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2권 7화 – 내 몸에 손대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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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2권 7화 – 내 몸에 손대지 마시오

내 몸에 손대지 마시오

-종합유희진흥복합단지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능한 조언자를 자청하는 정보 담당관 비연태는 지금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곳을 단 한마디로 압축해서 설명했다.

“종합유희진흥복합단지라네.”

무척이나 생소한 개념에 남궁상과 백무영, 용천명과 마하령의 눈이 동그래졌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라고요?”

반문이 튀어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말은 들리는데 의미는 전혀 파악 불능이었다. 종합적으로 유희를 복합해서 뭘 어쩐단 말인가? 같은 나라 말인지부터 의 심스러웠다.

“좀 쉽게 설명해 주시죠, 선배.”

비연태를 향한 백무영의 질문을 들은 남궁상은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도 이해를 못한 사람은 자신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참모 역할을 하는 백무영 도 저렇게 못 알아듣지 않는가.

“…….”

비연태는 어떻게 풀어 설명해야 할지 무척이나 난감한 모양이었다. 그는 이 친구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았 다. 아무래도 원인은 경험 부족이겠지. 나름대로 혼자 결론을 내려 버리는 비연태였다.

“이게 그렇게나 고민할 일이었던가?”

백무영은 단지 ‘강호란도’를 한마디로 표현한 ‘종합유희진흥복합단지’가 대체 뭔지 물은 것뿐이었다.

“음…그러니깐 쉽게 말하자면 놀기 좋은 곳이지.”

조금이라고는 하나 고민씩이나 해놓고 내놓은 대답치고는 썩 거시기 했다.

“놀기 좋은 곳이라고요?”

“그렇네. 놀기 좋은 곳이지. 거기 가면 놀기 위한 모든 것들이 제공된다네. 술, 담배, 도박, 꽃, 보석, 장신구, 음식, 여자, 남자, 뭐든지 있지. 단, 돈은 지불해야 되겠 지만 말일세.”

풀어놓은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납득이 갔다. 그런데 마지막에 뭐라고?

“어머, 남자도 있어요?”

마하령이 경악하며 외쳤다.

“그렇다네. 여자뿐이라면 어디든 있지. 하지만 남자까지 갖춰져 있는 곳은 이 넓은 강호에서도 그리 흔치 않을 걸세. 듣자 하니 상당한 미소년들이라고 하더군. 나 야 미소저 아니면 관심없지만 말일세. 남의 취향까지 왈가왈부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

물론 그런 건 흔치 않아도 충분하다. 아니, 아예 없어도 무방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머, 그래요?”

어째 마하령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듯 보이는 것은 남자들만의 착각이 분명하리라.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

기분 탓인 게 분명했다, 기분 탓인 게. 비연태를 제외한 남자들은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마하령이 그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는 것 같기도 했 지만, 들리지 않는 걸로 하기로 했다.

음, 아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음, 그러니까 우리 쪽의 미소년들이―그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그쪽에 불시에 납치당했을 때를 대비하고 있는 게 분명 했다. 그렇게라도 생각해 두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저 문화가 다른 거랑도 미묘하게 다른 것 같았다.

“물론 공짜는 아니네만…….”

이런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뭐가 공짜가 아니라는 걸까? 그쪽 이용요금이? 아니면 정보 제공 요금이?

“모든 것에 다일세.”

“물론 그러시겠지.’

이미 공짜가 있을 거란 기대는 버린 지 오래였다. 다행히 대사형에게 단련받은 게 있어서 그런지 남궁상은 그런 식으로 금방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럼 이게 뭔지도 알아오셨나요?”

남궁상은 초대장과 함께 받았던 상자를 비연태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그 안을 본 비연태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호! 바로 이것이었군. 흠, 흠…….”

마치 금덩어리라도 본 얼굴이었다.

“그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꽤 값나가는 것인 모양이군요.”

“흠, 내 얼굴에 써 있었나?”

