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 74화
사월이 가고 오월이 다시 지나갈 때까지 살문에서 받아들인 청부는 단 두 건이었다. 천화기루에 있을 적에 많은 돈을 벌어두지 않았다면 호구지책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종리추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어딜 그렇게 다니십니까?”
유구가 궁금해서 물었다.
“벽녀는 좀 어때?”
종리추가 외출 준비를 하며 되물었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밖으로 돌아다녔다. 어디를 돌아 다니는 것일까? 어떤 때는 이틀도 좋고 나흘도 좋고, 소식 한 장 전하지 않고 행방불명되기가 일쑤였다. 이제는 살문도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종리추의 행방만은 잡아낼 수 없었다.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종리추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며칠 지나지 않아 일실 주인이 찾아온다. 벽리군조차도 ‘이 사람이면 안심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이제 곧 여름이 오지 않습니까? 많이 풀렸습니다. 요즘은 한두 마디씩 말을 해요.”
“후후! 그만큼 정성을 쏟았으니 돌부처라도 감동했을 거야.”
“그런데 어디를 그렇게…”
“이번에는 좀 오래 걸릴지도 몰라. 혹 청부가 들어오면 조심해서 처리해. 하지 않은 것은 괜찮지만 실수해서는 안 돼.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물러서.”
“그건 걱정 마시고….”
종리추는 기어이 어디 간단 말 한마디 주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이틀 동안 내처 달려 도착한 곳은 남양부 칠정산이다. 그는 칠정산을 잘 알고 있는 듯 산에 도착하기 무섭게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쉬이익….!
갑자기 하늘에 먹장구름이 덮였다.
‘역시!’
종리추는 예상했다는 듯 한달음에 십여 보를 뛰었다. 잔뜩 당겨진 화살이 쏘아진 듯 탄력적이면서도 너무 빠른 신법이었다.
촤아악….!
먹장구름이 땅을 후려치는 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먹장구름은 그물이었다. 나무 위에서 던진 투망이 종리추를 놓치고 땅바닥을 긁어냈다.
“흐흐흐! 제법 한가락 하는 놈이군. 검을 찬 것을 보니 무인인가? 흐흐! 그래도 상관없어. 이봐, 꼬마! 좋게 말할 때 발가벗고 뒤로 물러서. 순순히 말 들으면 목숨만은 보존시켜 주지.”
산적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느 산적과 달랐다. 산적들은 일반적으로 칼이나 도끼같이 위협적인 무기를 들고 나타나는데, 이들 네 명은 모두 투망을 들었다. 무인도 무서워하지 않는 산적. 녹림에서는 흔치 않은 배포다.
스스릉…!
검을 뽑았다. 순간 노을빛 자광이 푸른색의 풀과 나무에 부딪치며 묘한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냈다. 네 사내의 눈에 탐욕이 이글거렸다. 검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종리추가 꺼낸 보검을 보면 진귀한 물건임을 느끼게 될 게다.
‘후후! 검이 필요없다 싶었는데 쓸모가 있긴 있군.’
산적 중 한 명이 말했다.
“좋다. 그 검만 내려놓고 물러서면 목숨은 살려주지. 어때? 꼭 벌주를 마실 필요는…헉!”
말을 하던 사내는 너무 놀라 헛바람을 토해내며 뒤로 물러섰다. 종리추가 번개같이 다가와 일검을 후려친 것이다. 산적의 앞가슴이 길게 찢어지고 붉은 혈흔이 비쳤다.
“이런 때려죽일!”
산적은 순식간에 가슴살을 베이고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분기탱천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보검을 가져온 성의를 봐서 목숨은 살려주려 했다만 이젠 틀렸다. 너 이 새끼, 넌 죽었어!”
종리추는 빙긋 웃었다.
“웃어? 웃지. 다들 웃지. 어디 죽을 때도 웃어봐라.”
