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2권 12화 – 두 명의 해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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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2권 12화 – 두 명의 해설자

두 명의 해설자

-해설은 육합전성으로!

이 투기장에는 무척 특이한 직업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투기장의 가운데 벽 바로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무척 젊고 한 사람은 무척 노쇠한 늙은이였다. 이들의 역할은 사회와 해설이었다. 즉, 그들은 투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다 흥미진진하게 관중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크고 떠들썩한 투기장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과연 들리기나 할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자,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최대의 볼거리, 시합 중의 시합. 모두들 목이 빠지신 것은 아니겠지요? 빠졌다면 얼른 다시 끼워 넣으시기 바랍 니다. 이 시합을 보지 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하실 테니 말입니다. 적어도 한 달은 밤에 잠 못 잡니다, 분하고 원통해서!”

입담 좋은 젊은 사회자가 입을 열자 마치 사방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렇게 크게 말하지 않는데도 무척이나 또렷한 목소리였다.

“상당한 내공이군요, 이렇게나 큰 투기장 구석구석까지 그 목소리가 미치도록 하다니. 일종의 육합전성의 응용 같은데…….?”

여섯 방위에서 동시에 소리가 들리게 한다는 육합전성은 소리를 전하는 전성술 중에서는 매우 고급 기술이었다. 게다가 탄탄한 내공의 뒷받침을 전제로 하기 때문 에 젊은 나이에 그것을 익히기란 무척 지난한 일이었다.

“단순히 육합전성만 쓴 건 아닐 거예요. 금속 특유의 울림이 섞여 있는 것으로 봐서 확성기 역할을 하는 관을 심어놨을 거예요. 저기 위쪽에 여기저기 설치된 금색 모양의 커다란 깔때기 있죠?”

“정말로 있군요.”

“저게 아마 저 해설석에 삐죽 튀어나온 조그마한 금속 깔때기에 연결된 물건일 거예요. 저걸 이용해 소리를 확장시키는 거죠.”

“잘 아네요, 연비?”

“아, 옛날부터 금속 만지작거리는 데는 좀 취미가 있어서요.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봤었거든요.”

“특이한 취미로군요. 그러고 보니 그때 주었던 선물도 직접 만든 거라고 했었죠. 정말 놀랍네요.”

“아니,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데…….”

그때 다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설은 언제나처럼 저 미성공자 유진이 강호의 제반 무공에 박학다식한 무공 전문가 무광(狂) 선생을 모시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비스듬하게 앉아 있던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건성으로 까닥 하고 인사했다.

“무광 선생이라는 이름은 강호 견문이 짧은 저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취미로 모든 문파의 무공을 이론상으로 연구하겠다고 선포하고 강호를 수십 년 동안이나 떠 돌아 다녔다고 하더군요.”

“이론상이요?”

“네, 이론상이요. 현실적으로 그 모든 것을 몸에 익힌다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그는 지식욕의 충족을 위해 이론상으로 그것들을 습득하기로 한 것이죠.” “특이한 사람이군요.”

“그리고 그 내용들을 이해하기 위해 고금의 기서들에 달통했다고 전해져요. 주역(周易)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 각종 산법과 진법에도 능통하다고 하더군요. 그와 의 논검에서 이겼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도 있죠. 그런 사람이 이런 곳에 왜 있는 걸까요?”

“글쎄요, 그냥 본인의 취미일 수도 있죠. 아니면 연구 장소이거나 실험 장소던가.”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가 여기서 무엇을 하든 연비로서는 별 관심 없었다. 애초에 그는 그 대단한 무광 선생의 명성에 대해 거의 한 토막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 드디어입니다. 드디어예요. 빠졌던 목들은 다 끼워 넣으셨겠죠? 툭 빠진 눈알도 얼른 주워 담으세요. 놓치면 후회하고 또 후회할 시합이 지금 막 시작되려 합 니다. 자, 이제부터 이 원통투기장의 제왕, 얼굴에 일곱 개의 상처를 지닌 사자, ‘칠상흔’의 시합이 시작되겠습니다! 모두 준비되셨나요?”

