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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15화


종리추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졌다. 중원 무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그의 종적을 파악해 낼 수 없었다.

개방, 하오문, 묵월광의 정보……

모두들 마음만 조급할 뿐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정보는 찾아내지 못했다.

소고는 모래 위에 지어진 성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뼈저리게 절감했다. 아프지도 않은 생이빨을 강제로 뽑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종리추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몇 달을 같은 문제로 고민했는데도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이건 종리추를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그가 어디 있느냐 하는 일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찾아야 죽이든지 살리든지 할 것이 아닌가.

‘너무 잘 알고 있어. 개방은 물론이고 하오문, 묵월광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어. 걸려들 리 없어.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야.’

묵월광의 신용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공개적으로 공표한 청부가 아니니 겉으로야 살천문의 뒤를 이은 살수 문파로 자리매김을 확고히 하고 있지만 정파 무림인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묵월광을 묵인해 준 것은 필요할 때 써먹고자 해서인데 반년이 지나도록 종리추의 행적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살수 문파를 무엇 하러 묵인한단 말인가.

소고는 후원을 거닐었다.

예쁜 꽃들이 활짝 피어 교태를 자랑한다.

나비와 벌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구파일방이 죽음의 손으로 사용하던 살천문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지금 묵월광처럼 구파일방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기 때문에 마음대로 손댈 수 없었다. 결국 종리추라는 살점을 도려내며 동사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묵월광은 이미 깊은 수렁에 빠졌어. 헤어 나오고 싶어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청부 살인을 중단해도 과거의 행적이 있으니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 십망을 받을지도 모르고, 꼭두각시 살수 문파를 내세워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지. 음……’

소고는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무령이 되기 위해서는 중원 무림인의 합공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당당하게 살인을 하고 어깨를 활짝 편 채 대로를 걸어야 한다.

아무래도 살수 문파를 거느리고 있는 입장에서는 힘든 일이다.

그런 조건이라면 살수 문파를 이끌고 있는 것보다 홀몸으로 무림을 떠도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결국은 마두로 낙인찍혀 십망을 선포받고 죽게 되겠지만.

‘사무령, 너무 큰 짐이야.’

소고는 처음으로 사무령이라는 말이 지겹게 느껴졌다.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종리추는 어땠을까?

살문 문주로서 무림과 살천문의 공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어떤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당시에는 미안하다는 생각만 들었지 처절했을 그의 심정은 짐작하지 못했다.

이제 묵월광이 살문과 같은 입장에 처해지자 그가 떠올랐다.

그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나마 살아 있는 것만도 다행인데… 이제는 발견하는 즉시 죽여야 하는 입장이라니.

그때, 소고는 은밀하게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했다.

낯빛을 풀었다. 자신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삼령주(三靈主)가 아는 것으로 족하다.

쉬익……!

날렵하게 신형을 날린 상대는 소고도 눈치채지 못할 빠르기로 꽃밭으로 숨어들었다.

“무슨 일이야?”

가까이 다가온 자는 일살이다.

그는 소고 혼자 있을 때나 여러 명과 같이 있을 때나 항상 은밀한 곳에 몸을 숨겼다. 그가 몸을 드러낼 때는 소고가 나오라고 명령을 내렸을 때뿐이다.

“희소식입니다.”

일살이 들떠서 대답했다.

“종리추의 종적이 드러났습니다.”

“뭣!”

소고는 평정을 잃을 만큼 놀랐다.

“지금 막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여민(黎民)의 팔복검(八覆劍)이 피살당했답니다.”

“그래……”

소고는 다시 시큰둥해졌다.

검을 든 무인은 항시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런 무인 한둘쯤 죽었다고 종리추를 찾은 듯 들떠 있다니… 분명 묵월광이 손대지 않았고 무림인들 중에서 그와 결전을 벌인 자가 없었으리라. 그러니 종리추의 짓이라고 단정했겠지.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소고는 눈을 부릅떴다.

“팔복검이 죽은 후 송근(宋根)이라는 자가 나타나 이제야 원수를 갚았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답니다. 역시 살문의 살수는 확실하다면서.”

“그게 언제 일이냐?”

“나흘 전입니다.”

“송근이라는 자는 어디 있어?”

“팔복검의 가솔들이 도륙하려는 것을 개방이 낚아채 갔답니다. 그자는 한마디 더 했는데 원한이 있는 자는 팔부령 대래봉(大崍峯)에 가서 소원을 빌라고 했답니다.”

“팔부령 대래봉, 대래봉이 확실해?”

