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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31화


그리고 이어 펼쳐진 난화십이식에 따라 천화의 몸 주위로 은은한 황금빛을 띤 손 그림자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후우웅… 우웅…

난화십이식에 따른 초식을 펼쳐 보이는 천화의 손을 따라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바람이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러 손에만 펼치고 있고 그 기운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내력이 운용된 결과물이었다.

지금의 힘만으로도 오크 정도는 가볍게 요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기운은 아직 무공의 형(形)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보다 담 사부가 먼저 느끼고는 놀란 얼굴로 지금까지 짓고 있던 미소와는 다른 묘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천화 때문이었다.

그런 놀람의 시선 속에서 난화십이식을 펼치던 천화는 이쯤이면 됐겠지 하는 생각에 자신의 주위를 은은한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난화십이식의 사초 혈화를 끝으로 내력을 가라앉히고 자세를 바로 했다.

양손을 편하게 내리고 고개를 들던 천화는 자신에게 향해 있는 백여 쌍의 눈길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그런 천화의 모습이 신호가 되었는지, 지금까지 감탄의 눈길로 바라만 보던 아이들이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쳐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 중 요상하게 눈을 빛내는 몇몇 여학생의 모습에 움찔하는 천화였다.

눈빛이 몽롱한 것이… 왠지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천화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혈화를 펼치고 자세를 바로 하는 천화의 모습, 더구나 혈화로 인해 주위에 맴돌던 황금빛이 급히 사라지는 장면이 더해져 마치 순정 만화의 한 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왠지 앞으로 천화의 생활이 상당히 피곤해질지도…

여학생들의 눈빛에 당혹해하던 천화는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담 사부의 모습에 당혹감을 지우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담 사부의 얼굴에는 다시 처음과 같은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한 실력이야… 이거, 내가 자네에게 가르칠 게 없겠어.”

“아니요. 담 사부님이 좋게 봐주신 거죠.”

천화의 말에, 생각도 못한 천화의 모습에 멍해 있던 태윤이 고개를 돌려서는 뻐기냐는 듯 말했다.

“진짜 대단하긴 하네. 그걸 겸손이라고 하는 거야?”

담 사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하하하… 너무 겸손해할 필요는 없어. 그 정도라면 4학년, 아니 5학년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실력이거든… 어떻게 된 일이기에 2학년에 들어온 건가?”

담 사부의 말에 천화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난화십이식을 펼치는 천화의 모습을 보고, 진혁과 영호가 의논 끝에 2학년에 넣자고 말한 것이지만 사실 그때는 전혀 내력을 끌어올리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이었다.

만약 천화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진혁 앞에서 보였다면 4학년이나 5학년, 아니면 아예 가이디어스에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천화가 그런 이야기를 간단히 하자 담 사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실력에 2학년이라니….”

담 사부의 말에 학생들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방금 전 보여준 모습은 아직 자신들로서는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보았다 하더라도 선생님이나 5학년 선배 몇몇을 통해서였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천화와 담 사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저희와 같은 나이에 유형(有形)의 장력(掌力)을 뿜어내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본 건 전부 사부님들이나 4학년, 5학년 선배들을 통해서였거든요.”

“맞아요. 사부님,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죠?”

두 소년의 말에 담 사부가 천화를 한번 바라보고는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건 아마 천화가 어릴 때부터 수련을 했기 때문일 것 같구나… 그리고 천화가 익힌 내공심법도 너희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고… 내 생각엔 금강선도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금령단공의 상승 내공심법 때문인 것 같은데… 너희들도 알겠지만 약 650년 전의 일 때문에 대부분의 무공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개중에 몇몇의 상승 무공이 남아서 그 맥(脈)을 잇고 있는데… 아마 금령단공이 그중의 하나인 것 같다.”

담 사부의 말을 듣던 천화는 그 말 중에 하나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650년 전의 일이라니?… 내가 사라지고 난 후의 이야기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이야?’

천화가 그런 생각에 담 사부를 향해 물으려고 했지만, 천화의 말보다 태윤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제가 듣기론 그런 고급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고 했는데… 으… 부러운 녀석. 그 외모에 라미아 같은 여자친구에 고급 무공까지…. 후~ 천화야. 나 그거 가르쳐 주면 안 되냐?”

태윤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별다른 기대를 가지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무협소설이나 옛날 이야기에도 지금도 그렇지만 자신의 무공이나 기예를 함부로 타인에게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가이디어스에서 가르치는 무공이나 술법도 불문이나 도가, 그리고 몇몇의 기인들이 인류 차원에서 내어놓은 것이지만, 몇 가지에 있어서 핵심적이거나 가장 강력한 무공이나 술법 등이 빠져 있었다.

이것은 함부로 알려주지 않고 배우려는 사람이 완전히 자신들의 제자가 된 다음에야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물론 담 사부와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천화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거절하는 이유는 달랐다.

“안돼. 금령단공을 익히려면… 태윤이 너 무슨 내공심법을 익혔지?”

그냥 거절할 줄 알았던 태윤은 천화가 무언가 이유를 말하는 듯하자, 그게 해결되면 배울 수 있을까 해서 자신이 익힌 내공심법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패력승환기(覇力承還氣)를 익혔는데… 그건 왜 묻는데?”

