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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195화 완결


“죽일 놈들아! 어르신이 왔다!”

거한의 고함 소리에 주루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움찔거렸다.

여산일호는 고함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하자 더욱 기가 살았다.

“야! 술부터 가져와! 독째로 내와! 독째로! 안주는 오리 통구이다! 빨리 안 가져오면 이놈의 주루, 모두 때려 부숴 버릴 테니까 그리 알아!”

그러다 문득 자신의 고함 소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그들은 주루 곳곳에 앉아 있다.

다정하게 창가에 앉아 검남춘을 마시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 자작하는 노인도 있다.

한두 명이 아니다. 무려 십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여산의 호랑이라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

‘어! 이놈들 봐라?’

여산일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누가 감히 자신 앞에서 이렇게 태연히 술을 마실 수 있었는가.

여산일호는 제일 가까이에 있는 젊은 놈들에게 다가서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그가 막 움직이려는 찰나 청년의 고개가 들렸다.

‘고, 고수!’

여산일호는 발에 못이라도 박힌 듯 꼼짝하지 못했다.

청년의 눈길은 여산 녹림마왕이라는 여산일호마저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청년 앞에 앉아 있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술 마시러 왔으면 조용히 마시는 것이 좋을 걸세.”

“에, 에.”

여산일호는 주루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중년인의 명을 거역하고 주루를 나섰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중년인이 손짓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앉는 것도 마음대로 앉지 못하게 자리까지 지정해 준 것이다. 안면이 익은 주루 주인이 절룩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와 오리구이와 술을 내놓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절름발이라고 몇 마디 놀려주기라도 했을 터인데 오늘은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여산일호는 단숨에 마셔도 모자랄 양의 술을 홀짝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여산일호가 일어설까 말까를 몇 번이나 생각하며 맞선 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삐이걱!

주루 문이 열리며 기괴한 일행이 들어섰다.

이들은 정말 기괴하다.

제일 처음 눈길이 가는 사람은 남여를 탄 사내다.

남여를 타고 주루 안에까지 들어서다니, 보통 거만한 자가 아니다. 그런 면에 비하면 입고 있는 옷은 형편없다. 주위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내보다 못 입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사내는 주루에 들어선 다음에도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남여를 메고 온 사람들이 사내를 안아 일으켜 의자에까지 앉혔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남여를 타고 온 사내는 호위 무사인 듯 남여 옆에 따라온 사내에게 존댓말을 했다.

“국수가 어떻겠습니까?”

“괜찮지.”

사내의 말이 끝나자 남여를 타고 온 사내가 주문을 했다.

“여기 국수 좀 말아주시오.”

정말 기괴한 일행이다.

‘세상에 별 미친놈들 다 보겠네. 이게 뭐 하는 짓거리들이야?’

여산일호는 모두가 비정상으로 보였다.

남여를 타고 온 사내도, 남여 옆을 따라온 사내도.

그러다 그는 또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주루에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이 느낌은. 그렇다! 고수들끼리 싸움을 벌이려고 한다.

여산일호는 단번에 사태를 읽었다.

주루에 모인 사람들은 남여를 타고 온 사람들과는 적 관계에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곳에서 두 명을 제거할 속셈이고, 남여를 타고 온 사내는 걸려들었다.

‘제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거 아냐?’

여산일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일촉즉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싸움은 터지지 않고 긴장만 더해갔다.

‘아! 차라리 술에라도 취했으면.’

여산일호는 미치기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도저히 더 이상은 앉아 있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무공을 전혀 모른다면 모를까 그래도 조금은 수련한 덕에 싸움의 전조 증상을 읽었지만. 그게 더 큰 불행이다.

다행스럽게도 남여를 타고 온 사내가 여산일호를 구해주었다.

“주공, 이제 가시지요.”

“그러지. 아직 준비가 안 됐으면 다음에 만나도 좋아.”

“하하! 구신단을 제련하다니. 아닙니다. 지금 만나겠습니다. 죽더라도 여매에게 죽는 건 즐거움이죠. 여매를 더 이상 고생시킬 수 없습니다.”

남여를 메고 온 자들이 중년인을 안아 일으켰다.

중년인은 사지를 쓰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보니 국수를 먹을 때도 떠먹여 준 것 같다. 자세히 볼 틈도 없었지만.

요기를 마친 기괴한 일행은 유유히 떠나갔다.

여산일호는 그들이 떠난 다음에도 일어서지 못했다. 주루 분위기가 더욱 이상해졌다.

모두들 침통한 표정에서 깨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자신을 무서운 눈길로 노려보던 청년은 분한 듯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기도 했다.

“허허, 이제는 기습조차 허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진정 사무령이 되었단 말인가.”

혼자 자음자작하던 노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방금 전에 국수를 먹은 사람이. 바로 그 오채산의 살문주 종리추였단 말인가!

또 한 사람 놀란 사람이 있다.

종리추와 구류검수가 들어서기 전에 그들을 알아보고 몸을 숨긴 사람.

‘사무령. 꿈으로만 알았던 사무령. 종리추! 하하! 해냈구나. 사무령이 되었어. 천령이 공격하지 못할 정도면. 해내도 크게 해냈어. 하하하!’

주루 주인이 괜히 주산을 만지작거렸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에게 강간을 당한 앵앵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진주언가의 문도들이 뒤를 쫓지 않은 것도 앵앵 본인에게 직접 복수를 하라는 뜻에서였다는 것도 흘러온 소문을 듣고서야 알았다.

자신은 일개 시녀에 불과했던 앵앵에게조차 쫓기고 있다.

진주언가주의 일격이 다리뼈를 산산조각 냈다. 곤륜파의 무공이 신법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앵앵이 자신을 찾아낸다 해도 단번에 때려 눕힐 자신이 있지만.

‘종리추, 네놈과 같이 있어야 했어. 그랬다면. 적사 대신 소여은을 차지했을 수도.’

야이간의 나른한 환상은 등 뒤에서 들린 취객의 고함 소리에 깨어졌다.

“뭐 해? 손님들 갔잖아. 빨리 접시 가져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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