그제야 비연태도 자신의 생각이 얼굴에 몽땅 드러난 것을 알았는지 서둘러 풀어진 안면 근육을 매만졌다. 뭐, 이미 때는 늦었지만. “그럼 설명을 들어볼까요?”

남궁상이 그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

“북해왕은 오늘 불참인가?”

북쪽에 놓인 빈자리를 바라보며 서해왕이 물었다.

“긴히 할 일이 있어서 회합에는 참석하지 못한다는 전갈이 왔네.”

딸깍딸깍! 찰칵! 찰칵!

서류를 보며 주판을 튕기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은 채 남해왕이 대답했다. 그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때가 과연 있기는 한지 궁금한 서해왕이었다. “요즘 여자를 사귄다는 소문이 있던데?”

순간 주판알을 튕기던 남해왕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북해왕, 그 친구가? 설마.”

남해왕은 한마디로 그 소문을 일축했다. 그리곤 다시 손가락을 놀려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꽤 미인이라는 소문이 있네.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온 여인이라던데?”

“글쎄, 잘 상상이 가질 않는 일이군.”

“그 아가씨, 미인인가?”

여자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여태껏 별 관심 없이 딴 짓하고 있던 동천왕 자군이 몸을 불쑥 내밀었다.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자네가 누구한테 청혼했다는 소문도 있더군.”

“아, 그건 사실이야.”

자군은 순수히 그 사실을 시인했다.

“천무학관의 여자라던데?”

“그것도 사실이지.”

“제정신인가?”

“물론 그 건도 제정신일세. 뺨을 맞은 직후 난 내 영혼이 그녀의 따귀 아래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네. 그건 그러니까, ‘운명’이었어!” 아련한 눈빛을 하며 자군이 말했다.

“운명은 무슨! 역시 제정신이 아니군.”

서해왕이 기가 막힌다는 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저따위 놈이랑 같이 사천왕이라 불려야 한다는 사실에 그는 깊은 비애와 분노를 느꼈다.

“그런데도 딴 여자의 미모가 그리도 궁금한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래? 자네가 청혼했다 퇴짜 맞은 이유를 알 것 같군.”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는 투로 남해왕이 말했다.

“퇴짜 아냐!”

상처 입은 표정으로 자군이 날카롭게 외쳤다.

“그럼 뭔가?”

“연비 소저는 그러니깐, 그러니깐… 그래! 단지 부끄러워한 것뿐이네!”

그렇게 내뱉는 순간 그 말은 그의 마음속에서 사실이 되었다. 누가 뭐래도 그에게는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렇다. 연비 소저는 자신을 싫어한 게 아니다. 그냥 단지 부끄러워한 것뿐이다. 흔히 있는 일인 것이다. 이럴 때는 남자인 자신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연비 소저도 그렇게 바라고 있을 것이다. 편리한 정

신 구조의 소유자인 자군은 실제로 그렇게 믿어버렸다.

“진짜 부끄러워한 것일까? 그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여자가 자네의 뺨을 후려갈겼을 것 같지는 않네만. 듣고 있지 않군.”

자군은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다.

“자, 이런 시시한 회합 따윈 빨리 끝내고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연비 소저의 곁으로 날아가지 않으면 안 돼. 아아, 시간이 부족해, 시간이. 연비 소저, 너무 쓸 쓸해하지 말고 나를 기다려 주시오. 조금만 참으면 내 그대 곁으로 새가 되어 날아가리라!”

저렇게 혼자만의 세계에서 노닐고 있을 때는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남해왕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이럴 땐 무시하는 게 최고였다. “저거 베어도 되나?”

짜증이 배인 목소리로 서해왕이 물었다.

“단칼에 벨 수 있다면.”

“쳇!”

낚싯대처럼 긴 칼의 손잡이에서 손을 뗀 서해왕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지금쯤 슬슬 도착할 때겠군.”

장도를 어깨에 걸친 장신거구의 사내 서해왕이었다.