산적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말이 끝나자마자 네 사내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종리추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돌면서 마치 올가미를 던지듯이 투망을 머리 위로 빙빙 돌렸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쉬익! 촤라락…!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터지며 투망 네 개가 활짝 펼쳐졌다. 종리추가 빠져나갈 공간은 없어 보였다. 위로 던져져 아래로 떨어지는 투망이 한 개, 나머지 세 개는 활짝 펼쳐진 채 일직선으로 쏘아져 오고…
‘흠! 필살이군.’
종리추는 보검을 집어넣는다. 보검이야 산적들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서 미끼로 사용한 것이고 보검의 이점을 빌어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투망이 몸 가까이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손을 활짝 펼쳤다. 두 손으로 하늘을 떠받들 듯이. 그것도 찰나에 불과하다. 종리추의 양손이 빨래를 짜듯이 엮인다 싶었는데 어느새 다시 풀어졌다.
휘리릭!
거센 기세로 떨어져 내리던 투망이 양손에 잡히며 종이 찢기듯 쫘악 찢겼다.
쉬익!
종리추는 벌어진 틈 사이로 빠져나와 허공에서 빙글 신형을 돌린 다음 사뿐히 내려섰다.
“흐흐흐! 놀라운 무공이군. 좋은 무공을 지녔다. 흐흐흐! 하지만 이놈아, 좋은 말 했을 때 들어야지. 그렇게 죽으면 억울해서 어떡하냐? 하지만 걱정 마라. 보검을 가져온 성의를 봐서 땅에 곱게 묻어줄 테니.”
산적들은 종리추가 빠져나왔는데도 득의로운 웃음을 지었다. 투망 네 개는 쓸모가 없어졌다. 투망 끝에 달린 납덩어리들이 서로를 엉키게 만들었고 투망을 풀어내려면 손깨나 써야 할 게다. 한 치도 숨 돌릴 틈이 없는 격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악독하군.”
“흐흐! 그러게 좋게 말했을 때 들었어야지. 이놈아, 네놈이 자초한 일이니 원망일랑 말고 곱게 죽어.”
“천갈분이 사지를 마비시키는데 얼마나 걸리나, 시간이?”
“…!”
종리추의 태연한 말에 산적들은 비로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갈분에 중독되면 말을 할 시간도 없다. 어찌어찌 투망을 빠져나와도 바로 핏덩이를 쏟아낸다. 종리추처럼 태연하게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너. 너…!”
“악독한 수법이야. 일류고수라 해도 방심했다가는 그대로 당하겠어. 투망 솜씨 하나만 해도 뛰어난데 거기에 독이라… 대부분 투망에 갇혀 바동거리다 죽었겠군. 안 그런가?”
산적들은 또 깨달은 것이 있다. 종리추가 양손으로 질기디질긴 천잠사로 짠 투망을 찢어버렸다는 사실. 무인들 대부분은 병장기를 사용한다. 창을 쓰는 자는 창끝으로 돌돌 말려 하고 검을 쓰는 자는 그물을 찢어내려고 한다. 종리추처럼 양손으로 찢어낸 자는 없었다.
그들이 종리추가 금종수를 익혔고 천하기물인 수투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알 것인가.
“제길! 재수없게 걸렸군. 너무 강한 놈을 건드렸어.”
산적이 포기한 듯 자조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형님, 그럼 죽는 겁니까?”
“그래야 될 것 같아.”
이들에게는 투망 던지는 솜씨 하나뿐인 듯했다.
“형님, 도망가슈. 우리가 죽자 사자 매달리면 조금 시간은 벌어줄 수 있을 거유.”
“너 이 새끼. 방금 뭐라고 했어!”
“농담이유. 거참, 죽는 마당에 농담도 못하우? 그러나저러나 더럽게 아깝네.”
“…..”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이나 담가놓지 말 것을. 아! 저놈 주면 되겠네. 야, 이놈아! 오십 장 정도 올라가면 우리 움막이 있다. 움막 앞에 감나무가 있는데, 그 밑을 파보면 사주가 나올 거야. 천금을 주고도 못 구한다는 백사로 담근 술이니까 잘 처먹어라.”
