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51화
과연 그 시험장 위로 커다란 덩치를 가진 김태윤이 올라서고 있었다.
“헛, 너 태윤이 친구 맞아? 어떻게 같은 반에다 같은 나이트 가디언 파트의 친구면서 그런 것도 모르고 있는 거야?”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는 누나는 우리 반에 누구누구가 이번 시험에 나가는지 다 알아요?”
연영의 말에 할 말을 잃은 천화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발심에 되물었다.
김태윤이 이번 승급시험에 응시한 걸 몰랐다는 것이 조금 찔리긴 했지만, 정말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게 꼭 누군가가 말해 줘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웬만큼 신경만 쓰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속한 반의 일에 천화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요모조모 신경 쓰고 알고 있는 연영은 천화의 질문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연영이 담임인 반이니까.
“당연하지. 그걸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 담임이란 이름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구….. 친구 일도 신경 못 쓰는 누구하고는 한참 다른지.”
천화는 여유 있게 대답하는 연영의 말에 끙끙거리며 백기를 내걸고는 김태윤이 올라서 있는 시험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막 시험 시작 신호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태윤이 앞으로 달려나가며 상대를 향해 그 큰 대도(大刀)를 휘둘렀다.
그런 김태윤의 상대는 앞의 4학년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2번 시험장에 올라온, 역시 김태윤과 같이 도를 든 학생이었다.
“후와앗……. 가라. 태산직격(太山直激)!!”
그러나 김태윤의 목소리만큼 우렁차지만 또 그만큼 단순하기 그지없는 공격은 상대의 도에 의해 간단하게 막혀 버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부드럽게 연결되는 상대의 일 도에 김태윤은 허둥거리며 급히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천화와 연영은 한마음 한뜻으로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에휴…. 저 녀석 성격이 너무 급해서 탈이야…..”
“그러게….. 담 사부님 말씀대로 실력이 좋긴 하지만 너무 단순하고 급해. 상대는 이번에 새로 올라와서 그 실력을 파악하지도 못했으면서 저렇게 서두르다니…. 몇 번 시합을 지켜본 상대가 아니라면 먼저 탐색전부터 들어가야 되는 건데…. 에휴~~ 저래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승급하기가 더 어려워질 텐데…..”
천화는 자신의 말에 동감을 표하는 연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저런 급한 성격은 수준 높은 무공을 익히는 데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물론 대범하다거나 용기 있다는 면에서 어려운 상대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울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경우에 따라 그런 좋은 점들을 충분히 깎고도 남을 정도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성격이 바로 이 성격이다.
다른 사람에게나 자신에게나…. 특히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일수록 꼭 고쳐야 할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성격으로 내공을 익힐 경우 그 급한 성격으로 주화입마에 빠지기가 쉬울 뿐더러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무인의 경우 섣부른 결단으로 수하들을 희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헌데 그런 성격을 김태윤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로 인한 실수로 방금 전 한 방에 쓰러질 뻔하기도 했으니….
“이번 시험이 끝나고 나면 저 녀석 성격부터 고쳐 줘야겠네요.”
“그래, 네가 만약 3학년 교사로 임명된다면, 제일 처음 해야 할 일일 거야. 저 녀석 저렇게 급해 보이긴 해도 내 가 볼 땐 이번 시험은 통과할 수 있을 것 같거든…..”
하지만 연영은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다시 한번 튕겨 나가 경기장 끝까지 굴러가는 김태윤의 모습에 말꼬리를 슬쩍 흐릴 수밖에 없었다.
“….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런 연영의 말이 끝날 때 발딱 일어나 다시 덤벼드는 김태윤의 모습에 천화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어 보였다.
하지만 저 돌진성 하나만은 알아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다시 달려나간 김태윤은 상대의 사정권 코앞에서 방향을 바꿔 그 주위를 빙그르 돌았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공격이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고 오히려 두 번이나 시험장 바닥을 구른 김태윤이었지만 그 덕분에 상대인 4학년 선배의 실력과 공격 방식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상대의 공격방식은 많은 도수(刀手)들이 사용하는 강(剛)의 도결이 아닌 검술과 같은 유(柳)의 도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도술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같은 유의 도술을 쓰던가…. 아니면……
“…. 아니면 상대방의 유를 부셔트릴 정도로 강한 강으로 밀어붙이는 거다! 흐압….. 태산만파도(太山萬破刀)!!!”
완벽한 약점이라도 발견한 듯이 허공을 가르는 김태윤이었다.
그러나 김태윤의 빵빵한 자신감과는 달리 그의 도가 해낸 것은 겨우 상대의 소매 끝을 잘라내는 것 정도일 뿐, 김태윤은 다시 한번 시험장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더구나 이번 충격은 꽤나 컸던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도까지 손에서 떨어트려 버렸다.
“으이그…. 방법을 찾으면 뭘 해. 4학년이란 학년이 폼이냐?”
