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3화
청면살수는 단정히 앉아 접선을 살랑살랑 부쳤다. 검정 연을 두른 청색 난삼을 입었고, 머리에는 유건까지 써 영락없는 유생이었다.
청면살수. 울던 아이도 청면살수라는 말을 들으면 울음을 그친다는 두려운 존재다. 예순 번에 이르는 살행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죽음의 사자다. 소리 없이 나타났다가 시체 한 구를 남겨놓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청면살수. 그는 오십에 가까운 중년인이었다.
다섯 사내가 들어와 그의 좌우로 앉았다.
“어떻던가?”
청면살수의 음성은 늘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나직하면서도 부드럽게 사근거리는 음성이다.
제일 왼쪽에 앉은 사내가 말했다.
“가장 살기가 강한 아이는 적사라는 아이입니다. 적사는 이미 다른 아이들을 제압했습니다.”
“오호! 벌써?”
“적사의 살기는 소제도 놀랄 만큼 강합니다.”
“흐음…!”
청면살수 제일 왼쪽에 앉은 사내는 몸집이 좋고 혈색이 붉은 사십대 장한이었다. 인상도 좋아서 누가 보더라도 호감을 느낄 만한 용모를 지녔다. 장한은 습관처럼 말을 이었다.
“상수 태생으로 금년 열두 살. 어미가 창기인지라 아비는 알 수 없습니다. 어미가 간살 당한 원한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원한을 갚아줬는가?”
“스스로 갚았습니다. 취객 다섯 명이 간살했는데 돈깨나 있는 집 한량들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창기이고 보니 관아에서도 좋게 해결하려고 했던 모양인데… 그 조그만 놈이 모두 찾아다니며 낫으로 난자했습니다. 죽지 않을 만큼만.”
“낫? 죽이지 않았다고?”
“왜 칼을 쓰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물었더니?”
청면살수가 눈빛을 반짝였다. 호기심을 나타낼 때 드러나는 버릇이다.
“낫을 써야 고통이 오래간다고 하더군요. 죽이지 않은 이유가 더 가관입니다. 죽으면 고통이 끝나지만 죽지 않고 병신으로 살면 고통이 오래간다고…”
“음! 살기가 너무 짙군.”
“…”
인상이 좋은 사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 삼제는 어느 쪽인가?”
청면살수가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며 물었다. 오른쪽 사내는 원숭이 관상이었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하관이 매우 좁았으며, 팔과 다리가 유난히 길고 가늘었다.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기형적인 신체 골격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 갈색으로 퇴색된 듯한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오금을 저릴 것이다. 잿빛이라고 할 수도 있고 회색 빛이라고도 할 수 있는 눈빛. 특별히 안광을 쏘아 내거나 부릅뜬 눈도 아니지만 쳐다보고 있으면 죽음이 스멀스멀 기어드는 듯한 눈빛. 원숭이 상을 한 사내의 눈빛은 살기에 젖어 있었다.
“야이간을 택하겠습니다. 놈은 보통 간특한 게 아니라서 쉽게 죽을 놈이 아닙니다. 명줄이 질기다는 것, 그것처럼 좋은 건 없겠죠.”
음성마저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는 바로 철문을 열고 아이들을 뇌옥에 가둔 장한이었다.
청면살수는 앞에 놓인 책자를 열어 제일 첫 장을 펼쳤다.
성명 미상. 작호 야이간. 나이 십일세. 고아. 대고산 상암 암주 현무 대사가 주워 길렀음. 아홉 살, 나무를 해 오라는 말에 불만을 가지고 상암을 불태워 현무대사를 분사시킴. 열 살, 가출한 아이들을 모아 대노방을 조직. 표면상 드러난 살행은 한 건이나 실종된 네 명의 여인들도 간살당했을 것으로 추정됨.
책자에는 야이간에 대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후후후! 자네들은… 참 엉뚱한 선택을 하는군. 이제와 삼제는 서로 상대를 바꿨어. 우리 중 가장 책략이 깊은 이제는 살기가 짙은 아이를 골랐고, 가장 살기가 짙은 삼제는 간특한 아이를 고르고, 자네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서로를 질시하고 부러워했군.”
“하하! 대형께 속마음을 들켰습니다.”
이제라 불린 중년인이 쓰게 웃었다.
“그것도 좋겠지. 서로 알맞게 중화될 거야. 하지만… 시간이 없네. 여유가 있다면 자네들 바람을 들어주고 싶지만 자네들 특성을 살리도록 하게. 그게 도주하는 데도 용이하고 수련시키기도 좋아.”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죠.”
이제와 삼제는 선선히 대답했다.
“사제는 어떤가?”