“그렇겠지. 아마 지금 막 남쪽 항구에 입항하고 있을 걸세.”

“마중은 누굴 보냈나?”

다시 서류 검토에 집중하며 남해왕이 한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백결.”

그러자 서해왕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백결이라고? 왜 하필이면 그 친구를 보냈나?”

그 말에는 묘하게 책망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 친구가 어때서?”

남해왕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반문한다.

“난 그 허여멀건한 친구가 불편해. 그 친구가 서 있는 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거든.”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쾌한지 서해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친군 그저 우리보다 약간 더 깨끗한 것을 좋아할 뿐이네.”

“하! 약간이라고? 기가 막히는군. 그게 약간인가? 그 정도면 병이야, 병.”

그는 정말 그 백결이란 사람이 싫은 모양이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병이면 또 어떤가? 실력 하나는 확실하지 않나. 난 쓸 수 있는 건 모두 쓰자는 주의지. 특히 그것이 쓸모있는 것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런 친구를 부대장으로 써먹을 수 있는 자네가 신기하네.”

하긴 그러고 보면 항상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이쪽 역시 병이라면 병이었다. 만성 일 중독이라는.

“그 녀석 백결은 말이지, 이 세상을 모두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까지도 더럽게 보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단 말이야. 자네 부대장만 아니었으면 가만 안 놔뒀을 텐데. 기분 나쁜 녀석.”

“자네가 그 친구를 싫어하는 원인은 그거였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친군 더더욱 강하다네. 이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깨끗한 자신의 몸을 지켜야 하니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네.”

“그건 동감하지. 그 친구의 환영을 받아야 하다니, 천무학관 녀석들도 불쌍하군.”

그는 진정으로 초대받은 자들을 동정했다. 자기라면 단 반 각도 그 녀석이랑 한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물 위로 밤이 내려앉은 동정호의 그늘 속 가장 깊은 어둠 속 한가운데지만 어디보다도 눈부시게 밝은 불야성을 이루는 섬이 하나 있었다. 마천각에서도 배로 가면 반 시진이면 도착하는 곳에 그 섬, 강호란도는 있었다. 도박과 술과 여자가 넘치는 휘황찬란한 밤의 세계. 그곳을 운영하는 곳이 마천각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진 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어느 정도 마천각에 상납하는 건 분명했다.

비연태가 이리저리 알아낸 것에 의하면, 마천각은 제오수업일 저녁부터 각원들에게 이박 삼일간의 외박을 허락한다. 그때에는 어느 곳을 가든 자유다. 다만 제이 휴일 저녁에 귀환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안 와도 상관없었다. 그 즉시 도망자나 겁쟁이로 낙인찍혀 등수가 하락될 뿐이었다. 그러니 길 가다 원한 관계에 의해 뒤통

수 얻어맞고 등에 칼 꽂히지 않는 이상 모두들 귀환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사절단 일행이 뜬금없이 초대되어 온 날은 기실 마천각의 그 정기 자유일이었다. 다시 말해 정중한 초대의 탈을 씌우긴 했지만, 결국은 사절단 일행의 자율 적인 휴일을 앗아가 버린 셈이었다.

부둣가에 도착한 배 위에 모인 천무학관의 동료들에게 남궁상 일행은 흩어져서 강호란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급히 전파해야만 했다. 부족하지만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었다.

“여긴 완전 별세계네요.”

나예린의 목소리에 서린 그것은 감탄이라기보단 어이없음이었다. 전원 참가였기에 어쩔 수 없이 방문한 정체불명의 섬이지만, 진귀한 경험이라면 마음껏 할 수 있 을 듯했다. 곳곳이 휘황하게 반짝거리는 섬은 인간의 힘으로 밤을 몰아낸 쾌거에 한껏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보단 인간의 욕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도가니 같은데요?”

무시무시한 말을 싱긋 웃으며 건네는 연비였다.