천화는 시험장을 보며 짧게 혀를 내차며 투덜거렸다.
제법 정확한 대처 방법을 찾아내긴 했지만 그것은 상대와 자신의 실력 차가 비슷할 때나 가능한 것.
두 학년이나 높은 선배를 상대로는 전혀 가망 없는 공격법인 것이다.
천화는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김태윤의 모습에 슬쩍 연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 아무래도….. 안되겠죠?”
“음….. 아니, 내가 판정관이라면 합격이야. 비록 저런 꼴이 나긴 했지만 상황판단은 정확했거든…. 단지 힘에서 밀렸다는 것뿐이지만 그건 실력 차 이상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아마 합격할 거야.”
연영의 말에 천화는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이미 몇 번이나 승급시험을 진행해본 연영의 대답이니 아마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천화는 절뚝거리며 일어나 시험장을 내려가는 김태윤을 바라보고는 다른 시험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부터 하나하나의 시험이 시작하고 끝나기를 한 시간.
나이트 가디언 파트의 시험이 끝을 맺고 연이어 매직 가디언 파트의 시험을 알리는 방송이 가이디어스의 시험장을 울렸다.
그에 더해진 연영의 설명으로는 가이디어스에서 행해지는 시험 중 그 볼거리가 가장 풍성한 덕분에 관객이 가장 많은 시험이라고 했다.
과연 이어지는 시험들은 그 말 그대로 꽤나 볼만한 것들이었다.
불꽃의 분노와 빛의 축제, 흥얼거리는 바람과 뛰노는 대지.
켈빈에서의 마법대결 이후엔 이렇게 느긋하게 구경하긴 처음이었다.
뭐, 그동안 마법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목숨을 건 전장에서였다.
이렇게 느긋하게 구경할 겨를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느긋이 마법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생각지도 않은 것이 천화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천화는 그 내용을 입 밖으로 내어 급히 연영에게 물었다.
“누나. 잠깐만….. 이 승급 시험 말이야. 한 학년 승급하는 거죠?”
갑작스런 천화의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시험장을 바라보던 연영은 무슨 자다가 봉창 뜯어내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천화를 바라보았다.
“너….. 눈뜨고 꿈꿨니? 당연한 걸 왜 묻는 거야?”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영에 천화는 곤란한 모양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뭔가를 생각하던 천화는 시험장 한쪽에서 시험 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라미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시험 진행석으로 오기 전에 라미아에게 5학년으로 승급할 수 있을 실력을 보이라고 했었는데….
천화는 연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시험 응시자의 실력이 5학년 급일 때는 어떡해요. 그런 경우에도 한 학년만 승급하는 걸로 해요?”
다시 이어지는 질문에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화를 바라보는 연영이었다.
천화는 그녀의 표정에 손가락으로 슬쩍 라미아 쪽을 가르켜 보였고, 그제야 천화의 질문을 이해한 연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참, 나…. 난 또 무슨 소린가 했네. 그럼 처음부터 라미아 때문이라고 말을 할 것이지. 걱정 마. 괜찮으니까. 보통 학생이라면 처음 입학할 때 실력 체크를 위한 시험을 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없어. 하지만 너하고 라미아는 그 시험 없이 입학했지. 대신 이번 승급시험에서 실력 체크를 하기로 되어 있었어. 너도 들었잖아. 기억 안 나?”
“아! 맞아. 그랬었지. 그걸 깜빡하다니……”
천화는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이곳 가이디어스에 처음 와서 부학장을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으이그…. 얼마나 오래된 일이라고 그걸 잊어먹어 있는 거야? 아마 라미아를 상대하는 건 매직 가디언의 선생님일 텐데….. 아, 마침 라미아 차례구나.”
하지만 천화 역시 그녀가 말하기 전부터 보고 있었다. 그리고 때에 맞춰 진행석의 스피커가 울었고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중년의 여성이 시험장 위로 올랐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은빛의 곧게 뻗은 스틱이 쥐어져 있었다.
“매직 가디언 파트의 다섯 번째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번 시험엔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제 2번 시험장에 오른 라미아양은 승급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실력체크를 위한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때문에 라미아양의 상대로 신우영 선생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그 말에 시험장 주위로 잠시 소요가 일었다. 거의 모두가 가이디어스에 입학하기 전에 실력체크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라미아 역시 치르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소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진행석의 스피커가 다시 한번 울어 시험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시험장 주위의 시선이 모두 2번 시험장 라미아에게로 모여들었다.
천화는 상대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는 라미아를 보며 마음속으로 물었다.
‘어때, 5학년 아이들의 실력은 완전히 파악했어?’
[물론이죠. 앞에 네 경기나 있어서 확실하게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라미아는 그 말을 끝으로 스펠을 외우기 시작했다. 천화는 그녀의 모습에 한마디를 더 건네고 시험을 관전하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잘 부탁해. 5학년 실력이란 거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