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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4화


꾸릉!

철문이 묵중한 울림을 토해내며 열렸다.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이들을 철문 안으로 밀어 넣었던 삼제였다. 그 뒤를 따라 이제, 사제, 오제가 차분하게 들어섰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생각한 대로 밀폐된 공간에서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고 있었는데도 아이들의 눈빛은 날카롭게 살아 빛났다.

적사의 눈빛은 삼제를 닮았다. 처음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었으나 지금은 눈을 부릅뜨지 않아도 살기가 우러나오는 회색 눈빛으로 변하고 있다. 확실히 대형의 의견대로 삼제와 적사는 닮은 점이 많다. 야이간은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렸다. 철문이 열리고 어른들이 들어서는 것으로 보아서 여느 때와 같이 어린아이 하나만 불쑥 밀어 넣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왔을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런 기대감과 추측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야이간의 눈동자에 스며 있었다.

이제는 야이간의 보기 싫은 습성을 말끔히 뜯어고칠 게다. 야이간이 세상에 다시 나왔을 때는 머리 속에 수만 가지 생각을 굴리고 있어도 얼굴이 온화하며, 음성은 편안하고, 눈동자는 맑은 빛을 띤 채 상대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을 게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적각녀의 눈빛은 역시 나른했다. 살기를 칙칙 뿜어내는 사내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는데도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권태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건 가식으로 꾸민 게 아냐. 우러나오고 있어. 조그만 계집이… 피가 뜨거운 요녀인가? 저 눈빛은 사내를 조롱하는, 때로는 뇌쇄시키는 눈빛이 될 수 있어.”

사제가 보기에 소녀는 수안이었다. 수안이란 졸린 듯 가물가물하는 눈으로 정신이 혼탁하다고 보며, 단명하거나 빈곤해진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적각녀는 빈궁한 관상이다. 사제는 적각녀의 어미에 주목했다. 눈 끝 부위가 밝고 희면서 광윤하다. 검은 눈동자는 칠흑같이 검고 흰자위는 구슬처럼 맑다. 눈빛에서는 사람을 누르는 압인지기가 뿜어져 나온다.

“평범하게 자라 가정을 일궜으면 천하에 다시 없을 현모양처다. 재물을 아끼고 남편을 공경하고… 하지만 풍우에 시달린다면… 창기, 요부… 네 운명으로 봐서는 차라리 살수가 되는 게 낫겠군.”

원앙안이 수안으로 변한 것은 적각녀의 마음속에 이미 세상에 대한 회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사제는 적각녀에게 웃음을 보냈다. 적각녀도 운명을 직감했는지 사제에게 옅은 웃음을 흘렸다.

오제가 데려온 종리추는 벽을 보고 누워 다리를 잔뜩 웅크린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라면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한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모를 정도라면 신경이 어지간히 둔해야 한다. 종리추는 언뜻 보기에는 부모에게 잔뜩 야단맞고 풀이 죽어서 잠이 든 어린아이 같았다.

“무서운 놈… 꼬마이니 심계라고는 할 수 없고… 적응력이 무척 빨라. 백색에 섞어 놓으면 백색이 되고 적색에 섞어 놓으면 적색이 될 놈이야. 본 마음… 흑색을 감쪽같이 숨긴 채. 죽이지 않을 자와 죽일 자로 구분한다면 죽일 자에 포함되겠지. 그것도 가장 윗머리에. 적이라면 반드시 죽여야 돼. 어린 애가 벌써 이 정도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답답했다. 칼로 손목을 그으며 충성을 맹세해도 믿지 못할 자가 있다면 바로 종리추였다. 어린아이의 심성은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종리추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종리추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 그것을 알지 못하는 한 답답함을 영원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깨워라.”

삼제가 예의 살을 저미는 듯한 살기를 품고 말했다.

“야이간이 움직이겠지.”

사인의 예측대로 야이간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움직였다.

“야! 일어나! 얌마! 일어나라니까!”

종리추는 발길질을 당하고서야 굼벵이처럼 움직여 몸을 일으켰다. 두 눈은 얼마나 울었던지 퉁퉁 부어 올랐고, 얼굴은 잔뜩 겁먹은 표정이 역력했다.

“허! 이것 참…! 말을 듣지 못했다면 영락없이 속을 뻔했네. 이런 꼬마가 그렇게 치밀한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면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걸.”

