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그 남자, 그 여자
“왜 날 구했죠?”
그 여자가 묻는다.
“…..”
그 남자는 말이 없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게 나았을 텐데요?”
그 여자가 비아냥거린다.
“대답할 의무는 나에게 없소.”
그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전 들어야겠어요!”
증오의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외면하고 있는 상대를 응시하며 그 여자가 외친다.
“차라리 죽이세요!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그 편이 더 나아요!”
그 남자는 듣지 않는다.
“명을 재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그 여자가 다시 외친다.
“죽여요!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거예요! 제가 당신을 죽일 테니까요!”
그 남자는 허락한다.
“그것이… 그것이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시도해도 좋소. 기다리리다.”
그 남자는 말을 끝마치자 바로 등을 돌렸다. 발걸음은 멈춰 있다. 비어 있는 허점투성이의 텅 빈 등. 핏기 가신 손에 들린 그 여자의 검이 파르르 떨린다.
푸욱!
땅바닥에 검을 찔러 넣으며 그 여자는 오열했다.
“제발 죽여요! 죽이란 말이에요! 얼마나 더 날 비참하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뜨거운 분루가 회한과 함께 땅에 떨어진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간신히 아물어가던 상처가 지진으로 갈라진 대지의 틈처럼 벌어진다.
“그게 정말 당신의 소원이오?”
약간 슬픈 목소리로 그 남자가 묻는다. 입술을 고집스레 깨물며 그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은 없었다. 이보다 더 큰 비극과 절망은 있을 수 없 다?
“후회하지 않겠소?”
“제가 더 이상 어떤 후회를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증오와 비탄으로 점철된 의지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 남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을 터뜨린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전환점을 지나 버린 것 같구려. 좋소. 그것이 원이라면..”
잠시 말을 멈추었던 그 남자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 소원을 이루어주겠소.”
그것은 그 남자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여자의 말대로 이미 돌이키기에는 모든 것이 늦었다. 이대로 두면 어차피 자결할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럴 바에 야 차라리…….
“오늘을 기해 독안봉 독고령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오, 영원히!”
그 남자는 슬픈 목소리로 선언한다. 부드럽지만 차가운 그 남자의 손길이 그 여자의 목에 닿는다.
“안녕히…….”
그 남자가 조용히 작별을 고한다. 뒷말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다.
그제야 그 여자의 마음이 편해진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정(靜)에서 동(動)이 나오고 음에서 양이 나오듯 생(生)은 사(死)로부터 나오는 것. 자신이 나왔던 시원 (始原)으로의 필연적인 귀환.
진작에 이래야 했다. 그 여자는 생각한다. 구 년 전에 끝냈어야 할 일을 지금에 와서 끝내는 것뿐이라고. 지난 구 년분은 그저 여분의 삶이었을 뿐이라고.
‘미안하다, 예린아. 더 이상 널 지켜주질 못하겠구나!?
그 여자는 미안한 마음에 괴로워한다. 눈이 감긴다.
“사부님…….”
때론 엄격하고 때론 자상했던 검후의 얼굴이 감겨진 어둠 위로 마지막으로 떠오른다. 그 여자의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암흑(黑)이 찾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