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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08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혈영신마를 지키던 수천 무인들이 제압당하고 혈영신마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소문은 가을철 들불처럼 번져 갔다.

“벽도삼걸이 혈영신마를 구해갔다네.”

“에이… 벽도삼걸이 그럴 리가 있나?”

“아냐. 틀림없어. 지금 모두들 난리가 아니라니까. 벽도삼걸을 보는 즉시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대.”

“아니, 그래도 그렇지. 벽도삼걸이 무슨 능력이 있어 혈영신마를 구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고 있었대?”

“응.”

“응?”

“모두 잠자고 있었다는데?”

일이 터지면 가장 바빠지는 사람들은 개방 걸개들이었다.

그들은 밤새도록 경계를 섰던 걸개도 예외 없이 정보를 찾아 돌아다녔다. 벽보에는 벽도삼걸의 인상착의와 함께 은자 삼백 냥이라는 거금이 현상금으로 걸렸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전처럼 구파일방만 관여했다면 설혹 놓치더라도 속앓이를 하면 그만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 십망에는 산동성 무인들까지 대거 참여한 관계로 쉬쉬한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잡아야 한다.

십망의 책임자인 현학 도인은 말을 잃었다고 한다. 현단궁을 버릴 각오까지 했다는 풍문이다. 현단궁을 버린다는 말이 무엇인가! 자진해서 무당파로부터 파문당하겠다는 말이며 도복(道服)을 벗겠다는 말이 지 않은가.

‘혈영신마, 벽도삼걸이 살아 있는 한 무당산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그가 직접 한 말인지 그의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추측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현학 도인은 상황에 떠밀려서라도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벽도삼걸에게 직접 수천(守天)을 명령한 삼절기인은 더욱 난처했다.

애지중지하던 세 제자가 살수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만도 체면이 땅에 떨어졌는데 이번 일까지 겹쳤으니……

상황이 어렵기는 청성파의 진풍 도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벽도삼걸을 직접 대면했고 대화까지 나눴다.

청성파의 체면은 여지없이 곤두박질쳤다.

청성파 삼검 중 일검이 변장한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했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벽도삼걸이 정반대 방향으로 하산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수천 무인들의 교대 시간을 들었으니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그들의 체면이 손상되었다. 하지만 무림에 낯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무인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명예가 떨어진 사람들도 있다.

벽도삼걸과 함께 수천을 했던 무인들.

그들은 혈영신마도 아닌 벽도삼걸에게 제압당했다.

병기를 뽑아 들고 싸우다 죽었으면 무공이 약해서 죽은 것이니 할 말이라도 남았겠지만 혈영신마의 하수인쯤 되어 보이는 자들에게 감쪽같이 제압당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개방 또한 무사히 넘어가지 못한다.

과산에서 온 장무라는 자… 이용헌이라는 자… 그들을 의심했고 문도까지 파견했으면서도 꼬리를 잡지 못했다. 그들이 혈영신마를 데리고 나설 때도 의심 없이 보내주었다.

개방의 실력은 절반 이상이 정보에서 나온다.

무공도 뛰어나고 문도 수도 중원에서 제일 많은 거대 방파이지만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정보력이 없다면 오늘날과 같은 영광을 누리기는 상당히 곤란했을 게다.

혈영신마가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거마 분타주는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멍한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고 한다.

종리추는 동하를 벗어나자마자 인피를 벗어 던졌다.

인피를 떼는 것은 벗는 것 못지않게 힘들었다. 죽은 살이 제 살 행세를 하는 바람에 얼굴 가죽을 벗겨내는 기분이었다. 아프고, 쓰리고, 화끈거리고……

종리추가 약물을 얼굴에 부을 때마다 뜨거운 불길이 닿는 듯했다.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보통 인피라면 썩기라도 하련만 면구로 사용되는 인피는 특별히 약물 처리를 할 것이라서 썩지도 않는다. 아교의 성분을 무르게 하지 않는 한 얼굴에 달라붙은 인피를 떼어낼 방도는 없다.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일어 괴롭지만.

“이거 두 번은 할 짓이 못 되는군.”

