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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10화


“미치겠군! 미치겠어!”

개방 거마 분타주… 그는 곡성에서 날아온 조그만 쪽지를 손에 들고 펄쩍펄쩍 뛰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혈영신마를 찾는 일은 모래밭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웠다.

거마 분타주는 서두르지 않았다.

체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졌지만 그럴수록 냉정을 회복해야 한다.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어. 아무도……’

개방 문도가 구석구석 퍼져 낯선 자들을 색출해 냈다.

많은 인력이 투여되면서도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지만 거마 분타주는 끈기 있게 처리해 나갔다.

개방도가 발견한 모든 사람들의 내력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온 것이 너무 멀어 하루 이틀로 알아낼 것 같지 않은 사람은 개방 이름으로 정중히 청했다.

“혈영신마가 사라져서 그럽니다. 잠시 저희 개방에 머물러 주시겠습니까?”

말이 좋아 요청이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불응하면 강제로 끌고 올 계획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와 썩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 거적떼기에서 생활했다.

하남 곡성은 참 묘한 곳이다.

멀다고 하기에는 가깝고 가깝다고 하기에는 멀다.

염가 삼형제 역시 내력을 알아내야 할 사람들이었으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지만 워낙 당당하게 행세해서 의심스러운 구석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정말 의원이었다.

그런데… 곡성에서 날아온 전서에 의하면 염가 삼형제는 곡성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거마 분타주가 펄펄 뛰고 있을 때 개방 문도가 황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염가 삼형제는 안산 부근에서 사라졌습니다.”

“안산? 안산이 맞아?”

“틀림없습니다. 두 시진 전에 본 사람이 있습니다.”

“빨리! 빨리 당주(堂主)님께 연락드려!”

“벌써 전서를 띄웠습니다.”

“그럼 뭘 하고 있어! 빨리 준비들 해! 안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어디야!”

거마 분타주는 움직이지 못했다.

반 시진 후, 외칠당주(外七堂主)로부터 날아온 전서는 그의 손발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전서에는 단 한 마디, ‘거마 분타로 돌아갈 것‘이라는 글귀만이 적혀 있었다.

‘허허! 이날 이때까지 실수란 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혈영신마… 놈에게 멋지게 뒤통수를 얻어맞았군.’

야산에서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 다른 사람들은 명예를 회복할 시간이 있다. 지금쯤 그들은 혈영신마가 염가 삼형제로 변장했다는 것을 알았을 테고, 안산으로 달려가고 있으리라. 다른 한쪽에서는 안산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모든 통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좁혀오고 있을 테고.

천라지망이 펼쳐졌다.

수상한 사람, 낯선 사람은 누구도 예외 없이 무당 현학 도인과 대면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강력한 포위망이다. 혈영신마가 어디로 도주했는지 알 수 없을 때는 펼치지 못했던, 안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비로소 펼치게 된 포위망이다.

그들은 거기서 명예를 회복하면 되지만… 거마 분타주는 평생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닐 게다. 마두를 빤히 지켜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무능력한 분타주로.

“돌아가자.”

거마 분타주가 힘없이 말했다.

안산으로 당도한 종리추는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어촌의 초라한 움막으로 들어섰다.

빈궁한 어촌에서도 가장 초라해 보이는 움막이다. 다른 집들은 흙벽이지만 집다운 형태를 갖췄고, 나무껍질로 만든 지붕이라도 얹었지만 종리추 일행이 들어선 집은 그나마도 없어 거적떼기로 사방을 막아 간신히 비바람이나 면할 정도였다.

“문주님, 어서 오십시오.”

미리 와 있던 천전흥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렇잖아도 무림 동태가 심상치 않아 걱정했습니다.”

천전흥이 말을 하며 바쁘게 행낭을 집어 들었다.

“배는 준비해 놨습니다. 쾌선(快船)이라 내일 아침에는 독산호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피곤하군.”

“……?”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 가지.”

“문주님, 한시가 급한데……”

“술 있나?”

“……?”