종리추는 빙긋 웃었다.
‘재미있는 자들이야.’
“투망을 정리해라.”
“…?”
“어디, 백사를 담갔다니 맛이나 봐야지. 내 손에 흙을 묻힐 수는 없지. 네놈이 직접 파.”
“…..?”
산적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백사를 담갔다는 산적이 입을 열었다.
“형님. 저 자식, 우릴 죽일 생각이 없나 보네요?”
엉킨 투망을 푸는 데는 세심한 손길이 필요했다. 노루 가죽으로 만든 두터운 장갑을 끼고, 역시 노루 가죽으로 만든 복면을 뒤집어쓰고 투망을 걷어냈다. 겉에 나와 있는 피부는 모두 가린 상태였고 눈마저 복면 속에 묻혀 버렸기 때문에 순전히 감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었다.
지시는 대형인 듯한 산적이 내렸다. 그는 복면을 쓰지 않고 멀찍이 물러서서 투망이 엮인 것을 말로 풀었다.
“삼제, 이제, 삼제, 일제….”
그의 지시를 들은 산적들은 전신을 가리고 손의 감각마저 없는 상태에서 정확히 매듭을 풀어냈다. 숨을 멈추고 하는 작업이라 작업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호흡!”
산적이 명령을 내리자 작업을 하던 자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서서 복면을 벗어내고 크게 숨을 골랐다. 그들은 숨을 고르면서도 투망이 엮인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투망을 관찰하는 표정이 진지했다. 다음에 자기가 앉을 자리며 누구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산적들은 무려 한 시진에 걸쳐 투망을 풀어낸 후 조심스럽게 둘둘 말았다.
“다 됐습니다. 가시죠.”
산적이 나무 그늘에 앉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종리추에게 말했다.
‘천갈분은 시전자조차도 조심해야 되는 독. 어차피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투망이라면 굳이 천갈분을 고집할 필요가 없지. 투망을 치는 순간 독이 터져 나온다. 음! 호흡을 통해 스며들고… 연구하면 다른 독이 있을 거야.’
이들은 매서운 공격에 비해 뒤처리가 너무 복잡했다.
“살수!”
“살수.”
“음… 살수.”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던 산적도 살수라는 말에는 신음부터 토해냈다.
“너희는 독만 다른 것으로 바꾸면 뛰어난 살수가 될 수 있다. 생각이 있으면 살문으로 와.”
산적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이라고 천갈분을 대체할 독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임의대로 독을 터뜨릴 수 있고, 터뜨리는 즉시 중독시키며, 중독되자마자 즉사하는 여러 조건을 모두 갖춘 독은 흔하지 않았다. 그러한 조건은 까다롭지만 반드시 갖춰야 한다. 행인 중에는 산적 그림자만 봐도 벌벌 떠는 사람들이 있지만 종리추처럼 뛰어난 무공을 지닌 무인도 상당수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주면 되려 당할 수 있는 무인. 천갈분을 선택한 것은 불가피했다.
“정말 천갈분을 대체할 독이 있습니까?”
말투까지 공손해졌다.
“살문에 목숨을 주면 독을 주지.”
“….”
“신중하게 생각해. 살문에 발을 디디면 살아서는 나오지 못할 테니까. 속 편하기로 따지면 이대로 산적질이나 해먹는 게 훨씬 편하다는 것도 알아두고.”
“살문에는 공자님 같은 고수가 많습니까?”
“많지.”
“공자님은 살문과 어떤 관계인지?”
질문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문주.”
“….”
종리추는 일어섰다. 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살수의 길은 죽음의 길이기에 스스로 선택하는 자가 아니면 오히려 화근이 될 수도 있다.
“살문에 오거든 집사를 찾아. 집사에게 열네 냥짜리 일거리를 맡기러 왔다고 해. 그럼 안내해 줄 거야.”
“열네 냥요?”
“서열이다.”
“그, 그럼 저희가 겨우 열네 번째…?”
“무공으로 정한 서열이 아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으로 정한 서열이다. 너희는 열네 번째야.”
