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8권 24화 – 굉천(天), 움직이다 (28권 끝)

랜덤 이미지

비뢰도 28권 24화 – 굉천(天), 움직이다

굉천(天), 움직이다

-칠쏘아버린 효시(噶矢)

흑천맹 심처에 위치한 한 별실.

사내는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 처리는 잘 되었느냐?”

자신에게 마련된 흑천맹의 가장 호화로운 별실에 앉아 있던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열어 물었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사내, 그 가면 밑을 본 자는 누구를 막론하 고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사내. 현 무림 최강자 중 한 명인 마천각주 본인이었다.

“네, 지금까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효과는 완벽합니다.”

“그래, 모든 것이 순조롭군. 그녀들이 왔을 때는 조금 걱정했는데, 때마침 ‘그것’이 완성된 게 다행이야.”

“천운이었습니다.”

벽의 그림자 속에서 소리도 없이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얼굴에 철가면을 쓰고 있는 그는 다름 아닌 마천십삼대 중 제십이대의 대장인 은신무영 철가면 은존 이었다.

“모두 모여 있느냐?”

귀신처럼 홀연히 나타난 철가면의 모습에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마천각주가 물었다.

“네, 일각 전에 모든 원로들이 회의실이 모였습니다, 주군.”

“지금쯤 시끄럽겠군, 다들.”

“어쩌시겠습니까?”

가면 밑으로 드러난 마천각주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맺혔다. 좀처럼 주인의 미소를 본 적이 없는 철가면은 갑자기 오한이 드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의 영혼을 짓누르는 힘을 그의 주인은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 압도적인 힘에 어떤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그거야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 지금은 맹주석이 공석으로 남아 있으니, 함부로 흑천맹의 전력을 사용할 수 없지 않겠나? 매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군.”

그러나 그는 전혀 불편해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철가면이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럼 슬슬 가서 당황하는 노인네들을 달래야겠군. 지금 이 상태로는 나백천을 척살하기는커녕, 자중지란만 일어날 테니까 말이야. 우두머리 없이 전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마천각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쪽으로 향했다.

“그럼 난 원로회의에 다녀오겠다.”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기 시작했다. 이제 그 회전 속도를 더욱 가속시키는 것이 바로 그의 역할이었다.

그의 예상대로 비상소집된 회의실 안은 혼란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욕설이 오갔다. 얼핏 들으면 격론이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저 서로에게 열을 내며 싸우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흑도의 하늘을 받치는 일곱 기둥, 칠주(柱흑천칠주)였다. 열세 개의 기둥 중 백 년 전 싸움으로 전멸한 여섯 개의 기둥을 빼고 남은 일곱 기둥. 이들은 그 크나큰 대전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강했지만, 같이 생존한 서로에 비해 뛰어나게 월등히 강하지는 못했다. 한 곳이 특출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명령은 들으려는 척 도 하지 않았다.

흑천맹 내에서 그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무신마의 피를 이은 갈중천뿐. 현역에선 물러났지만 태상맹주로 암중에 군림하고 있는 무신마 갈중혁의 후광은 아직 도 흑도 전체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허락 없이 정식으로 새 맹주가 뽑힐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어차피 그는 공식적으로는 은퇴한 입장이다. 특히 범인이 나백천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상, 아무리 흑도의 거인이라 해도 자식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말릴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들조차도 이 정도 상태니까 말이야.’

격론을 펼치고 있는 일곱 명의 원로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들의 맹주를 잃은 것에 대한 분노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체면이 깎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이번에도 충돌을 제지한다면 무신마 갈중혁의 이름 뒤에 ‘겁쟁이’라는 경천동지할 말이 붙을지도 몰랐 다. 그렇게 되면 그의 영향력과 존재감은 급격히 줄어들고 말리라.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고 생각하며 마천각주는 회의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헛기침 같은 촌스러운 짓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천각주가 들어가자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회의실이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는 그저 들어왔을 뿐이고, 그저 자신이 앉을 의자로 걸어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회의실에 있던 원로 일곱 명은 모두 그의 존재를 느끼고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회의실에 있던 원로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이 비록 원로라 칭해지지만 마천각주, 그보다 더 오래된 원로는 없었다. 그는 흑천맹의 상담역이자 고문 이자 태상원로였다.

마천각주가 협탁 주위를 돌아 비어 있는 상좌에 앉자 비로소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자리에 앉았다.

“…….”

침묵. 정적. 그리고 고요.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좀 전에 그렇게 언성을 높이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원로들은 입을 열지 못한 채 마천각 주의 입만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조차도 곁눈질일 뿐, 감히 눈을 마주치려는 자는 없었다.

위압감.

그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짓누르는 위압감을 준다. 토끼가 늑대에게 그러하듯, 사슴이 호랑이에게 그러하듯, 그가 자신들보다 훨씬 위에 존재하는 상위 포식자라는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각하고 있었다.

생존의 본능이 자극되는 것을 느끼며 그들은 자연스레 깨닫고 있었다.

그들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무림의 법(法)은 강자존(强者存), 칙(則)은 약자멸(弱者滅).