종리추의 모습은 사정을 알고 있는 오제마저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삼제가 행낭을 내려놓고 안에 든 물건을 하나씩 꺼내 늘어놓았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전낭이다. 삼제가 전낭을 풀자 새끼손가락 중간 마디만한 구슬 백여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고 동그랗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지만 어린애가 가지고 놀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슬이었다. 쇠로 만들었기에.

두 번째로 나온 것은 권추 두 개였다. 주먹에 끼는 놋쇠지만 어느 권추와는 다른 점이 관절 부분에 날카로운 침이 박혀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장난감처럼 앙증맞은 은장도였다. 사람을 상해한다거나 위급 지경에 처했을 때 목숨을 끊기에는 부족한, 어린애들 노리개로 주면 딱 알맞을 만큼 예쁘고 화려했다.

삼제가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매미 날개처럼 얇고 투명한 투수였다. 투수라고는 하지만 추위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고, 치장하기 좋아하는 여인이 사용하기에도 어설퍼 보였다.

“호신지병이다. 하나씩 골라라.”

삼제가 말을 끝냈어요 소년 소녀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귀신같이 숨죽이고 앉아 있는 소년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

“이미 기선을 제압했다더니…”

“적사, 골라라.”

삼제에게 직접 지명을 당한 후에야 적사가 천천히 움직였다.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하는 행동은 싸움터에서 잔뼈가 굵은 파락호에 버금갈 만큼 여유가 있었다. 적사는 물건이 놓인 곳에 와서 쓱 훑어 본 다음 생각할 것도 없는 듯 권추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손에 끼기에는 너무 큰데…”

적사가 권추를 손에 끼워보며 중얼거렸다.

“소용없겠어. 모양은 좋은데 손에 맞지 않아. 풋! 이런 게 호신지병? 그래도 다른 것 보다는 낫군.”

적사는 권추를 손에 끼지 않고 손바닥에 닿는 부분을 움켜잡고 휘둘러 보았다.

“적사, 물러나라.”

순간 적사의 눈빛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며 삼제를 노려보았다. 마치 누가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느냐는 듯이. 하지만 적사는 길게 노려보지 못했다. 자신 보다 훨씬 강한, 금방이라도 사지를 찢어버릴 듯한 눈빛을 대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 버렸다.

“앞으로…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라. 넌… 시키는 일만 하는 개가 되어야 한다. 말 잘 듣는 개. 짖으라면 짖고, 먹으라면 먹고, 입 다물라면 꼬리를 말고 쭈그려 앉는 개. 난 말 잘 듣는 개만 키운다.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명심해라.”

“…”

삼제는 벌써 교육을 시작했다. 겉만 날카로운 인간이 아니라 전신 구석구석이 모두 살기로 뭉친 인간 병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적사의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그는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후후! 마음속으로 이를 갈고 있군. 나중에 보자 하고. 삼제… 자칫하면 새끼에게 물려 죽겠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새끼에게 물려 죽을 삼제가 아니다. 삼제의 몸통은 온통 긴장과 살기로 뭉쳐 있다. 잠을 자다가도 살기가 근접하면 눈을 번쩍 뜨는 사람이 삼제다. 삼제를 암살하려면 살기를 철저히 죽이고 근접해야 한다. 세 사내는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만 보았다. 대형 청면살수.

적각녀는 생각대로 은장도를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여자의 눈에는 앙증맞고 귀여운 은장도가 제일 눈에 띄었을 게다. 야이간은 쇠구슬이 가득 든 전낭을 집어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만지작거렸다.

‘이걸 어떻게 사용하나? 호신지병이라 했고 쇠구슬이니 던지는 것은 확실한데 요 조그만 것을 던져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야이간의 생각은 말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종리추는 꿈지럭거렸다. 수투를 집으러 올 때도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살폈고, 집을 때도 집어도 괜찮냐는 눈길을 보낸 다음에야 집어 들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간 다음에도 살펴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처분만 기다렸다.

삼제가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간단한 호신술을 전수해 주겠다. 기간은 오늘 하루. 하루 동안 얼마나 배우냐에 따라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고 먼 길을 떠날 수도 있다. 한눈팔지 마라. 적사! 따라와!”

말을 마친 삼제는 적사가 일어서는 것도 보지 않고 등을 돌려 뇌옥을 나갔다. 적사는 여유를 부리지 못했다. 삼제의 눈길에서 오늘 하루 동안 호신술을 배우지 못하면 정말 죽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적사는 삼제가 문턱을 넘어가기도 전에 뒤를 바짝 쫓았다.

