비웃은 거에 앙심을 품고는, 그 가능성을 직접 보여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한 다음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벌써 잊었는가?” 만일 그 말을 내뱉은 사람이 검성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는 격리 수용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성공했잖나?”
아무렇지도 않게 검성이 말했다.
“그래, 삼십 년씩이나 걸려서 말이지!”
도성이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분명히 사람의 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는 모용휘로서는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그건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걸세! 아무리 나라도 그런 일에 삼십 년이나 소모할 만큼 무모하지는 않아. 이십오 년밖에 안 걸렸네! 삼십 년씩이나 안 걸렸어. 그때 자네의 얼굴은 참으로 볼 만했었지. 그것만으로도 이십오 년의 노고는 보람이 있었던 것 같네.”
검성은 친절하게 도성이 잘못 알고 있는 점을 정정해주었다. 옆에서 듣고 있는 모용휘로서는 내용의 전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별세계의 이야기였다. 팔십 년 전에 강을 어쩐다고? 그리고 뭐 어쨌다고? 인간 사이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대화였다.
“이십오 년이나 삼십 년이나 그게 그거지! 그딴 걸 하기 위해 개벽검(開闢劍)인지 개벽이 검인지 하는 이상한 걸 만들어내질 않나… 그 후로는 아주 재미 들렸는 지 ‘이번엔 바다다!’하고 헛소릴 지껄이질 않나…….?
“아, 그건 아직 성공하지 못했네! 역시 어렵더구만, 어려워. 역시 자연은 위대해…….”
“뭐가 어렵다고?”
도성이 매우 의심스럽다는 듯 귀를 잡아 뺐다.
“아아, 그 바다 말이야. 역시 자연의 힘은 광대무량(廣大無量)해. 그 후로 오십 년 동안 매달려봤는데, 역시 쉽지 않더구만. 그래도 수련하는 데는 도움이 많이 된다 네. 자네에게도 추천해주지!”
“정중히 거절하겠네.”
아무리 자신의 친구지만 지독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체면상 그런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 도성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러자 검성이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검후에게는 우리 둘 다 못 미치지 않나. 언제 우리가 한 번이라도 그녀를 이겨본 적이 있었나?”
도성은 잠시 지난 백 년 동안의 과거를 반추해본 다음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었지. 한 번도!”
정말 거짓말처럼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매우 동정어린 시선으로 검후와 마주보고 서 있는 비류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친구도 고생 좀 하겠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