“몇 번 확인해 봤습니다. 들은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팔부령 대래봉으로 움직이는 사람도 있고……”

‘팔부령 대래봉… 거기 숨어 있었어. 그러기에 잡지 못한 거야. 팔부령에 숨어 있으니 찾을 수가 없지.’

소고도 팔부령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

나는 새도 넘지 못한다는 험산 준령이다. 겨울에는 사람 발길이 완전히 끊기는 곳이며 여름에도 산속 깊이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지금 당장 이십팔숙을 준비시켜.”

“팔부령으로 떠납니까?”

“내가 직접 간다.”

소고는 갑자기 바빠졌다.

삼령주를 소집했다.

그들이 연락을 받고 모이기까지 걸린 시간은 일 다경에 불과한데 소고에게는 하루나 되는 듯 길게 느껴졌다.

“사령, 조령, 화령. 전부 동원해. 목적지는 팔부령이야.”

“종리추의 종적이 드러났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묵월광을 전부 움직일 필요는……”

사령주 적사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금 묵월광이 처한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종리추를 쳐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였다. 반대이기는 하지만… 겉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마음속의 반대다.

‘종리추는 사내야. 충성도 맹세했고…… 수하를 먼저 버린 사람은… 소고 당신이야. 큰 실수했어. 차라리 야이간이나 나를 버릴 것이지……’

“반 시진 후에 출발할 테니까 준비 단단히 시켜. 팔부령은 암습하기 딱 좋은 곳이야. 모두들 알 거야. 종리추가 살문을 이끌면서 단 한 번도 청부 살인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걸.”

‘소고, 종리추는 실패한 적이 없지만 우리 십칠(十七) 사령(蛇靈)은 무적이오.’

적사는 종리추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팔부령까지 가는 동안 종리추를 구할 수 있는 방책이 없나 생각해 볼 참이었다.

‘화령은 있으나마나야. 팔부령 싸움은 진검 싸움이야. 화령들의 싸움과는 거리가 멀어. 그런데도 나를 동반시키는 것은… 언니는 종리추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은 거야. 마지막으로.’

화령주 소여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제 묵월광은 끝났군.’

야이간은 자신이 일어설 때가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는 말이 있다. 땅에 배를 깔고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 밑에서 숨죽이며 사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복지부동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야이간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팔부령은 요주(遼州)와 태원부의 경계에 위치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태원부의 팔부령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요주의 팔부령이라고도 한다.

워낙 산이 험하고 깊어 사람이 넘나들 수 없으므로 자연히 생성된 경계다.

대체로 주(州)의 경계란 것은 나라에서 편하게 관리하기 위해 그어놓은 선으로 지형이나 인구 수 등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중원 역사가 수많은 부침을 했지만 태원부와 요주의 경계만은 변한 적이 없다.

요주는 태원부를, 태원부는 요주를 마치 먼 나라 사람처럼 대한다.

산 하나만 넘으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말이 다르고 문화와 풍습이 다르다.

모두 팔부령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사람 발길이 뚝 끊긴 팔부령에 요즘 들어 사람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태원부 쪽에서 올라가든 요주 쪽에서 올라가든… 그들은 한결같이 같은 물음을 던진다.

“대래봉을 가려는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팔부령 주위에 모여 사는 산촌 사람들의 대답도 거의 엇비슷하다.

“저기 저 산 보이쇼?”

“어느 산 말이오?”

“저기 구름 속에 잠긴 산 말이오.”

“아!”

“저기가 대래봉이오. 아무도 올라가 본 사람이 없어 올라가는 길은 모르고. 요즘 대래봉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는데 웬만하면 가지 마시오. 올라가기도 전에 호랑이 밥 되기 십상이오.”

삼절기인은 앞서 가는 두 사람을 쫓아 천천히 산을 올랐다.

길도 모르는 산길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우매한 행동은 없다. 실제로 앞서 가는 사람들은 자주 길을 잃었고 들어갔다가는 되돌아 나오는 일을 반복했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짜증이 치밀어서라도, 아니, 겁이 나서라도 하산을 하고 말 상황이다.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오십 대의 중년인이었고, 한 사람은 이십 대의 청년이었는데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묵묵히 산을 올랐다.

보아하니 서로 초면인 듯했다.

산에서 만나 같은 뜻을 지니고 대래봉을 찾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정상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채 밤을 맞았다.

우어엉……!

멀리서 승냥이인지 늑대인지 분간하기 힘든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잠도 자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대래봉 정상을 노려본 채 입술을 꼭 깨물고 있다.

‘원한이 하늘에 닿았군.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분명히 살인을 청부하러 올라가는 사람들일 터.’

