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3권 18화 – 보람찬 경매가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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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3권 18화 – 보람찬 경매가 끝나고

보람찬 경매가 끝나고

-풀려 버린 구속구

“크윽! 이 도둑노…….”

찌릿!

칼날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움찔한 수호 삼호법의 수좌 호강은 하려던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노련하신 공자님! 우리 수적한테서 돈을 갈취해 가다니. 정말 인간이십니까?”

위축된 호강의 입에서 저절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경고를 무시하고 쌍욕을 남발한 흑룡왕이 아구창으로 날아든 상어 입도 뭉개 버릴 만큼의 무자비한 구타 땜에 당분간 입도 벙긋하기 힘든 모습으로 변하는 걸 똑똑히 목격한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 전 그를 향한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주랴?”

이럴 땐 수지타산에 빠른 흑도답게 재빨리 현명한 대응책을 취하는 것이 옳았다.

“빨랑 사라지시죠, 되사간 흑룡선 타고. 아, 거기 딸 바보 아저씨 데리고 가는 것도 잊지 말고요.”

한 손으로 돈을 세며 다른 한 손으로 훠이훠이 빨리 꺼지라는 손짓을 하며 비류연이 말했다.

“아참, 잠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기절한 총채주 흑룡왕을 둘러메고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던 장강수로채 사람들의 신형이 비류연의 한마디에 우뚝 멈추었다. 끼기긱!

제일호법 호강의 고개가 힘겹게 뒤로 돌아갔다.

“아직 볼일이 남으셨나요?”

비류연은 자신 앞에 놓인 돈궤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금은 확실히 맞는 거겠죠?”

이들은 수적답게 어음보다는 현금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흑룡선 두 척과 해신 한 척의 대금을 몽땅 현금으로 지불했다. 그 많은 거금을 단숨에 현금으로 지불할 수 있는 지급 능력은 놀랄 만했다. 그래서 비류연도 아직 받아낸 세 개의 돈궤에 든 돈을 모두 정산하지는 못했다.

“무, 물론이지요. 확실히 요청하는 금액 그대로입니다.”

장강수로채의 자금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실무자인 제이호법 호하가 호강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이런 건 신용이 중요하니까 믿도록 하죠. 하지만 뭐 틀려도 상관없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뭐, 모자란 건 그쪽에 ‘직접 찾아가서 받으면 되니깐요. 대신 그땐 그 모자란 부분 이외에 귀찮게 한 대금도 치르게 하겠어요. 괜찮겠죠?”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욕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이런 미친! 그래, 오냐! 오기만 해봐라! 장강수로채의 심장부에 와서 네놈이 무사한지 어디 두고 보자! 그때야말로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지금은 소수 정예만을 끌고 온 상황이라 총단에 있을 때와 똑같을 리 없었다. 그런 미친 짓을 해준다면 오히려 환영할 만.

짝!

순간 호하의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덕분에 그의 장대한 계획은 중도에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멍한 눈으로 뺨에 손을 대보았다. 얼얼했다. 어떤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뺨을 후려갈겼으리라 예상되는 인물은 어느새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가 돈을 세 는 데 여념이 없었다.

“바, 방금 혹시 공자께서 그러신 겁니까?”

“그런데요? 뭐 잘못됐나요?”

호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비류연이 대꾸했다.

“왜, 왜 때리는 겁니까?”

“지금 방금 욕했잖아요, 속으로 아까 경고하지 않았나요? 천박한 말 쓰지 말라고.”

“내, 내가 언제….”

그러나 연비는 그의 항의를 가차없이 기각했다.

“방금 속으로 놈이라고 했잖아요.”

“그, 그걸 어떻게….”

순간호하는 이 청년이 혹시 독심술의 능력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뭐, 뻔할 뻔 자니깐.”

한마디로 넘겨짚었단 이야기였다.

“자, 그럼 다시 돈을 세볼까?”

언제나 돈 세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다만 참으로 아쉬운 점은 이 돈이 몽땅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해신을 판 돈은 자신의 몫으 로 지정받아야만 했다. 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문제였다.

“흑룡왕인지 검은 도마뱀인지 하는 녀석은 그냥 보내줬냐? 관아에 넘기면 꽤 짭짤했을 텐데.”

특일급 지명 수배자였다. 장강의 두목답게 그의 목에는 값비싼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할 수 없죠. 돈 안 내놓으면 관아에 넘겨 현상금 타버린다니깐 겨우 돈을 내놓던걸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관아에 넘길 수가 있어야죠. 그건 상도덕적으로도 그다지 올바른 것 같지는 않아요.”

비류연이라고 왜 그 생각을 안 해봤겠는가. 하지만 일단 내뱉은 말은 지켜야 했다.

“다시 복수하러 오면 좋을 텐데 말이다. 안 그러냐, 제자야?”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노사부가 말했다.

“싫어요. 오면 제가 또 수고해야 되잖아요.”

“당연하지! 그럼 이 늙은 사부가 하리?”

“말을 말죠.”

비류연은 말싸움을 포기했다.

“그건 그렇고, 경매 건도 잘 처리했으니까 돌려주세요!”

“뭘?”

시침을 뚝 떼며 사부가 물었다.

“당연히 압수해 간 비뢰도죠.”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원래 일을 잘 처리하면 상을 줘야 하는 거라구요. 그래야 의욕이 더 증가하죠.”

“상 받고 싶냐?”

사부의 물음에 비류연은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흠… 손목 좀 내밀어봐라.”

잠시 생각하던 사부가 말했다.

“손목은 왜요?”

