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3권 – 3화
호유화는 땅에 풀썩 쓰러졌다. 이미 양 팔에 상처 를 입은 탓도있었지만, 극도로 법력을 끌어올린 와 중에 금옥에게 찔린 것이치명적이었다. 호유화의 몸 속에서는 법력이 요동을 치며 충돌하고 있었고 금방 이라도 모든 법력이 흩어질 것 같았다. 그런 판이니 조금의 법력도 끌어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법력이없는 호유화는 여느 힘없는 여자와 조금도 다 를 바가 없었다. 호유화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떨면서 증오에 가득찬 눈으로금옥을 쏘아 보았다. 금옥은 육척홍창을 든 채 온 몸을 떨고 있었으나 그 런 호유화의 눈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금옥의 눈은 이상하게도 차분했다.
“하하하… 좋다. 잘했어…”
백면귀마는 이미 호유화의 모라망에서 풀려나 있었 다. 그리고백면귀마의 혈겸 역시 다시 백면귀마의 손에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신립의 영혼도 백면귀마의 입에서 빠져 나와 허공에 둥둥떠 있었다. 백면귀마는 기분나쁘게 웃으며 금옥에게 말했다.
“약속대로 이 놈은 풀어 준다. 흐흐. 그러니 어서 비켜라.”
그러나 금옥은 갑자기 호유화의 앞을 막아섰다. 금 옥은 무엇인가에 들뜬 것 같았다.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몸도 떨지 않았다.
“비킬 수 없습니다.”
“뭐야?”
“나는 이 여자를 찌르겠다고 약속했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래. 나도 그래서 이 놈을 풀어주지 않았느냐?”
“하지만… 이대로 비킬 수 없습니다. 당신은 절대이 여자를해칠 수 없어요.”
“뭐? 하하하..”
백면귀마는 가소롭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네 따위가 나를 막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나 금옥은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힘이 없으니 막을 수 없겠지요…”
금옥의 목소리는 태연했다. 너무도 태연한 목소리 에 백면귀마조차도 의심이 드는 듯 조금 주춤거렸 다.
“그러면서 나를 막겠다구?”
금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고 한 손으로 창을 잡고한 손을 소매에 넣어 무엇인가를 꺼냈다.
“나는 막을 수 없지만… 아마 이것은 막을 수 있 을 것입니다.”
금옥이 꺼낸 것은 바로 전에 이판관, 아니 이판관 으로 변했던백면귀마가 태을사자에게 주었던 금제의 고리였다! 울달과 불솔이 변한 고리. 그것에 걸려서 호유화조차 은동에게 굴복했었다.
그것을 태을사자는 만약 호유화가 변심할 경우를 생 각하여 금옥에게 준 것인데, 금옥은 아까 그것을 생 각해 냈던 것이다. 금옥은 말을 마치자마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고리를 허공에 던지면서 외쳤다.
“금제복마! 금제…”
그 순간, 백면귀마의 손은 벼락같이 움직였다. 백면귀마의 손이떨쳐지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혈겸이 솟구쳐 오르면서 무서운기세로 금옥에게 날아들었 다. 그러나 금옥은 눈을 감았을 뿐, 놀라지도 않았 고 피하려 하지도 않았다. 피하려 한다 해도 피할 수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처 금옥의 다음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혈겸은 금옥의 몸을 반 대쪽으로 뚫고 나갔다. 그러나 금옥의 얼굴은 오히 려 평온했고 조금 미간을 찡그려 보였을뿐이다. 그 리고 금옥의 입에서는 조그맣지만 틀림없는 목소리 가흘러 나왔다.
“..복마..”
금제를 완성시키려면 주문을 세 번 외워야 한다. 그것을 막으려고 혈겸은 다시 한 번 허공을 돌아 금옥을 덮쳐 왔다. 그러나 금옥은 짐작 했엇다는 듯 눈을 감은 채 몸을 조금 움직였다. 그 러자 홍창을 들고 있던 금옥의 왼팔이 혈겸에 베어 져 나갔다. 영혼의 몸이라 피가 튀지는 않았지만 끔 찍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에 호유화마저도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금옥은 고통조차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계속 담담하게 말했 다.
“…금제…”
혈겸이 다시 날아들면서 안색이 변한 백면귀마가 큰 소리를 지르면서 금옥에게 달려 들었다. 백면귀 마도 필사적이 되었는지 그의 손에서는 무서운 기운 이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금옥은 가슴에 구 멍이 뚫리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와중에도 조금의동 요도 없이 주문을 마저 외웠다.
