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2권 – 7화
한편, 요기에 적중당한 몸을 날려 왜병들의 목책을 부수고 왜병들의 진지로 뛰어든 흑호는 숨 돌릴 겨 를도 없이 길게 어흥 하고 포효성을 또 한 번 내질 렀다.
마수들에게 쫓기는 마당에 왜병들에게까지 공격을 당하면 도저히빠져나갈 길이 없기에 본능적으로 취 한 행동이었고, 또 실제로도 약간의 효과는 있었다. 조선군과 대치 중이었던 왜병들은 아까의 승전으로 삼삼오오 모여앉아 희희낙락하거나 더러는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그 진지 안으로 난데없이 커다란 호랑이가 뛰어들었으니, 그야말로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친 꼴이었다.
지금 시대에서야 호랑이를 동물원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지만, 조선시대만 해 도 호랑이는 영물이고 최고의 무서운 금수로 인식되 던 터였다. 더구나 당시의 호랑이는 지금 동물원에 서 흔히 볼 수 있는 벵골 계열의 털이 가늘고 몸이 작은 열대성 인도 호랑이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혹 한의 만주벌판과 눈 쌓인 산하를누비던 시베리아 대 호(大虎)였다.
기록을 보면 이 대호들은, 지금 동물원에 있는 호랑 이들의 몸길이가 채 2미터도 안 되는 것에 비해 큰 놈은 몸길이가 거의 4미터에까지 이른다는 괴수급이 었다. 그리고 커다란 황소를 입에 물고 훨훨 담벼락 을 뛰어넘어 산까지 내쳐 달려갈 정도였다고 하니, 그 힘을 가히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더구나 흑호는 그 대호중에서도 팔백년을 묵은엄청난 대호이다. 더구나 호랑이는 밤이면 그 눈이 화등잔처럼 빛나서 마치 불을 켠것 같았으며, 그 지나가는 길에는 모든 생물이 숨을 죽이고마는, 산중의 왕이었다. 그 호랑 이와 눈이 마주치기만 하더라도 나이가 많거나기력 이 약한 자는 그대로 혼절하여 그 자리에서 죽어 버 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기력이 충만한 젊은 남정 네들이라 하더라도 호랑이와 눈이 한 번 마주치면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탈분(脫糞하기 일쑤이 며, 그 후로도 사오일은 꼬박 끙끙 사경을 헤매일 정도로 앓는다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물며 왜국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지 않아 왜병들은 호랑이를 본적이 전혀 없을 뿐더러, 그 중에서도 흑 호와 같이 덩치가 큰 호랑이를만난다는 것은 더더욱 의외의 일이었다. 살육을 일삼는 병사인데도넋이 나 가 주저앉아 버리는 자들도 많았다.
호랑이일 때의 흑호의 몸길이는 열여섯 자(약 5미 터)를 넘었고, 그덩치 또한 흑곰을 연상시킬 정도 로 어마어마했다. 더구나 일족의 원수를 만나 몸을 피하는 입장에서 흑호의 동물적인 독기는 있는 대로 발산되어, 글자 그대로 눈에서 불꽃이 뚝뚝 떨어지 는 것 같은 사나운형상이었다.
흑호가 굵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자 수십 명이나되는 주변의 왜병들 중 반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반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병장기를 겨눈 채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러나 왜군 중에서도 담이 큰 자들이 있었던지 한 왜병이 뒤에서부터 장창을 흑호에게 겨누면서 찔러 들어왔다. 여섯 간에 이르는 창길이를 믿고 딴에는 호기를 부렸다. 하지만 호랑이의 도약력과 공격력을 모르고 한 만용에 지나지 않았다.
호랑이는 사자와는 달리 거의 온 몸체를 무기로 사 용할 수 있으며,숲이나 산을 주 서식지로 하기 때문 에 오래 달리는 데에는 조금 약하지만 위로 뛰어오 르거나 멀리 뛰는 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힘 을 발휘했다.
