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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04화


1439화

오크는 강하다.

맥주잔을 손에 든 떠돌이 여행자와 용병들의 무용담에 가장 쉽게 오르내리는 대중적이고 만만한 이미지와 다르게.

언뜻 산적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산적은 오크에 상대도 되지 못한다.

이런 오크는 특별한 종족적 특성이 있다.

바로 부족이 거대해질수록 이들을 이끄는 족장과 전사들의 힘이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이 기묘한 현상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정확히 밝혀진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그저 엘프가 긴 수명을 살아가고,

드래곤이 태어날 때부터 최강인 것처럼.

이것도 오크가 가지고 태어난 종족적 특성이라고 여기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보기에는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현상이지만, 세상 공평한 것이 어딨던가.

그저 오크를 만든 신의 축복이자 변덕으로 치부하고 넘길 뿐.

아무튼.

테무른은 그런 특성을 가진 오크의 대족장이다.

그것도 수백, 수천이 아니라 십만 오크의 대족장.

이드는 오크 대족장이라는 테무른의 힘을 대략 가늠해 봤다. 물론 그도 오크 대족장은 상대해 본 적이 없다. 대신 대족장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그레이드론의 것이었다.

수천 년. 그야말로 역사를 담은 그의 지식 속에는 수많은 대족장들이 존재했다. 십만은 물론 백만 단위의 부족을 이룬 오크 킹에 대해서도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시각에서 형성된 지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크는 노예라는 드래곤의 기본 개념이 옮기라도 한 것일까.

십만 오크의 대족장을 상대로 검후가 고생을 했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십만 오크의 대족장은

‘아무리 봐도 별것 아닌 거 같은데…………….’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건 단지 지금의 이드의 수준이 높기 때문의 이야기는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십만 오크의 대족장이라면 그레이트 소드 중후반에 속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40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그때 검후가 그레이트 소드에 오르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그레이트 소드의 끝자락에서 그랜드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욱이 그녀에겐 그레이드론 시절의 인간에는 없던 무공이라는 고절한 수법까지 더해져 있던 상태가 아닌가.

그것도 그저 그런 무공이 아닌 난화십이식이라는 고절한 검공이 말이다. 그런 검후를 고전하게 만든 대족장이라니?

“그 대족장이 특별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평범한 오크와는 다른 특이점이 있는 것 같다.

확신을 가진 이드의 질문에 검후가 진한 감동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예 후작의 말대로 그는 특별했지요. 혼혈이었거든요.”

“혹시 인간과 오크의?”

“네, 대화도 가능했습니다. 어중간한 남자들보다 지적이라고 느꼈을 정도였죠.”

광폭, 저돌의 대명사로 알려진 오크에게 지적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낯설었다.

“확실히 드문 일이로군요. 어지간해서는 오크 무리 속에서 혼혈은 살아남기 힘든 법인데.”

이드는 솔직하게 놀라움을 표했다.

오크가 인간 여자들을 납치해 자식을 낳게 한다는 이야기는 흔해 빠졌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크가 인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번식이 빠른 것은 사실이다. 성욕이 강해서 인간 여자를 상대로도 교미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임신을 해서 출산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확률로만 따지면 열에 하나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

그런데 이렇게 적은 가능성에서 태어나더라도 문제다. 오크들은 딱히 상대가 혼혈이라고 해서 차별은 하지 않는다. 핏줄 같은 건 의미 없다고 봐도 좋다. 대신 약자에 대한 멸시는 강력하다.

인간의 혼혈은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거의 모든 인간과 오크의 혼혈은 그 신체 능력이 일반 오크에 비해 부족하다. 거칠 것 없는 오크 사회에 육체와 힘이 약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건 소통을 비롯한 대부분의 무리 생활과 사냥 활동에서까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자연히 모든 일에서 뒤로 밀려나며 무리와 동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해당 혼혈은 사라지고 없다. 그것이 인간과 오크 혼혈의 일반적인 인생이다.

검후가 상대했던 테무른은 이런 일반적인 혼혈과는 달랐다.

“그는 일종의 돌연변이였습니다.”

테무른은 혼혈임에도 나약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 오크보다 월등한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오크보다 단단한 뼈와 강력한 근력, 그리고 인간의 특성이 더해진 질기고 유연한 신체. 테무른은 이를 기반으로 폭풍처럼 성장했다.

해서 성인이 되기도 전에 자신이 속한 부족의 족장을 밀어내고 새로운 족장이 되었으며, 성인식을 치른 이후에는 가까운 부족을 잡아먹으며 결국에는 대족장이 된 것이다.

그가 혼혈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여타 오크 대족장들과 달랐다.

육체 능력은 더욱 강력해졌고, 새롭게 깨어난 마나에 대한 본능적인 감응성은 십만 대족장이 아니라 백만 오크 킹에 비결 될 정도로 굉장했던 것. 대단한 일이었다.

