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8권 15화 – 숙부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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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8권 15화 – 숙부의 상처

숙부의 상처

-등을 쓰다듬는 손

“국주님! 국주님! 큰일났습니다!”

서둘러 달려온 기색이 역력한 강 대표두가 숨도 제대로 고르지 않고 급히 말했다.

“국주님은 한 번이면 충분하네! 그래, 무슨 일인가?”

장우양이 조금 짜증스럽게 반문했다. 이제는 솔직히 고의성까지 의심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보고는 그런 잡상들을 일격에 날려 버렸다.

“저… 아이들이 없어졌습니다.”

쾅!

“뭐라고!”

장우양이 경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눈에 불을 켜고서라도 잘 지키라고 하지 않았나! 그 아이들은 청룡은장의 혈사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란 말일세! 어떻게 그런 아이들 이 표국을 벗어났는데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단 말인가?”

“너무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설마 그런 어린아이가 이런 당돌한 짓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럼 이제 그만 꿈에서 깨게. 한 표국 전체를 방패로 사용하려고 한 아이들이네. 그리고 그런 수상쩍은 놈들이 쫓는 것을 봐서 분명 그놈들이 탐낼 만한 가치를 몸 에 지니고 있을 것이야. 그러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나? 자네라면 안 불안하겠나? 나라면 불안해서 한숨도 못 자겠구만. 한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을 게야. 아마 보이는 모든 사람이 도적으로 보일 걸세. 그래서 호기심을 꾹 누르고 아이들이 경계를 풀 때까지 애써 무관심하게 있었던 것이고. 그런 간단한 이치도 모르 “나?”

한 사람에게 당연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당연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해 보이는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장우양 의 실수는 그것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간과해 버렸다는 것이다.

“…..”

“어서 사람들을 풀어 아이들을 찾게. 서두르게. 아이들이 위험해.”

***

“오빠, 아파!”

소녀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자신을 잡아끄는 손에 들어간 힘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오빠, 너무 빨라!”

그러나 두 번째 외침에도 자신을 잡아끄는 발걸음은 조금도 늦춰지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오빠는 아까 전부터 자신을 전혀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앙!”

울음이 터져 나왔다. 소녀는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제야 소년의 발걸음이 늦어지고 마침내 멈추었다. 연약한 고사리 같은 소녀의 손을 힘껏 쥐고 있던 손에서도 힘이 빠져나갔다. 소년은 뒤돌아서서 소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기 시작했다.

“미안미안. 오빠가 너무 성급했지? 다신 안그럴게. 그러니 뚝!”

그제야 간신히 진정한 소녀가 울음을 멈추었다.

“오빠,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소녀가 물었다. 소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천무학관이란 데로 갈 거야.”

“거긴 왜?”

“가야 하니까.”

소년이 대답했다.

“하지만…….”

소녀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뭐?” 

소년이 물었다.

“아저씨들이 그곳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위험하다고.”

소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곳에 너무 오래 있는 것은 위험해. 그 표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기에는 아직 안목이 부족하다는 것을 소년은 어린 나이에도 자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몸에 지닌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마음이 너무나 불 안했다.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는 초조감이 항상 소년을 괴롭히고 있었다. 아직 열세 살밖에 안 된 소년이 이겨내기에는 힘든 정신적 시련이었다. 때문에 소년은 달 아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가 믿을 곳은 딱 한 곳뿐이야.”

그때 무릎을 꿇고 소녀를 달래고 있던 소년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길게 뻗은 그림자는 순식간에 두 남매의 그림자를 삼켜 버렸다. 깜짝 놀 란 소년이 긴장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긴 칼을 허리에 찬 중년 사내 하나가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턱에 난 세 가닥의 상처가 그 얼굴을 더욱 험상궂 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잔뜩 굳어 있던 사내의 얼굴은 금세 풀어졌다.

“응? 경영이랑 선아가 아니냐? 너희들이 머나먼 이 남창까지 웬일이냐? 아버지랑 함께 왔느냐?”

험상궂은 얼굴과는 무척이나 다른 자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억누르고 있던 슬픔이 기어코 터져 나오고 말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소년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경계심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날려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 빈자리에 슬픔이 급격하게 밀려 올라왔다.