나무도 능숙하게 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가집 지 붕 정도는 도약한 번만으로도 쉽게 뛰어오르는 수준 이었다. 더구나 앞으로만 뛰는것이 아니라 사정에 따라 전후좌우 어느 방향으로도 도약할 수 있는 동물이 바로 호랑이었다.
뒤에서 찔러 들어오는 쇠의 느낌을 눈치챈 흑호는 으르렁 뒤로 뛰어오르면서 육중한 꼬리를 휘둘러 장창을 찔러들어온 왜병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호랑이의 꼬리는 뱀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무게나 힘도 대단하여 무기로 많이 사 용된다. 하물며 흑호와 같은 호랑이의 꼬리는 쇠망 치나 진배없었다.
흑호의 꼬리에 맞은 그 불운한 왜병은 투구를 썼음 에도 불구하고머리통이 투구와 함께 수박처럼 박살 이 나고 말았다. 그 자의 머리가달아나 버렸다. 머 리도 없는 왜병은 잠시 부들거리더니 급기야 장창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쓰러져 계속 경련을 일으켰 다.
흑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람의 피 맛을 보면 내가 쌓아온 도력이 모조리 깨어지게 될 거여.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옛날 어느 도통한 스님의 문하에 호랑이 제자가 있었는데, 그 호랑이는 육식을 끊고 수행했다고 한다. 점점 말라가는 호랑이를 측은하게 생각한 어느 사미 승이 손을 베자 그 피를 호랑이에게 먹으라고 주었 다가 피 맛을 본 호랑이가 눈이 뒤집혀 사미승을 잡 아먹었다. 그리하여 그 동안 닦았던 수행도 물거품 이 되었으며, 급기야는 스승이던스님에게 잡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듯이 야생의 피를 지닌 흑호 같은 호랑이에게 인간의 피 맛은그를 마(魔)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무서운 마약과 같은 요소였다. 그래서 흑호는 호랑 이의 최대의 무기라 할 수 있는 이빨을 사용하지 않 는 것이었다.
흑호는 이런 잡병들쯤이야 꼬리와 앞발만으로도 충 분히 상대할 수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큰 호랑이의 앞발 후리기는 한 방으로 황소의목도 꺾어 버릴 정 도이니, 어지간한 인간의 장사들로서도 흉내조차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료 하나가 죽는 것을 보자 겁을 먹었던 왜 병들이 다시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몇 개의 장창이 찔러 들어왔으나 흑호는 귀찮다는 듯 앞발을 휘저었다. 그러자 오줌통에 담근 나무로 만든 단단한 장창들이 수수깡처럼 우두둑 부러져 나 갔다.
‘왜병 하나를 죽였더니 갑자기 왜병들이 더 용감해 지네. 이러다가는 큰일나겠는걸? 가급적 왜병들을 죽이지는 말고 겁만 주어야 빠져나갈 수 있겠구먼.’ 흑호는 장창들을 꺾는 즉시 다시 몸을 솟구쳐 겁먹 은 왜병들이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양 앞발로 각각 한 놈씩의 왜병의 등판을 찍어눌렀다. 죽이지 않으 려고 힘을 뺐는데도 그놈들은 하나같이 입에서 울컥 피를 뿜으며 나무가 쓰러지듯 쿵 하고 넘어져 버렸 다.
그 두 놈을 앞발로 하나씩 밟고 서서 흑호는 다시 길게 포효했다.
사실 몇 놈의 왜병들이야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 지만, 지금 길고 긴왜병 진지를 꿰뚫고 지나간다는 것이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숫자도숫자려니와 총 알은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왜병들이 까맣게 몰려오고 있었고 그 수가 너무도 많았다. 게다가가장 싫어하는 쇠냄새와 화약냄새, 인간의 고약한 체취에 흑호는 머리가 혼란스럽고 골 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래서 쉽게 말하면 ‘죽고 싶지 않은 놈들은 모두 비켜서라’는 의미에서 길게 포효한 것이다. 그러나 그 포효성이 확실히 효과를 발휘하기는 했지만, 그 포효성이 왜병들 전체를 인솔하고 있는 왜군 중에서 도 명장이며 지략가로 손꼽히는 장수인 고니시(小西 行 소서행장)의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갑주차림으로 전략회의를 하던 고니시가 의아해 하 며 옆의 부장에게 물었다. 그 부장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가 이내 들어오면서 고개를 조아렸다.
