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
-딱! 걸리다
이런저런 상식이 넘쳐나는 남창의 풍류업계 중에서도 남창삼대기루로 불리는 곳중 한곳이 바로 ‘청홍루였다. 이곳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진 적이 개점 이래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자랑이 아닌 기본으로 여기는 곳이었다. 또한 이곳은 중원표국 남창지국과 단 건물 세 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중원표국에서 고객 접대를 할 일이 있으면 항상 이곳을 애용하곤 했다. 그리고 그 고객들은 언제나 최고의 대우와 최상의 봉사를 받았다.
사실 중원표국이 이곳 청홍루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겉으로만 남남일 뿐 사실상 이곳 청홍루는 반쯤 숨겨진 중원지국이라 할 수 있었 다. 청홍루의 일 년 매상 중 거의 육 할이 중원표국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기루를 직접 운영한다는 것은 자칫 세간에 안 좋은 느낌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아닌 척 오리발을 내미는 것뿐이었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생각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라고 생각하며 이시건은 속으로 비웃었다. 왠지 자신의 가치가 평가 절하당한 듯하여 불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마진가와의 외 교적 면담을 마치고 천무학관에서 제안한 숙소까지 거절한 채 이곳 청홍루로 발걸음을 옮긴 참이었다.
미행자는 합해서 다섯!
원래 특사의 일거수일투족은 은밀기동기관―첩보기관―들이 눈에 불을 켜며 주시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정보를 뽑아내기 위 해서였다. 어차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자 멀쩡한 대답을 들을 가능성은 없는 데다 해주는 대답에는 의도적인 왜곡이 가미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입 아프게 혀를 놀리기보다 행동을 훔쳐보고 원인을 유추하는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게 업계의 정석이었다. 잘하면 특사가 접촉하는 상대의 정보원을 밝혀낼 수도 있기 때문에―이런 건 월척이었다―신변 감시는 절대 필수였다.
이시건은 정말 눈에 잘 띄었다. 모두들 이 지독히 화려한 청년을 향해 곁눈질했다. 기녀들의 시선을 남김없이 모을 정도로 그는 화려하고 멋진 미남자였다. 저 정 도 얼굴이면 귀에 달고 있는 아파 보이는 다섯 개의 고리 정도는 잊어줄 수 있었다. 때문에 추적, 감시도 쉬웠다. 그러나 이들 감시자들은 이 화려한 청년의 실력을 너무 낮게 잡았다.
‘겨우 다섯이라니! 그 두 배는 투입했어야지!’
저 정도 실력으로 자신의 이목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그는 속으로 감시자들을 비웃으며 유유자적한 발걸음을 청홍루 안으로 옮겼다.
“어서옵쇼, 공자님!”
점소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그를 맞았다. 보통 기루에서 늙은 은퇴 기녀나 주인이 달려나오는 것과는 무척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반점이자 주루이고 다루이면서 기루였다. 식사나 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기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고도의 상업적 안배가 그 뒤에는 깔려 있었다. 오히려 이곳은 기루 영 업 같은 것은 안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 데 더욱더 신경 쓸 정도였다. 고객들이 남의 이목을 어려워하지 않고도 이곳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다.
“지배인을 불러와라!”
팅!
하늘로부터 점소이의 손으로 은자 한 냥이 떨어져 내렸다. 밝혀진 통계에 의하면 점소이의 손 위에 올려지는 금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허리를 굽히는 각도가 깊어 지고 발걸음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보고가 있다. 무게로 한 냥도 채 안 나가는 동전이 그 천 배에 가까운 무게를 짓누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가, 감사합니다, 공자님!”
머리가 땅바닥에 닿는 게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허리를 굽힌 후 점소이는 바람처럼 그의 앞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총지배인이 헐레벌떡 나타났다. 아무래도 점소 이가 보고에 피와 살을 덧붙인 모양인지 지배인의 발걸음 역시 재빨랐다.
