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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27화


그날을 시작으로 사람들 앞에 검을 들고, 부적을 들고, 십자가를 들고, 바람과 불을 부리며 사람들 앞에 나서 몬스터를 물리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속세를 떠나 지내던 은자(隱者)들이자 기인(奇人), 능력자. 즉 가디언이었다.

중간 중간의 몇 단어들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 들은 이드와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외(世外)의 고인과 기인분들이라…. 그분들은 여간해서는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시는데. 상황이 생각 외로 나빴던 모양이네요.”

진혁은 이드의 말에 자신이 생각한 대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 말 대로네. 그 분들도 여간해서는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시지만, 그대로 둔다면 사람들이 너무 많은 피를 흘려야 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리신거지. 그 분들이 모습을 들어내심으로 해서 조금의 여유를 가지게 된 사람들과 군대와 정부는 그분들 중 몇몇 분의 이야기로 차츰 현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네.”

그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지금 나타나 인간들을 공격하고 산과 강을 차지하고 있는 저 몬스터라는 종족은 무슨 소설에서와 같이 다른 차원에서 온 생명체나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세계의 생명체라는 것. 그들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 인간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렸던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잊혀진 것은 아니었다. 몇몇 인간의 영혼 속에 그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 귀신 이야기나 설화,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만화와 게임, 그리고 환타지 소설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덕분에 속속 모습을 들어내는 몬스터들의 이름을 따로 지을 필요도 없었고 그들의 특징을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런 이유로 몬스터들의 약점과 생태를 알기 위해 국가에서 제일 먼저 찾은 것은 과학자와 생물학자들이 아니라 환타지 소설가와 만화, 게임 제작자였다고 한다. 둘째는 인간들에게서 잊혀졌던 존재가 왜 갑자기 돌아온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고인들과 기인들이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위의 사실도 그들이 스승을 통해 들었던 내용이거나 어떤 고문서들, 또는 각파에 전해 내려오는 서적들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몬스터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몇몇의 인간들뿐이다. 고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었다.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나서 급히 고대의 경전들과 고서적들을 뒤적여본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낼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봉인이었다. 오래 전 인간과 몬스터가 함께할 시절,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 이들 몬스터들과 유사인종이라는 엘프, 드래곤과 같은 존재들이 인간과 따로 떨어져 봉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성이 마지막으로 보내왔던 그 영상이 봉인이 해제되는 모습이었다고 보면 상당히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였다. 물론 확실한 사실은 아니고 가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외에 몇 가지 설명을 전해 들은 사람들과 각 정부는 어느 정도 상황과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됐지. 덕분에 우왕자왕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대량의 화력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던 군대도 소설이나 게임, 그리고 도우러 온 고인들께 도움을 얻어 나타나는 몬스터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기 시작했지. 자네도 오늘 봤는지 모르겠지만, 저 와이번을 한 대의 전투기로 상대하던 모습을 말이야. 처음에는 헬리콥터나 전투기가 한 대 더 투입되었었으니까 군도 몬스터에 상당히 익숙해졌다는 말이 되겠지. 시민들도 안정을 찾아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수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집을 짓고 몬스터를 막기 위한 방책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기 위해서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투자됐지.”

이드는 진혁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허둥대며 치루는 전투와 여유 있게 안정적인 태도로 치루는 전투는 천지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림에서 본다면 이제 강호에 발을 들인 강호 초짜와 격어 볼일은 다 격어본 강호의 백전노장 간의 차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럼 가디언이라는 건 그 분들을 가리키는 말이군요.”

“맞아, 그 중에서도 몇몇 곳을 맡아 보호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쓰이는 말이고 능력은 있지만 아직 완숙되지 않았거나 어떠한 곳에 매여 있지 않은 사람들은 아까 말한 것과 같이 능력자라고 부르지.”

“그럼, 아저씨… 라고 불러도 돼죠? 아까 들으니까 아저씨도 가디언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요.”

이드의 말을 들은 진혁은 조금 쑥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단한 능력은 없지만 그런 말을 듣고 있지. 그렇다고 내가 기인은 아니야. 단지 좋은 스승님을 만나 사람들을 지킬 만큼 칼(刀)을 쓸 수 있다는 것 뿐이야. 자, 그럼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겠지? 천화군. 자네 능력자인가?”