청면살수가 왼쪽에서 두 번째 앉아 있는 중년인에게 물었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고 맑았으며, 입가에 잔웃음이 매달려 있다. 피부는 깨끗하고 윤택했으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에도 기품이 배어 나왔다. 나이가 들어 이미 중년을 넘기고 있지만 웃음 하나로 뭇 여인들을 상심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사내였다.
“제게 맞는 아이는 하나뿐이죠.”
“하하! 계집인데 괜찮겠나?”
“계집이 사내보다 나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사실 소제가 계집으로 태어났으면 우리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사제!”
원숭이 사내가 고함을 지르며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하하! 맞는 말인데 뭘 그러나. 사제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중원무인들이 모두 요절났을 걸세.”
“미인계 따위는 가르치지 않겠습니다.”
“열 살이던가?”
“네.”
“어린 계집이 관 대인 성기를 물어뜯고 눈알을 파냈어. 아주 독해. 잘 가르치게.”
사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군. 어떤가? 가능성이 있겠나?”
청면살수의 물음이 있었는데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앉은 사내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은, 청면살수를 비롯해 이제, 삼제, 사제는 모두 막내의 웃음을 해석할 수 없었다. 막내는 청면살수와 같이 유삼을 즐겨 입었다. 색깔만 청색이 아닌 백색일 뿐. 사실 그는 살행을 하지 않을 적에는 정말 유생이기도 했다. 동서고금의 학문을 두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서체도 뛰어나서 ‘송영의 글씨’하면 하남성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계획에 없던 마지막 아이를 데리고 왔다. 용모가 반듯한 것도, 성품이 독한 것도, 살인을 해본 적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아이를.
다른 아이들은 모두 왼쪽에서 세 번째 앉아 있는 사내, 공지장이 데려왔다. 공지장은 성품이 여려 살인을 하기 전에는 낯빛이 변하는 단점이 있다. 그는 뛰어난 살수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다른 사람이 따라들 수 없는 장점이 있으니, 사람을 보는 눈이다. 그가 세 아이를 찾아냈다. 오 년이 넘게 하남성을 뒤진 끝이었다. 한 명 더 찾아냈으면 좋으련만 그가 본 아이들 중에 살수로 적합한 아이는 세 명뿐이었다.
살수는 독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잔인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완력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살수는 천성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살인을 하는 순간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기회가 생기면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과감함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죽음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거나, 아니면 전혀 몰라야 한다.
“오제, 모두 궁금해하고 있네. 자네가 데려온 아이… 우형이 보기에는…”
“나이는 열 살입니다.”
모두 귀를 기울였다.
“고아죠.”
“고아? 유복한 집에서 자란 아이 같더만.”
이제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지장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사람을 살피고 허점을 찾으며 한평생을 살아왔다. 그런 사람들 눈이 틀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도 이제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이름은 종리추.”
“종리라… 흔하지 않은 복성이군, 실명인가?”
청면살수가 물었다. 청면살수 역시 종리추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본명입니다.”
“계속해 보게.”
“종리추에게는 세 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점소이로 일하고 있었죠. 그 형이 맞아 죽었습니다. 취객에게 술을 엎지른 것이 실수였죠.”
모두들 무표정했다. 열세 살 어린아이라면 한 대만 잘못 때려도 죽을 수 있다. 특히 점소이처럼 잡인을 상대하는 직업이라면 그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맞아 죽었다고 해서 특별히 신경 쓸 만한 일은 못됐다.
“종리추가 형의 원수를 찾아 복수했죠.”
“…”
“그것… 뿐인가?”
모두들 서로를 마주 보며 의아해했다.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형의 복수를 한 것은 가상했지만, 그 정도로는 살수로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은지 판별할 수 없다.
“죽은 자가 살천문 황정입니다.”
“뭣!”
“뭐, 뭐라고!”
이번에는 한결같이 놀랐다. 공지장은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화, 황정이… 저, 저 어린아이에게 죽었단 말입니까?”
공지장의 음성은 가늘게 떨려 나왔다.
“…”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어느 누구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오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놈은 정말 무서운 놈이야. 살려달라고 애원하더군. 훌쩍거리면서.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면서. 오제의 얼굴만 아니었다면… 검을 뽑았을 때 죽였을 거야.”
원숭이 상을 가진 삼제가 기가 막힌 듯 중얼거렸다.
“황정이 죽었다는 소문은 들었네. 하하! 저런 꼬마에게 죽다니. 살천문 체면이 말이 아니겠군.”