“야이간, 너는 날 따라와라.”

이제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야이간은 편안하지 못했다. 그 역시 삼제의 음성에서 자신이 절대절명의 상황에 처했다는 위급을 느꼈기 때문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어나 뒤를 쫓았다.

적각녀도 나른하지 못했다. 적사가 일어나 삼제의 뒤를 쫓을 적에 그녀는 이미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신경이 얼마나 예민한지 모자. 날 따라오너라.”

사제가 방긋 웃었다.

“네가 들고 있는 게 뭔지 아느냐?”

오제의 차분한 음성에도 종리추는 겁을 집어먹고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게는 숨길 게 없다. 난 네가… 왜 순순히 날 따라왔는지 알고 있다. 살천문의 복수가 두려웠던 게지. 황정을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조만간 찾아낼 테니까.”

종리추의 눈빛에 기이한 빛이 흘렀다. 표출됐다 싶은 순간 사라져 버린 눈빛. 오제는 흔들리는 눈빛을 잡아냈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군. 날 죽이고 도주할 것인가, 좀 더 기다려 볼 것인가… 고민하고 있어.’

오제는 결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종리추는 겁먹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기이한 눈빛도 일렁이지 않았다. 조금 더 사태를 살펴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날 왜 따라왔느냐?”

“…”

“내가 말해 볼까?”

“…”

“선비인 줄 알았겠지. 옷 입은 모양새를 보니 찢어지게 가난한 것 같지는 않고, 집안에 한 사오 년 파묻혀 있으면 살천문의 추적도 끊길 테고. 아니냐?”

종리추의 눈빛에 다시 기이한 빛이 일렁거렸다.

‘흔들리고 있어.’

오제는 쐐기를 박기로 했다. 지금은 촌각이라도 아껴야 할 때다. 이곳을 나서는 순간부터 처절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살기 위한 싸움. 죽음의 올가미는 잔인하고 철저하게 조여올 게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신 하나만 보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군다나 어린아이라는 혹까지 달고서는 빠져나갈 공산이 일푼도 되지 않는다. 시간은 하루밖에 없다. 그 하루 동안 종리추는 스스로 살아남을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오제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했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니, 종리추가 최선을 다하도록 사태의 절박함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잘못 생각한 게 있어. 살천문은 원수를 포기하지 않아.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넌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해. 살천문을 없애든가 네가 죽든가.”

종리추의 미간에 주름살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이것 역시 눈빛만큼이나 순간적이었다.

‘본능 하나만은 탁월하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살수로서 큰 장점도 되지만 약점도 될 수 있는 성품이었다.

“어르신은 살천문을 없앨 수 있습니까?”

종리추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또박또박 끊어지는 말투였다.

‘더 이상 숨길 게 없다는 건가? 결단이 빠르군.’

“하하! 내게도 그만한 능력은 없어.”

종리추의 눈가에 실망이 스쳐 갔다.

“더욱 큰 문제는 네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졌다는 거야. 날 따라오는 순간부터 함정에 빠진 게지.”

“…?”

“살천문 정도는 하루아침에 멸문시킬 수 있다는 거대한 힘이 널 죽일 거다. 날 죽이는 데 있어 넌 덤이야. 네가 나와 같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반드시 널 죽일 거야.”

종리추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해할 수 없겠지. 이해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어.’

“지금부터 넌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해라. 살아야 한다는 것. 알아들었니?”

종리추의 눈에서 맑은 청광이 쏘아져 나왔다. 그것은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였다.

‘불쌍한 것…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더 편할지도.’

오제는 십망을 떠올리자 마음이 급해졌다. 매미 날개같이 얇은 수투는 고사리 같은 손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른이나 껴야 할 정도로 큰 수투였지만, 손에 끼고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자 이리 접히고 저리 접히더니 종리추의 손에 꼭 맞는 수투로 변했다. 두께가 너무 얇아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손에 끼기는 꼈는데 손가락을 비벼보면 맨살이 느껴졌다.

“무림에 정황이라는 장인이 있었다. 무공은 변변치 못했지만 그가 만든 병기는 하나같이 명품이지. 그가 만든 검은 사람을 베어도 피가 묻지 않았어.”

