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8권 10화 –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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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8권 10화 –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쓸데없는 것까지도

산을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기 전에 여느 때처럼 이십 년 전 그날, 그녀가 한 남자의 품에 안겼던 그 벌판을 한번 둘러보는 것은 이미 그녀에게 있어 일종의 의식이 었다. 항상 그곳에 서 있으면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또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그분은 과연 어느 길을 걸으려고 했을까? 자신도 그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곤 했던 것이다.

그런 경건했던 기분이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진소령은 당황했다. 아니, 황당했다. 설마 이곳에서 자신의 길을 가로막는 배포를 지닌 이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이 사문 내에서 두문불 출하고 있는 동안 후배들이 지역 내의 풍기 관리를 잘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돌아가서 철저하고 엄중하게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으면 안 될 터였다.

“헤이, 부인! 시간 좀 있으신가?”

진소령을 둘러싼 다섯 명의 무사 중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가 수작을 걸어왔다. 껄렁껄렁한 자세에 가장 실패 빈도가 높은 진부한 대사를 날린 것만으로도 이미 죽 을죄였다. 저런 대사가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세상을 우습게보고 있는 것이리라. 아니면, 애초부터 힘으로 할 생각이었던가!

“뭐냐? 네놈들은?”

한 마리 고고한 학 같던 진소령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북풍한설처럼 싸늘했다. 그녀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보아하니 그냥 건달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은 시정잡배들이 자생하기에 좋은 토양이 아니었다. 누가 감히 아미파의 영역 내에서 설치는 그런 자살 행위를 감행하겠는가. 게다가 이들은 건달치고는 복장이 너무 화려했다. 입고 있는 옷은 싸구려 호위무사 주제에 꽤 화려한 비단옷이었고, 졸렬하고 경박하게 생긴 옥대에는 넓적하고 큰 칼이 차여 있었다.

“이크, 무서워라!”

그녀의 싸늘한 태도에 다섯 중 황의 비단을 입은 무사가 어깨를 움츠리며 두려움에 떠는 시늉을 했다.

‘정말 아무것도 못 느끼는 건가??

그걸로 결론이 났다. 이 정도의 살기도 감지하지 못하는 바보 멍텅구리 둔탱이들이 제대로 된 무림인일 리 없었다.

“용무도 없이 가는 길을 막은 건가?”

진소령의 태도가 더욱더 차가워졌다.

“헤헤, 우리 도련님께서 부인을 좀 뵙고자 하시네.”

여인의 오른쪽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역사는 쓸데없는 일까지 반복시키는 모양이었다. 여인은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 매우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증오에 가까운 심정으로 치를 떨고 있었다.

“네놈들, 이곳 사람이 아니구나?”

진소령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

울룩불룩한 살덩이들을 맹신하는 놈들이 분명했다. 아마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의 하수인들이 분명하리라. 아마 무림에 대해 문외한인 어느 졸부집 자제 정도 될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아미산의 그림자가 미치는 이곳에서 어찌 감히 여인들을 찝쩍거릴 가당찮은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느냐?”

아미파의 영역 내에서 암중으로 지켜지고 있는 묵계, 이곳 토박이 중에 그 불문법을 어길 그런 비대한 간을 지닌 놈은 없었다. 아미의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아 는 자라면 그럴 수는 없었다.

“뭐 걱정 마라! 이번에는 미숙하지 않으니.”

그리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니 죽지는 않을 거다!”

죽일 가치도 없는 쓰레기의 피를 신성한 검에 묻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그 도련님이란 작자는?”

황의무사가 길 한쪽에 위치한 주루를 가리켰다. 헤벌쭉하게 생긴 낯짝 하나가 거기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과 장신구가 화려하고 고급이기만 하면 옷걸이의 부실 함까지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속물이 분명했다. 꼴에 화려한 부채까지 들고 살랑거리고 있었다. 자아도취증이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었다.