그러니 강한 자를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왜 이렇게 조용해졌나? 회의를 다시 시작하지.”

마침내 마천각주가 입을 열자 말꼬가 터졌는지 여기저기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예, 이번 맹주님 암살의 범인인 정천맹주 나백천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상좌에 앉은 채 마천각주가 조용히 대답했다.

“피는 피로 갚는 게 흑도의 법칙이지. 피에는 피, 맹주에는 맹주. 그 목숨 이외의 대가는 생각할 수 없군.”

“그렇습니다. 그자는 역시 그 난 체하는 위선자들의 우두머리답게 한 가닥 하는 실력이 있어 당장은 모습을 감추었지만, 아직 광역포위망을 빠져나가지는 못했습 니다.”

“하지만 상대는 나백천, 일반 무사로는 추적은커녕 수색조차 불가능합니다. 절정고수들을 당장 증원할 것을 진언합니다.”

“정천맹이 먼저 불가침조약을 깬 이상, 맹주를 잃고도 그냥 있다간 흑도에 더 이상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저희 흑천맹의 통치력은 거품처럼 사라지게 될 것입니 다.”

약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게 흑사회(社會)의 제일법칙이었다. 당한 대로 갚아주지 않으면 무능한 것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 다.

“맞습니다. 이제 전면전쟁뿐입니다.”

“동의합니다. 정천맹을 쳐야 합니다!”

원로들의 시선이 마천각주를 향했다.

저희들의 뜻은 하나로 모여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마천각주가 입을 열었다.

“십천군(軍)을 움직이지.”

단 한마디였으나 그 한마디가 주는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네에에에에에?”

거센 충격이 회의실 안을 광분한 황소처럼 사정없이 뒤흔들며 내달렸다.

“십, 십천군을 말입니까? 진심이십니까?”

원로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흑천맹의 원로를, 말을 더듬을 정도로 격동케 만든 한마디의 파장은 컸다.

마천각주는 왜 놀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담담했다.

“뭘 그리 놀라나? 자네들이 원하는 게 그것 아니었나?”

일순간 침묵이 찾아왔다. 그 말의 무거움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아서 다들 감각이 둔해졌나? 정천맹의 잠재력을 얕봐서는 안 될 일이지. 나백천의 포획은 물론이고 정천맹이란 이름 석 자를 이 강호에서 지우기 위해는 십천군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 하지만 흑천 십방천군을 움직인다는 것은..

흑천(黑天) 십방천군(十方天軍), 줄여서 십천군.

그들은 흑천맹이 지닌 최대의 전력. 흑천맹의 무력 그 자체를 나타내는 열 개의 부대였다. 서해왕 락비오가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했던 ‘공천’ 역시 이십천 중의 제 삼천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이 열 개의 하늘이 합쳐져 비로소 ‘대흑천(大黑天)’이 되는 것이다.

즉,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흑천맹의 모든 전력이 움직인다고 봐야 했다.

그야말로 전면전쟁.

그제야 늙은 원로들은 자신들이 입에 담았던 일이 어떤 일인지, 소름 돋는 피부와 격동하는 심장을 통해 깨달았다. 그렇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전쟁을 외치고 있 었던 것이다. 시체가 산을 쌓고, 피가 강이 되어 흐르는 혈풍이 몰아치고, 혈우가 내리는 진짜 전쟁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십천군을 총력으로 움직이려면 원로원의 합의와 맹주의 결재가 필요하네. 우두머리 없이 대전(大戰)을 시작할 수는 없는 법. 지금 자

네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비어 있는 맹주 위(位)를 메우는 것일세. 나백천이 완전히 흑천맹의 영역을 벗어나기 전에 말일세.”

너희들의 결단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나백천을 놓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진다는 무언의 압박. 반응은 금세 돌아왔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자리를 메워주실 분이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마천각주가 조용히 되물었다.

“바로 당신이십니다.”

“본인 말인가?”

마천각주가 천천히 반문했다. 전혀 놀란 기색도 없이. 이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 듯이.

“네, 지금 그 대임을 완수할 수 있는 분은 각주님뿐이십니다.”

“거절하겠네.”

마천각주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째서입니까?!”

원로들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왜 거절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태도였다.

“원래 맹주와 각주는 겸임할 수 없는 것일세. 자네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곧 대전이 발발할 것입니다. 전면전쟁입니다. 백 년 만의 대전쟁. 그러나 저희는 전쟁의 시작에서부터, 아니, 시작 전부터 우두머 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저희를 하나로 묶어주고 사기를 올려줄 강력한 전설 급의 인물이 필요합니다. 그걸 가능케 하실 분은 각주님뿐이십니다.”

“하지만……..

마천각주는 다시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자 일제히 원로들이 일어나더니, 마천각주 향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외쳤다.

“흑천의 원로들이 흑천의 주인을 배알하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원래 만세는 황제밖에 받을 수 없는 인사다. 그러나 여긴 무림, 그런 것쯤은 가뿐하게 무시되는 게 일상다반사인 세상이었다. 어차피 듣지도 못할 테니 무슨 상관 이겠는가.