연비의 말처럼 섬을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소리를 지르지 못해 안달이 난 듯 왁자지껄 무자비하게 소음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연주 소리, 웃음소리, 교성, 욕지 기, 호객 소리가 한데 섞여 혼돈과 혼란의 이중주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욕망이 이성을 잡아먹고 돈까지 털어가는 곳이니까요. 욕망의 포로가 된 인간들을 낼름낼름 잡아먹는 식충식물의 낙원이랄까?”

나예린은 무표정하던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온갖 사람이 득실득실한 유흥가라니, 진귀한 경험이 될지는 몰라도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지역이었다. 천무학관 사절단 일행이 타고 있던 배에서 내리기 시작하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사내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백결(白潔)이오.”

마중 나왔다는 그의 인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반갑소. 남궁상이오.”

남궁상이 가까이 다가가 포권지례를 취하려고 하자 그 사내는 인사를 받지 않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무척 무례한 일이었다.

“마중 나왔다면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질 않나, 인사를 하는데 물러서질 않나. 상당히 무례하다는 생각 안 드시오?”

남궁상이 힐문했다.

“이 백포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오.”

백결이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는 하얀 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뭐요?”

“더러운 먼지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한 처치일 뿐이오.”

남궁상은 그 어이없는 대답에 황당해하며 그 마중객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확실히 그의 복장은 병적일 정도로 특이했다.

입을 가리고 있는 백포(布)를 시작으로 입고 있는 저고리와 바지, 그리고 신발까지 모두 하얀색 일색이었다. 게다가 장갑까지 하얀색으로 끼고 있었다. 그는 다 른 색이 그 흰색 안으로 침범하는 것이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흰색에 집착하는 친구로군.’

그의 전신 중에 하얗지 않은 것은 그가 들고 있는 기다란 흑색 봉과 머리카락뿐이었다.

“당신은 하얀색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구려?”

“하얀색이 모든 색 중에서 가장 깨끗한 색깔이기 때문이오. 난 단지 더러운 것이 싫을 뿐이오. 때문에 남들이 가까이 오는 것이 싫소. 상대의 속에 들어갔다 나온 공기가 날 건드리는 게 싫기 때문이오. 그건 참을 수 없이 역겹소.”

그의 흰옷과 흰 장화와 흰 장갑에는 정말 거짓말 보태지 않고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극상의 피진신공(避塵神功)이라도 익히지 않고서는 저 상태를 유지한 다는 것은 정말이지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매우 심각한 결벽증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했다.

“휘유~ 정말 대단한데! 어떤가, 휘. 깨끗한 걸 좋아하는 자네랑 좋은 승부가 될 것 같은데?”

“아무리 청결한 걸 좋아하는 저라도 저 정도까진 아닙니다, 장형.”

모용휘가 장홍의 비교를 정중히 사양했다. 마천각을 떠나오자마자 장홍은 다시 기가 살아난 모양이었다.

‘퍽이나!’

옆에서 그 말을 들은 공손절휘는 배알이 뒤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모용휘의 갈굼을 받으며 방 안을 빡빡 청소했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백결의 저런 행동에 불만을 가진 것은 비단 공손절휘뿐만이 아니었다. 이 일행 중엔 공손절휘보다 더 청소를 싫어하는 사람이 끼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개방의 촉 망받는 거지 노학이었다.

“흥, 깨끗한 척하기는! 겉만 깨끗하면 뭐 해? 속이 더러운데! 구린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는구만. 아이, 구려~”

처음 백결을 본 순간부터 어쩐지 마음에 안 들었던 노학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불평했다.

“저 불결한 거지는 대체 뭡니까?”

노학을 한 번 찌릿 노려본 다음 백결이 물었다.

“개방의 구결제자이자 개방 방주이신 걸왕 노선배님의 직전제자인 소걸왕(小)노학이라 하네.”