진혁의 질문에 아는 이야기라 진혁의 말을 흘려듣고 있던 주위의 이목이 다시 이드에게로 쏠렸다. 이드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라미아를 돌아보고는 싱긋 하고 웃어 보였다. 이곳에도 몬스터가 있다고 하니 능력자라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세울 만한 건 아니구요. 할아버지께 조금 배운 정도예요.”

진혁은 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이드에게서 할아버지와 함께 산속 깊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은거 중인 기인이 아닐까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이드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자네 할아버지 성함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아는 분인가 해서 말이야.”

이드는 진혁의 말에 갑자기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 마음속으로 사죄를 드리며 궁황의 이름인 문태조(文跆調)라는 이름에서 성만 바꾸어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태조라는 이름을 쓰십니다.”

“태조 어르신이라…. 예태조… 허허, 내 견식이 아직 짧아 그 분의 성함을 모르겠구만, 혹시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지만 괜찮다면 자네가 그 분께 배운 게 무엇인지 말해 주겠나? 그분의 성함 만으로는 어떤 분인지 모르겠구만.”

이드는 진혁의 말에 잠시 머리를 굴리다 일리나와 일란 등에게 가르쳐 주었던 금강선도와 금령단공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금강선도는 도가에서 처음 입문할 때 익히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정심한 것이었기에 알고 있지만 금령단공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느새 와이번을 대형 트럭에 실는 작업을 끝낸 청년이 다가와 라미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청년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준비를 명령한 진혁은 다시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내 견식이 짧은 모양이야. 그보다 자네들도 같이 가지. 이곳이 어딘지도 몰랐으니 길도 모를 테고, 같이 가면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주겠네. 자네와 저 라미아라는 아가씨가 갑자기 없어진 덕에 할아버지가 꽤나 걱정하고 계실 테니 말이야.”

이드는 중국으로 보내 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까 하다가 중원으로 간다 해도 이곳과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원래 생각해 놓은 대로 얼굴에 조금 슬픈 기색을 띄우며 고개를 내 저었다.

“아니요. 할아버지께서는 두 달 전에 돌아가셔서…..”

“저런…. 미안하게 됐네. 그럼, 중국에 다른 친척 분들은 계시는가?”

이드는 이번에도 고개를 내 저었고 진혁은 그런 이드와 라미아를 보며 측은한 기색을 띄우며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들려오는 서웅의 출발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말과 함께 이드와 라미아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차 안에서도 이드와 라미아의 문제를 생각하던 진혁은 차가 살길을 벗어나 도로에 접어들 때쯤 좋은 생각이 났는지 정신없이 차 안과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드와 라미아를 불러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자네들이 꼭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라면 한국에 머무르는 것은 어떻겠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 자네에게 말했다시피 고스트라던가 새도우, 그리고 그 외 몇몇의 몬스터들은 현대식 과학 무기로는 대항이 거의 불가능하지. 거기다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대량으로 무기를 사용할 경우 민간인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고. 그래서 그런 일에는 능력자나 나와 같은 가디언들이 나서는데. 지금의 상황으로는 그 가디언의 수가 한참 부족한 형편이야. 교황청의 성 기사단과 사제들, 불교계의 나한들과 불제자들을 다 합해도 세계에 퍼져 있는 도시들과 사람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지. 해서. 전 세계의 정부와 각 종교계가 합심해 가디언이 될 소질을 가진 사람들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게 바로 각 나라의 수도에 세워져 있는 ‘가이디어스’지. 천화 자네도 무공을 익혔지 않은가. 그렇다면 충분히 ‘가이디어스’에 들어갈 수 있어. 이곳은 인류 차원에서 설치된 것이기에 학비 같은 건 아예 없어. 거기다 완벽한 기숙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주 문제도 걱정 없고, 저번에 가봤는데 거의 아파트 수준이더군. 그리고 사정을 이야기하면 라미아양도 같이 머무를 수 있을 거야. 어떤가? 자네가 들어가겠다면 내가 이야기해주겠네.”

“음…. 잠시만요. 잠깐만 라미아와 상의해 본 후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얼마 걸리진 않을 겁니다.”