삼절기인은 검을 뽑아 들고 위협하며 무슨 사연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살인을 청부하냐고. 그래서 이유가 납득되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살인 청부란 정말 원한이 깊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권 때문에 찾아온다. 조금 더 많은 은자를 손에 쥐고자 애꿎은 사람을 죽여달라고 청부하는 자들.

긴 밤 동안 눈썹 한 번 붙이지 않은 두 사람은 사위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자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삼절기인은 산속에서 사흘을 보냈다.

정말 대래봉은 길을 알지 못하고는 오를 수 없는 천신들의 안식처 같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높다는 산에 오르자 조그만 소로가 드러났다.

다른 산봉도 마찬가지였다. 푸르기만 한 산록에 황토빛 소로가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대래봉은 저쪽……’

삼절기인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래봉이 어디인지 알아냈다.

물론 가는 길도 알았다.

산 정상부터 이어지는 소로는 방문객들을 영접하는 양 공손하게 길 안내를 해주었다.

두 사람은 부리나케 길을 재촉했고, 삼절기인은 얌전히 뒤를 쫓았다.

대래봉 정상은 구름을 뚫고 올라가야 모습을 드러낸다.

진정한 구름은 아니다. 산 정상에 짙게 드리운 운무(雲霧)가 구름처럼 보일 뿐이다.

산정에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다섯 명뿐이다.

하지만 이들이 살인 청부를 하러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들은 조금 간격을 벌린 채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삼절기인은 그들이 서 있는 이유를 곧 알아냈다.

일명(一名) 퇴후(退後), 일명(一名) 진입(進入).

이인(二人) 이상(以上) 동행시(同行時) 대표(代表) 일명(一名) 진입(進入).

무인(武人) 해검(解劍) 후(後) 진입(進入).

대기(待機) 중(中) 대화(對話), 시비(是非) 금지(禁止).

불이행시(不履行時) 즉참(卽斬).

삼절기인은 푯말을 보고 피식 실소를 흘려냈다.

‘살수 주제에 무당파 흉내를 내고 있나……’

삼절기인은 고개를 들어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그가 있는 곳에서는 산 정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사람은 오직 한 명만 있었다. 그는 청부를 하러 온 사람인 듯 땅에 납작 엎드려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음성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산 정상과 청부자들이 대기하는 곳의 거리는 참으로 묘해서 눈으로 볼 수는 있는데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이건 좀 이상한데……? 청부자들의 신변이 완전히 노출되고 있어. 대체로 살인 청부를 하는 자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편인데……’

그렇다. 그래서 살수 문파가 살인 청부를 받을 적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비밀리에 받는다. 살인을 실패하고 잡히는 경우에도 청부자가 누군지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청부자의 신변을 노출시키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살수 문파의 흥망이 달려 있다고 봐도 된다.

이곳은 환히 노출되어 있다.

삼절기인은 이들이 정말 살인 청부를 하러 왔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사서 시비를 걸 필요는 없었다. 아직은 알아내야 할 것이 많았다.

무엇인가 한참 중얼거리던 사내가 일어섰다.

산정을 내려오는 그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내가 부리나케 뛰어 올라가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삼절기인은 평평하고 널찍한 바위 위에 검을 풀어놓았다.

도와 창은 지니지 않았다. 그런 모습은 너무 독특해서 누구라도 삼절기인임을 알아볼 수 있다.

‘미친놈들!’

욕이 새어 나왔다.

바위에는 무당파에서나 볼 수 있는 해검지(解劍地)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검을 풀어놓은 삼절기인은 천천히 산정으로 올라갔다.

산정에는 큰 바위가 있고, 바위에는 부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특이한 조각이다. 부처님이 돌아앉은 모습이지 않은가.

바위 아래는 사찰처럼 향단(香壇)이 설치되어 있고, 앞선 자가 피워놓은 듯한 향이 살라지고 있다.

삼절기인은 향 하나를 들어 불씨를 당긴 후 향로에 꽂았다.

향단 밑에는 깔끔하게 다듬어진 청석이 있다.

그곳이 엎드리는 곳이리라.

삼절기인은 부처님께 축원을 드리는 듯한 모습으로 깊이 엎드렸다.

“……”

그는 무슨 말인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주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있어. 있으니까 말을 하고 듣는 거겠지. 어딘가에는 숨어 있는데… 어디 있느냐. 나와라, 나와.’

삼절기인은 엎드린 자세 그대로 천신지청술을 펼쳤다.

개미 기어가는 소리까지 잡아낼 수 있을 만큼 청각이 활짝 열렸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는 은신한 사람이 흘리는 소리 같은 것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삼절기인은 다른 사람들처럼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누구를 청부할까? 생각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들의 명호를 거론한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모욕이다.

