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9권 17화 – 갑작스런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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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9권 17화 – 갑작스런 방문

갑작스런 방문

-검존의 감

“응? 손님이라고?”

시위를 빙자한 계속되는 소음 공해 때문에 창문을 꽁꽁 걸어 잠근 채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 처리에 매진하고 있던 마진가가 이미 오늘만 수백 장의 서류와 전투를

벌인 역전의 붓을 잠시 멈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분명 내 오늘은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관주 직속 시녀인 여매는 송구한 듯 고개를 숙였다.

“이분은 꼭 만나보셔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그의 시녀로 종사해 온 여매로서도 감히 청을 거절하기 힘든 거물이 왔다는 이야기이다.

“누가 오셨느냐?”

“예, 검존께서 관주님을 한번 뵙고자 하십니다.”

“검존께서?”

“예. 그렇습니다, 관주님!”

여매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왜 날 보자고 하실까?”

공식석상에서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독대를 요청한 적은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딱히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어서 뫼셔라!”

마진가는 검존에 대한 예를 차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에서 그가 관주로서의 권한과 권위를 행사하고 있을 때 상대방을 위해 일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아니, 공손 노사님! 어쩐 일로 이런 곳까지 친히 왕림하셨습니까?”

마진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반갑게 검존을 맞이했다.

“바쁜 와중에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오, 마 관주. 이 늙은이가 오늘은 관주와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소이다.”

“번거롭다니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 귀와 제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더군다나 노야의 깊은 가르침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 습니다. 하하하!”

“허허, 마 관주께서 이 늙다리 검객을 너무 높이 평가하시는구려.”

“하하하! 검의 지존에 대한 평가입니다.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부족함이 있겠지요. 오늘은 어떤 뛰어난 지혜를 들려주시기 위해 이 무지한 자를 방문하셨습니까?”

“최근 천무학관에 드리운 불안의 그림자 때문일세!”

진지한 표정이 된 공손일취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럼 그 불안의 그림자를 씻어주실 빛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그렇다네.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도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의 불안을 잠재우지 않으면 폭발할지도 모르네. 그렇게 되면 천무학관에 대한 평판은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고 우리는 치욕을 면치 못할 것일 세.”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본보기가 필요하네!”

“본보기라시면……?”

공손일취는 말을 빙 돌려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가감(加減)없이 그대로 전달했다.

“범인을 당장 처형하게!”

찻잔을 들이키던 마진가의 손이 그대로 정지했다.

“범인이라시면… 비류연 그 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찻잔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마진가가 되물었다.

“그럼 또 다른 범인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현재는 용의자일 뿐 범인으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처형 같은 것을……. 게다가 그건 불법입니다.”

사적인 사형 판결은 관의 영역을 침범하는 중대한 위법 행위였다. 때문에 많은 단체들이 자결이라는 형태의 처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네. 중요한 건 하루라도 빨리 시끄러운 여론을 잠재우는 것일세.”

“부화뇌동(附和雷同)이 주특기인 대중들의 웅성거림에 신경 쓰다니요? 노야답지 않습니다. 전에는 그러지 않으셨잖습니까? 아니면 그런 표면적인 이유 말고 다 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마진가의 반문에는 예리함이 깃들어 있었다.

거침없던 공손일취의 말이 잠시 멈추었다.

“대답을 회피하시는군요.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노야라 해도 더 이상 이야기를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마진가가 단호하게 말했다.

“철탑아! 네가 나에게 그럴 수 있느냐?”

천무학관주 마진가를 부르는 공손일취의 호칭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그러나 마진가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선생님,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한때 선생님 밑에서 무학의 이치를 배운 처지라고는 하지만 현재 저는 지금 이곳 천무학관의 관주로서 공명정대 하게 그 권리를 행사하며 의무를 다할 책임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비류연 그 아이를 싫어하시는 겁니까?”

싫어한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함이 느껴졌다. 증오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마진가로서는 강호의 전대기인이라 할 수 있는 원로 중의 원로인 검존이 기백 년쯤 나이 차가 나는 새파란 젊은이를 증오하고 경계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놈은 불길한 놈일세!”

진지한 얼굴로 공손일취가 대답했다.

“무슨 근거라도 있으십니까?”

“그건 없네. 그냥 감일세.”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다는 이야기군요. 설마 그게 끝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았는데… 전 선생님께서 좀 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해 주길 바랐습니다.”

“날 믿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냐?”

검존 정도의 고수쯤 되면 일신상의 육감 또한 범상치 않은 신빙성을 지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감만 가지고 행정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아닙니다. 물론 노사님의 감은 저도 존중합니다. 제가 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그 아이를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감이라는 것은 그것이 잘 맞든 잘 맞지 않든 증거 자료로서는 미덥지 못한 것이잖습니까? 일국의 황제라도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 못하겠다면?”

공손일취가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대응을 보였다. 대화를 단절하고 이해를 향한 최저한의 노력마저도 중단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그건…….”

마진가로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처하기만 했다. 그때 그를 구원해 준 것은 문밖의 소란이었다.

덜컹!

문밖의 소란은 잠시의 휴식도 없이 문안의 소란으로 이어졌다.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붉은색 특급 전언 표식을 달고 있는 전령이었다. 이 붉은색 표식이 전령의 몸에 달려 있을 때 그는 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마진가에게 정보나 서신을 전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무슨 일인가, 그리도 허겁지겁? 검존님의 앞일세! 자중하게!”

“그, 그게……!”

“차분히 말하게나.”

“재, 재습격입니다! 또다시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공손일취와 마진가는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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