종리추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수투를 만지작거릴 뿐 오제의 말을 듣고 있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나 종리는 듣고 있었다. 들어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듣고 있었다. 꼬마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삶에 대한 본능이 치열하다. 그의 본능은 상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어도 앞에 앉은 유생조차도 어쩔 수 없는 힘에 옥죄어 온다는 것을 감지했고, 살기 위해서는 유생의 말을 최대한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고 경종을 울린다.

‘살아남는다면 가장 뛰어난 살수가 될 거야. 대형을 능가하는. 살아남는다면…’

오제는 말을 이었다.

“정횡이 말년에 태산에서 눈처럼 흰 설강석을 얻었는데, 세상에 존재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은 돌이었지. 정횡은 곧바로 은거지로 돌아와 설강석 제련에 들어갔어. 설강석을 태우고 녹이고… 정횡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지. 설강석을 제련하는 데 십 년이 걸리리라고는.”

종리추는 더 이상 손장난을 하지 않았다. 두 눈을 초롱초롱 뜨고 오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정횡은 설강석에서 눈처럼 흰 철사를 뽑아냈지. 그 철사를 더욱 가늘게 뽑고, 가늘어진 것을 더 가늘게 뽑고. 십 년이 지났을 때, 정횡은 실타래 한 뭉텅이를 들고 있었어.”

종리추는 손을 바라보았다. 너무 투명하여 맨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수투를 만든 사람은 정횡의 손녀야. 정횡은 철사만 뽑아냈을 뿐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지는 못하고 죽었지. 다행스럽게도 정횡의 피가 손녀에게 이어져 지금 네가 끼고 있는 수투가 완성되었지.”

오제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종리추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표정이 변할 때마다 심정을 예측해 냈다.

‘아직은 어린아이…’

숨긴다고 숨기지만 오제는 종리추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어냈다.

“수투는 그녀의 아들에게 이어졌고, 아들은 수투의 효용을 이용해 황산대협이란 무명을 얻었지. 삼형 비원살수께서 횡산대협의 월강수는 무림일절이었어. 삼형 비원살수께서 황산대협을 죽이고 빼앗아왔지.”

지금 다른 방에서는 이형, 삼형, 사형이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게다. 자신들조차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하루 동안에 아이들에게 호신술을 전수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살혼부 사대살수가 전수하려는 것은 기병의 활용이었다.

스르릉! 오제는 기형적으로 등이 굽은 월도를 꺼냈다. 종리추의 눈이 긴장으로 꿈틀거렸다.

“손을 펴보아라.”

종리추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펴 내밀었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겁에 질려서라도 쉽게 내밀지 못할 것이다. 오제가 월도를 뽑아 들었으니 손을 내리칠 게 자명하지 않은가. 눈치가 없는 아이라도 그 정도는 생각할 수 있을 터인데. 종리추가 쉽게 손을 내민 것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체념과 믿어야만 살 수 있다는 본능이 뒤섞였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의지가 굳건해.’

의지가 빈약했다면 아무리 믿는 마음이 컸어도 쉽게 손을 내밀지는 못했으리라.

오제는 월도로 종리추의 손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타앙!

“악!”

쇳소리와 비명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손을 봐라.”

종리추는 손이 아파 쩔쩔매다가 어느 정도 아픔이 가신 다음에야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월도에 맞은 손이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잘 봐라.”

오제는 다시 월도를 들어 뇌옥 벽을 내리쳤다.

까가각!

월도가 석벽을 갉아내며 지나갔다. 석벽에는 길고 깊은 흠이 생겼다. 오제가 가볍게 훑은 것 같은데 석벽은 도끼로 내리친 것 같은 깊은 흠이 생겼다.

“수투를 끼지 않았다면 네 손은 잘라졌다.”

종리추의 눈에서 다시 청광이 새어 나왔다. 희망과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난 살혼부의 다섯째 적지인살이라고 한다. 지금부터 수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일러주겠다. 기본적으로 다음 네 가지를 명심해라. 첫째, 네게 수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둘째, 지금까지처럼 넌 겁 많고 평범한 아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방심을 유도하라. 셋째, 공격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넷째, 몸이 붙어 있지 않는 한 공격하지 마라. 상대는 고수다. 완벽한 기회라고 생각했어도 그건 너만의 생각. 상대는 코웃음 치며 피할 수 있다.”

적지인살의 얼굴은 포근하지 않았다. 서릿발처럼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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