소걸왕이란 노학이 최근에 화산에서 활약(?)한 후 얻은 칭호였다. 물론 이 칭호를 받은 다음 한참이나 대사형 비류연의 놀림거리가 되어야 했지만 그래도 본인은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동료들에겐 매타자(買打子)라 불렸다. 매를 버는 놈이란 의미였다.

“훗, 왕이라니, 불결한 거지한텐 과분한 호칭이로군요.”

“뭐… 뭐라고! 이 육시랄 놈아! 말 다 했냐! 다 했어?”

배 위에서 노학이 길길이 날뛰었다.

“저런 불결한 생물이 아무런 조치도 없이 이 강호란도에 발을 디디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조치라니? 무슨 조치 말인가?”

질문하는 남궁상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무형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백결의 심신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소독을 해야지요.”

백결은 암중으로 남궁상의 기세에 대응하며 입을 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자에 대해선 너무 과소평가되었는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그 역시 한 부대의 부대장이었다. 이 정도로 물러날 만큼 약하진 않았다.

“소독?”

“뭐, 인체에 무해할 겁니다. 다만 더러운 기운들과 벼룩을 일종의 약물들로 제거하는 거지요. 얌전히 있으면 금방 끝날 겁니다.”

특히 마지막 말이 남궁상의 신경을 건드렸다.

“얌전히 있지 않겠다면?”

“그렇다면…….?”

백결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누가 쓰레기라는 거냐, 이 망할 자식아!”

노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치 자신을 더러운 쓰레기로 보는 것만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난 쓰레기라고 말한 적 없소. 하지만 역겨운 자기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있군.”

백결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뭣이라!”

“재수없는 놈!”

꾹꾹 눌러 담고 있던 노학의 분노가 일순간에 폭발했다.

“역겹다고? 말 다 했냐?!”

뒤쪽에 서 있던 노학의 신형이 단숨에 튀어나갔다. 세상 모든 걸 더러운 오물 보듯 보는 저 재수없는 면상에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릴 것 같았다. “그만두게, 노학! 먼저 공격해선 안 되네!”

이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넘어가면 적에게 정당성을 주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백무영이 서둘러 말렸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러나 땅바닥의 먼지 속에 뒹군 사람은 백결이 아니라 노학이었다.

노학의 주먹은 빈 허공을 갈랐고, 어느새 공중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돈 다음 등짝부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우당탕탕!

넘어졌다. 뒹굴었다.

“크윽!”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노학은 백결의 털끝 하나 건드려 보지 못한 채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무리 상승무공을 사용하진 않았다고 하지만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척!

쓰러진 노학의 눈앞에 검은 흑단 지팡이가 겨누어졌다. 그 흑단 지팡이를 이용해 자신의 공격을 흘리고 그의 몸을 뒤집은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빗자루로 오물을 걷어내는 듯한 동작이었다. 사실 그것의 본래 용도는 지팡이가 아니라 빗자루였다. 다만 지금은 술이 달려 있지 않을 뿐이었다.

“경고했소. 내 몸에 손대지 마시오.”

백결이 나직한 목소리에 불쾌감을 담아 말했다.

“이, 씨……!”

그러나 노학은 그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입을 꿰뚫을 기세로 폭출(暴出)되어 나온 살기 때문이었다.

“욕하지 마시오. 귀가 더러워지오.”

백결의 손에 들린 검은 지팡이는 무척 길었다. 그 검은 지팡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오염된 것들을 배제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날이 달려 있지 않은 것은 피 역시 더럽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러운 타인의 피가 자신의 몸에 튄다는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해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경고하겠소. 나의 몸에 손대지 마시오. 그렇다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오.”

백결, 그가 원하는 것은 그것 이외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누구야? 저딴 놈에게 사람 마중하게끔 한 개념없는 놈은?”

천무학관 사절단 속에서 이런 원망과 분노의 마음이 싹트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순간, 남해왕은 누가 자신을 욕하기라도 하는지 자신의 귀가 묘하게 가려운 것을 느꼈지만, 그걸 긁기 위해 주판알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그런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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