지배인의 눈이 섬광보다 빠르게 식탁 위를 훑었다.
찻잔 옆에는 동그란 원의 한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어져 있는 얇고 동그란 금속이 놓여 있었다. 가끔 차나 음식으로 바꿀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물건이라는 것을, 자신의 역할은 손님들의 주머니에서 저것을 보다 많이 빼내는 것이 천명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지배인은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공자님?”
공손한 어조로 지배인이 물었다.
“하늘[天]로 가는[] 힘[]을 빌리러 왔네.”
우아하게 찻잔을 들며 이시건이 말했다. 그러자 지배인의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찻잔 옆에 놓인 동전을 향해 힐끗거렸다.
“하늘에서는 어떤 꽃이 가장 아름답습니까?”
지배인이 물었다.
“눈[雪] 속에 핀 꽃[花]이 가장 아름답다네.”
이시건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 꽃은 하늘의 어느 들판[原]에 피어 있습니까?”
총지배인이 다시 물었다.
“동서남북(東西南北) 어느 들판에도 피어 있지 않다네.”
그렇다면 남은 곳은 가운데[中]뿐이었다.
그러자 총지배인이 절을 올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이시건은 찻잔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일어났다.
“이쪽입니다.”
지배인은 그를 곧 별관으로 안내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에서도 극히 선택된 일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보통 사람들은 문턱도 밟아볼 수 없는 꿈의 낙원이 었다.
이시건은 정원에 깔린 알록달록한 포석 위를 지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손님도 기녀도 눈에 띄지 않았다.
후원은 매우 많은 비용을 들여 꾸민 티가 역력했다. 대리에서 가져온 새하얀 대리석으로 후원의 통로 전체를 깔았고 기둥마다 황동과 금으로 화려한 장식이 들어 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백미는 후원의 한가운데 위치한 기암이석을 이용해 만든 연못과 후원 전체를 가로지르는 개울이었다. 연못 안에는 연꽃과 이름 모를 난 들이 자라고 있었고, 호수의 둘레는 구멍이 숭숭 뚫린 독특한 모양의 태호석(太湖石)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훌륭한 정원이로군!”
이시건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여기저기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고, 재료들도 모두 극상품만 사용했군.”
“감사합니다. 과연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남창 어딜 가도 여기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정원은 보실 수 없을 겁니다. 손님들께 언제나 최고를 제공하는 것이 저희 들의 자랑이지요.”
자부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지배인이 대답했다.
이 고급화 전략이야말로 바로 이곳 청홍루가 남창삼대기루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실질적인 원동력이었다. 최고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 자들이 어디든 있기 마련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가 되기 위한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된다.
““저 인공호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태호석을 보십시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태호석이란 말 그대로 태호에서만 나는 주름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독특한 모양의 기암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저 태호석은 ‘추, 투, 누, 수’의 네 가지 덕목을 잘 지니고 있어야 진짜 좋은 태호석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추’란 적당히 주름져 있는 걸 가리키고, ‘투’는 적당히 뻥 뚫려 있으며, ‘누’는 적당히 틈새가 있고, ‘수’는 적당히 야위어져 있는 것으로 이 네 가지 적당함을 적당히 가지고 있어야 그제야 상등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 니다. 이곳 정원에 있는 태호석들은 모두 그런 특상품들만 골라서 태호에서부터 사람을 시켜 옮겨온 것들입니다.”
“돈 많이 들었겠군.”
“물론입니다, 물론이고말굽쇼. 태호석은 태호에서만 나기 때문에 그것을 태호 바깥 지역에서 그것들을 가지고 정원을 꾸미고 싶다면 당연히 태호에서부터 그것들 을 운반해 가야 하지요. 그런데 저 돌이 좀 무겁습니까? 특히 정원 조경을 위해 사용되는 태호석은 그 무게가 상상을 초월하지요. 그 무거운 돌을 태호와 멀리 떨어 진 이곳 남창 정원에 놓기 위해서 들인 돈은 거의 천문학적인 액수에 가깝습니다.”
