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32화
그리고 그런 눈빛이 앞으로도 자주 따라 붙을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천화였다.
딸깍…. 딸깍….. 딸깍…..
“오렌지 쥬스야. 마셔. 그래 오늘… 꿀꺽… 하루 학교 생활을 해보니까 어때? 재밌니?”
천화는 자신들과 따라 저녁식사를 마치고 들어온 연영이 건네는 노란색의 오렌지 쥬스 잔을 받아 마시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옆에 앉아 있던 라미아가 말을 이었다.
“네, 친구들도 새로 생고, 또 이런저런 새로운 것도 보게 되구요. 모두 저희들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던걸요.”
“특히 남자들이 그렇겠지? 호호홋…..”
“헤헷…. 당연하죠.”
서로 마주보고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깔깔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천화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며 아직도 조금 어색한 TV 리모콘을 가지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댔다. 하지만 마땅히 볼만한 걸 찾지 못한 천화의 귀로 웃음을 그친 연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음… 맞다. 그런데, 너희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실력이 대단한가 보더라?”
“네?”
두 사람이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연영이 말을 이었다.
“아니, 교무실에서 업무를 마치면서 오늘 나이트 가디언 과목하고 매직 가디언 과목에 들어가셨던 선생님들이 너희들 이야기를 하시더라구. 대단한 실력들이라고. 그런 실력을 가지고 왜 2학년에 들어 온 거냐고 말이야. 적어도 3, 4학년 이상으로 입학했을 실력이라고 말이라고.”
천화는 연영의 말을 들으며 라미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알고 보니 자신만 실력을 내보인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라미아 역시 마찬가지라는 듯이 천화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그 덕분에 이래저래 학생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유명해졌어, 너희 둘. 내가 스피릿 가디언 수업할 때 너희들 이야기가 오고 가는걸 들었거든? 그리고 선생님들에게도 듣고. 학교 온 지 하루 만에 한국의 가이디어스에서 가장 유명인이 된 거지. 그런데 정말 실력들이 어느 정도인 거야? 담 사부님의 말씀대로 라면 천화 넌 무술의 초식에 대해서는 거의 손댈 게 없다고 하시던데? 거기다 모르긴 몰라도 검기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라고. 사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5학년은 되야 되는데 말이야. 그리고 라미아는 3써클 마법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맞지?”
연영의 말에 라미아는 살짝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천화와 라미아가 와 있는 이곳은 무공도 그렇지만 마법도 사라진 것이 많다.
때문에 마법이 가지는 파괴력이나 난이도, 그에 따르는 시전자의 위험부담 등을 고려해 총 8단계, 7써클의 마법과 번외 급으로 나뉘었다. 원래 그냥 아무렇게나 익혀 사용하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게 익히는 사람에게 무리가 되지 않고 그 마법의 난이도를 알 수 있을 듯 해서이고 또 조금은 웃기는 이유이지만 거의 모든 환타지 소설이나 만화에서 그렇게 나누기 때문에 괜히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에서 나뉘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좀 더 설명하자면 1써클에서 7써클까지의 마법은 지금까지 발견되고 비밀스럽게 알려진 마법들을 단계적으로 위의 세 조건에 따라 나뉘어진 마법의 써클로 그레센 대륙에서 나누는 클래스와 비슷하지만 그 수준이 한 두 단계 정도가 낮다. 하지만 지금도 몇 개 해석되지 않은 교황청이나 개인이 깊숙히 감추어 두었던 마법서를 해석하는 중이라 앞으로 각 써클에 드는 마법의 수와 써클의 등급이 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번외 급의 마법. 이것은 상당히 위험하고 그 파괴력이 엄청나다고 알려진 것들로 8써클에 올리자니 7써클과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우선 번외 급으로 따로 편성해 놓고 앞으로 많은 마법들이 알려진 후 그에 맞는 클래스에 끼워 넣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곳 가이디어스의 4학년과 5학년의 수준이 3써클과 4써클, 마법에 소질이 있는 학생은 5써클의 수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라미아가 3써클의
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호홋…. 덕분에 이번 승급 시험은 선생님들이 꽤 기다리시는 것 같더라. 너희들의 실력을 보기 위해서 말이야. 나도 너희들이 실력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니까. 아, 그런데 말이야. 너희 둘 지금까지 쭉 같이 있었다고 했잖아. 그럼 혹시 서로가 쓰는 무술이나 마법. 쓸 수 있는 거 있어?”
연영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잃는다고 했다. 무술과 마법이 그런 차원은 아니지만, 천화와 라미아가 지금처럼 붙어 지냈다면 서로가 쓰는 무술과 마법에 대해 알지 않을까 해서 지나가는 식으로 물은 것이었다.
천화는 연영의 말을 듣는 도중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어 그녀에게 대답과 함께 물었다.
“간단한 것 조금씩은 알아요. 하지만 라미아의 경우는 알고는 있지만, 내력을 운기한 적이 없어서 조금 어려울 거예요. 근데요. 누나, 오늘 담 사부님이 하시던 이야기 중에 650년 전의 일로 인해서 많은 무공들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무슨 이야긴지 알아요?”