“내놓으라면 내놔봐!”

비류연은 마지못해 손목을 사부 앞으로 내밀었다.

“팔찌는 잘 차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때 그의 팔에 차여 있던 구속구 묵룡환은 금팔찌로 바뀌어 있었다. 무려 순금 팔찌였다. 무게가 바뀐 건 아니었다. 다만 겉모습이 바뀐 것뿐이었다. 금박이 입혀 진 팔찌 위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었다.

“근데 뭐냐? 이 삐까번쩍한 건? 묵룡환에 금칠했냐? 금이 아깝다.”

사부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게 눈에 띄는 장신구를 어떻게 그냥 달고 있어요? 정체 다 들통나게. 그래서 조금 손을 봤죠. 금이야 다시 녹여서 재활용하면 되고, 원상복구도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에요.”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면 인건비를 내야겠지만 비류연의 경우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상은 안 주세요?”

“보채긴. 기다려라, 지금부터 상을 줄 테니.”

도대체 무슨 상을 줄까? 회의와 기대가 약간 뒤섞인 감정으로 비류연은 기다렸다. 사부가 짧게 기합을 넣었다.

“얍!”

장난스런 외침과 함께 금빛 팔찌 하나가 열리며 땅에 떨어졌다.

‘쿵’ 하고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이건……!”

비류연은 돌연한 사태에 눈을 부릅떴다. 그때 사부의 손바닥이 그의 단전에 가서 닿았다.

‘방심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은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막대한 양의 기가 비류연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굴욕스럽게도 비류연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비류연의 배에서 손을 떼더니 사부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하! 어떠냐. 제자의 몸에 기까지 듬뿍 불어넣어 주다니, 정말 제자 사랑이 넘치는 훌륭한 사부님이지 않느냐?”

그러나 비류연은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미… 미쳤어……. 이걸 함부로 떼지 말라고 한 건 사부였잖아요? 게다가 이 기는…….”

자신의 몸속에서 마구 날뛰기 시작한 기(氣)가 봉인이 풀려진 오른팔을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오른팔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혈관이 튀어나 오고, 근육이 제멋대로 부풀어 오르거나 쭈그러들기를 반복했다.

“오, 빨리 제어하지 않으면 위험할걸?”

사부의 태평한 목소리와 달리 상황은 심각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위험했다. 자칫 잘못하면 오른팔 어깨가 빠지는 건 귀여운 짓이고 근육이 찢어지고, 경락이 갈가리 끊어질 위험이 있었다.

“그런 태평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묵룡환이나 돌려주세요! 이 힘을 제어하려면 그게 있어야 한다구요!”

묵룡환은 단순히 무겁기만 한 팔찌가 아니었다. 안쪽에 돌기가 있어 몇 가지 혈도를 지그시 누르는 누름돌 역할도 병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게랑 돌기 때문에 육체의 한계가 넘는 과다한 기가 쏠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팔과 두 다리에 차고 있는 네 개의 묵룡환 모두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잠시 풀어서 폭 발적인 힘을 얻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무척 짧아야 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폭주하는 힘에 폐인이 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부는 태평하기만 했다.

“이제 슬슬 네 무공도 한계에 부딪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냐?”

묵룡환을 돌려주는 대신 사부가 조용히 물었다.

“큭, 그… 그걸 어떻게…….”

“괜히 네 녀석 사부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 정도는 척 보면 알 수 있지.”

역시 그걸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도 사부뿐이었단 말인가. 자기가 계속 도망쳐 온 사람만이 자신이 처한 상태를 제대로 알아봐 줄 수 있다니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면 희극이거나.

“뭐, 사실은 네놈이 싸우는 걸 지켜봤다! 한마디로……

“한마디로?”

“지루했다.”

사부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 그렇다는 건 아직도 거쳐야 될 수련이 또 남아 있다는 건가요?”

“당연하잖느냐. 난 네 녀석이 다 거쳤다고 한 적 없는데? 내가 하산하라고 한 적 있었냐?”

“없죠.”

“그런데도 가출해서 멋대로 산을 내려간 건 누구지?”

“그야… 저죠.”

“그래, 그런데도 할 말 있니?”

“없죠.”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거 아니냐?”

“문제는 없죠, 사부가 미쳤다는 것만 빼면!”

딱!

순식간에 꿀밤이 날아왔다. 비류연의 신법으로도 피할 수 없는 절대의 꿀밤이었다. 사중 분신과 이중 이형환위로 피해보려 했으나 또다시 실패한 비류연은 이마를 부여잡고 울상을 지었다.

“우쒸.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비뢰도 말이다…….”

비류연의 귀가 쫑긋 섰다.

“그걸 제어할 수 있게 되면 그때야말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마.”

“맨날 생각만 합니까?”

“그럼 생각조차 하지 말까?”

그렇게 되면 아예 희망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역시 악덕 사부, 한 번 약점을 잡으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놓아주질 않는다. 뼛골까지 뽑아 먹지 않는 이상 말이 다.

오십만 냥 대회도 내 알 바 아니라는 태도였다.

이건 상이 아니라 숫제 벌이었다.

“언제까지 도구에 의지할 셈이냐? 비뢰도 없이 우승해 와라.”

그리고는 덧붙였다.

“비뢰문의 후계자가 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자존심을 확실히 긁는 말이었다.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을 비류연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하면 되잖습니까, 하면!”

아무래도 남겨진 선택지는 그것 하나뿐인 듯했다.

“잘 생각했다.”

어째 번번이 사부의 흐름에 휘말려 드는 듯한 기분이 들어 찝찝한 비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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