“..복마!”
백면귀마는 대경실색하여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 미 때는 늦었다. 쇠고리는 허공에서 쾅하는 소리를 내면서 백면귀마의 목에감겼다. 백면귀마는 으아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직 고통을 당하는 것 은 아니었다. 백면귀마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 다. 자신은 이 고리를 해제하여 울달과 불솔로 도로 변하게 하는방법을 알고 있다! 단 금옥이 조이라는 말만 하지 못하게 한다면이 고리는 고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백면귀마는 순간적으로판단하고 혈겸을 다시 휘둘렀다. 그러나 금옥이 조금 더 빨랐다. 빨랐다기 보다는 백면귀마가 목에 고리가 씌인 충격 때문에 조금주춤하는 사이를 탄 것이다.
“조여..조여…조여…”
금옥의 몸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이제 더 버 티지 못하고소멸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옥의 입에서 새어나간 말은 틀림이 없었다. 백변귀마는 막 혈겸을 들어 금옥을 박살내버리려던참이었으나 극렬한 고통이 닥쳐오는 것을 느꼈다. 수천년을 살 앗던 호유화마저도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을 정도였 으니 백면귀마라고 그 고통을 어찌 참을 수 있겠는 가. 백면귀마는 커억 하는 막힌 소리를 지르면서 몸 을 휘청했다. 그러나 백면귀마는 혈겸을금옥을 향해 휘두르지 않으려는 듯 했다. 그러나 혈겸은 관성으 로 계속 금옥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백면귀마는 안 간힘을 써서혈겸을 저만치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금옥의 목을 움켜 쥐었다.
고통으로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고 눈이 튀어나온 흉악한 얼굴로 백면귀마는 금옥에게 간산히 말했다.
“어서.. 어서.. 풀어.. 그러지… 않으면…”
백면귀마는 이를 악물면서 금옥의 목을 조이기 시작 했다. 이미온 몸에 구멍이 뚫리고 팔이 잘라진 금옥 은 이제야 고통이 엄습하는 듯 얼굴을 찌푸렸으나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금옥의 몸은점점 투명해져 가고 있었다. 호유화는 비록 금옥이 자신을 찔러움 직일 수 없게 만들기는 했지만 더 이상 이런 처참한 꼴을 볼수가 없었다.
‘차라리 풀어 줘! 어서!’
그러나 호유화는 법력이 온통 흐트러져 있어서 전 심법으로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백면귀마는 고통과 공포로 무서운 형상이 되어 금 옥의 목을 더욱 단단히 조였다. 최후의 기운을 짜내 는 것 같았다. 이미 숨이막혀서 말조차 할 수 없었 고 금옥도 마찬가지였다. 백면귀마는무서운 얼굴로 금옥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금옥은 안간힘을 다해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조여….더.. 더..”
백면귀마의 목에서 바람이 풀리는 것 같은 끄으윽 하는 소리가새어 나왔다. 백면귀마의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부풀어 오르며안색이 흰 색에서 푸른 색, 그리고 불그죽죽한 색으로 끝없이 변해갔다. 백면귀 마도 최후의 힘을 다 짜내어 금옥의 목을 꺾었다. 비틀어지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금옥의 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호유화는 온 몸을 떨면서 그 무 서운 광경을 보았다. 그러나 그 최후의 순간, 금옥 의 눈은 평안했다. 아주 미미한, 거의보이지 않는 움직임이었지만 금옥의 눈빛은 웃는 듯한 빛을 띄고 호유화를 한 번 향하고 저만치에 떠 있는 신립을 마 지막으로 한번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 간, 금옥은 입가에 미소를 띄는 듯 했다. 그 순간 금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금옥은평소 신립에게 속죄를 해야겠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신립을 한번 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이제 신립을 보게 되었고, 신립을 풀어주게 되었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호유화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뭔가 크게 격동되는 것을느꼈다.