“윤숙부님!”

“으아아아아아아앙!”

마침내 막혀 있던 둑은 터지고 소년과 소녀는 중년 사내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어이어이구! 왜 그러느냐? 무슨 일 있었느냐?”

중년 사내는 아이들의 갑작스런 반응에 어리둥절해하며 두 아이를 토닥여 주었다. 그때 그의 등에 걸쳐져 있던 망토가 스르륵 흘러내리며 하나의 문장이 드러났 다. 네 개의 검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 중(中) 자. 바로 중원표국의 대표두를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어허! 그런 끔찍한 일이 다 있었다니……. 너희들이 정말 고초가 심했겠구나.”

울먹이는 유경영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사내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장탄식을 터뜨렸다. 여전히 양팔에 두 아이를 안은 채 그대로였다.

사내의 커다란 손이 아이들의 슬픔을 달래준다는 명목 하에 두 아이의 작은 등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손은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등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 부드러운 손길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손길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아이들의 등을 세심하면서 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의 손이 사내아이의 허리춤에 닿았고, 그때 어떤 딱딱한 물건이 만져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사내의 눈에 서 기광이 번뜩였다. 그러나 아이들을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는 않았다.

소년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크고 단단한 손의 묵직함에서 든든함을 느꼈고, 따뜻해져 오는 손길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품 안에 안겨 있던 두 아이는 사내의 차갑게 굳어진 육식동물의 그것 같은 두 눈은 볼 수가 없었다. 그저 하염없는 눈물만이 두 아이의 눈을 뿌옇게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손 멈추세요!”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윤 숙부라 불린 중년 사내는 화들짝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튀었다. 아이들을 만난 이후 그는 경계를 푼 적이 한 번도 없 었다. 풀다니? 풀기는커녕 그는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모든 일은 어둠 속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져야만 했기에. 그런데도 바로 등 뒤에서 여봐란듯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그의 이목(耳目)을 완전히 멍텅구리로 만든 다음에 펄쩍 뛰어올랐던 몸이 바닥에 닿았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의문의 불청객을 향해 돌아서 있었고, 어느새 뽑혀 나온 그의 장도(長刀)는 적대적인 시퍼런 도광을 내뿜고 있었다. 눈부시게 빠른 쾌속한 발도술이었다.

‘여자?”

그의 등 뒤를 소리 소문도 없이 점한 사람은 놀랍게도 여자였다. 그것도 눈이 돌아갈 만큼 우아하고 기품있는 미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다. 여인은 오만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뉘시오?”

그는 ‘누구냐, 네년은?”이라고 외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절제심이 일단 그를 살렸다.

눈처럼 새하얀 백의를 걸친 미인은 바로 진소령이었다. 그녀의 검은 아직 검집에 들어앉아 있는 상태였으나, 그녀의 신태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고 지극한 정(靜)을 체현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머리카락 한 올에서까지 자연스럽게 발산되고 있었다.

‘강하다!’

그녀는 사내가 무의식 중에 칼을 뽑지 않으면 진정이 안 될 정도로 강한 자였다. 사실 칼을 뽑고 싶어서 뽑은 게 아니었다. 그러면 바로 사람의 이목을 받게 되고 그 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그의 마음을 거부했다. 그의 생존 본능은 거대한 적 앞에서 칼을 뽑아 자신을 지키라고 명령했고, 그의 몸은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다지 나아진 듯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자신의 목젖을 겨누고 있는 칼끝을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기품을 잃지 않은 채 말했다.

“아이들에게서 떨어져라!”

그 말에 사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싫다면 어쩌시겠소?”

내공을 일으키며 사내가 말했다.

“싫은가?”

진소령이 되물었다.

“싫소!”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순간 찬란하게 눈부신 섬광이 사내의 눈앞에서 번뜩였다. 사내는 움직이려 했지만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이럴 수가……!”

그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칼을 바라보았다. 눈앞에서 검광이 번뜩였는데도 그의 팔은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못했던 것이다.