자칭 미성공자 유진은 귀에다가 손을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자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칠상흔이란 이름이 나오자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열광만으로도 다들 얼마나 그의 시합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만했다.

“자, 그럼 도전자는 오직 칠상흔을 향해 수년간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사나이! 철혈장창 단목강과 그 외 두 사람!”

다시 환호가 터지며 오른편 통로에서 긴 장창을 든 장년인과 그를 뒤따르는 검객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은…….”

그 기다란 장창을 본 나예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아는 사람이에요?”

“예, 이런 곳에서 설마 아는 사람을 보게 될 줄을 몰랐군요.”

나예린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누구죠?”

강호 견문이 짧다기보다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연비가 물었다.

“철혈장창 단목강! 그는 유명한 팔대세가의 하나인 ‘단목세가 세가주의 친동생이자 단목세가 최정예 무력 집단인 ‘신풍대(迅風隊)’를 이끄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의 창법은 지극히 정제되어 있으며, 그 창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술은 정묘하고 예리하기 그지없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이런 곳에?” 돈이라면 충분히 있을 터였다. 그러니 돈 때문에 그가 이런 자리에 설 리가 없었다. 이런 곳에 선다는 것은 단목세가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행위와도 같았다. 그런 데 왜?

“그 뒤에 따라온 두 사람도 알겠어요?”

“아마 저 둘은 신풍대의 삼대고수 중 두 명인 ‘잔도(殘刀)’와 ‘호검(豪劍)’인 모양이에요.”

“그 삼대고수 중 나머지 한 명이 바로 저 단목강이겠군요?”

“맞아요. 신풍대 삼대고수인 신풍삼영(迅風三影)이 이런 자리에 동시에 나타나다니…….”

도저히 그 인과를 짐작할 수 없었다.

“자, 드디어 제왕의 등장입니다. 모두들 환호로 맞아주십시오. 지난 오 년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이 투기장의 진정한 승자, 일곱 상처의 사나이 혈염제(血閻 帝) 칠~상~흔!”

투기장이 무너지는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큰 환호 소리와 함께 그자는 어둠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찰그랑!찰그랑!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통로 안쪽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왔다.

찰그랑!찰그랑!

한 걸음 한 걸음 그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그 소리는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그가 투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들 숨을 삼켰다. 정말로 일곱 줄기의 커다란 상처 가 마치 밭고랑처럼 그의 얼굴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었는데 그 상처가 그의 몸에 감싸인 흉맹한 기를 더욱 북돋워주고 있었다. 살가죽을 종횡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상처 때문에 남자의 얼굴은 마치 조각난 가죽을 덕지덕지 기워놓은 것 같은 무시무시한 형상이었다. 맨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무거운 상처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워진 얼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는 산발이었고 두 눈은 깊은 어둠과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온몸을 검은 쇠사슬로 휘감고 있었는데, 그 쇠사슬은 그의 등에 매달린 검은 관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길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오늘도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군요.”

무패의 제왕, 검은 관의 사나이. 쇠사슬에 감겨 있는 그 검은 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안을 보려면 그를 쓰러뜨려야만 하는데 지금까 지 그것이 가능했던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마치 철벽처럼 이 투기장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벽에 도전하는 자가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이 악적!”

백도의 이름 높은 무인이자 성격 좋기로 소문난 단목강의 두 눈에는 지금 살벌한 흉광이 가득했다.

“넌 또 누구냐?”

시큰둥한 목소리로 칠살흔이 되물었다. 무척 탁한 목소리였는데 아무래도 그는 단목강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그런 태도가 단목강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 했다.

“날 기억 못한단 말이냐! 설마 단목우라는 이름도 잊은 건 아니겠지?”

“단목우?”

“그렇다, 단목세가의 철명검 단목우 말이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가운데 중지로 왼쪽 눈 위에서부터 코를 지나 오른쪽 뺨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상처를 쓸어내렸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어렸다.

“아아, 이 상처를 만든 놈이었지. 잊고 있던 그 이름을 들으니 이 상처가 또다시 욱신거리는군. 뭐, 나는 그 답례로 오른쪽 어깨부터 허리까지 토막 내줬지만 말이 야.”