진소령이 그쪽을 바라보자 갑자기 그 도련님이라는 작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도련님 주위에는 넓은 반원을 그리며 텅 비게 되었다. 그 남자는 사람들이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개중에 조금 자비심이 투철한 사람 하나가 사내를 불쌍히 여겨 살길을 트여주려 했다. 사실 그는 이곳의 주인이었고, 그의 충고는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봉사였다.

“손님, 나쁜 말은 안 하겠습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가서 소저께 무릎 꿇고 용서를 비세요. 지금 당장 달려가면 두 눈을 뽑는 것 정도로 용서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고말고. 우리 소저께서는 자비심이 깊으시지. 빨리 가서 재빨리 공중으로 뛰어오르면서 머리를 땅에 박는 거야. ‘고두’라는 것이지. 이때 중요한 것은 대갈빡 에 피가 나야 한다는 걸세. 그 정도면 팔 하나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거야. 혀를 뽑지는 않으실 걸세.”

성심 어린 충고로 자신의 접객의 도리를 다 마쳤다고 생각한 주인장 장씨는 이제 이곳 주루의 주인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만 했다.

“그러니 손님, 이제 이곳을 그만 나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술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저도 이곳 장가객잔의 주인으로서 이곳이 폐허가 되는 사태만은 막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얘들아!”

짝짝!

박수 소리가 짧게 두 번 울리자 건장한 점소이 두 명이 재빨리 달려와서는 그 도련님이라는 작자의 양쪽 팔을 잡고는 의자에서 끌어내 문밖으로 데려갔다.

“어어어어… 이, 이눔들이 감히! 이 몸이 뉘신지 알고! 내가 바로 그…..”

그러나 점소이 둘은 금의(錦衣) 사내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단옷의 사내를 문밖으로 쓰레기 버리듯 내다 버렸다.

“감히 이놈들이! 도련님을!”

그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미녀 조달’이라기보다는 주인의 호위였던 관계로 자신들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려 했다.

“멈춰라!”

날카로운 호통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짐과 동시에 빛살 같은 검기가 사내들의 어깻죽지를 인정사정없이 꿰뚫었다.

“크아아아아악!”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다섯 명의 무사가 어깻죽지에서 피분수를 뿌리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천벌받을 놈들! 감히 그분이 뉘신 줄 알고 그딴 무례냐!”

그 광경을 본 진소령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조금 전의 검기는 그녀 자신이 뿌린 것이 아니었다.

“이 검법은!?

한동안 견식해 보지 못했지만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검법, 이 독특한 전개 발출 방식, 이 검법을 구사하는 사람 중에서도 이런 위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점창의 화살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더욱 빨라진 것 같군요.”

진소령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겸양의 말이 들려온 곳은 여인으로부터 오 장 정도 떨어진 데였다. 그곳에는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한 명은 푸른 옷을 걸친 중년의 검객이었고, 다른 하나는 같 은 옷을 걸친 이십대의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 소저!”

푸른 옷을 걸친 풍채 당당한 사내가 조용한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매우 정중하고 절도있는 동작으로 포권하며 말했다.

여인이 생긋 웃으며 답례했다.

“유대협께선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절 소저라고 부르시는 건가요?”

그러자 사내의 얼굴에 약간 쑥스러운 기운이 나타났다.

‘허어, 설마 쑥스러워하는 건가? 저 무쇠호랑이 같은 사백님이??

꿈이라 해도 믿겨지지 않을 엄한 광경에 동행인 청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인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그 모습은 그가 평소에 익히 알고 지내던 형상하고는 한 천만리 정도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자신에게 지옥을 보여주던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의심스러웠다. 너무 두려워서 사형제들에게 얘기해 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믿어주지도 않겠지…….?

미친놈 취급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저 아이는 누구죠?”

그때 다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하고 기품있는 그 목소리는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호랑이 사백이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운비야, 이리 와서 신녀께 인사 올리거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청년이 다가갔다.

‘거참! 이해할 수가 없다니깐. 그 호랑이 사백님께서 고작 여인 한 명에게 저리도 쩔쩔매다니 말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운비는 신녀라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허걱! 그… 그럼 저분이 바로…..!?”