‘정녕 오래오래 남는 것은 정(情)인가 보구나…’ 그리고 금옥의 몸은 백면귀마의 손아귀에 잡힌 채 무화(化)되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완전히 소멸된 것이다. 호유화는 뭐라고말을 할 수 없었다.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수천년 쌓아온 의지력으로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바보같으니…’
그러나 호유화는 서둘러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백면귀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아직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제의 고리는 원래 상대를 제압하려고 만들어진 것이지 죽이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목숨은 끊지 않는다. 하지만 금옥이 소멸되자 그 고 리는 다시는 풀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백면귀마는 고통에 헐떡이며 흉하게 몸을 마구 굴렸 다. 거의 미친 것 같았다. 그런 꼴을 호유화는 경멸 의 눈으로 보면서 한시라도 빨리 법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한 번 흩어진 법력은 잘 수습되지 않았다. 백면귀마는 고통에 못 이겨 몸을 굴리다가 갑자기 독기 서린 눈빛을 띄었다. 그리고 는 양손을치켜들고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호유화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 놈이… 기어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 건가?’
호유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편 은동은 자신의 옆에 무엇인가가 날아와 콱 땅 에 박히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자신이 맞 을 뻔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수가 좋았던지 은동 은 맞지 않았다. 놀란 가슴으로 그것을 바라보니 그 것은 커다랗고 검은 빛이 번들거리는 큰 낫이었다. 바로 아까 백면귀마가 내던진 혈겸이었다.
‘이게 뭐야? 하마터면 개죽음 당할 뻔 했네.’
은동은 숨을 몰아 쉬었다. 혈겸의 날은 그야말로 무서우리만큼번뜩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혈겸은 마 수인 백면귀마의 법기였던터라 그 자체로도 상당한 마성(性)을 지니고 있었다. 혈겸에소멸된 자가 많 으면 많을 수록, 그리고 생명을 해친 시각이 짧으면 짧을 수록, 혈겸의 마성은 더더욱 발휘되는 것이다. 비록 직접적으로 죽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방금 금 옥을 맞춘 후라 혈겸은 더더욱 번들거리며 무섭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은동은 아직금옥이 소멸된 것 을 미처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홍두오공에의해 태을사자와 흑호가 둘 다 위기에 처해 있는 판이니 고개조차 돌릴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혈겸 을 보니 이상하게 암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다 음 순간, 은동의 머리에 뭔가 번개같은 생각이 스치 고 지나갔다. 은동은 서둘러서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잡아 뜯으려 했다. 그러나 영혼인 채로 있는 은동의 손에나뭇가지들은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은 동은 낙심했지만혹시나하고 둥둥 떠 있던 백아검을 집어 들었다. 백아검은 비록영적인 물건이지만 윤걸 이 과거 태을사자에게 말했던 것처럼 생계와도 얽혀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은동이 백아검으로 나뭇가 지를 치자 나무들이 후두둑 잘라져서 삽시간에 수북 하게 쌓였다.
그러자 은동은 혈겸을 들어 땅에 뒤집어 놓았다. 무거울뿐만 아니라 혈겸에 손을 대는 순간 묘한 아릿 한 느낌이 돌았지만 은동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 고 은동은 날이 위로 선 혈겸을 나뭇가지로 덮었다. 그러나 나뭇가지들은 혈겸을 그대로 뚫고 흘러내려 버렸다. 혈겸도 영적인 물건인 것이다. 그래서 은동 은 하는 수없이 나뭇가지를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 에 초막을 세우는 식으로혈겸을 나뭇가지로 가렸다. 그러자 간신히 혈겸은 가려졌다. 그런 다음 은동은 백아검을 든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은동이 혈겸을 숨기는 사이 한참 시간이 흘러서 홍두오공은 이제 태을사자를 인혼주 안에 거의 다 집어삼킨 상태였 다. 가엾게도 태을사자는 두 손만이 인혼주 밖으로 나와 들어가지 않으려고 힘겹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흑호는 아직도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온 몸 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은 동은 용감하게도 백아검을 집어들고 홍두오공 앞으 로 나선 것이다.
“이 징글맞은 지네 괴물아! 날 잡으면 용하지!” 은동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홍두오공은 이따위 조그마하고 힘도 없는 영혼에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은동은 홍두오공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 자 화가 나서 백아검을 들어 아무렇게나 홍두오공의 다리를 향해 내려 찍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홍두오 공의 다리 한마디가 툭 잘라져 나가면서 검은 액체 가 솟구쳐나왔다. 은동은 자기가 다리를 잘라 놓고 도 자신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백아검이 이렇 게까지 잘 들줄은 몰랐던 것이다. 은동이 다시 용기 를 내어 다시 홍두오공을 내려치려는데 그때는 이미 홍두오공이 아픔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다. 홍두오공의 붉은 빛이 감도는, 두 쌍의 눈이 자신을 향했다. 은동은 금방이라도 달아나고 싶었지만 억지 로 참았다. 참았을 뿐 아니라 백아검을 들고 홍두오 공에 대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러면서 도 은동은 속으로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 놈이 아까 그 인면오공을 풀면 어떡하지? 독을 뿜으면 어떡하지?’