그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이 형님의 원수!”

그러자 장내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이럴 수가! 놀랍습니다! 경악입니다, 경악! 설마 단목가의 둘째 장주를 살해한 이가 바로 저기 서 있는 칠상흔이었다니요?”

“강호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사로군요.”

“병으로 죽었다는 건 거짓말이었군요, 무광 선생님?”

“흠, 그러고 보니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긴 있었습니다. 철명검 단목우는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이름없는 부랑자와의 결투에서 패해 죽었다고요. 하지만 단목

우의 실력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었죠.”

“그 이름없는 부랑자가 바로 칠상흔이었던 거군요?!”

무광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사였던 거지요.”

그 이야기는 좀처럼 놀라는 법이 없는 나예린마저도 동요시켰다.

“단목세가의 둘째 장주인 단목우는 사고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설마 저런 무명지배에게 당했다니…….”

나예린도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칠상흔이란 별호에 대해 그녀는 거의 들은 바가 없었던 것이다.

“단목우란 사람이 그렇게 강해요?”

“단목세가의 가전검법인 소슬검법을 극성까지 연마한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흠, 그럼 린의 스승인 검후랑 비교하면요?”

“그, 그거야 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죠. 어떻게 그분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 그분과 검으로 견줄 수 있는 분은 같은 천무삼성이신 검성뿐이에요.”

은근한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뭐, 그럼 신경 쓸 정도는 아니군요.”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참으로 난감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무림에서 이미 규격 외에 속하는 검후를 기준으로 삼다니……. “특이한 기준 설정이네요.”

“보통이죠 뭐.”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연비가 대답했다.

“하지만 사부님 앞에서는 그런 말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왜요?”

“연비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겠지만 성격이 보통이 아니시거든요. 검성과 도성 두 분도 그분께는 쩔쩔매시니까요.”

“화낼까요?”

나예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칭찬하시겠죠, 그것도 무척. 정말 좋은 배짱이라고. 그리고…….”

“그리곤요?”

“당장 검을 뽑으라 하시겠죠. 검으로 대화하자고.”

그 모습이 눈에 선한지 나예린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그분 나름의 칭찬 방법이죠.”

그리고 보통은 반 죽는다. 연비가 그런 꼴을 당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거 기대되는걸요.”

연비는 검후의 칭찬이 두렵지 않았기 때문에 서슴없이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다시 무광 선생의 해설이 이어졌다.

“칠상흔이 나름 강호에서 유명해진 것은 비무행 ‘백인참(百人斬)’을 행한 후였습니다. 일각에선 상당히 화제가 됐었죠.”

무광 선생은 그때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그의 행방을 주시했기에 상당히 자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었다. 그중 몇 번 본인이 직접 가서 지켜보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백인참이라 함은 어떤 비무행인가요?”

미성공자 유진이 물었다. 잘 모르는 손님들을 위한 친절한 배려였다. 중간중간에 새로운 관객들이 모를 만한 내용들은 살짝살짝 설명해 주며 가는데, 어떤 호흡으 로 갈 것인지 결정하는 게 그의 숨겨진 기술이었다.

“아, 그것은 생을 담보로 육체와 정신를 깎아가며 행하는 엄청나게 가혹한 비무 수행법입니다. 그저 그런 수행법이 있었다고 알려지고만 있을 뿐 그것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기록은 거의 전무하지요. 사실 단순한 비무도 아닌 백 번의 생사결을 반복할 정신 나간 인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무엇보다 중도하차하기 십상이니 깐요.”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수행을 성공시켰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 투기장에 있는 이유도 아마 그다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말인즉…….”

“백인참 다음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오히려 무광 선생이 반문했다.

“글쎄요? 이백인참인가요?”

그 말에 무광 선생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요. 천인참(千人斬)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아직도 그 수행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어디까지나 저 일개인의 추측 이지만 말입니다.”

확실히 설득력있는 이야기였지만 단목강에게는 그런 이야기 따윈 어찌 돼도 상관없었다.

다시 단목강이 외쳤다.