그 다음 순간 그는 더욱더 섬뜩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그의 오른쪽 소매가 조각조각 갈라져 허공 중에 흩어졌던 것이다. 그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잘라진 소매 조 각을 바라보았다. 팔 하나를 거둘 수 있었지만, 이 정도로 해둔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여인이 조금만 살기를 품었어도 그의 팔은 편육 조각이 되어 땅바닥을 뒹굴 고 있을 터였다.

“헉!”

그 모습을 본 유경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 숙부가 진소령의 검에 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년이 놀란 것은 조각난 소매 안에 나타난 그의 팔뚝 때문 이었다. 그의 오른팔에는 마치 한 마리 용이 휘감고 지나간 듯한 상처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반년 전 여름 숙부가 집에 놀러 왔을 당시 같이 목욕했을 때만 해도 없던 상처였다. 게다가 상태로 보아 최근에 생긴 상처가 분명했다. 어떤 알 수 없는 충격이 소년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한동안 소년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 다. 뭔가를 안 것 같은데 그의 몸은 그것을 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은 아직 어린 그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컸던 것이다. 때문에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 하고 만 것이다.

“이제 생각이 바뀌었나?”

다시 진소령이 물었다.

“싫소!”

사내가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진소령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자, 잠깐만요! 두 분 다 싸우지 마세요!”

소년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진소령의 의아해하는 시선이 소년을 향했다.

“아는 사람이냐?”

당연히 사내를 향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인식 범위 안에 사내는 들어오지도 않는 것일까? 소년이 즉시 대답했다. 아직도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이런 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소년은 알 수 없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으며 이야기했다.

“아, 예. 숙부님이십니다. 아버님의 의형제시며 중원표국 대표두이시기도 하신 풍마도(風魔刀) 윤이정, 윤 숙부님이십니다. 강호에서는 금강십이벽이라고도 불리 고 계시지요.”

금강십이벽이란 칭호는 진소령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중원표국의 간판으로 중원표국에서 가장 뛰어난 열두 명의 대표두를 지칭하는 칭호였다.

“그런가? 아는 사람이었는가?”

사내 윤이정의 신분은 그녀에게 그다지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만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내 착각이었나? 분명 이 사내가 장심에 음유한 내공을 일으킨 것 같았는데?”

그러나 아무리 미약한 살기라 해도 그것을 잘못 감지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숙부라고 하니 이제는 이 애들이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의지처였다. 그녀는 추궁하려던 것을 멈추었다. 그러나 의심이 씻긴 것은 아니었다.

여인이 아이들과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는 윤이정도 그제야 칼을 거두고는 읍하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여협.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중원표국에서 보잘것없는 지위를 맡고 있는 윤 모라고 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여협의 존성대명을 접 할 영광을 제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보여주었던 당황했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그러나 진소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대단한 무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답례하지 않았다. 다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서늘하고 맑은 심원한 눈으로 윤이정 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상대의 무시에 윤이정은 열불이 났지만 그녀의 유리알 같은 두 눈을 마주하고 보니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

무언의 압박. 그것은 분명 그렇게 불릴 만한 것이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시키기 위해 유경영이 나섰다. 그런 면에서 그는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아, 너무 유명한 분이라 함부로 신분이 알려지면 시끄러워질까 봐 소개를 못하셨나 봐요. 숙부님도 알면 깜짝 놀라실걸요?”

유경영은 일부러 과장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진소령은 딱히 제지하려 드는 것 같지 않았다. 소년은 그것을 그녀의 정체를 밝혀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으로 받아들 였다.

“이분이 누구신지 궁금하시죠?”

“그래, 궁금하구나.”

윤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놀라지 마세요.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하신 아미신녀 진소령, 진 여협이세요.”

듣고 놀란 윤이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미신녀라니? 초거물이 아닌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존재였다. 그녀가 발하는 태양처 럼 밝은 광명에 비하면 그가 지닌 명성은 반딧불의 꽁무니 빛만도 못하다 할 수 있었다.