“그래, 이분이 바로 사천에서 제일의 여검객, 아미신녀 진소령, 진 여협이시다.”

‘알고 있겠지?’ 혹은 ‘그 찬란한 명성은 들어봤겠지?’ 따위의 말은 필요없었다. 숨 쉬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 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에.

아미신녀 진소령,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무림인은 절대 사천무림인이 아니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출신을 의심해 봐야 했다. 게다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은 산처럼 많아도 만난 사람은 적고, 만나기도 지극히 어려운 구름 위의 존재라 한번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같은 후기지수들에게는 영광이라 할 수 있었다. “유… 유운비가 신녀를 뵙습니다.”

얼른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세를 잡으며 예를 올렸다. 이런 기회는 정말 흔치 않은 것이기에.

“신녀라니… 과분한 호칭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진소령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점창제일검이란 명성이 자자하신 낙일검(劍) 유은성 ‘대협’께 그런 말을 듣다니 말이에요.”

은근한 치켜세움에 유은성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듯했다. 그러나 헤벌쭉 벌어지려는 안면 근육을 필사적으로 제어해 작은 미소만으로 끝낼 수 있었다.

삼십을 훌쩍 넘은 나이지만 어디에도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녀는 젊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다.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유운비를 향해 그녀의 시선이 꽂혔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유운비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 아이가 바로 요즘 점창의 뜨는 별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점창일수’인가 보군요.”

아미신녀가 자신의 명성을 들어봤다는 말에 유운비는 우쭐해져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기분은 유은성의 냉랭한 한마디에 산산조각나고 말았 다.

“별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그냥 아직 새파란 피래미일 뿐입니다. 많은 지도 편달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유은성이 웃으며 말했다.

‘피… 피래미…….?

쿨럭, 각혈하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유운비는 투덜거렸다. 언제나 칭찬에 짠 사백이었다. 사백은 절찬이라는 인간의 우호적이고 마땅한 행위 자체를 증오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절찬받아 마땅할 자신에게 이런 푸대접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네놈들의 죄는 천 번 죽어 마땅하나 신녀의 체면을 봐서 살려주겠다. 이곳은 아미파의 영역, 그런 곳에서 아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살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산 줄 알아라.”

마음 같아서는 천참만륙(千斬萬戮), 도륙을 내고 싶은 게 그의 본심이었으나 여기가 점창의 영역이 아닌 관계로 인내의 돌로 분노로 들끓는 마음의 뚜껑을 내리눌 러야 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연심은 사그라질 기세가 전혀 없었다. 다섯 멍청이와 멍청이들의 주인인 바보 멍텅구리 도령은 땅에 연신 머리를 박고서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움켜쥐고는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유 대협께서는 이곳에 어쩐 일로 오셨나요?”

그게 정말입니까, 사태?

“아, 예. 들를 곳이 한곳 있어서 왔습니다. 올해에 이 녀석이 시험을 볼 차례라서요.”

ᅳ내가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이나? 참말일세, 근 오 년 만의 신녀강림이지!

“그럼 설마 유 대협도 그곳에?”

진소령의 반문에 유은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럼 진 소저께서도? 이거 참 우연이군요.”

ᅳ언제입니까?

ᅳ출발은 앞으로 한 달 후일세. 장소는 중양표국!

“정말 그렇네요. 이런 우연이 있다니…….”

진소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중양표국 말입니까?

—그렇네. 제자 아이 한 명과 동행할 예정이네.

“동행이 없어서 잠시 외출 나오신 줄 알았습니다. 설마 소저께서도 남창으로 가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ᅳ우연히 만났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게. 순진한 아이니 별다른 의심은 안 할 걸세.

“아, 제가 어디 들를 데가 있어서 잠시 후에 만나기로 약속해 놨습니다. 곧 그곳에서 합류할 예정이에요. 천무학관에는 따로 볼일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동행하기로 했답니다.”

“볼일이요?”

“예, 조카 아이를 만나기로 했거든요. 오 년 만이죠. 그동안 얼마나 강해졌을지 기대가 된답니다.”