“자, 어서 칼을 뽑아라! 무기 없는 놈을 죽이지는 않는다. 오늘 내 너와 정정당당히 겨루어 단목세가의 무공이 결코 녹슬지 않았음으로 보이리라!”

그러자 칠상흔이 피식 하고 웃었다.

“정정당당? 삼대 일이 정정당당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군.”

순식간에 단목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이이이익!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아느냐! 삼대 일이 아니면 신청할 수 없다 그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온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잡스런 곳까지 오지도 않았다. 누군 구경거리가 되고 싶어서 이곳에 있는 줄 아느냐!”

겨우 형의 원수인 칠상흔을 찾았는데 그 원수는 철통처럼 보호되는 투기장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칠상흔’을 내놓으라고 끊임없이 투기장 측에 요구했지 만 그의 요구는 번번이 묵살되었다. 가장 큰 돈벌이 도구인 그를 놓아줄 수 없다는 것이 그 속내였다. 그렇게도 칠상흔에게 복수하고 싶으면 그의 대전 상대가 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삼인 일조로 덤벼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굴욕적이기까지 했다. 단신으로 일 대 일 대결을 펼치겠다고 했지만 거절당 했던 것이다.

“흠, 일 대 일 대결은 역시 성사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무광 선생님?”

“당연하죠. 왜 삼 대 일의 구도가 되었겠습니까? 일 대 일로는 아무도 칠상흔의 상대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겠습니까? 승부가 되지 않는데 당연히 반대했겠죠.” 정확히는 돈벌이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단신으로 상대하면 아무도 단목강에게 걸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너무 일방적이라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즉, 지는 쪽이 있어야 벌이가 되는데 지는 쪽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되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단목강은 이를 악물고 그들의 조건을 수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증 오와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이 자리에 섰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 칠상흔의 무공이 어느 원류에 기인하는 것인지 알아내겠다고 벼르고 계셨는데 성과는 있으셨나요?”

무광 선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아쉽지만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의 정체는 지금까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었죠. 본인도 결코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투기장 측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그래서 그의 무공 기원에 대해 알아내려고 했습니다만 딱히 사승을 간파할 만한 특색있는 초식은 없었지요. 그런 큰 기술 없이 지금 껏 이겨왔다는 데서도 그의 대단함을 알 수 있지요. 오늘은 과연 그의 숨겨진 힘을 끌어낼 수 있을지, 도전자의 분투가 기대되는 바입니다.”

도전자는 아직 신경전 중이었다.

“걱정 마라. 승부는 나 혼자 나선다!”

그때 단목강이 칠상흔을 향해 외쳤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칠상흔이 특유의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단목강이 반문했다.

“귀찮다. 한꺼번에 덤벼라!”

실로 광오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네, 도발입니다. 과연 투기장의 제왕! 엄청난 배포로군요.”

“뭐, 아직까지 세 명이든 다섯 명이든 그의 상대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이…… 이놈이!”

단목강의 두 눈이 분노로 인해 벌겋게 달아올랐다.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그 말 곧 후회하게 해주마!”

“그런 장담은 이긴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물론 그런 기회 따윈 영원히 오지 않겠지만.”

“오오오오! 역시 제왕은 제왕!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 거십시요. 걸어요! 아직 돈을 더 거실 수 있습니다. 과연 이 승부의 행방은 어디일까? 그 앞을 보고 싶은 사람은 모두들 돈을 거십시오. 열 배는 더 흥미진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자, 거십시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돈벼락을 위해! 자, 유흥도 즐기고 돈벼락도 맞고 이 아니 좋을 수 있겠습니까. 자, 그럼 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무대의 막이 오릅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승률이 조금 도전자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팔대세가 중 하나인 단목세가의 셋째 가주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 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확인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먼저 움직인 쪽은 신풍삼영 세 사람이었다. 잔도와 호검이 전방에 간격을 두고 서고 단목강이 후방 가운데에 자리하는 역삼각형 진이었다.

“셋 모두 함께 덤빌 모양이네요?”

나예린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자신이 없는 거겠죠, 입으로 떠든 만큼은.”

연비의 평가는 신랄했다.