이드는 진혁에게 그렇게 대답하고는 라미아를 돌아보며 중원에서 사용하던 말로 라미아에게 물었다. 라미아와의 대화 내용을 듣고 진혁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라미아, 니 생각은 어때?”

“저는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런 교육기관이라면 이 세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배울 수 있을 거구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가이디어스’라는 곳에 매여 있어야 할 텐데. 나는 그런 건 싫거든.”

“칫, 이드님이 간다고 그러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어요? 그냥 나와 버리면 되지. 아니면 몇 가지 일을 해결해 주고 슬쩍 빠져나가도 될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그 ‘가이디어스’라는 곳이 그렇게 강제성이 강한 곳은 아닌 것 같거든요.”

라미아의 말을 들은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미아의 말대로 나쁠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하지 뭐. 당장 해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니까.”

“그렇게 하세요. 참, 그런데 꼭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아파트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드님과 저는 신혼인데… 이드님, 우리 기숙사에 있지 말고 그냥 집을 한 채 사서 신혼 분위기 내며 사는 게 어때요? 보석도 많잖아요.”

방글방글 웃으며 말하는 라미아의 모습을 본 이드는 곧 고개를 돌려 진혁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꼭 기숙사에 머물게 해주세요!”

방글방글 웃으며 말하는 라미아의 모습을 본 이드는 곧 고개를 돌려 진혁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꼭 기숙사에 머물게 해주세요!”

가이디어스. 지금의 현대식 무기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나 고스트, 새도우 등의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적 규모의 가디언 교육 학원으로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가이디어스를 경영하기 어려운 몇몇 중소국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의 수도에 자리잡고 있다. 또 앞으로의 가디언들을 양성하는 곳이자 앞으로 사람들을 지켜 나갈 중요한 인력들이기에 가이디어스가 자리한 각 국가에서는 가이디어스에 할 수 있는 최상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 덕분에 학원의 건물과 강당, 기숙사 등은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오죽하면 진혁이 기숙사를 아파트라고 했겠는가.

그리고 그런 대우를 받고 있는 가이디어스는 총 다섯 개의 전공 과목으로 나뉘는데, 나이트 가디언, 매직 가디언, 스피릿 가디언, 가디언 프리스트, 연금술 서포터가 그 다섯 가지이다. 먼저 나이트 가디언, 가이디어스에서 가장 많은 학생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그 나라에서 뽑힌 성황청의 성 기사들과 불가의 나한(羅漢)들, 그리고 가이디어스를 지원하기 위해 와 있는 기인이사들에게서 사사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무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속해 있다.

그리고 나이트 가디언 다음으로 학생 수가 많은 매직 가디언. 이곳은 동서양의 마법과 주술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곳이자 연금술 서포터와 함께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곳이다.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서양의 백마법과 흑마법. 그리고 동양의 기기묘묘한 주술들과 부적술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매직 가디언은 가이디어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이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면접을 봐야 한다. 마법에 전혀 소질이 없는 사람이 이곳에 들어오게 되면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피곤해질 뿐이기에 애초에 다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 뒤를 스피릿 가디언과 가디언 프리스트가 있고 있는데, 스피릿 가디언과 가디언 프리스트의 특성상 선천적인 자질을 가진 아이들이 7, 8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기에 이곳은 지원한 다기보다는 뽑혀서 들어가는 곳이라고 보고 있다. 염력과 텔레파시가 스피릿 가디언에 속하며, 강신술과 소환술 등 밀교의 주술을 하는 매직 가디언의 아이들 몇몇이 스피릿 가디언을 겸하고 있으며, 성 기사들과 불가의 나한들 몇몇도 이곳의 가디언 프리스트를 겸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금술 서포터. 이곳은 수제들만 모아 놓은 곳이다. 따로 특별한 능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계산 능력 등으로 매직 나이트나 나이트 가디언, 스피릿 가디언들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주술에 쓰이는 부적과 성수, 그리고 동양의 단약 등을 제작하는 곳이다.