“하남 무림에 삼절기인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놈을 죽여주십시오.”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청부자들이 왜 끊임없이 중얼거렸는지 이유를 알았다. 이렇게 대답이 없으니 계속 청부를 한 게다. 산정을 내려올 때 그들의 모습은 밝았다. 청부를 들어주었으니까 안색이 밝아졌겠지.

‘무슨 징조든 보이겠지.’

“하남 무림에 삼절기인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놈을 죽여주십시오.”

삼절기인은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지금쯤 팔부령의 진입로라고 할 수 있는 노가촌(盧家村)에는 천외천 무인들이 모여 있을 게다.

‘빠져나갈 구멍을 주면 안 돼. 일시에 일망타진하는 거야.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그런데 도대체 이놈들이 어디 숨어 있는 거야?’

“하남 무림에 삼절기인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놈을 죽여주십시오.”

그는 많은 것을 알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은거지를 알아내지 못한다.

기회는 단 한 번, 응답이 있는 즉시 응답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제압해야 한다. 그자만이 살문의 은거지를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하남 무림에 삼절기인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놈을 죽여주십시오.”

삼절기인이 똑같은 말을 네 번째 했을 때.

“청부금은?”

웅웅 울리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땅속이야! 이 속에 있어!’

삼절기인은 응답자의 은신처를 알아냈다. 어디에 있는가? 좀 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내야 한다.

“은자 일만 냥입니다.”

“지불 시기와 장소는 우리가 정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절반, 나머지 절반은 일이 성사된 후에 받겠다.”

꽤 긴 소리였는데 이번에도 잡아내지 못했다.

응답하는 소리가 마치 동공(洞空)을 휘휘 저어 나오는 듯하다.

삼절기인은 품에서 조그마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은문(殷門) 전장(錢莊)의 어음입니다. 오천 냥입니다.”

그가 꺼내놓은 것은 어음이 아니다. 전서가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준비해 가지고 다니던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

응답자는 잠시 말을 없었다.

“좋다. 청부를 수락한다.”

‘보지는 못하고 듣기만 하는 것 같은데… 이거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분명히 소리는 들리는데 잡아내지를 못하니.’

“감사합니다.”

삼절기인은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청부를 수락했는데 무슨 볼일이 더 남았겠는가.

그는 청부 수락을 받고도 얼굴을 찌푸린 유일한 사람이었다.

‘청부를 수락했으니 나를 찾아올 터…… 그때 잡는 수밖에.’

개방 문도가 팔부령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하지만 살문의 종적은 잡아내지 못했다.

“너무 넓어요. 이 안에 숨으면 염라사자도 잡아가지 못할 거예요.”

개방 문도가 그렇게 투덜거릴 정도라면 찾기는 틀렸다.

설혹 찾아낸다 해도 찾아낸 자를 감쪽같이 죽여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종리추는 얄미운 곳에 숨었다.

산을 터벅터벅 내려오던 삼절기인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아 신발을 털고 있는 중년인, 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매우 작았다. 몸집도 깡말랐다. 얼굴도 살이 붙은 얼굴은 아니다. 손도, 발도 작고 가늘다. 뼈만 앙상하다는 편이 옳다.

그런데 그가 나무 아래 앉아 있자 거대한 나무 두 그루가 그에게 붙어 있는 느낌이 든다.

‘고수야!’

그도 살인 청부를 하려고 온 것일까?

삼절기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중년인만한 무공을 지닌 사람이 누군가 떠올려 봤지만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제길! 이놈의 날씨는 어떻게 된 게 한여름인데도 가을처럼 추우니. 빨리 이놈의 산을 벗어나든가 해야지.”

‘중원인의 말투가 아니다. 이자는……’

그제야 중년인이 고개를 들어 삼절기인을 흘긋 쳐다봤다.

“삼절기인?”

삼절기인은 긴장했다.

진기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절초 중에 가장 자신 있는 초식을 떠올렸다.

자신이 누군가? 무림삼정 중에 한 명이지 않은가. 세력이 없어 그렇지 세력만 있다면 구파일방 장문인과 같은 위치에 서 있을 게다.

“미련하긴 더럽게 미련한 놈이네. 이놈아, 자신이 자신을 청부하는 놈이 어디 있어! 문주님께서 전하라는 말씀이다. 첫 번째 말씀, 죽고 싶어 청부했으니 죽여주는 게 사람 도리라고. 두 번째 말씀, 살문에 청부를 하면서 종잇조각으로 속였으니 응징해야 마땅하다고. 됐냐?”

“후후후! 그렇잖아도 찾았는데 제 발로 걸어왔군. 살문의 주구, 어디 무공이 입만큼 매서운가 볼까?”