마천각주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동안 그 누구도 꿇어앉은 자세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마천각주는 당장 답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참 동안 무릎을 꿇고 있는 원로들을 쳐다보았을 뿐이다. 반 각이 지나도 일어나는 이는 아무 도 없었다.

“하아…….”

마천각주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할 수 없군. 자네들이 그렇게까지 부탁한다면 잠시나마 맹주 직을 맡도록 하겠네. 단,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만!”

부복한 원로들의 고개가 더욱 아래로 숙여졌다.

“감사합니다, 맹주님!”

모두의 인사에는 ‘임시’라는 말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빠져 있었다.

흑천맹 맹주 위의 인계 과정은 흑천맹의 태사청인 대흑천전에서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맹주 위(位)를 상징하는 두 가지 신물, 옥새(玉璽)’라 할 수 있는 ‘흑천 쌍룡인(黑天雙龍印)’과 ‘사자금패(獅子金牌)’가 약식으로 마천각주의 손에 건네졌다. 오직 맹주만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흑옥을 깎아 만든 묵빛 태사의 ‘흑사자좌 (黑獅子座)’에 앉자, 그의 전신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흘러나왔다. 마치 그 자리가 당연히 자신의 자리라고 말하는 듯한 그 놀라운 변화에 원로들은 저절 로 외경의 마음을 느꼈다.

곧바로 원로 중 하나가 안건을 들고 나왔다.

“꼬리를 감춘 나백천의 추적에는 누구를 보내시겠습니까?”

그것은 지금 가장 먼저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였다.

“나백천 정도의 최절정고수를 쫓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존재가 필요한 법이지. 그가 아무리 최절정고수라 해도 천라지망 무문세에서는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네. 대기 중이던 칠성좌(七星座)를 수색 추적으로 돌리도록 하게.”

이미 생각해 두기라도 했는지 즉시 답이 나왔다.

“오오오오, 칠성좌를 말입니까?! 과연!”

여기저기서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이라면 확실히, 교활한 뱀처럼 몸을 숨긴 나백천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나백천은 누구나 인정하는 검의 고수, 그 실력은 검존에 필적한다고 일컬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어지간한 패로는 그의 꼬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지금 부상 중이라 해도 말이다.

그때, 흑사자좌에 앉아 있던 마천각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향해 날아가 꽂혔다.

“임시 흑천맹주로서 첫 명을 내리겠다.”

긴급 소집된 부대의 대장들과 원로들은 일제히 기립한 후 읍하며 외쳤다.

“흑천의 무사들이 맹주님의 명을 기다립니다!”

잠시 그대로 자리에서 서 있던 마천각주는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며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십천중 제삼천인 굉천(轟天)을 움직여 정천맹을 치겠다!”

그 말에 원로들과 대장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중 한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공손히 말했다.

“진천(震天)이 움직일 것입니다.”

진천(震天)은 굉천(轟天)을 억누를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정천맹의 최전방 무력 부대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은 경계선상에서 굉천의 움직임에 대응해 언제든지 움직 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관없네, 바라는 바이니.”

마천각주의 대답은 명쾌했다.

“하, 하오나 지금은 상중입니다. 갈 전 맹주님의 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러자 마천각주가 엄숙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중(喪中)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하네. 본좌는 천(千)의 피, 만(萬)의 불꽃으로서 전(前) 맹주인 그가 가는 길을 조문하고자 하네.”

받은 만큼 갚아주는 것은 피의 법률, 철의 철칙이었다.

또한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심령을 장악하는 기이한 힘이 깃들어 있어 군호들은 감히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위선자들을 나는 용서하지 않겠네, 절대로!”

마천각주의 목소리에 서린 준엄한 분노가 좌중들의 분노를 이끌어냈다. 모두들 그 분노에 공진하여 증오를 싹틔웠다. 증오와 분노는 사람들을 가장 손쉽게 선동시 킬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흉악한 악적을 사로잡아 만인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하고, 그 수급을 높은 장대에 꽂아 까마귀들의 먹이로 주겠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들의 정신을 흔드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혈육들과 그를 지지했던 모든 이들도 복수의 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속 깊이 분노를 느끼고 있던 흑천의 무사들이 감정을 폭발시키듯 일제히 광기 어린 함성을 터뜨렸다. 이제 그들은 오직 피와 죽음으로만 이 들끓는 증오를 씻 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천각주가 바른손을 털 듯이 쭉 내밀며 외쳤다.

“전쟁의 효시(矢)를 쏘아 올려라! 백 년 만의 대전쟁이다! 흑천의 무사들이여, 나가서 싸우라! 대의(大義)는 우리에게 있다! 나백천에게 죽음을! 정천맹에게 멸 망을! 이제 이 무림 하늘 아래에는 오직 하나의 하늘[天]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자 원로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배례하며 일제히 외쳤다.

“독보군림(獨步君臨)! 흑천영세(黑天永世)!”

백 년 만의 대전쟁, 그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는 거대한 분노와 증오에 가득 차 있었다.

지금, 강호(江湖)에 피의 강이 흐르려 하고 있었다.

<『비뢰도』 제29권에서 계속>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