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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22화


1457화

삼검왕을 자식처럼 가르친 검후와는 달랐다.

청색과 황색.

한때 동료였던 두 개 기사단에 대한 단장들의 감정은 오로지 분노뿐이었다. 미련도 없고, 안타까움도 없다. 실망과 배신의 충격은 오롯이 적의로 바뀐 지 오래였다.

“어렵지만 성공한다면 배신자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어렵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성공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두고두고 근심거리로 남을 배신자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도망자들도 추적자를 뿌리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더욱이 도망자들의 면면을 보라.

하나같이 뛰어난 자들이다. 그들이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오히려 그 뒤를 쫓는 기사들이 더 위험해질 수가 있다.

“기사들의 위험 부담이 매우 클 것이다.”

“그래서 실력이 뛰어나고 임기응변에 탁월한 기사들로 골랐습니다.”

단장들은 내심 성공의 가능성을 크게 보는 듯했다. 그러니 기사단 안에서도 매우 뛰어난 자들을 뽑아 꼬리로 붙인 것이 아니겠는가.

검후는 이런 단장들의 모습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약 명예 후작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자리에 자신들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정중한 말투.

공적인 질문이라는 뜻이다.

이드는 갑작스러운 질문임에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물론 그런 중에도 일리나의 입에 물린 빨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일전 검왕이 긴급하게 사람들을 모으지는 않을 거라고 하셨으니, 만약 저라면 사람들을 최소 단위로 흩어 놓을 겁니다. 여러 나라로. 그런 후에 오랜 시간에 걸쳐 복잡한 경로를 통해 다시 모으겠습니다. 대략 2년 정도 후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마음의 상처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추격자를 괴롭히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시간이다. 추적 시간이 늘어날수록 임무의 성공 확률도 폭락하는 법이다.

“들었느냐? 내 생각도 명예 후작과 같다. 오히려 더욱 긴 시간을 들일 것이다.”

“이미 시작부터 장기 임무였습니다.”

카일란이 문제없다는 양 답했다.

상대가 검왕이다. 단장들도 어중간한 각오로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간을 끄는 방법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고려하고 있었던 것. 물론 그게 2년 이상의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장들은 굳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검후가 더욱 반대할 것이 분명하니까.

다만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에 대해 짐작하지 못할 검후도 아니었다.

그녀는 단장들의 작전을 일부 허가하는 대신, 조건을 달았다.

“좋다. 그렇게 자신한다면 이번 일은 그대들에게 맡기지. 하나,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 일. 10개월로 기한을 한정하겠다.”

“10개월은 너무 짧습니다.”

“아니, 10개월이면 충분하다. 그 기간 안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임무는 실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임무에 투입된 기사들의 위험도는 갈수록 높아질 게 아닌가.”

성공 가능성은 하염없이 떨어지고, 위험도는 하염없이 높아진다.

이미 많은 기사를 잃은 검후로서는 그런 무리한 임무로 기사들을 더 잃고 싶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사 하나하나를 아끼는 마음, 군주라기보다는 스승의 마음일 것이다.

이를 알기에 단장들도 더 이상은 자신들의 주장을 고집할 수 없었다. 배신자의 처리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그들에게 있어 최우선은 검후이니까.

“10개월로 하겠습니다.”

“임무에 나선 기사들에게도 확실히 못 박도록 하라. 10개월이 되는 날, 무조건 임무를 중단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흑색 기사단이 주군의 명령을 따릅니다.”

“적색 기사단이 주군의 명령을 따릅니다.”

두 단장이 공적인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그에 검후의 표정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녀는 단장들을 채근하느라 마른 입을 주스 한 모금으로 적셨다.

“그럼 당장 급한 일은 끝난 것인가?”

사실상 마르텔이 사망한 시점에서 검후가 나서야 할 일은 마무리된 셈이었다.

소드 팰러스에 남은 죄인들은 기사단이 나서 전부 감옥에 넣었고, 나머지 자잘한 문제들도 검후가 도착하기 전 모두 정리를 한 까닭이다. 혹여 남아 있어도 클라인 백작을 비롯한 아래 사람들의 몫이지, 검후가 직접 신경 써야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어 나온 대답은 검후의 생각과 달랐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습니다.”

클라인 백작이 말했다.

“언제 삼검왕의 죄를 밝히실지, 일정을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축제의 일정도 정할 수가 있습니다. 또 그에 관련된 다른 일들도…….” 

대외적으로는 삼검왕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발표일 뿐이다.

하지만 검후 아래 있는 클라인 백작과 같은 입장에서는 발표의 전후에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각국의 반응도 살펴야 하고, 이번 일을 기회로 검후를 만나려는 사람들의 일정도 조율해야 한다. 그야말로 할 일이 태산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검후가 날짜를 정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다.

“그래, 그 일이 남았지. 백작은 언제가 좋을 것 같은가?”