현기증날 정도로 비싼 것들이라는 의미였다.
“정말 그렇겠군.”
후원을 사방으로 감싸고 있는 새하얀 백색 통로를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걸을 때마다 후원은 전혀 새로운 풍경으로 걷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이시 건이 후원의 모든 풍경을 골고루 감상할 때쯤 지배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 방입니다.”
특이하게도 큼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아, 이것 말씀입니까? 이곳은 특별 고객만 드실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이렇게 자물쇠로 엄중히 잠가놓고 있습니다. 황금에 현혹된 아이들이 자칫 본의 아닌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요.”
“기대되는군.”
“만족하실 겁니다.”
열쇠가 돌아가고 자물쇠가 열렸다. 이시건이 들어간 특별실. 그 방의 이름은 ‘설화’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여기서 뭐 해, 아저씨? 외상값 밀려서 쫓기는 중이야? 아니면 사모하는 기녀라도 있는 거야?”
“아이구, 깜짝이야!”
장홍이 화들짝 놀라 짚고 있던 담장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자네 어디서 튀어나온 건가?”
“튀어나오긴? 아까부터 뒤에 있었는데.”
별 대수롭지 않은 투로 비류연이 대답했다.
“기척 좀 내고 다니게.”
“아저씨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음, 그것도 그렇군.”
사실 그건 자신의 직업윤리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그러나 장홍의 의문은 비류연의 질문 공세에 의해 맥이 끊기고 말았다.
“뭘 하고 있던 거야?”
“아니, 그냥…….”
“외상값 독촉에 몸을 사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역시 반한 기녀라도 생긴 거야? 하긴 밤 나들이가 취미니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 자꾸만 나오자 장홍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허,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덜덜 말게.”
“아니, 왜? 들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도 있나?”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거리낄 것도 없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그런데 자넨 또 여기에 웬일인가?”
“아, 초대받았지.”
“응? 자넬 초대하는 사람도 다 있단 말인가?”
“이거, 왜 이러시나?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은 다 알아보게 되어 있어.”
“누구 초대인가?”
비류연이 내놓은 대답에 장홍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 거짓말하지 말게!”
“거참! 내가 거짓말해서 얻는 이익이 뭔데?”
“으음, 없군.”
안타깝게도 없었다.
“없지?”
“그렇군. 하지만 믿겨지지 않는군. 설마 자네를 이곳에 초대한 사람이 검후, 바로 그분이라니…….”
“믿어. 믿으라구.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도 있잖아? 왜 검후가 날 여기 초대하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 명색이 나와 예린의 공증인이잖아?” “검후님이 그걸 진심으로 했다고는…….”
“그럼 그 위치에서 허언을 일삼는단 이야기?”
“아니, 그것도 아니지만…….”
“아까부터 말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 알아?”
“인정하네.”
장홍은 두 손을 들고 순순히 항복했다.
“그런데 왜 하필 이곳 청홍루인가?”
“왜? 이곳에 오면 안 되나?”
“아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설마 나 소저도 오는 건 아니겠지?”
“왜 안 오겠어. 당연히 오지.”
“이곳에 들락날락거리는 사내들의 눈이 뒤집힐 텐데. 요 며칠 전에 있었던 일 벌써 잊었나?”
“허공답보라도 쓰라고 그래야지. 안 그러면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침으로 이루어진 강을 건너야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근래 자네의 입에서 나온 것 중 가장 현명한 충고인 것 같군.”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내 충고는 언제나 현명해.”
“쳇, 놓쳤군.”
“어, 딴청 피우는 거야?”
“아니, 한탄하는 걸세. 이걸로 또 밥값 못한다는 소리 듣겠군. 나도 저녁 초대에 끼워주면 안 되겠나?”
“될 것 같아?”
“아니, 그런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는다네.”
장홍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