혈영신마가 중얼거렸다.

“제길! 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린 벌써 두 번째야. 이건 정말 쓸 때도 그렇고 벗겨낼 때도 그렇고……”

혈영신마는 모진아의 중얼거림에 입을 뚝 다물었다. 아니, 놀랐다.

두 번째라는 말에 놀란 것이 아니라 인피면구를 드러내고 난 후 드러난 얼굴을 보고 놀랐다.

예상은 했지만 모진아는 혈영신마의 예상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종리추는 훨씬 젊었다. 혈영신마가 볼 적에는 젖비린내가 난다고 여길 만큼 젊었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 갓 스물을 넘긴 것 같은데… 자신이 저 나이 때는 무엇을 했나? 뜨거운 야망을 품고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

나이가 한참 많은, 무공이 자신에 못지않은 모진아가 종리추를 주공이라고 부른다. 무공으로 제압했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절정 고수일수록 굴복보다는 명예를 택하기 마련인데… 둘은 어떤 관계일까?

“야! 목숨을 살려줬으면 고맙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라. 네놈 때문에 신체발부… 신체발부… 주공, 그게 뭡니까? 신체발부 뭐라고 하는 것 말이에요.”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 효경(孝經) 개종명의(開宗明義) 장(章).”

“제길! 되게 기네. 좌우지간 신체발부수지부모, 그것까지 했단 말이야, 임마!”

혈영신마는 모진아의 투박한 소리에 긴장이 사르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달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긴장을 몸에 달고 살았는데……

모진아는 인피를 쓰기 위해 수염을 자른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연신 턱을 어루만졌다. 인피를 쓰고 있을 적에는 얼굴 살결이 바짝 당겨 섭섭한 점을 몰랐는데 인피를 벗자 허전함이 드러난 것이다.

종리추는 벗겨낸 인피를 불살랐다. 살이 타는 매캐한 노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명도 축에 끼일 수 있는 벽도삼걸의 보도(寶刀)는 땅에 묻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바위로 짓누르고 눈을 쌓았다.

벽도삼걸의 인피와 보도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후 행낭에서 다른 인피를 꺼냈다.

“또! 또 씁니까?”

이번에는 혈영신마도 인상을 찡그렸다.

인피면구란 것은 한 번은 호기심에 써본다 해도 두 번은 쓸 것이 못 되었다.

종리추는 묵묵히 아교와 종류 미상의 살점으로 얼굴 윤곽을 만들어 나갔다.

‘이건 참 대단해. 인피를 씌우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야 돼. 눈 모양, 입 모양, 코 모양…… 그러고도 잠을 잘 수 있다니……’

혈영신마가 무림에 나와 제일 힘들었던 것은 첫 살인을 한 직후였다.

죽은 자의 얼굴이 생각나 밤에 잠을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생생히 생각나던지…… 아니, 얼굴 모습은 흐릿해서 알아볼 수 없는데 그놈의 부릅뜬 눈만은 너무 또렷해서 기억나곤 했다.

아마도 종리추는 죽은 자의 얼굴을 벗겨내면서 하나라도 더 기억에 담으려고 뚫어지게 쳐다봤을 게다.

종리추는 여러 가지로 패륜아(悖倫兒)다.

중원 무인들 중에는 인피면구를 쓰는 사람이 없다. 모진아의 말대로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라.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십악대죄(十惡大罪)를 범한 중죄인을 응징할 때뿐이다.

죄 없는 사체의 신체를 훼손했다는 사실만으로 종리추는 십악대죄를 저질렀다.

그런 연유로 중원 무인들은 인피면구를 쓰는 자는 사마(邪魔)의 무리로 간주한다.

모진아는 오십 대의 중년인으로 변했다. 혈영신마와 종리추는 모진아보다 약간 못 미치는 얼굴이다.

“염(閻), 염(閻), 염(閻), 하남 염가(閻家) 삼형제의 이름이야. 셋 다 의원이야. 가업으로 오대째 이어오고 있지. 나이는 쉰넷, 쉰둘, 쉰. 슬하에는……”

하남 염가 삼형제에 대한 이력(履歷)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종리추가 말했다.