다행히 홍두오공은 그러지 않았다. 다만 은동을 한 발에 밟아죽이려는 듯 징그럽게 많은 다리를 움직이며 은동에게 달려들었다. 은동은 그것을 보고 몸을 돌려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혈겸을 묻어 놓은 곳으로 홍두오공을 유인하려는 것이다. 홍두오공은 은동의 뒤를 계속 따라 왔다. 마침내 혈 겸을 숨긴 곳에 다다르자 은동은 그 뒤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리고 홍두오공도 그 뒤를 따라 왔다. 그 리고 홍두오공은 마침내 혈겸이 있는곳 위로 몸을 덮쳤다.
“됐다!”
은동은 도망가다가 멈추어서서 만세를 불렀다. 자 신의 꾀로 저거대한 홍두오공을 잡다니! 의기양양 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은동은 뭔 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홍두오공의 고통스러운, 멱 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은동은 깜짝 놀라서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 다. 홍두오공은 힝힝거리며 마치 웃는 듯 고개를 휘 두르고 있었다. 놈은 영악했다. 은동의 빤한 속셈을 다 들여다 본 듯, 홍두오공은 혈겸의바로 위에 몸을 올리기는 했지만 몸을 구부려서 혈겸에 닿지 않도록 띄워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은동은 놀라서다시 도망가려했으나 돌리자 홍두오공의 독이 자신의 앞에 휘익 하고 떨 어졌다. 한 발이라도 움직이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보자 은동은 도망갈 기운조 차 빠져 버렸다.
‘아이고 맙소사.. 이제 다 틀렸다.’
은동은 맥이 풀려 버렸다. 은동의 눈에 이제 손밖 에 보이지 않는 태을사자가 들어왔다. 자신도 저 꼴 이 되어 홍두오공에게 잡히고 마는 것인가? 홍두오 공의 대가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은동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캬아악—!”
그런데 다음 순간, 홍두오공의 고통에 가득찬 멱따 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동은 깜짝 놀라서 눈을 떴 다. 그리고 믿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홍두오공은 목에 혈겸을 깊숙히 박고 고통에 못이겨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저 놈이 목에 칼을 박았지?’
그러나 다음 순간 은동의 의문은 풀렸다. 홍두오공 의 꼬리에 매달려 있던 흑호가 의기양양하게 갈고리 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홍두오공의 꼬리에 질질 끌려가던 흑호는 은동이 함 정을 만든 것과 홍두오공이 그것을 피하고 은동을 잡으려는 것을 모두 볼 수있었다. 홍두오공이 은동 을 약 올리려 혈겸 위에 몸을 놓자, 흑호는 최후의 기운을 모아서 홍두오공의 꼬리를 밀어 올렸던 것이 다. 그러자 홍두오공의 몸은 기울어져서 혈겸에 목 을 찍히게 되었다. 홍두오공은 비록 은동의 얕은 꾀 는 간파했지만, 꼬리에 힘이 센 흑호를 잡고 있었던 사실을 깜박 잊어서 낭패를 당한 것이다. 홍두오공 의 몸은 전체가 두꺼운 껍질로 덮여 있어서 웬만한 무기나 법력의 공격조차 먹히지 않았지만 하필 혈겸 은 목 주위의관절틈을 비집고 박혀 들어갔다. 치명 적이라 할 수 있었다. 홍두오공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 거대한 몸을 마구 굴렸다. 은동도 멈칫하다 가 하마트면 홍두오공의 몸에 깔릴 뻔 했다. 그러자 흑호가 뛰어 오르면서 은동에게 소리쳤다. 흑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몰골이었고 기운도 거의 빠져 버린 듯 싶었으나 목소리만은 우렁찼다.
“꼬마야! 어서!”
흑호는 소리를 지르면서 홍두오공의 목을 감아 쥐 었다. 홍두오공은 몸을 비틀면서 난리를 쳤으나 흑 호에게 목을 잡히자 벗어날수가 없었다. 흑호도 전 력을 다해 홍두오공의 목을 잡고 버티고있었다. 홍 두오공의 가시며 작은 뿔들이 흑호의 몸에 박혀 들 어갔으나 흑호는 개의치 않았다. 흑호가 죽을 힘을 다하여 홍두오공의 머리를 잡자 홍두오공의 다른 몸 은 마구 날뛸 지언정 홍두오공의 대가리만은 고정되 었다.