오크 킹의 마나 감응성은 고위 마법사급이다. 무림 기준으로는 천강지체와 같은 특별한 신체를 타고난 천년지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나 감응성에 더해서 테무른은 머리도 뛰어났다. 또 오크처럼 우직할 줄도 알았다. 흔한 말로 체질적인 노력형 천재인 것이다.

“거참! 무슨 전설에나 나오는 용사의 재질 같습니다.”

“어, 정말 그런데요?”

어처구니없다는 이드의 감상에 스폴이 정말 그렇다며 손뼉을 치고 나섰다.

거기에 팔짱을 낀 클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용사가 가질 만한 조건들이긴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오크들 입장에선 틀린 말도 아니죠. 그는 틀림없이 오크들의 용사일 테니까요. 괜히 대족장에 오른 것은 아닐 테죠. 반대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마왕의 탄생을 예고하는 재앙이었을 겁니다.”

“정확하네. 테무른 대족장을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딱 그런 느낌이었지.”

검후가 그 시절을 회상하며 답했다.

인간과 오크,

애초에 공존이 불가능한 두 종족이었다. 십만을 넘어 백만을 이룬 오크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식량을 위해서라도 인간을 향한 약탈은 필수다.

거기에 십만 대족장으로서 오크 킹에 비견되는 테무른이 정말 백만 대족장이 되었다면?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운도 있겠지만, 결국 그런 대족장을 벤 것도 검후이시잖습니까.”

“사실을 고백하자면 정정당당한 전투는 아니었소. 병력과 전술의 우위, 그리고 기습과 합공으로 이룬 승리였지.”

아무리 대족장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크라지만,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제국의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와 초인들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십만 오크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나선 제국이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테무른 대족장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의 강력한 무력에 놓치기를 몇 번,

결국에는 기습과 합공을 통해 죽일 수 있었지만, 그 과정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를 죽인 마지막 전투에서 마르텔이 치명상을 당했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신관과 회복 능력의 초인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마르텔은 없었을 겁니다.”

이제 와 간절하게 용감한 죽음을 바라는 마르텔에 있어, 그야말로 바라고 바라던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싶다.

뭐 이미 지나 버린 일이지만.

“그럼 백작께서 테무른 대족장의 이름을 적어 보낸 의미가…….”

“그때의 반복을 의미하죠. 그는 그날과 같이 기습을 하고, 주군께서는 테무른 대족장이 되어 다시 죽음을 내리는 것. 그로서는 제법 흥취가 있는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흥취는 모르겠지만, 감회가 새롭기는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경험이라면 확실히 이런저런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내성에 틀어박힌 놈들이 과연 제 발로 기어 나오겠습니까? 저희가 두려워 꼭꼭 숨은 놈들인데요.”

겁쟁이가 괜히 겁쟁이던가. 용기를 낼 수 없기에 겁쟁이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그 정도야 마르텔이 알아서 하겠지. 최소한 단두대에 목이 걸리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 않겠나.” 

그 정도도 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주군의 검에 죽을 자격도 없다. 그러한 클라인 백작의 조용한 비웃음에 스폴은 질렸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어려워서 어디 죽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래 봤자 어차피 남의 일.

마르텔과 달리 은색 기사단에 있어서 죽음이란 검후를 위한 영광스러운 죽음뿐이기에 아무런 걱정도 없다.

일리나가 물었다.

“그럼 저희는 적의 기습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명예 후작 부인.”

“기습은 언제쯤 올지도 아시나요?”

시간을 묻는 말에 클라인 백작은 검후를 돌아보았다.

그도 그때의 전투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사실만 알 뿐, 당시의 자세한 사정을 들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날 기습은 달도 별도 없는 캄캄한 새벽에 시작했죠. 새벽 4시쯤이었던 것 같군요.”

“기습하기에는 좀 어중간한 시간이지 않나요?”

“당일 저녁까지 도주와 추격이 이어졌었거든요. 당연히 일찍 잠들 수는 없었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 겨우 쉬게 된 새벽 시간.

그 시간에 몰려오는 잠을 견디는 건 인간이나 오크에게나 무리한 일이다. 특히 체력을 회복시켜 줄 어떤 방법도 가지지 않은 오크에게는 특히나 말이다.

“그럼 오늘은 일찍 쉬도록 할까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편히 쉬면서 기다리는 것뿐이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깔 것 같은 라미아의 말에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검후가 고개를 저었다.

“쉬는 건 조금 장소를 옮긴 뒤에 하지요. 마침 적당한 곳이 생각이 났으니 말입니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검후의 결정이다.

잠시 후 은색 기사단과 황금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사전 약속 없는 이동이었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쭉정이라 분류되었다 해도 아무렴 그 정도도 모를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검후가 고른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이 빌어먹을 개자식의 악취미는 변하지가 않아!”

소드 팰러스에서는 마르텔이 똥 덩어리를 보며 부득부득 이를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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