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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48화


소고와 소여은은 같이 움직였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두 명의 미녀는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으리라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미녀도 사람이고, 추녀도 사람이건만 너무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가까이 다가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말을 걸기는커녕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못한다.

“밥 먹고 갈까?”

“그래요, 언니.”

두 여인의 꾀꼬리같이 영롱한 음성이 잔잔히 울려 퍼질 때도 사람들은 얼굴만 힐끔거릴 뿐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 객잔에 들어선 두 여인은 얼굴을 가린 면사까지 벗었다.

“아!”

“제길! 지독하군”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소여은은 마음만 먹으면 염기를 풍겨낼 수 있다. 웃고, 찡그리는 간단한 얼굴 표정만으로도 사내의 심금을 뒤흔들 수 있다. 소고는 천성이 딱딱해서 부드러움을 뿜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녀만이 간직한 차가움은 그 자체가 독특한 매력이다.

“소면 줘요.”

“국물 좀 많이 넣어 줘요. 시원하죠?”

“그, 그럼요.”

점소이도 정신이 나간 듯 입을 쩍 벌렸다. 두 여인이 한꺼번에 말을 걸어오니… 고기도 먹어본 자가 맛있게 많이 먹는다. 여인에 관한 경험이 많은 사내는 남달리 용기를 낼 수 있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 수 있다.

유생을 입은 유생이 소여은에게 말을 걸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먼 길을 가시는 분 같은데, 어디까지 가시는 길이오?”

“왜요?”

소여은의 말속에 염기가 묻어났다.

“아니… 소생의 장원이 여기서 멀지 않은데 간단하게나마 모시고 싶군요. 두 분의 미모가 워낙 범상치 않아서.”

“호호호! 밉다는 소리군요?”

“하하하! 그렇게 들리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유생은 소여은이 넙죽넙죽 받아주자 한결 마음이 풀렸는지 자연스럽게 물꼬를 텄다.

“소생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그래요?”

“하나는…”

“책 아니에요?”

“하하하! 맞습니다. 책이죠. 주역이란 책인데, 공자님의 손이 직접 닿은 귀한 책입니다.”

“어멋! 그래요?”

소여은은 호들갑을 떨었다. 볼우물도 예쁘게 패였다. 콧잔등을 찡그릴 때마다 예쁘게 파이는 주름살이 앙증맞았다.

“세상에! 정말 아름답습니다.”

유생은 마음을 감추려들지 않았다.

“두 번째는 뭔데요?”

“검입니다.”

“검… 이요?”

“예, 가보로 내려오는 검인데 적장의 목을 다섯 개나 벤 명검이랍니다.”

“어멋! 무서워.”

유생은 확 껴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소여은의 행동은 그로 하여금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쯤은 용납할 듯한 분위기로 비쳐졌다.

‘빨리 장원으로…’

“세, 세 번째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궁금해요. 뭐예요?”

“하하하!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체엣!”

“하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소저, 오해는 푸시고… 세 번째 보물은 직접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라서… 어떻습니까? 갈 길이 바쁘지 않으시면 저희 장원에서 오늘 밤 유숙하시는 게…”

유생은 들떴다. 그의 경험상 이런 경우 거절하는 여인은 없다. 잘생긴 외모에 번지르르한 말솜씨, 한눈에도 귀해 보이는 비단옷을 걸쳤는데 누가 거절하랴. 유생의 예감은 맞았다.

“좋아요. 대신 마차로 모셔가야 돼요. 알았죠?”

‘마차가 문제겠니…’

유생은 한달음에 객잔을 빠져나갔다.


유생의 장원에 도착한 소고와 소여은은 마중 나온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쌍둥이는 많지만 네 쌍둥이는 귀하다. 네 쌍둥이가 있다 해도 이들처럼 닮기도 힘들 게다. 네 명이 쭉 늘어서 있자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제가 아는 분이 누구죠?”

소여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후후후! 우리 모두 하나인데 굳이 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까? 소저, 안으로 드시지요. 진수성찬을 준비해 놨습니다.”

유생들은 여유가 넘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원은 그들의 낙원이다. 그곳에서만은 그들이 왕이다.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으며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두 명, 그들은 이제 유생들의 허락이 있어야만 장원을 나갈 수 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소고와 소여은은 주위를 한번 둘러본 후 유생들을 따라나섰다. 가타부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유생들은 두 여인을 데리고 연못 한가운데 있는 정자로 갔다. 사방이 삼십여 장은 족히 되는 큰 연못이다. 연못 한가운데는 자그마한 섬이 있고, 섬에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로 오가는 길은 다리다. 튼튼한 돌다리가 정자 좌우로 연결되어 있다. 정자 안에는 술상이 차려져 있다. 편히 드러누울 수 있도록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신 다음 움직일 필요 없이 쓰러져 잠이 들어도 괜찮을 듯하다.

“후후! 넌 이리 와!”

정자로 들어서자 유생들의 말투가 확 바뀌었다.

“어멋!”

소여은이 작은 앙탈을 부리자 유생의 손이 허공으로 번쩍 들렸다.

“때, 때리지 마세요.”

소여은이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후후! 안 때릴 테니까 오늘 말 잘 들어. 알았어?”

“네.”

유생은 소여은의 손목을 거칠게 잡고 자리에 앉혔다. 다른 곳에서도 실랑이가 벌어졌다. 유생 한 명이 소고의 뺨을 후려쳤다.