청면살수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살천문은 살혼부와 함께 하남성에서 악명이 높은 살수 집단이었다. 살천문에서 황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은 편이었다. 극히 낮은 게 아니라 살천문에 기생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옳은 말이었다. 황정은 살수도 아니고, 살천문에 적을 두지도 않았고, 단지 조그만 정보를 물어다 주고 행채나 얻어 쓰는 파락호에 불과했다. 살천문이나 살혼부나 신경 쓸 위인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열 살배기 어린아이가 죽이기에는 너무 큰 상대였다. 신경 쓸 필요도 없을 만큼 하찮다고는 하지만 무공을 배웠다는 자체만으로도 어린아이에게는 거목이었다.
청면살수가 계속 물었다.
“어떻게 죽였는지 아나?”
“예. 황정이 잘 다니는 골목에 인분을 뿌려 놓았습니다.”
“인분?”
“예. 사람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만 남겨 놓고 인분을 넓게 뿌려 놨죠.”
“호오!”
“황정이 벽에 등을 대고 인분을 피해갈 때, 미리 뚫어 놓은 구멍으로 칼을 찔러 넣었습니다.”
“칼로… 죽였단 말인가?”
“예. 정확히 척추를 뚫었습니다.”
‘타고난 살수!’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소년은 자신을 완벽히 감출 만큼 교활함도 지녔다. 뇌옥에 있는 적사, 야이간, 늘 맨발로 다녀 적각녀라는 작호로 불리는 소녀까지 감쪽같이 속이지 않았는가. 말해 무엇하랴. 전신에서 죽음의 냄새를 피워 올리는 이제마저도 속고 말았는데.
청면살수가 품에서 비급 한 권을 꺼냈다.
“이건… 오제에게 주겠네. 이의가 있으면 섭섭해하지 말고 지금 말하게.”
“오제에게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상 좋은 이가 힘없이 말했다.
“오제, 대단한 놈을 거뒀군. 하지만… 단단히 주의시키게. 적사를 만나면 무조건 피하라고. 나 또한 다음에 또 속일 수 있는지 지켜보지.”
미장부 사제도 포기했다.
“우형의 미천한 무공을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오제, 잘 키워보게.”
청면살수는 손에 쥔 비급을 미련 없이 오제에게 던져주었다.
미천한 무공. 청면살수가 던져 준 무공은 절대 미천한 무공이 아니었다. 살인이라면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네 사람을 굴복시킨 정종무공이었다.
무형필살 삼십육초천풍선법.
청면살수가 들고 있는 접선으로 펼치는 무형필살 삼십육초천풍선법은 숨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그것은 인간이 펼치는 무공이 아니라 신의 춤이었다. 청면살수가 살수의 길을 걷지 않고 협행을 했다면 무림 거목이 되기에 충분한 무공이었다. 그것이 막내 오제에게 건네졌다.
“자! 이제 훌훌 털어 버리고 술이나 한잔하세. 힘든 길을 가야 할 테니.”
청면살수가 일어섰다. 술자리는 떠들썩하게 이어졌다.
“하하! 대형, 신세춘이란 놈 기억납니까?”
“신세춘? 아! 응두도를 기가 막히게 잘 썼지.”
“그놈이 죽으면서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뭐라고 말을 했나? 즉사한 걸로 기억하는데?”
“형님도 참… 말은 하고 죽었죠. 윽! 하고 말입니다.”
“뭐야? 하하하!”
“하하하!”
즐거운 한담과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독주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딱 한 사람, 공지장만은 술을 먹지 않았다. 그는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술이 필요하면 술을 가져왔고, 안주가 부족하면 안주를 날라 왔다. 그러면서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즐겁게 한담을 들었다.
꼬끼오! 꼬끼오…!
멀리서 힘차게 우짖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약속한 듯이 한담을 멈췄다.
“자네들과 같이한 시간… 즐거웠네.”
청면살수가 힘들게 말을 꺼냈다.
“대형!”
“모두 아는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하세. 자네들이 있어 한평생 호기롭게 살았네.”
“…”
“이제 그만들 떠나게.”
“…”
죽음만을 떠올리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배어 나왔다. 아마도 난생처음 흘리는 눈물이고, 마지막으로 흘리는 눈물일 게다.
“대형, 안녕히 가십시오.”
이제가 일어나서 재배를 올렸다. 다른 사람들도 감염된 듯 같은 행동을 했다. 공지장만이 청면살수 옆에 앉아 묵묵히 지켜보았다.
“육제, 대형을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시고…”
공지장은 이제에게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소제들은 이만…”
“가게. 갈 길이 험하니.”
네 사내는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더 이상 같이 있기 괴롭다는 듯이.
“잊지 말게. 이 우형을 바로 따라오면… 용서하지 않겠네.”
청면살수가 그들 등 뒤에 대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잘들 하실 겁니다.”
공지장도 떠나는 사람들을 한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