삼절기인은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중년인의 무공은 입만큼이나 매울 것이다.

중년인이 신발을 툭툭 털더니 다시 신었다. 그리고 일어나 걸어왔다.

쉬익! 팡! 파팡! 쒜에엑……!

모진아의 공격은 숨 쉴 틈이 없었다.

그는 한 번도 땅에 내려서지 않았다. 허공에 떠오른 상태 그대로 연속적으로 공격해 왔다.

그가 허공에 머물 수 있는 힘은 모순되게도 삼절기인이 제공해 주었다. 그가 내뻗는 초식, 그가 마주쳐 가는 권장각(拳掌脚) 그 모두가 반탄력이 되어 중년인을 다시 허공으로 띄워주었다.

‘대단한 각법이다. 중원에 이런 각법이 있다니!’

감탄만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중년인의 각법은 파괴력이 엄청났다. 바위고 나무고… 부딪치는 것은 모조리 부숴 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배가되는 듯했다.

‘이런 제길! 속도에서 뒤지고 있어.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삼절기인은 쉴 새 없이 검법을 펼쳐 냈지만 중년인의 옷깃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다.

각법과 검의 싸움은 검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같은 실력을 가진 고수끼리 싸울 경우에는 더욱 우열이 갈라진다.

삼절기인이 제대로 초식을 펼쳐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척 빠른 각법이라는 것도 한 이유지만 처음 보는 무공이라는 것이 더 컸다.

그는 각법만으로 이렇게 화려하고 정교하며 빠른 공격을 펼치는 경우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쒜에엑! 파라랑……!

중년인의 각법은 너무 현란했다.

각법의 고수가 허공에서 같은 발로 같은 초식을 반복하여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세 번 내지 네 번이 고작이다.

중년인은 무려 여섯 번이나 똑같은 공격을 펼쳤다.

삼절기인은 물러섰고, 공격해 오고, 또 물러서고……

중년인의 발길질이 여섯 번째까지 똑같다. 노리는 부위는 안면. 허공에 뜬 상태로 반탄력도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해 왔으니 땅에 떨어질 때가 됐다.

‘가슴이 비었어! 기회!’

삼절기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쉐에엑……!

물러서기만 하던 삼절기인이 검공이 쾌속하게 터져 나갔다. 그를 삼절 중 일절, 검의 달인으로 올려놓은 검공이다. 여름 밤 윙윙거리며 귀찮게 하는 파리를 양단하는 검법이다.

그때, 중년인의 다른 발이 공격하는 발을 둘러 감았다.

빙그르……!

중년인의 신형은 마치 허공에서 쓰러진 허수아비가 일어서는 것처럼 우뚝 일어섰다. 동시에 다른 발을 감쌌던 발이 풀리며 발 바깥쪽으로 삼절기인의 검을 후려 찼다.

터엉……!

삼절기인의 검은 정면으로 가슴을 베어가던 중 옆에서 후려 찬 발길은 검배(劍背)를 정확히 가격했다.

삼절기인은 검을 쥔 손에서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의 불길한 예측대로 검은 손아귀를 찢어내고 멀리 날아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삼절기인은 다시 한 번 싸워보고 싶었다.

다시 기회를 가져 승부를 가린다면… 자신에게 도와 창이 있어 세 가지 병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검으로 공격했다가, 도로 공격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창이 불쑥 공격하고…

그런 공격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승부를 낼 수도 있는데.

그는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퍼억!

중년인의 발길이 안면에 틀어박혔다.

모진아는 얼굴이 함몰된 삼절기인의 시신을 내려보며 큰 숨을 들이켰다.

‘힘든 상대였어.’

짧게 끝난 싸움이다. 하지만 남들이 짧다고 생각하는 시간 동안 모진아는 무려 오십여 차례나 각법을 전개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도와 창도 없는 상태였다.

만약 그에게 자신의 무공을 최대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백중지세(伯仲之勢)를 이뤘을 것이다.

모진아는 삼절기인의 시신을 들고 산 밑으로 쏜살같이 달려 내려갔다.

노가촌, 요주에서 팔부령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마을이다.

모진아는 노가촌이 보이는 곳,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목에 삼절기인의 시신을 내려놓고 종리추가 준 헝겊을 활짝 펼쳐 시신의 앞가슴에 매달았다.

청부(請負)

청부자(請負者) 삼절기인(三絶奇人).

청부 대상자(請負對象者) 삼절기인(三絶奇人).

청부(請負) 완료(完了). 살문(殺門).

살문이 멸문 후 정식으로 무림에 나선 첫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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