찰싹!

경쾌한 음향이 터지며 소고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후후! 어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미친년, 어디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그래. 네 동생 못 봤어? 저렇게 말을 잘 들어야지. 또 한 대 맞을래?”

소고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다. 뺨을 맞아 아프다는 표정도, 무섭다는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자, 이제 좀 알아볼까? 너희 같은 계집은 쉽게 볼 수 없는데, 어디서 왔어?”

소여은 옆에 앉은 유생이 물었다. 대답은 소고가 했다.

“지옥”

쒜에엑…!

소고는 손을 뻗어 뺨을 때린 유생의 목을 움켜잡았다.

“뺨을 때린다? 알겠군. 네놈이 제일 먼저 여자를 길들인다는 놈이군. 그런데 겨우 뺨이나 때려서야 되겠어?”

“켁! 켁…!”

“이번 청부는 이상해. 죽이라는 청부면 굉장히 쉬운데 그게 아냐. 어쩌지?”

소고의 음성에 진득한 살기가 배어 나왔다.

“누, 누구!”

소여은의 옆에 앉아 있던 자가 화들짝 놀랐지만… 이번에는 그의 손목이 소여은에게 거칠게 잡혔다.

“앉아. 왜 이렇게 서둘러? 그렇게 빨리 가고 싶어? 그러지 말고 천천히 하자, 응? 이제 좀 알아볼까? 넌 몇 째야?”

“두, 둘째.”

유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아아악…!”


정자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자는 한 폭의 지옥도를 연출했다. 유생 네 명이 사지가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렸다. 정자로 들어서는 다리에는 험한 인상을 한 장정들이 손에 몽둥이를 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두 여인의 살벌한 기세를 보고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유생들이 자신들의 왕국이라고 생각했던 건 고작 이런 것이었다.

쫘아악…!

채찍이 허공을 날았다. 발가벗은 유생의 상체에 붉은 핏자국이 얼룩졌다.

소고가 물었다.

“기억 안 나?”

“뭐, 뭘 말입니까? 소저, 아니 여왕님! 제발 말씀 좀 해주십시오. 뭘 기억하란 건지…”

쫘아악…!

채찍도 강도가 높아갔다. 한번 찬 바람을 일으키며 허공을 가를 때마다 피와 살점들이 묻어났다. 유생 네 명은 점차 혈인이 되어갔다.

“기억 안 나?”

소고는 똑같은 물음을 던졌다.

“나, 납니다. 나요.”

“뭐가 기억나는데?”

“기, 길음골… 아낙…”

“그래? 그 여자 어떻게 됐어?”

“벼, 벼, 병… 신…”

“그게 청부야. 너희를 병신으로 만들어달래.”

“제, 제발!”

사정은 너무 늦었다. 유생 네 명은 자신들이 길음골 아낙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체벌을 받았다. 유두가 잘리고, 얼굴이 검상으로 뒤덮이고, 손가락이 부러지고, 음부 대신 음낭이 잘려 나갔다. 유생들은 철저하게 병신이 되었다.


악의 본거지. 그러나 대가댁 세도에 눌려 싫은 소리 한마디 던질 수 없었던 옥화장에 불길이 치솟았다. 산 자는 한 명도 없다. 옥화장에 기숙하던 험상궂은 장정들도 한 사람 요행 없이 모두 도륙당했다. 그들의 시신은 확인할 길도 없다. 활활 불타는 옥화장에 파묻힌 시신들은 불길에 사르는 좋은 재목에 지나지 않았다.

산 자가 없는 건 아니다. 유생 네 명. 오직 그들만 살았다. 그들의 육신은 발가벗겨진 채 커다란 기둥에 매달려 있었다. 사지가 잘렸고, 음낭까지 잘려 사내 구실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얼굴은 검상이 가득해 알아볼 수 있는 곳이라고는 두 눈동자밖에 없다.

끔찍한 몰골이다. 그러나 그들을 보는 사람들은 끔찍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평소에도 원한이 깊은 자들이다. 인근에 얼굴이 반반한 여자들은 내버려 두지 않았고, 항의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센 장정들이 달려들어 몸매를 가했다. 그의 뒤에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 항주 자사가 유생들의 부친이다.

“퉤엣! 그놈의 자식들,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런데 저건 뭐지? 뭐라고 쓴 거야? 까막눈이라서…”

“이 자식들 죄상을 쓴 거야. 가만있자… 이건 길음골 이야기잖아? 이 미친 자식들! 어쩐지 한동안 보이지 않더라 했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그러고도 사람이야?”

누군가 돌을 집어 던졌다. 웬만해서는 흉측하게 변한 몰골을 봐서라도 눈감아줄 만한데 사람들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한 사람, 두 사람 돌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유생들이 살려달라고 악을 질러댔지만 듣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모두 돌팔매질을 멈춰요!”

“왜! 너도 이놈들과 한편이야!”

“이 사람들, 정말 까막눈이군. 여기 쓰여 있잖아. 죽이지 말라고. 평생 이 몰골로 살아가게 하라고.”

“응? 정말 그렇게 쓰여 있어?”

“사람들하고는…”

사람들은 돌 대신 침을 뱉어댔다. 어떤 사람은 바지춤을 끌어내리고 오줌을 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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