“역시 그런 걸까요?”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비범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칠상흔의 기도는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어설프게 체면 찾다가 개죽음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단목강의 두 눈이 불타는 석탄처럼 이글거렸다. 분하지만 지금은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취할 때였다.

“네 자만심이 너를 죽일 것이다!”

“그런 말은 다 죽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항상 시시한 놈들이 시시한 대사를 내뱉지.”

“뭐, 뭐라고!!”

“별생각이 없으니 그 안에서 별생각있는 말이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러니 시시한 놈밖에 못 되어 시시한 인생밖에 못 살게 되는 거야. 네가 시시한 놈이 아니 라면 그 창으로 그것을 증명해 봐라!”

칠상흔은 상처 난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이죽거렸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물론 그럴 생각이다!”

부웅!

바람을 가르는 세찬 소리와 함께 붉은 장창이 칠상흔의 미간을 겨누어왔다. 창날 끝에 모인 살기가 칠상흔을 향해 쏘아져 갔다. 일곱 상처의 남자는 웃었다, 즐거 워서 미치겠다는 듯이.

“자, 그럼 지금부터 ‘투기제’를 행하겠습니다! 개(開)~전(戰)~!!”

미성공자 유진은 들고 있던 작은 망치로 종을 울렸다.

땡땡땡!

그것은 서로 죽고 죽이는 생사(生死鬪)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었다.

“자, 와라!”

생명을 담보로 한 싸움이 지금 막 그 막을 올렸다.

타앗!

전방에 서 있던 두 사람이 칠상흔의 좌우를 노리며 도약했다.

“앗, 먼저 잔도와 호검 두 사람이 뛰쳐나갔습니다!”

미성공자 유진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교란 작전인 것 같군요, 단목강에게 틈을 안겨주기 위한.”

무광 선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파바박 불꽃이 튀며 먼지폭풍이 몰아쳤다. 그리고는 울려 퍼진 쾅하는 굉음! 무언가가 엄청난 힘으로 격돌했지만 먼지구름 때문 에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아, 이럴 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역시 바닥을 돌로 바꿨어야 되는 것인가. 이래서야 소리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눈 뜨고 있는데도 안 보이 다니, 이건 참으로 손님들에게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뭐, 고수들의 싸움이란 게 때론 일반인의 눈으로 따라가기에 너무 어려운 경우가 많죠. 지금처럼 강맹한 초식이 작렬하면 그 여파로 먼지구름이 일기도 하고 말 입니다.”

“그럼 무광 선생님께선 확실히 보셨습니까?”

“뭐, 제가 그동안 밥 먹고 한 일이 그것뿐이라서요. 안력 하나만은 다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럼 저 두 사람의 합공에 대해.

그러자 무광 선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사람이 아닙니다. 세 사람입니다.”

“네?”

그의 확신에 찬 말에 투기장 안이 술렁거렸다.

“흠, 확실히 괜찮은 안력이네요.”

연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시 무광 선생이 말을 이었다.

“그 마지막에 터져 나온 굉음 말입니다, 그게 바로 단목강의 일점 찌르기가 내는 소리였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기습은 성공했습니까?”

무광선생은 자신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 먼지도 걷히니 눈으로 확인하면 되겠지요.”

먼지가 걷히자 투기장의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왔다.

어느새 잔도와 호검은 일곱 발자국 뒤로 물러난 채 한쪽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목강의 장창은 어느새 칠상흔의 심장에 닿아 있었다. 그러나 안 타깝게도 그의 일격은 원수의 심장을 꿰뚫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어느새 뽑아 든 칠상흔의 넓적한 반 토막짜리 도가 그 창날 끝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군중들 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막았습니다! 네, 막았습니다! 단목강 선수의 기습적인 무시무시한 찌르기를 가뿐하게 막아냈습니다. 역시 칠상흔! 이 투기장의 제왕답습니다!”

“잔도와 호검의 좌우 합공을 튕겨낸 다음 넓적한 도면을 방패 삼아 찌르기를 막은 것이죠. 놀라운 솜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칠상흔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어느새 꺼내 든 도로 둘의 공격을 순식간에 튕겨낸 것이다. 순간 덮쳐 온 거센 압력 때문에 둘은 다섯 발자국이 나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자의 무기는 도였군요. 정말 재빠른 솜씨예요.”