“하! 호랑이가 진중에 뛰어들어 사상자가 난 것 같습니다.”
“뭐? 호랑이?”
고니시의 목소리가 갑자기 노기를 띄었다.
“조선을 거쳐 명국을 정벌할 정예들이 그런 금수 한 마리로! 하물며 지금 적과 대치중인 이때에!”
“그, 그것은…….”
“앞장서라!”
고니시는 호통을 치며 근처에 걸려 있던 커다란 철 궁 한 벌을 집어들고 부장들과 함께 장막을 나섰다. 총이 유행하여 전군의 삼분의 일 가량이 총으로 무 장한 왜군이었다. 그러나 고니시는 많은 일본군 무 장 중에서도 가마쿠라(鎌倉) 막부시대나 무로마치 (室町)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고래의 관습을 충실하 게지키는, 사상적으로 ‘낡은’ 편에 속하는 무장이었 다.
그래서 고니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직전신장) 로부터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풍신수길)로 전 해진 조총부대의 활용법에 능숙해 있으면서도 그 자 신은 총을 사격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활쏘기를 즐기 고있었다.
후일담이지만 그의 그러한 ‘낡은’ 성격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덕천가강)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의 어린 자식을 받드는 이시도 미쓰나리(石田三成석전삼성)와의 천하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세키가하라’의 대전에서 이시도의 편을 드는 당연한 이유 의 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왜국 무장들은 글자를 모르는 자들도 많았으며 오로지 싸움의 기술만으로 용명을 드날리기를 원하 는 난폭한 자들이 많았다. 그러니 체계화된 병법이 나 역사를 알고 있는 무장은 거의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고니시는 달랐다.
그는 희귀하게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왜장들 중 에서는 무(武)뿐이 아니라 문(文)에도 조예가 깊었 다. 사실 이번 조선으로 침공하는것을 가장 반대한 신하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왜국에서는 주군이 정한 것을 신하가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고니시는 자 신의 경쟁 상대이자 마음에 들지않는 동료인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조선을 정벌하는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승전을 거두는 동안에도 내내 그의 얼굴은 침울하게 굳어 있었다.
‘진중에 호랑이라니!’
고니시는 의외의 보고에 내심 불안했다.
‘고서에 보면 조선국에서는 호랑이를 부리는 자들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진을 흐트려 놓으려는 신립 의 전략일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
고니시는 혹여 무슨 징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애써 그 생각을 지웠다. 그러나 그 의 마음속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이상한 생각 이 떠올랐다.
‘혹시 나를 시험하는 일종의 계시나 징조가 아닐까?’
애당초 오기 싫었던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공을 세워 쉽게 승승장구했으되 서방으로부터 습득한 총 부대의 위력이 컸다. 그리고 조선군의 저항은 자 신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격렬한 편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싸워보지도 않고 지휘관이 도망쳐 글자 그대로 와해된 부대들도 많았다. 하지만 고니 시는 신중한 성격이라 조선군이정말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부대를 보존하기 위한 일시적인 후퇴라고생 각했다.
그만큼 부산포와 동래성에서의 조선군의 저항은 격 렬하였으며 그곳의 조선군들은 거의 한 명도 남지 않고 전멸해 버렸다. 상주에서 이일이라는 장군과 싸웠을 때에도 그러하였다. 조선군은 장비도 병력도 훨씬 열등했으나 그 사기만은 놀라웠다.
계속 총탄에 맞고 칼 한 번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줄줄이 죽어갔으되 그들은 끝까지 돌격하여 왔다. 고니시는 장비나 군력이 우세한 적과 싸우는 것보다 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 더 힘들 고 더 무서운 것이라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