자신 밑에서 유란과 함께 혹독한 수련을 받았던 진령은 언제나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는 아이였다. 원래 이번에도 나올 생각은 없었다. 천무학관 입학식이야 지난 백 년 동안 있어왔던 행사였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랫사람을 시켜도 충분할 테지만, 직접 가기로 결정했다. 조카 아이에게 생긴 첫 정인 이 어떤 남자인지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우유부단하고 흐리멍텅한 인간이면 곤란하다. 개념을 상실한 남자라면 고쳐 쓰기보다는 폐기 하는 게 더 낫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닐 선택이다. 백번 신중해도 모자랄 게 무어란 말인가. 어중이떠중이가 차고 넘치는 이 세상에서 과연 그 아 이의 눈은 제대로 보고 제대로 골라냈을까? 그 안목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럼 우연찮지만 동행을 하게 되겠군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정을 동행하게 되는 것이지. 거의 두 달에 가까운 긴 여정을 말일세.

-두… 두 달…..

“그렇게 되겠네요. 잘되었습니다. 그 아이도 유 대협과 함께라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지요. ‘점창제일검’의 명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적지 않 으니깐요.”

“하하, 과찬의 말씀! 저희야말로 천하오검수의 일좌이신 아미신녀의 신태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 녀석이 개안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 녀석이 그런 만고의 행운을 어디 가서 누릴 수 있겠습니까? 복받은 거지요.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참.”

―자, 이 노사태가 줄 것은 다 주었네. 그럼 이제 남은 건 받는 것뿐이겠군. 가는 게 있으면 오는 정도 있어야지, 안 그런가?

―설마 그 이권(利權) 말입니까?

―그걸 꼭 이 늙은이 입으로 말해야겠나?

―이건 뒷거래란 말입니까?

―쯧쯧, 자넨 아직 젊구만. 뒷거래라는 그런 흉한 소리 하들 말게나. 이런 걸 가리켜 ‘고도의 정치적 협상’이라고 하는 걸세.

-그런 겁니까, 사태?

—그런 걸세.

“우연은 무슨…….?

뒤에서 사백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운비가 속으로 구시렁구시렁 투덜거렸다.

우연이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저 사백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오늘을 기다렸던가. 얼마나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가고 싶은 것도 참고, 빨리 출발하자고 보채던 자신을 잘근잘근 밟으며 날짜를 기다렸던가.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미 정보를 받았음이 분명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얻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뭔가를 받긴 받았다. 그 일을 위해, 이 정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적지 않은 비용이었으리라. 높은 선에서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소문의 진실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이것은 분명 계획하고 진행된 음모였다. 그러나 입단속을 단단히 받아놓은 유운비는 감히 누설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호랑이 사백이 그를 갈아 마실 게 분명했 기 때문이다. 특별히 사준다고 하던 그 검도 못 받게 될지도 몰랐다. 사백이 이날을 기다렸듯 그 자신도 그 검을 받을 이날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그렇게 좋은가?”

유운비는 사백이자 백부인 유은성이 듣지 못하도록 몰래 투덜거렸다. 아직 어린 나이에 극락왕생하고 싶지 않으려면 용의주도한 비아냥을 몸에 숙지해야만 한다 는 것을 그는 벌써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 늙은이가 이권에 눈이 멀어 이런 짓을 한다고 오해하지는 말게. 나는 자네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네. 자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일세. 그리고 또한 친딸 같은 그 아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네. 그 아이도 제짝을 만났으면 하는 것이 이 사람의 바람일세. 제대로 된 짝을 만나야 하지 않겠나?

―짜… 짝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짝! 남편이라고도 하지. 자네가 그 아이를 마음에 두느라 차기 장문인 직까지 거절한 사실을 이 늙은이는 알고 있네.

ᅳ알겠습니다. 노사태의 속 깊은 정은 마음 깊이 받아두겠습니다.

-그럼?

―네, 이제 소양의 이권은 아미의 것입니다.

-탁월한 선택일세. 고맙네. 잘해보게. 응원하겠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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