나예린이 그 빠른 한 수에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 오락장에서 최고라고 해봤자 그 수준이 그리 높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그녀의 생각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던 것이 다.

“그건 그렇고, 무척 특이하게 생긴 도네요.”

연비의 말대로 그 도는 반 토막밖에 없었다. 그동안 치른 격전을 말해주듯 넓적한 도신에는 거미줄 같은 상처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반 토막의 도라…….?”

장내에서 가장 경악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회심의 절초인 ‘일격살(一擊殺)’이 실패한 단목강이었다.

“이, 이럴 수가! 일격살을 막다니…….”

그러자 칠상흔이 씨익 하고 웃었다.

“방금 건 조금 볼 만했다. 하지만 맞지 않아서야 소용이 없지.”

“이익!”

분노와 수치심으로 인해 단목강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심장을 향하고 있는 창에 들어가 있는 힘을 뺄 수는 없었다.

무광 선생이 그 광경을 보고 평했다.

“음, 지금 창에 실린 힘을 거두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입니다. 지금 그랬다간 당장 반격당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재미있군.”

칠상흔이 한 번 씨익 웃더니 움켜잡고 있던 도를 서서히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밀고 있는데도 두 손으로 버티고 있는 단목강의 창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런 무지막지한 힘이!”

버티고 있던 단목강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믿을 수 없게도 자신이 몸이 창대와 함께 서서히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이런. 여기서 더 이상 밀리면 위험합니다. 단목강 선수, 과연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할 것인지.”

바로 그때 태세를 정비한 잔도와 호검이 다시 한 번 칠상흔을 향해 달려들었다.

“피하십쇼, 삼가주!”

“죽어라, 악적!”

칠상흔은 ‘쳇!’ 하며 외쳤다.

“방해하지 마라!”

그 순간 그의 도가 붉게 빛났다. 가느다랗게 빛나는 붉은 혈망이 허공을 가득 뒤덮었다.

그것은 피를 부르는 혈선이었다.

“이… 이럴 수가!”

단목강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잔도와 호검의 외침에 본능적으로 창의 반동을 이용해 몸을 뒤로 날렸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번쩍 하고 붉은 빛이 허공중 에 번뜩였다. 그리고 그 붉은 빛은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예, 놀랍습니다! 칠상흔의 장기 중의 장기인 ‘혈망살(血網殺)’이 작렬했습니다. 잔도 선수, 호검 선수, 일어서지 못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열광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칼이 피를 부르는 순간은 언제나 이들에게 짜릿한 자극을 선사하곤 했기 때문이다. 관중들의 흥분한 목소리를 들은 나예 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두 사람의 목숨도 이들에겐 오락거리밖에 되지 않는 모양이군요.”

“여긴 그런 장소니까요.”

연비는 시합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잔도, 호검!”

아무리 외쳐 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초식 기억나나?”

칠상흔의 물음에 단목강의 얼굴이 금세 흉흉하게 변했다.

“물론이다, 이 원수! 내 어찌 그 흉악한 초식을 잊을 수 있겠느냐! 형님의 목숨을 거둬간 그 일초를!”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군. 그럼 대비책도 마련해 왔겠지? 내 기대를 저버리지 말았으면 좋겠군.”

그의 말은 놀랍게도 비꼬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자신의 절초가 진심으로 파해되길 원하다니 정상은 아니었다.

“물론 준비해 왔다!”

눈앞에 새겨진 그 악몽을 떨쳐 버리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긴 고련의 시간을 거쳤던가. 그것은 모두 이날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비장의 절초를 펼쳐 볼 시간 조차 그는 구할 수 없었다.

“네 형은 이것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넌 아니길 바란다.”

자신의 비기가 파해되길 바라다니, 이상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사양할 필요는 없는 법. 단목강은 자신이 온갖 치욕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선 이유 를 상기했다.

“물론 그럴 예정이다.”