하지만 무조건 이 다섯 가지 과목만을 교육시킨다는 것은 아니고, 보통의 학교 생활에서 배우는 내용들 역시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보통의 학교처럼 학업에 매달리지만은 않는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가이디어스 가디언 교육 학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이곳에 입학하고 처음부터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 이 개월 가량 위의 다섯 가지 과목을 경험해 본 후에 자신의 전공을 정하게 된다. 세워진 지 여섯 달이 채 되지 않지만 상당히 짜임새 있고 체계적인 곳이라 하겠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 세워진 가이디어스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있는 곳이 있는데, 성 기사와 마법이 발달했던 영국과 프랑스, 스코틀랜드와 동양의 내공을 기초로 하는 무공과 밀교의 주술 수법들을 배울 수 있는 중국, 한국, 일본, 티벳이었다. 각국의 가이디어스에 똑같은 과목이 있기는 하지만 처음 술법들이 발달했던 곳이 더 뛰어날 것이라는 생각에서인지 각자의 개성에 맞게 동서양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곳. 한국의 수도 서울에 세워져 있는 가이디어스의 정문 앞에 천화(이드)와 라미아, 그리고 그들을 이곳으로 안내해 온 진혁이 서 있었다. 특히 이곳에 오는 동안 차와 건물, 기차의 모습에 신기해했었던 천화와 라미아는 눈앞에 보이는 가이디어스의 규모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있었다.

“후아~ 엄청난 규모네요. 여기 오면서 몇 개 커다란 건물을 보긴 했지만…”

“정말이요. 이드님…. 어, 저기. 저 건물 좀 보세요. 상당히 특이한 모양인데요.”

“국가 단위로 지원해 주는 곳이니까 규모가 클 수밖에, 거기다 거의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깨끗하지. 그리고 저건 가이디어스의 기숙사란다. 라미아. 자, 두 사람 다 이쪽으로 와봐. 내가 간단히 설명해 줄 테니까.”

정신없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가이디어스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을 잡아 끈 진혁은 교문 옆쪽에 붙어 있는 녹색의 커다란 게시판 겸 가이디어스 배치도를 가리키며 가이디어스의 주요 건물들을 설명해 주었다.

“먼저 이 요(凹)자 형태의 건물이 가이디어스의 본관 건물이자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곳으로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 가장 지겨워하는 곳이기도 하면서 집처럼 생각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모두 7층으로 각 층마다 12개의 반이 자리하고 있어. 각 반의 인원은 30명 정도로 현재 이 학교에 있는 1학년에서 5학년까지의 총 학생 수는 21…. 50 명이던가? 원래 수용 인원은 2600명까지니까 450명 정도 모자란 숫자지. 덕분에 한 층은 완전히 비어 있다고 하던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본관을 중심으로 양옆과 뒤쪽에 세워져 있는 이 건물들은 가디언들의 실습장으로 여기 팔각형의 건물은 나이트 가디언의 실습장, 그리고 이 오각형의 건물은 매직 가디언, 또 이 육각형은 스피릿 가디언과 가디언 프리스트들의 실습장인데… 산을 끼고 있는 데다가 학생들에 의해 깨끗이 손질된 숲이라 경치가 꽤나 좋지. 학생들이 고생한 보람이 있는 곳이야.”

“잠깐만요. 다섯 개의 전공 중에서 연금술을 전공하는 실습장이 빠진 것 같은데요. 그쪽은 실습장이 없나요?”

진혁은 자신의 설명 중에 빠진 부분을 정확하게 집어낸 라미아를 보면서 씩 웃어 주고는 세 개의 실습장이 자리한 숲과 본관 앞쪽의 경기장 만한 운동장을 짚어 보이며 대답했다.

“없는 게 아니라 일부러 만들지 않은 거지. 아직은 없었지만 언제 소설책이나 만화에서와 같은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라서 대부분의 실험을 이 숲 속이나 운동장에서 하고 있지. 그리고 몇 가지 작은 실험들은 교실에서 하고 있고.”

“그래도, 아예 만들지 않았다는 건 좀 그렇네요.”

“그건 걱정 말게 천화 군. 연금술 서포터 쪽에서 필요로 한다면 학원 측에서 언제든 지어줄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그런 요청은 없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아까 지적했던 기숙사. 좀 특이한 모양이지? 중앙에 둥그런 건물에 네 방향으로 쭉쭉 뻗어 있는 건물 모양이니까. 하지만, 이래 봬도 건물의 균형과 충격을 대비해서 일부러 이렇게 지은 거야. 여기 중앙 건물은 선생님들의 숙소와 식당, 휴식 공간 등이 모여 있고 여기 앞쪽으로 나와 있는 건물과 이쪽 건물이 남학생 기숙사, 그리고 이쪽 뒤쪽과 이쪽 건물이 여학생 기숙사야. 자네 둘도 이곳에 머무르게 될 거야. 그리고 라미아는 걱정하지 마. 두 사람 같이 있도록 해줄 테니까. 자, 그만 본관으로 들어가자.”