“없으면 좀 구해오지. 독주(毒酒)면 좋겠어. 오늘은 실컷 마시고 푹 잤으면 좋겠어.”

천전흥은 어쩔 수 없이 행낭을 내려놓았다.

“술은 생각을 못 했습니다만… 구해오겠습니다.”

혈영신마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천전흥은 분명히 종리추에게 ‘문주’라는 말을 사용했다.

일문의 문주……

그것은 혈영신마의 꿈이기도 했다.

혈영신공을 인정받아 일문의 문주가 되어 문도를 지도하고, 현숙한 아내를 맞아 오순도순 살고, 아침이면 밝은 햇살을 맞이하고 저녁이면 지는 노을을 보고……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오늘같이 쫓길 신세가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오늘은 술이나 실컷 마셔보고 싶군.’

종리추는 혈영신마와 모진아에게 역한 냄새가 풍기는 약초 즙을 건네주었다.

인피면구를 벗겨낼 때 사용하는 약초 즙이다.

혈영신마는 약초 즙을 붓고 인피를 조금씩 벗겨낼 때마다 살을 지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던 옛날이 떠올라 싫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독초에 손을 담글 때는 이빨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까맣게 타버린 양손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엉엉 울기도 했다.

종리추가 건네준 약초 즙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만들었다.

‘마지막이었으면 좋겠군, 인피를 뒤집어쓰는 건……’

지지직……!

얼굴에 흘러내리는 약초 즙이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혈영신마는 살이 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천전흥은 독주를 아주 조금 구해왔다. 네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나도 양이 부족했다.

“이런 움집에서 술을 많이 구하면…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야 되니까요. 오늘은 잠을 청할 만큼만 마시고… 어촌에 도착하면 많이 구하겠습니다.”

“그러지. 술은 양으로 마시는 게 아니니까.”

조그만 옹기로 두 순배씩 돌아가자 술 항아리가 밑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취기는 상당히 올라왔다.

“무슨 술인데 이렇게 독하지?”

술이라면 두주(斗酒)도 불사(不辭)하는 모진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정말 독했다. 뿌연 술이 혀끝에 닿는 순간 톡 하고 쏘았고, 목구멍을 넘길 때는 불로 지지는 듯 화끈거렸다. 뱃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독기가 더욱 기승을 부려 전신을 불태우는 듯했다.

“모주(母酒)라고… 이곳 사람들이 생선 창자를 삭혀서 만든 술입니다. 이 술 한 잔만 마시면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이 든다 해서 모주라고 불립니다.”

“그런가? 독하군.”

종리추도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혈영신마의 얼굴도 붉었다. 그의 무공인 혈영신공을 얼굴에 맞은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얼굴이 홍시처럼 붉은 것은 천전흥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모진아만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는 술에 취할수록 얼굴이 하얘지는 체질이다.

종리추는 술 항아리를 들어 남은 술을 따랐다.

“아니, 저는 이제 그만 하렵니다. 너무 독해서……”

천전흥이 사양했다.

“잘 따르면 두 잔은 나오겠군. 마시게. 자네와 나 둘이 바닥을 내자고.”

술잔을 채우지 못했다. 조금 남은 술로 두 잔을 채우려니 칠 부쯤에서 멈춰야 했다.

“주공, 싫다는 사람에게 권할 것이 아니라 제가……”

“아니, 이 술은 천전흥과 내가 마실 술이야.”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술기가 확 달아나는 듯했다.

취해서 한 말이 아니다. 종리추의 눈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문주님, 제가 잘못한 일이라도……”

“아니, 없어. 너무 고마웠지. 많은 일을 해줘서.”

“……?”

“이 술을 마시고 흔쾌히 춤을 춰보지. 백천의는 달마삼검(達摩三劍)을 조화지경에 이르도록 연마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전수받았나?”

“이, 이게 무슨!”

천전흥은 말없이 앉아 있는데 모진아가 펄쩍 뛰었다.

“살문주, 드시지.”

천전흥의 말투가 바뀌었다.

두 사람은 잔을 높이 들어 올린 후 단숨에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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