단목강은 다시 장창을 힘차게 들어 올리며 칠상흔의 미간을 겨누었다. 어차피 넘지 않으면 안 될 산이었다. 그 눈꺼풀 밑에 말라비틀어진 핏자국처럼 달라붙어 있 는 그것을 떼어내지 않는 한 편안한 밤은 찾아오지 않았다.

“자, 와라!”

칠상흔이 탁한 목소리로 외쳤다.

“합!”

단목강의 기합 소리와 함께 그의 창끝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오, 저것은 검강이로군요. 아니, 창이니까 ‘창강’이라 해야 되나요?”

장창 끝에 맺히는 하얀 빛무리를 보며 무광선생이 흥분하며 외쳤다.

“창강? 어감이 좀 이상하군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창을 잡은 사람 중에 저 경지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검강의 경지에 이른 사람에 비해서 말입니다.”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강이라… 재미있군. 하지만 빤짝빤짝거리는 것 빼고는 아까랑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정말 저게 대단한 경지인가요, 무광 선생님?”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다시 한 번 혈망살의 초식을 전개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 칠상흔의 두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그의 전신에서 짙은 살기가 용암처럼 분출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공기 를 태우는 듯한 살기에 중인들은 침묵했다. 그의 몸은 다시금 수많은 이들은 장사 지낸 필살의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단목강은 특별나게 따로 개발한 초식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비록 칠 년의 짧지 않은 세월이지만 그렇게 급조해 만든 초식이 사십 평생을 수련한 초식보다 더 위력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존 초식 중 가장 강력한 초식을 부단히 수련하여 그 초식을 진화, 발전시키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 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만변(萬變)은 일변(-變)으로 제압(制壓)한다!’

어차피 이렇게 긴 창으로는 무기의 특성상 만들어내는 변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변화를 부수는 단순함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 칠 년 동안 오직

하나의 찌르기에만 전력투구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맨 처음 종이를 꿰뚫는 것부터 시작했다. 종이를 꿰뚫고 그다음 책을 꿰뚫었다. 그냥 뚫어서는 의미가 없다. 마치 날카로운 보검으로 도 려내진 것처럼 동그란 구멍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오직 찌르기 하나만을 반복했다. 그다음은 나무판이었다. 빨래줄 위에 위쪽만 매달린 나무판을 또다시 반복해서 찌르고 또 찔렀다. 내공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완전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개월을 소비해야 했다.

그다음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팔뚝만 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굵기를 늘려갔다. 아름드리나무에 맘에 드는 구멍을 뚫는 데까지 삼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다음은 돌이었다. 거대한 암석부터 시작해서 허공중에 던져 올린 돌멩이들까지 만족스런 구멍을 뚫는 데까지 다시 삼 년이란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이와 나무와 암석과 철판을 일렬로 나란히 세웠다. 단 일격에 그 모든 것을 꿰뚫는다면 눈앞에 달라붙은 그 악몽 같은 초식을 깨부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쉽지는 않았다. 좌절도 많았다. 그러나 뼈를 깎는 고련 끝에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세 겹의 벽에 보란 듯이 구멍을 뚫어줄 수 있었다. 그때 뺨에 흐르던 눈물을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무변(無變)의 경지에는 이를 수 없었지만 그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방어와 변화도 모두 꿰뚫을 수 있게 하기 위한 필살의 일초, 절치부심했던 칠 년 간의 고련. 그 고련이 이제 빛을 발할 때였다.

“자, 파할 수 있다면 파해보아라!”

다시 한 번 칠상흔의 반 토막짜리 도가 살기를 머금은 채 허공중에 붉은 그물을 던졌다.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일초. 단목강은 무수하게 그어진 혈선의 장막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창대를 굳게 쥐었다.

따로 개발하지는 않았지만 수련의 극(極)은 그에게 새로운 초식을 안겨주었다.

“받아라!”

지나왔던 수련의 시간이 지금 이 한순간에 집중되었다.

‘진(眞) 일점살(一點) 삼중일관三重一貫)!”

새하얗게 빛나는 창날의 끝이 죽음의 붉은 장막을 찢기 위해 폭사되었다.