“모두 몇 번까지 있습니까?”
“너희가 마지막이야.”
산적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됐어. 이들은 온다.’
종리추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들이 오면 드디어 열네 개의 전각에 사람들이 가득 차게 된다.
서열 일부터 삼까지는 유구, 유회, 역석이다. 그들의 능력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할 수 없지만, 대신 목숨을 맡기는 충성심이 있다.
네 번째, 다섯 번째는 낭인이다. 네 번째는 검과 도의 장점을 융합시킨 쌍구의 달인으로 이름난 자만 찾아다니며 비무행을 하는 자였다.
“비겁한 놈들이 꼭꼭 숨어서 싸울 생각을 안 해.”
“싸우기 싫어도 싸우게 해주지.”
그의 공격은 종리추도 두어 번이나 위기를 넘길 만큼 매서웠다. 암습이 아닌 정정당당한 비무에서.
다섯 번째는 채찍을 몸의 일부분처럼 사용했다. 채찍이라면 종리추도 일가견이 있다. 그가 허리에 두르고 다니는 요대는 녹색 뱀의 껍질로 만든 것으로 끌러내면 길이가 이 장에 이른다. 채찍 대 채찍의 싸움. 십팔반경기에 능통하다고 자부하던 종리추도 많은 것을 배웠다.
여섯 번째는 표사 후사도. 후사도는 무척 빠르다. 도광을 보았다 싶은 순간 위기가 닥쳐온다. 하오문주의 한성천류비결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종리추가 당했을 게다.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역시 낭인이다. 일곱 번째는 무림에 음양철극으로 알려져 있으며 철극 한 쌍을 성명병기로 사용한다. 그의 철극은 극히 정제되어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가장 빠른 거리를 알고 있으며 그 길을 쫓는다. 빠른 자, 느린 자, 내공이 강한 자, 병기를 잘 쓰는 자… 어떤 자와 부딪치더라도 적당한 해법을 찾아내는 귀재다.
여덟 번째는 자칭 천왕검제라고 소개했다. 별호를 들으면 웃어넘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의 검법을 겪어보면 웃음이 싹 달아난다.
“아직까지 내 천왕구식을 받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지. 받아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크크! 죽는 거지.”
“받아내면?”
“크크! 꿈꾸지 마.”
“해보지. 받아내면 난 널 살수로 쓸 거야. 왜냐고? 내가 살문주니까. 최선을 다해. 평생 매이기 싫으면.”
“네가 바로 무림에 살수 문파 개파 선언을 했다는 천둥벌거숭이군. 어디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 보지.”
그의 천왕구식은 말 그대로 천왕이 강림하는 위세를 보였다.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검식은 광풍노도와 같았다.
아홉 번째는 표사 좌리살검. 그는 사검을 익혔다. 그의 묵검에는 묵린이 묻어 있어 병기를 맞대는 순간 검이 화룡으로 변한 듯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또한 묵린이 살을 태우려고 달려든다. 그와는 병기를 부딪치지 않고 싸워야 한다.
열 번째는 엽사다. 엽사라면 대부분 활을 사용하는데 그는 단창을 사용해 맹수를 잡는다.
“목숨을 걸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맹수와 싸우며 단련된 단창 솜씨는 어느 명문 문파에서 정통으로 수련한 무공에 뒤지지 않았다.
열한 번째는 화산파의 매화검수다. 종리추는 처음으로 구파일방의 무공을 접해보았다.
이십사수 매화검법. 매화검법의 진수는 검로에서 나온다. 기묘하게 떨리는 검로를 대하면 다섯 개의 검이 쏟아지는 착각이 든다. 검로를 예측할 수 없는 검법이 매화검법이다.
그가 기꺼이 살수가 된 것은 화산파로부터 추적을 받기 때문이다. 화산파가 추적을 중지하더라도 사매를 강간한 과거는 무림에 발을 디딜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정복하면 될 줄 알았는데…”
한심한 인간이다.
