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그치지 않는 비
쏴아아아아아아아아!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빗줄기가 땅을 때리는 소리가 고막을 세차게 울린다.
나백천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비가 미친 듯이 그의 얼굴과 몸을 때린다. 검을 쥔 오른손은 풀 속에 잠겨 있었고, 그의 왼손은 그의 가슴께에 놓여 있었다. 현재 그는 풀밭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주위에는 나무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운 이 공간만은 마치 숲 속에서 도려내어진 듯 텅 비어 있었다. 그 많은 나무들 중 단 한 그루도 그의 우산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왼손을 들어본다. 붉은 피가 가득하지만, 떨어지는 빗물에 금방 씻겨 나간다.
자신의 피다.
또다시 ‘그때’ 입은 상처가 터진 것이다. 벌써 몇 번째일까? 상처가 아물 시간조차 없었다.
쏴아아아아아아.
비가 미친 듯이 내려 전신을 때린다.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움직여야 했어. 어서 이 자리에서 움직여야 했다.
그는 오른팔을 들어보려 한다. 그러나 검이 만 근이라도 되는 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리마저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땅속으로 파고들어 갈 것만 같다.
얼마 만일까?
이토록 지독하게 부상을 입고 땅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못하게 된 것은.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점점 더 눈이 감긴다.
피곤하다. 지독히 피곤하다.
잠을 자고 싶구나…….
눈꺼풀이 다시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비가 눈에 들어왔는지, 눈앞이 안개라도 낀 것처럼 뿌옇게 흐리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정천맹주씩이나 되는 자가 이름없는 들판에 누운 채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꼴사납군.’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정말 꼴사납다.
피곤하다.
오늘은 더 이상 추적이 없겠지.
‘그 일곱이 이렇게까지 강하다니…….”
피곤하다. 잠이 온다. 의식이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고 싶다……. 눈이 감긴다. 캄캄한 암흑이 찾아온다.
차가운 비도 더 이상은 그의 의식을 깨우지 못한다.
시야 안을 서서히 번져 가는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예린아…….”
너의 웃음을 보고 싶었는데……
아비가 되어 딸의 얼굴에 미소 하나 돌려줄 수 없는 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그 옆에 또 하나의 얼굴이 나타난다.
“여보…….”
빙월선자 예청, 달처럼 고고하고 긍지 높은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늙다리 남편과 함께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는데…….
자고 싶다…….
나백천의 의식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앞으로 이 강호는 어떻게 될까.
의심이 점점 더 심연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여기까지 온 건가…….?
아무래도 오늘이 그의 끝이 될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온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미안하구나…….”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미소를 보고 싶었는데…….
나백천의 의식이 완전히 심연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찬 폭우가 그의 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모여드는 일곱 개의 신형.
쏟아지는 폭우 사이로 그들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뭉개지며 언뜻언뜻 비친다.
그들의 가슴에는 일곱 개의 별을 이어놓은 성좌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나백천의 의식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져 끝없이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