“염가 삼형제는 곡성(曲城)에 있어. 지금도.”

“……”

혈영신마와 모진아는 잠시 종리추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야 말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아니 ‘지금도’라면? 염가 삼형제가 살아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

“이 인피면구는…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 얼굴 가죽을 벗겨서……”

비위가 어지간히 강한 모진아가 부르르 치를 떨었다.

종리추가 말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살아 있다면 인피면구는… 인피면구는……”

“이건… 정확히 말하면 인피가 아니라 토피(兎皮)라고 해야겠지. 토끼 뱃살로 만든 거니까.”

“어, 어떻게?”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의미에서 의술을 연구해 봐.”

“……?”

“웬만한 의술은 알고 있을 테지만 염가 삼형제는 의술이 뛰어나 인근에 소문이 자자한 자들이야. 그들 행세를 하려면 그럴싸한 의술을 지니고 있어야 돼.”

“그럼 염가 삼형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야.”

세상에! 죽은 자의 얼굴을 벗겨 인피면구를 만든다는 소문은 들었어도 산 자의 얼굴을 모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하필이면 왜 그런 자를 흉내 냈습니까? 토끼 가죽으로 만들 바에는 이름자도 없는 촌놈으로 만들 것이지.”

“벽도삼걸 사건 때문에 산동 무인들은 세상 모든 사람을 의심해. 일이 그렇게 되어 있어. 인상착의가 달라도 외지인이 나타나면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을 거야. 상당히 피곤해지지. 그럴 바에는 조금이라도 소문난 자가 좋아. 의심을 풀 수 있으니까.”

“…….”

“문제는 개방이야. 개방의 소식이 얼마나 빠른지 시험해 볼 좋은 기회지. 우리 존재가 염가 삼형제를 알고 있는 무인의 귀에 들어가고, 곡성에서 확인하고, 추적 명령을 내리는 게 빠른지 우리가 안산까지 가는 게 빠른지. 우리가 빠르면 남은 일정이 편하고 늦되면 고돼.”

혈영신마는 머리가 핑핑 돌았다.

종리추는 자신보다도 무공이 강하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한밤의 꿈처럼… 패배했던 순간이 먼 꿈속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혈영신공이 이렇게 무너질 리가 없어.’

그런 느낌이 그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목숨을 구걸하고자 일어선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이 왜 졌는지를 알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종리추와 모진아라면 무공으로 뚫고 나가도 될 것 같았다. 자신도 무공으로 뚫고 나왔는데 하물며 자신보다 강한 자인데……

그런데 종리추는 충돌을 피하고 돌아가고 있다.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무척 치밀하고 완벽하다.

‘이런 자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냐.’

그는 호기심까지 치밀었다. 앞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때 모진아의 음성이 들려 상념을 접었다.

“주공, 그럼 벽도삼걸 인피면구도 토피로 만든 게……”

혈영신마도 궁금했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썼다는 게 못내 찜찜했는데…….

종리추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냐.”

길을 재촉하는 동안 세 사람은 많은 무인들을 만났다.

“한심한 놈들……”

모진아가 중얼거렸다.

길에서 만난 무인들은 혈영신마와 일 대 일의 비무는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 볼썽사납게 비쳤다.

이게 현 무림의 실태였다.

맹수에게는 영역이 있다.

맹수에게 영역은 매우 중요하다.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영역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음과도 직결된다.

그래서 맹수들은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키는 자가 있으면 노리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새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고자 하는 맹수들은 나이 먹고 힘이 없어진 맹수를 내쫓고 자리를 차지한다. 영역을 차지했더라도 먹이가 빈약하면 풍부한 곳을 찾아 이동한다.

이래저래 맹수의 세계에서는 싸움이 늘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이고 약자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무림은 맹수의 세계다.

하지만 현 무림은 너무 강자가 약자를 조율한다. 강자로 성장하는 것은 막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강자들과 뜻을 같이해야 한다. 강자들의 뜻을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여지없이 도태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무림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은 자연히 제거되었다.

무림은 평화롭다.