“패력승환기… 모르겠는데… 그게 어떤 심법인데?”

천화의 질문에 옆에서 듣고 있던 담 사부가 설명해 주었다.

패력승환기는 가이디어스에 기증되어지고 수집된 무공들 중 하나로, 제법 듬직한 체구에 탄탄한 몸을 지닌 태윤이 고른 내공심법이다.

이것은 패력이라는 말 그대로 현묘함이나 어떤 오묘한 부분을 빼 버리고 오직 힘만을 추구하고 상대를 때려부수는 데 그 목적을 둔, 단순무식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심법이었다.

담 사부의 설명에 과연 그렇다는 생각에 피식 웃어 보인 천화가 말을 이었다.

“흠흠… 금령단공을 익히려면 말이야, 다른 내공운기법을 전혀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야 돼. 아니면, 익히려는 사람의 내공심법이 금령단공과 비슷한 종류로… 불문이나 도가 상승의 내공심법이어야 해.

여기서 패력승환기는 전혀, 절대, 조금도 금령단공과 비슷한 점이 없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힘든 일인데… 금령단공을 익히려는 사람의 내공이 최소한 2갑자, 만약 네가 익힌 단순 무식한 내공심법과 같은 것이라면 3갑자 이상은 돼야 돼. 3갑자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천화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태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담 사부에게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천화가 말한 세 가지 방법 모두 학생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1학년에 입학하며 어떤 종류가 되었든 가이디어스에 있는 한 가지 내공심법을 배우게 되는 학생들에게 -혹시 신입생이라면 모르겠지만- 첫째 조건은 택도 없는 소리였다.

또 둘째 조건 역시 말도 안 되는 것이었는데, 불가나 도가의 상승 심법이 있다면 금령단공이라는 상승의 심법은 익힐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황당한 것. 3갑자의 내공이라니… 3갑자라는 내공력은 지금 현재 활동 중인 가디언들 중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내공 수위로, 3갑자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 정도는 되어야 익힐 수 있다니… 이건 익히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때문에 태윤은 천화의 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는 담 사부를 향해 말했다.

“천화가 금령단공이라는 걸 보여 주었으니 이제 사부님 차례입니다. 이번엔 저번처럼 검법만 보여주시지 마시고 천화처럼 검기도 보여 주세요.”

“맞아요. 이번엔 사부님의 검기도 보여 주세요.”

두 소년의 말에 천화의 설명을 들으며 뭔가 생각하던 표정이던 담 사부가 원래의 미소를 보이며 손때 묻은 목검을 들어 보였다.

그런 목검에 아이들의 요청에 답하는 듯한 뽀얀색의 구름과 같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담 사부의 검법은 태윤의 설명 그대로 선비가 유유자적 산책을 나온 듯한 모습으로 어린아이가 나무 막대를 휘둘러도 맞출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검기를 머금은 목검이 담 사부의 주위를 맴돌며 마치 구름과 같은 모습을 형성하자, 순식간에 담 사부의 분위기가 바뀌어 구름 위를 걷고 있는 신선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천화는 그런 담 사부의 모습에 문운검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담 사부의 모습은 그때의 문운검과 상당히 비슷했던 것이다.

그렇게 검법을 모두 펼쳐 보이고 나자 방금 전 천화와 같이 아이들에게서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담 사부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빙그레 웃어 보이고는 수업을 시작하자는 말을 했고, 그 말에 아이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던 목검을 조용히 들어 만검(慢劍)으로 운운현검의 몇몇 초식을 따라 펼쳤다.

천화도 한옆에서 담 사부에게 받은 목검을 들고 태윤과 호흡을 맞추어 조용히 검을 움직여 나갔다.

그러기를 한 시간을 하고 난 후 한 시간 정도 담 사부의 검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그때부터 마지막 끝날 때까지는 각자의 무공을 수련하고 담 사부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수업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천화에게 물으러 오는 몇몇 여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녀들이 천화에게 다가올 때는 주위 남학생들의 질투와 부러움 섞인 눈길도 같이 따라와 천화로 하여금 아까 전 느꼈던 불안감이 이것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시간이 가까워 매직 가디언의 수업을 마친 라미아가 운동장 한쪽에서 기다리다 담 사부의 수업이 끝났다는 말과 함께 환하게 미소지으며 자신에게 달려와 안기는 모습으로 인해 자신에게 향하는 남학생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삽시간에 세 네 배로 증가하자, 이것이 불안감의 원인이었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는 천화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자신의 팔을 안으며 활짝 웃어 보이는 라미아의 모습 덕분에 오래가지는 못했다.

“호호…. 천화님. 여기 학교라는 곳 꽤나 재미있는 곳이에요. 사람들 모두 친절하고요.”

“후후… 그래, 그렇겠지. 특히 남자들이 친절하지?”

“호호호… 제 미모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그렇죠. 하지만 저에겐 언제나 천화님 뿐이에요.”

하지만 이번엔 천화도 라미아에게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뒤쪽에서 느껴지던 압력이 지금 라미아의 말과 함께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눈빛이 꽤나 앞으로도 자주 따라붙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천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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