“늦어도 이 주 안으로는 처리해야 합니다. 그 이상 시간이 흐르면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기 좋아하는 것들을 시작으로, 분명 쓸데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할 것입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다.

지금이야 눈치를 보고 조심을 하지만, 어느 입에서 사실이 흘러나올지 모르는 일. 그렇게 시작되는 소문 중에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경우는 매우 적다. 대부분 알지 못하는 헛소리를 함께 지껄이기 마련이다.

더욱이 조심해야 할 것은 그쪽 입만이 아니다.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두 개 기사단에 대한 의문도 곧 솟아나기 시작할 것이며, 그와 더불어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도 쏟아질 것이다.

한둘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이 갇혔는데 비밀을 무슨 수로 지킬 수 있단 말인가. 감옥이 어디 섬에 있지 않고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이 주인가.”

순간 날짜를 헤아리던 검후의 눈이 이드를 향했다.

그 속에 든 의미를 단숨에 알아차린 이드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삼 주 안에는 무조건 끝납니다. 그리고, 꼭 공개와 동시에 배포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배포와 학습에는 올바른 절차가 필요하죠.”

“거기에 검법을 가르칠 선생도 준비해야 할 테고요. 검후님이 검법을 배우겠다는 그 많은 희망자를 하나하나 붙잡고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당연하죠. 그랬다가는 아무리 저라도 몸이 버티질 못할 테니까.”

끄덕끄덕.

검후가 전적으로 옳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외적으로 배신이라는 아픔을 딛고 일어선 검후가 새롭게 세상에 내어놓는 검법이다. 관심과 기대가 쏟아질 것은 자명한 일.

더욱이 머리 좋은 작자들은 갑작스러운 검법의 공개에 그 속내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라면 더욱더 검법에 관심을 가지고 탐낼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까.

소드 팰러스에 연이 있는 인간이라면 거의 전부가 몰려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륙 거의 모든 기사는 직간접적으로 소드 팰러스와 연이 없는 경우가 없다. 즉, 과장을 좀 더하면 세상 모든 기사가 몰려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기사들을 검후가 하나하나 붙잡고 가르친다?

아마 수천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터였다.

상상만 해도 무섭다는 듯 부르르 어깨를 떠는 검후.

“백작이 생각한 적정 기한이 이 주라면, 그 기간 내에 삼검왕의 죄와 그간의 사건에 대해 발표하는 것으로 하지. 황제께도 내가 그리 전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정해 주신 일정에 따라 계획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백작이 잘해 줄 것이라 믿고 있네.”

“이번에도 주군의 믿음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으레 하는 말에도 감격하고 마는 클라인 백작.

“어떻게 보면 클라인 백작은 성덕이에요.”

그 모습에 조용히 속삭이는 라미아.

이드는 성덕의 조건을 떠올려 보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주군께서 새로운 검법을 만드신 겁니까?”

“설마 그걸 배포하신단 말씀이십니까? 물론 큰 은혜입니다만, 어째서 그 귀한 것을

순식간에 오가는 이야기를, 단 두 사람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흑색과 적색의 기사단장들.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놀랍고 이해되지 않는 대화였을 것이다.

그에 설명을 하려는 클라인 백작.

하지만 쉴라가 나서 그런 클라인 백작을 말리고는 그 자신이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정말 간단했다.

마르텔이 죽음의 순간 검후와 소드 팰러스에 검법을 남겼다고. 그것도 주인도 이름도 없는 검법을 말이다. “그런…….”

“상상도 못 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블러디 혼이…………….”

검법의 의미를 들은 단장들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설마 그 마르텔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니.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들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었으니까. 

“그래서 발표의 마지막 날 검법을 공개할 생각이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검후가 물었다.

하지만 물으나 마나 대답은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분명 엄청난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앞서 발표한 내용으로 일어날 논란은 검법이 주는 충격에 금방 쓸려 나갈 게 확실합니다. 무엇보다 소드 팰러스의 주민들이 받는 충격도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아닙니다.”

“말해 보라.”

검후의 재촉에 라발 단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속 좁은 생각이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명예 후작께서 고친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단해질 검법이 그렇게 공개될 경우 소드 팰러스를 찾는 이들이 줄어들지나 않을지.”

그의 말에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더욱 제대로 잘 배우기 위해 더 많은 기사와 수련생들이 소드 팰러스를 찾을 수도 있겠죠. 지금도 검후의 무공은 세상에 풀려 있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라발.

그런 그가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일어난 듯 물었다.

“그럼 이번에 공개하실 검법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름?”

특별할 것 없는 라발의 물음에 검후가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내용은 천천히 발표한다 해도, 일단 검법의 이름은 당일에 함께 밝혀야지 않을지요?”

“그렇기는…… 하지. 이름이라.”

이드는 곤혹스러운 얼굴을 한 검후가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두 손을 들었다.

“검법의 이름은 검후의 몫입니다. 제가 담당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용일 뿐입니다”

“끙. 어려운 숙제가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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