천화가 오늘 오전에 담 사부에게 물으려다 묻지 못한 내용을 물었다. 천화의 말에 대단하다고 칭찬을 건네려던 연영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아마 스피릿 가디언인 그녀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일이라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선생은 선생. 연영이 기억이 났다는 듯이 귀엽게 손뼉을 쳐 보였다.
“아, 기억났다. 그래, 나도 여기 들어와서 안일인데,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650년 전 쯤? 그러니까 명(明) 초기쯤에 중국 더 자세히 말하면 소설에서나 나오는 소위 무림에 큰 문제가 생겼었던 모양이야.”
연영의 말에 천화의 눈이 투명할 정도의 빛을 발했다. 650년 이전 명 초라했다. 정확히 몇 년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중원에 나왔을 때 중원을 다스리시던 황제는 명의 태조이신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이셨었다.
“홍무제께서 제위 하셨을 때요?”
“응?….. 어, 그건 잘 모르겠는데. 홍무제 때였는지 아니면 혜제(惠帝)때였는지…. 정확한 년도라든가 하는 게 남아 있지 않거든. 그런데 넌 그 일에 대해 모르니?”
“모르니까 묻잔아요. 어서 말해줘요.”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연영의 말에 천화와 라미아가 다시 연영의 말을 재촉했다. 천화로서는 자신이 사라지고 난 뒤의 중원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궁금하지 그지 없었다. 연영이 이야기 하는 시기라면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휘말려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천화의 일이니 라미아가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때 멸무황(滅武荒)…. 이란의 외호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었다고 했었어.”
이어진 연영의 말에 따르면 정확하진 명 초기 때 무림에 정사(正死)에 상관없이 무림인이라면 무조건 살수를 펴고 무림을 멸망시켜 버리겠다며 나선 멸무황이라는 외호의 봉두난발을 한 인물이 나타났다. 정확하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추측키로 무림에 강한 원한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그의 등장에 처음에 무림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었다. 하지만 만나는 무림인은 모두 죽이거나 불구자로 만들어 버리는 그의 가공할만한 무공에 무림은 차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같이해서 무림의 명문 대파들과 중(中)소(小)문파에서 자파의 무공이 실린 비급과 전수자가 살해되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 몇 개의 중소 문파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그런 일이 구파일방의 아미파와 명문세가인 남궁세가에서 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자 그렇지 않아도 멸무황 때문에 뒤숭숭하던 무림에 커다란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아직 그림자도 보지 못한 비급도둑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멸무황이란 괴인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여럿이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무림에서는 자파의 경계를 강화하고 멸무황이 있다는 곳은 되도록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한달, 두 달, 시간이 지나자 일은 결국 무림전체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되었다. 자파의 비급이 도둑맞고 그 비급을 익히는 전수자가 살해되는 일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삼류 무림문파를 시작해서 정사의 대 문파로 알려진 무당파와 화산파, 그리고 사령성(死領成)과 살막(殺幕)에서까지 일어났으며, 무림인을 죽이고 다니는 멸무황은 그 정도가 심해서 이제는 불구자로라도 살아 나는 사람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정사의 절정고수들까지 죽어나는 실정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정파의 연합체인 정천무림맹(正天武林盟)과 사마(死魔)의 연합체인……
거기 까지 말하던 연영은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에서 몇 가지 이름을 되내었다.
“마황천사(魔皇天死)던가? 아니, 아니….천사마황(天死魔皇)? 이것도 아닌데… 뭐였더라….”
“천마사황성(天魔死皇成)…. 이 이름 아니예요. 누나?”
연영의 중얼거림에 천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연영이 그제야 생각난 모양이지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아. 천마사황성…… 야, 너 이 이름도 알고 있으면서 정말 그 이야기를 모르니?”
천화는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흘기는 연영의 모습에 정말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요. 몰라요. 천마사황성이라는 이름도 우연히 진혁 아저씨에게서 들은 이름이거든요. 그러지 말고 이야기나 마저 해줘요.”
“알았어. 하지만 너 정말 모르는거 맞어? 왠지 너 알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야.”
“하하…. 정말 모른다니까요.”
천화는 왠지 의심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 앞에 얼굴을 들이대는 연영의 모습에 고개를 내 젖고는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러나 두 정과 사의 연합체가 나섰음에도 상황은 쉽게 풀리지가 않았다. 외유하던 각파의 고수들을 자파로 돌려보내고 경계에 세워 이제는 무림공적이 되어 버린 비사흑영(飛蛇黑影)을 경계하고는 있지만 어디 어떻게 나타날지 몰라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또 그렇게 철통같이 경계를 하고 있음에도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비급을 도둑맞은 것이 몇 차례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비사흑영보다 대하기가 쉬울 것 같았던 멸무황의 처리 역시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이 멸무황의 무공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멸무황의 종적(從迹)이 무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일로 인해 가지각색의 억측들이 나돌았지만 이어 일어난 일들 때문에 소리소문 없이 묻혀 버렸다. 바로 무림의 태산북두이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소림사의 무학고인 장경각과, 등천비마부의 보고가 깨끗하게 털려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는 맛보기였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비급이 사라졌다는 소식들이 전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