“우우우우우우우!”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왜 그들은 이처럼 수준 높은 결투를 보며 야유를 퍼붓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하면 너무 빠르고 너무 굉장해서 그들로서는 도대체가 무슨 일이 뻑적지근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면 오락이 되지 못한다. 음향 효과는 끝내주게 대단한데 볼거리가 없다면 구경하는 입장에선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언~ 또 안 보입니다. 눈을 부릅떠도 안 보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좀 보여주며 싸우면 안 되는 것일까요?”

미성공자 유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만변을 일변으로 제압하려 한 것이죠. 온몸을 던지는 필살의 일격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덮쳐 오는 도기의 해일을 창 한 자루로 돌파하려 한 것이죠. 그야말로 생 명을 건 한 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만은 단언드릴 수 있겠군요, 저 뒤는 없다는 것을. 승부는 이 한 수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무광 선생이 무거운 어조로 장담했다.

“그럼 승부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무광 선생이 턱 밑에 깍지를 낀 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 될 일이겠지요. 정말 대단한 격돌이었습니다. 놀랍군요!”

그런데 칠상흔의 간판 필살기는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모양이었다.

“방금 전 그 초식은…….”

허공을 뒤덮는 붉고 가는 혈선들을 목격한 연비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서 이토록 놀랄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던 연비는 의외의 기습이라도 당한 기분이었 다.

“왜요? 본 적이 있는 초식인가요?”

연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제가 알고 있는 초식이랑 좀 비슷한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건 도로 펼치는 초식이 아닌데… 저런 짜리몽땅한 도로 저런 초식을 펼치다니…….”

연비는 꽤나 놀라고 있었다.

“저 창잡이도 방법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 초식을 파하기에는 수련의 경지가 아직 극(極)에 이르지 못했어요.”

“그게 무슨……?”

“그의 창이 아직 꿰뚫지 못하는 것이 있어요.”

연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서서히 먼지가 걷히며 자신의 숨겨놓았던 생사의 결과를 만인 앞에 드러내 보였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단목강의 창은 칠상흔의 몸을 지나 그의 등 뒤로 길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유진이 흥분한 어조로 외쳤다.

“앗! 이럴 수가! 그렇다면 승부의 주인은 단목강인가~!”

“그건 아니지.”

“그건 아니죠.”

인상을 찌푸린 채 나예린이 말했다.

“아까웠다.”

무표정한 얼굴로 칠상흔이 입을 열었다.

“…그런가?”

쿨럭!

단목강의 입에서 피가 토해져 나왔다.

“나쁘지는 않은 일격이었다. 하지만 암석과 쇠를 꿰뚫는 찌르기로는 이 초식을 파해할 수 없다. 또 모르지. 물을 꿰뚫는 창이라면 이 초식을 파해할 수 있었을지 도.”

“그런가… 역시 부족했던 건가… 젠장!”

수관(水貫)의 경지, 그가 노력했으나 끝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 투명한 유리 물병에 물을 담은 채 병을 깨뜨리지 않고 물과 함께 꿰뚫는 경지. 구멍을 뚫고 나 서도 한동안 물이 새어 나와서는 안 된다. 쇠와 암석을 숭숭 꿰뚫던 단목강의 창도 그릇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수덕(德)만은 꿰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삼 년만… 삼 년만 더 있었더라면……

그 점은 칠상흔도 인정했다.

“십 년이 되기 전에 도전한 너의 잘못이다.”

단목강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맺혔다.

“내가 너무 안달했었군…….”

그 말을 끝으로 단목강은 선 채로 눈을 감았다.

푸슉!

그 순간 그의 옷이 찢어지며 가느다랗게 균열이 난 등으로부터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나예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연비는 그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단목세가 삼가주 철혈창 단목강의 최후였다.

“그때로부터 구 년… 오늘도 실패인가…….”

흩뿌려진 피 위에 드러누운 단목강의 시신을 일별하며 칠상흔은 조용히 혼자 뇌까렸다.

촤악!

도를 한 번 휘두르자 묻어 있던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반 토막짜리 도를 다시 집어넣은 뒤 그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다음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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