약자들이 살아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강자의 영역에서 강자의 눈치를 보고 산다. 너무 오랫동안 눈치를 보아왔기에 이제는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해 버렸지만.

무인들은 강한 무공을 익히고 싶어한다. 자신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도 해보고 싶다. 낭인의 허울을 벗고 강자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서고 싶다.

그런 사람은 모난 돌이고, 그래서 정(釘)을 맞는다.

아니라고 아무리 부인해도 십망이 무림을 짓누르고 있는 한 거침없이 검을 뽑아 들 사람은 많지 않다.

세 사람은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았다.

병기도 지니지 않고 간단한 행랑만 둘러멘 세 사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 사람이 객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소면(素麵)을 시켜 먹는데 옆자리에 앉은 무인들 중 한 명이 말을 건네왔다.

“먼 길을 가는 사람 같은데… 어디서 오셨소?”

“하남 곡성에서 왔소이다.”

종리추가 소면을 먹으며 대꾸했다.

“하남 곡성? 곡성에서 오셨다면 동향(同鄕)이네. 나도 곡성 사람이오. 살다 보니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지만. 반갑소. 이런 데서 동향 사람을 만나다니.”

“……”

“난 장칠(張七)이라는 놈이오. 이름은 어찌 되시오?”

전에 물어왔던 무인들의 이름은 왕오(王五), 최삼(崔三) 등이었다. 하나같이 중원에 개똥처럼 널려 있는 이름들이다.

“허허! 곡성 염가 삼형제요.”

“염가 삼형제?”

“의원을 하고 있다오.”

“아! 의원이셨구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의원이야 좋은 약재가 있다면 천 리 길도 마다 않는 사람들이지. 이 지역에서 나는 곽향(藿香)이 해수(解暑)에 즉효라 구하러 왔소.”

전에는 두충(杜仲), 천마(天麻), 황백(黃柏) 등을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대화는 여기까지다.

말을 걸어왔던 무인들은 이쯤에서 슬그머니 물러섰다. ‘좋은 약재 구해 가시오’ 등등 마무리 말을 하면서.

무인이 말했다.

“아! 어쩐지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모가촌(毛家村)에서 천마를 구한다던 의원이셨구먼. 천마는 구하셨소?”

‘위기다!’

모진아와 혈영신마는 움찔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간 반응이라 무인들은 수상한 점을 잡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종리추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말을 물었을 때 대꾸를 하는 사람이 우두머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들이 무인이라면 우두머리가 무공이 가장 강할 것이다. 혈영신마 일행이라면… 말을 하는 사람이 혈영신마이리라.

“웬걸… 소문만 무성했지 쓸 만한 천마는 없습디다.”

“……”

무인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병기에 손을 얹는 무인도 보였다.

종리추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천마란 참 재미있는 약재요.”

무엇이 재미있는가? 천마는 값이 제법 나가는 약재지만 귀하다고 할 수는 없다.

“똑같은 천마를 백 사람에게 먹이면 백 가지 맛이 난다오. 맛이 다 다르니… 만병통치인 셈이지. 그런데 그 천마란 놈은 성질이 까탈스러워서 누가 건드리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오.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썩어버리지.”

무인들은 종리추의 말속에 빠져 들어갔다.

천마는 많이 알지만 천마에게 그런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병기에 손을 올려놓은 무인이 손을 내렸다.

경계가 풀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천마라는 놈은 참나무를 삭혀서 얻지. 버섯 균도 있어야 돼. 천마는 버섯 균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그게 없으면 곤란하지. 흠! 내 자랑이 너무 심했나? 좌우지간 우리가 구하고자 했던 천마는 생것인데 그게 없었어. 모두 쪄서 말린 것뿐이더라고. 쪄서 말린 것은 보관하기 편하지만 설사에만 약효가 있지. 생것은 변비를 고치는 데 좋고. 약효가 다르다는 말이지.”

종리추는 거만한 의원처럼 행세했다.

마치 너희들이 의술을 알기나 하냐는 투였다.

“흠! 곽향이란 것… 많이 구해 보시오.”

장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무인이 듣기 귀찮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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