“호홋, 감사합니다.”

“그, 그건…. 하아~~”

진혁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두 사람은 진혁의 마지막 말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고는 진혁의 뒤를 따랐다. 아직 라미아가 사람이 된 지 살짝밖에 되지 않았기에 라미아에게 한쪽 팔을 내주고 걸음을 옮기던 천화는 생글거리며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라미아를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두 사람 역시 각각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로 나뉘어져야겠지만, 라미아의 사일간에 이르는 끈질긴 요청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진혁이 라미아의 부탁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타국에 와 있는데 천화와 떨어질 수 없다는 라미아의 말과 목욕할 때와 화장실 갈 때 빼고 항상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혼으로 맺어진 사이기에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말에 허락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도 천화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번 라미아에게 말해 봤지만, 그레센 대륙에서 했던 어딜 가든 항상 함께 한다는 약속 때문에 한숨과 함께 조용히 포기해야만 했었다. 거기다 진혁의 말로는 이곳 가이디어스의 부학장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까지 했으니…

진혁의 뒤를 따른 천화와 라미아는 잠시 후 본관의 중앙 현관을 지나 일층에 자리한 교무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선생님의 수가 많은 만큼 커다란 교무실은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몇 개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비어 있었다. 진혁은 그런 교무실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교무실 제일 안쪽 자리에 있는 그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슬쩍 미소를 띠우며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그가 앉아 있는 책상 위에는 부학장 신영호라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이 친구, 사람이 오면 본 척이라도 해야 될 거 아니냐. 상당히 바쁜 모양이지?”

“아, 항상 그렇지 뭐. 거기다 학장님도 나 몰라라 하시니 나 혼자 죽어 나는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니가 도망갈 때 나도 같이 가는 건데 말이야… 으읏…. 차!!”

진혁의 말에 그제서야 고개를 든 영호라는 남자는 한탄조로 몇 마디를 내뱉더니 길게 몸을 펴며 진혁의 뒤에 있는 천화와 라미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애들이냐? 니가 말한 애들이.”

“그래, 흔치 않은 경험을 한 애들이지. 이쪽은 예천화, 이쪽은 라미아.”

“처음 뵙겠습니다. 예천화라고 합니다.”

“라미아라고 합니다.”

“어서 오게. 나는 이곳 가이디어스의 부 학장직을 맡고 있는 신영호라고 한다. 그럼 자리를 옮길까. 그리고 조 선생님. 좀 있으면 수업이 끝날 것 같은데, 정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학장실로 오시라고 좀 전해 주세요.”

영호라는 부학장은 조 선생이라는 반 대머리 남자의 대답을 들으며 진혁과 천화, 라미아를 학장실로 안내했다. 학장실 내부는 상당히 깨끗하면서 검소했는데, 언뜻 봐서는 학장실이 아니라 어느 가정집의 서재와 비슷해 보였다. 다른 점이라고는 영호가 천화와 라미아에게 앉으라고 권한 중앙에 놓여진 갈색의 푹신한 느낌을 주는 소파 정도였다.

“그래, 천화하고 라미아라고 했던가? 내가 이 녀석에게 들은 바로는 상당한 실력이라고 하던데.”

영호가 진혁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천화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진혁 앞에서 난화십이식의 현란한 초식을 선보인 적이 있었다. 비록 내공을 실어 펼친 것은 아니었지만, 난화십이식의 현란함과 난해함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고, 그런 이드의 모습에 진혁은 상당한 감명을 받은 듯 했다. 거기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을 줄 알았던 라미아까지 몇 가지 간단한 라이트 마법을 선보임으로 해서 천화에 딸려 가이디어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진혁은 그런 내용을 영호에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이어 몇 가지 자잘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사이 “따라다다단따” 하는 듣기 좋은 종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교무실이 시끄러워질 무렵 또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학장님 부르셨습니까?”

“아, 들어오세요. 정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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