“이대로 끌려가면 사부님 손에 죽어. 그렇지 않다 해도 장문인께서 중벌을 내리실 거야.”
겁쟁이에 치졸한 인간이다.
“난 사매에게 죽고 싶어. 사매가 용서하지 않고 죽인다면, 사매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죽는 게 낫지. 다른 사람에게는 벌받고 싶지 않아.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매뿐이야.”
사매와 그가 만나는 날 그는 사랑을 얻든지 죽게 되리라.
“그때까지 숨을 장소를 제공하지. 살수는 세상에서 잊혀진 자니까.”
열두 번째는 황가표국의 광부다. 그는 정말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다듬을 곳이 많다. 무인에게 그런 식으로 덤벼들었다가는 단숨에 목이 달아나고 말 게다.
하나 그에게도 장점이 있다. 근접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광부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광부는 살문에 모인 자들 중에서 실전 경험이 가장 많다. 하루 걸러 한 번은 꼭 손도끼를 휘둘러야 직성이 풀리니까.
종리추는 그에게 올바른 도끼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지금도 싸움 대신 소부를 휘두르고 있으리라. 좀 더 강한 상대와 싸울 때를 그리며.
열세 번째는 정말 우연히 발견했다. 거의 대부분 이름난 자 중에서 성격이 괴팍한 자를 수소문하여 찾아다녔지만 열세 번째만은 우연히 찾았다. 그는 지게에 쌀 네 가마를 짊어지고도 태연히 걸었다.
그를 데려오는 데는 살인이 있었다.
“호 대감의 둘째 아들놈만 죽여주면 따라가지.”
“네 완력이면 죽일 수 있을 텐데?”
“그러려고 했지. 그랬다가 이 모양이 됐어.”
그는 다리를 절룩거린다. 왼쪽 눈은 불쑥 튀어나왔고… 실명했다.
종리추는 그에게 철근 서른 근을 녹여 단병쌍추를 만들어줄 생각이다. 그가 단병쌍추를 휘두른다면 검이나 도와 같은 병기로는 감히 맞받을 엄두가 나지 않을 게다.
그를 열세 번째에 놓은 것은 세상을 저주하는 짙은 살의 때문이다. 그가 단병쌍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날, 세상은 진정한 살수를 만나게 되리라.
‘딱 맞아.’
종리추는 산적 네 명을 보며 머리 속에 그린 그림이 완성되었음을 알았다. 살수 중에는 강한 자만 있다고 능사가 아니다. 강한 자도 있어야 하고 약한 자도 있어야 한다.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활용도. 무공보다는 활용도가 각기 다른 살수들이 모여 있어야 한층 강한 살수 문파가 될 수 있다.
종리추는 머리 속에 그린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려 이백여 명을 만났다. 그중 스무 명 가까이는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위기였기 때문에, 입이 가벼워 살문의 비밀을 누설할 우려가 엿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살인은 그렇게 일어났다.
칠정산도 무작정 찾아온 것이 아니다. 싸움을 할 만한 자를 찾았고, 칠정산 산적이 꽤나 골치를 썩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나선 길이다. 이들이 열네 번째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는 미련 없이 돌아섰으리라. 괜히 죽치고 앉아 사주를 홀짝거리는 일은 없었으리라. 마음이 바쁜데 편히 앉아 술 마실 시간이 어디 있는가. 이들은 제일 선봉에 선다. 일급고수 청부가 들어오면 제일 앞장서서 공격을 한다. 살문 살수들 중 한 명이라도 이들 뒤를 받쳐 준다면 성공 가능성이 꽤 커진다.
‘됐어. 올 거야.’
종리추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칠정산을 내려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이 긴 침묵에 휘감겨 있다는 것을. 평생이 걸린 문제를 두고 구구하게 의논을 주고받을 것을.
사흘 뒤, 집사 남오는 마지막 전각의 주인을 맞이했다.
“열네 냥짜리 일거리를 맡기러 왔소.”
그들은 어부처럼 투망을 어깨에 짊어진 우락부락한 사내 네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