“평소 신녀의 성명을 듣고 앙모해 마지않았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삼생의 영광입니다. 윤 모가 저지른 좀 전의 크나큰 무례,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무인에게 있어 방심하기보다는 조금 과잉이더라도 경계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대꾸하는 그녀의 말에는 칼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흐트러짐없는 그녀의 곧은 눈빛은 그녀가 전혀 경 계를 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청룡은장 역시 아미파의 영역권 안에 존재했으며, 기부라면 다른 곳에 지지 않을 만큼 했다. 청룡은장은 아미파의 비호를 받고 있는 곳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청룡 은장의 멸문지화에 대한 전임 조사대가 이미 꾸려진 이후였다.

사실 청룡은장의 멸문을 지척지간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지켜봤다는 것은 그만큼 아미파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크나큰 수치였고, 아미파로서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체면이 서질 않았다. 누가 자기 앞마당을 진흙 발로 짓밟은 다음 못된 불장난까지 하는 것을 멀뚱히 지켜봐야 했다는 사실이 발 없는 말을 타고 수천리를 달려간 후면 이미 늦었다. 주변 문파들로부터 지탄이 쏟아질 게 뻔했다. 어떤 무시를 당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아미파는 이 문제에 대해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진소령 역시 아미파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일에 대해 손 놓고 가만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아미파의 제자가 동행했음에도 불구하고―그것도 아미제일검이라는 자신이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ᅳ청룡은장의 마지막 남은 핏줄이 화를 입는다면 그것만한 치욕은 또 없을 것이다. 아미파는 이제 강호에 얼굴을 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어찌 아이들이라고 이 두 사람의 신변을 소홀히 할 수 있겠 는가.

“경영아, 선아야!”

윤이정이 다정하게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예, 숙부님!”

아이들이 대답했다.

“나랑 함께 가지 않겠느냐?”

“숙부님과 함께요?”

유경영이 반문했다.

“그래. 나와 너희 아버지는 의형제지간이 아니냐. 형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집을 잃은 너희들을 내가 어찌 못 본 척할 수 있겠느냐? 현재의 나라면 너희 두 사람 정도는 거뜬히 건사할 수 있다. 또한 너희들을 노리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악적이라도 중 원표국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곳은 너희들을 보호해 주는 방패가 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와 함께 가겠느냐?”

“그건 저…….”

윤이정의 느닷없는 제안에 유경영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초조한 눈으로 살짝 진소령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지극히 본능적인 행위 였다. 마치 뭔가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듯한 그런 눈빛을 바라보며 진소령은 의아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생각이 결정되지 않다 보니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해서 나올 뿐이었다. 지금 숙부의 팔에 난 독특한 상처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는 소년 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생각은 단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요령껏 거절하는가였다. 마침내 소년은 마 음을 결정하고 고개를 들어 윤이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윤숙부님의 고마운 제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청룡은장이란 배경이 사라졌음에도 저희들에게 깊이 신경 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윤 숙부님의 마음에 감사하실 겁니다.”

“오오, 그럼 날 따라가겠다는 것이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윤이정이 말했다.

“하지만…….”

소년은 대답하지 않고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전 신녀님을 비롯하여 중양표국의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들께서는 저희들을 보호해 주시고 청룡은장의 혈사를 엄밀히 조사하여 반드시 진상을 밝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 믿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믿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몰래 빠져나왔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이미 소년의 염두에 들어 있지 않았다. 유경영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 아버지께서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신의를 잃어버리면 상인은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로서 어찌 그 가르침을, 이제 유훈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너의 이야기는…….”

윤이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턱에 난 세 가닥 상처와 새로 생긴 이마의 상처가 흉측하게 꿈틀거렸다.

“전중양표국 분들과 함께 있겠습니다. 그분들이 저희들을 보호해 준다고 하셨으니 믿도록 해야지요.”

“너의 의견을 잘 알았다. 너희의 뜻이 그렇다면 그 뜻을 존중해야겠지. 그러나…….”

윤이정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유경영을 쏘아보았다.

“과연 중양표국 따위가 믿음직한 방패가 될지는 심히 의문이구나. 부디 다시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오늘은 늦었으니, 다음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무뚝뚝하게 속에 품었던 말의 단편을 쏟아낸 윤이정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은 상태로 진소령에서 가볍게 읍한 후 몸을 홱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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