“어서!”
흑호는 다시 소리를 쳤다. 은동은 흑호가 무엇을 하라고 소리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흑호 는 지금 죽을 힘을 다해 버티는 중이라 전심법을 쓸수도 없는 듯 했다.
‘이 놈을 죽이라는 건가? 아니면…’
다음 순간 은동은 흑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내 었다. 인혼주로 태을사자가 거의 빨려 들어가고 있 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태을사자가 갇혀 들어 가는 인혼주를 부수라는 말이 틀림 없는 것 같아서 은동은 백아검을 쥐고 힘껏 인혼주를 향해 찔렀다. 그러나 은동의 검은 빗나가서 홍두오공의 네 개의 눈 중 하나를찔렀다. 그러자 홍두오공은 더더욱 고 통을 느낀 듯 고개를 흔들며 힘을 썼다. 흑호는 그 러자 더더욱 버티기가 힘든 듯 으르릉거리며 소리를 지르며 용을 썼다. 은동은 당황하여 다시 홍두오공 의 눈에 박힌 백아검을 빼려 했으나 잘 빠지지 않았 다. 은동은바둥거리면서 발로 홍두오공의 머리를 버 티면서 백아검을 빼려했는데 그 통에 홍두오공의 목 에 박힌 혈겸을 건드렸다. 그러자혈겸은 안으로 푹 더욱 깊숙히 찔러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백아검은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은동은 뽑으려던 백아검을 위로 그었다. 그러자 홍두오공의 대가리가 쫙 갈라 지면서 온갖색깔의 더러운 물이 튀어 나왔다. 그리 고 인혼주는 백아검에 밀려 쑥 빠져나와 땅에 떨어 져 버렸다. 그리고 백아검도 빠졌고 그 서슬에 은동 은 균형을 잃고 홍두오공의 머리에서 미끄러져 떨어 졌다. 땅에떨어진 인혼주에서는 이제 태을사자의 소 맷자락과 손가락 끝 밖에는 나와있지 않았다. 그런 데 은동은 땅에 넘어지면서 백아검을놓쳐 버렸다. 은동은 급한 나머지 손으로라도 잡고 태을사자를꺼 내려고 인혼주를 손으로 잡았다. 그 순간 뭔가 번쩍 하는 빛이나면서 은동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흑호가 다시 눈을 뜨자 홍두오공의 거대한 몸뚱이는 이미 힘을 잃어 서서히 스러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흑호의 눈 앞에는 쓰러져 있는은동과 공중에 조금 떠 있는 태을사자의 모습만이 보였다. 홍두오공은 이미 목에 혈겸이 박히고 백아검으로 눈이 뚫리고 머리가갈라진 데다가 인혼주를 뽑혀서 죽어 버린 것 같았다. 홍두오공의 거대한 몸은 삽시간에 검은 색 가루가 되어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흑호는 어안이 벙벙하여 흩어져 가는 홍두오공의 가루들을바라보다 가 태을사자를 쳐다 보았다. 태을사자는 지치고 매 우 놀란 것 같았으나 정신은 차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유? 그 빛은?”
그러자 태을사자는 쓰러져 있는 은동을 보면서 자 신도 믿을 수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홍두오공의 구슬.. 이 아이의 몸에 들어갔네.”
“엑? 뭐라구? 그러면 은동이는 어떻게 되는 거 유?”
그러나 태을사자는 다음 순간, 뭔가가 느껴지는 듯 멈칫하더니백아검을 집어 들었다.
“저 쪽에도 적이 있나?”
그리고 태을사자는 흑호가 말하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백아검을 든 채 저 쪽으로 사라져 갔다. 흑호 는 그제서야 온 몸이 욱신거리는 아픔이 느껴져 왔 으나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은동의 몸을들어 안았다. 비록 은동의 꾀가 그대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은 은동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과 태사자는 모 두 홍두오공에게 당해 버렸을 것이다. 흑호는 이 아 이가 자신을 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 다.
‘대단한 꼬마여. 암, 대단하지. 이 흑호, 오히려 이 꼬마에게 목숨을 빚진 셈이 되었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