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37화
1472화
왕은 놀라움에 눈을 부릅떴다.
그만큼 사절단장이 전하는 말은 이후 굉장한 파장을 불러올 만한 내용이었다.
-그 말이 정녕 사실인가?
동시에 부리부리한 왕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혹여 개인의 지레짐작에서 나온 말이라면 지금이라도 진실된 내용으로 바꾸라고. 이 순간이 지나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다면 감히 왕을 기만한 죄를 물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당연한 일이지만 사절단장이 자신이 한 말을 주워 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점 더하고 뺀 것 없는, 들은 그대로의 사실입니다.”
오히려 머리를 당당히 든 그의 모습에 왕은 의자 등받이에 털썩 등을 기대어 버렸다.
-이런 기막힌 일이 있나. 허! 허허허!
왕은 믿어지지 않는 현 상황에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이와 반대로 그 아래 신하들은 심각했다.
이들도 사절단장이 전하는 말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왕을 모시는 신하였다. 놀라기보단 일의 경중을 판단하고 상황을 살펴야 했다.
신속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신하들.
그중 앞줄에 선, 눈가가 거뭇한 노신하가 앞으로 나섰다.
-폐하. 허락하신다면 소신이 사절단장에게 몇 가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나도 궁금한 것이 많으니, 그리하라.
-황공하옵니다.
이런 상황에 나올 질문은 누구라도 비슷할 것이라는 왕의 허락에 예를 표한 노신하가 통신구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상대를 알아본 사절단장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백작 각하.”
-인사는 되었네. 사태가 중하니, 내 급히 몇 가지 묻겠네.
“아는 대로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
상대는 오랜 시간 왕을 모신 존경받는 노신하다. 사절단장은 그를 매우 정중히 상대했다.
-그럼 물음세. 진정으로 그 검법…………….
“멜팅 블러드입니다.”
-고맙네. 멜팅 블러드가 진정으로 삼검왕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검법이라 했단 말이지?
“사실입니다. 저뿐 아니라 사절단에 속한 모두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다른 사람을 불러 확인시켜 줄 수 있다는 사절단장의 모습에 노신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다음 질문을 이었다.
-검후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것도 확실하고?
“그 또한 사실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보고 들었습니다.”
-또, 그런 검법을 기존에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소드 팰러스에서 공개를 하겠다고 했고?
“당장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조건이 달렸습니다만, 예, 분명 공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몇 가지 질문이 더 있었지만 사절단장의 대답에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게 질문을 마친 노신하는 사절단장을 향해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왕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폐하, 검후의 이번 발표는 실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옳다. 이는 전에 없던 파격이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지금도 크고 작은 조직은 물론 각국에서 무공을 공개하고 있습니다만, 결단코 이와 같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노신하의 말에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기초 무공에 대한 공개는 이젠 흔하다면 흔한 일로서 자신의 왕국에서도 하고 있는 일이었다.
이러는 이유는 자국의 인재 발굴과 영향력 확대였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자국 산골에 살고 있던 천재가 이렇게 공개된 무공을 익혀 세상에 나올지?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공개되는 무공이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그야말로 기초를 다지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누구도 상승의 무공을 공개하는 경우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의 무공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를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또 그렇게 공개된 무공이 적국이나, 불손한 자들의 손에 들어갈 경우도 경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중원 무림의 경우엔 이마저도 없으니까.
무림에 속한 문파는 아무리 기초라 해도 자파의 무공을 쉽게 내어놓는 경우가 없었다. 세간에 퍼진 무공들도 오랜 시간 중에 우연과 사고, 멸문이라는 사건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것이 대부분.
널리 배우고 익히라고 먼저 내어놓은 경우는 결코 없었으니 말이다.
이에 대해 이드는 이것이 국가와 문파가 가지는 성질의 차이인지, 세상이 달라 나타나는 문화의 차이인지 한동안 궁리를 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런 가운데 그야말로 최상승의 무공이 공개된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소드 팰러스에서는 상승의 무공을 일부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자질을 살피기는 했으나 모두에게 길이 열려 있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공개되는 무공도 그 수준에 분명한 한계는 있었습니다. 그걸 이번에 깨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가, 검후는! 삼검왕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검법이라니. 이건 급이 다르지 않은가!
급(級).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가치.
자국에서 공개된 기초 무공의 가치가 1실버라면 멜팅 블러드는 최상급 마나석이다. 실버를 뿌리는 사람은 있어도 최상급 마나석을 뿌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후가 최상급 마나석을 뿌려 버린 것이다.
사실 검후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목적을 가진 거짓말일 테니까.
하지만 검후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공에 관련한 일에 있어서 검후는 언제는 진실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도 분명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는 있지 않은가.
-영민하신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저의 왕국에서 가장 조심하고 살펴야 할 것이 바로 그 숨겨진 목적일 것입니다.
-좋다. 그럼 검후와 제국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말해 보라.
고개를 끄덕인 왕이 곧장 물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막힘 없이 대화를 이어 온 노신하도 할 말이 없는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소신이 무능하여 저들의 노림수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짚이는 바가 없사옵니다.
-그대가 무능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짐작이라도 좋으니, 떠오른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것이다. 그대들도 가만있지 말고 기탄없이 말해 보라. 오늘 나온 말에 대해서는 차후 책임을 묻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신의 생각에는………………
-소신은 그와 달리 ………….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왕의 말에 그제야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이야기들 중에 어느 하나도 현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줄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그나마 확실한 것이 있다면 딱 둘이었다.
-이번 멜팅 블러드의 공개로 검후를 향한 칭송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옳다. 이로 인해 삼검왕의 배신으로 무너질 뻔한 검후와 소드 팰러스의 명성은 흔들리지 않겠지.
-그렇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더욱 많은 이권이 소드 팰러스를 중심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공을 배우기 위해 전 대륙에서 사람이 찾아오는 소드 팰러스였다. 멜팅 블러드로 인해 그것이 더욱 심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가장 먼저 각국에서 움직일 것입니다.
-백작의 말이 옳습니다. 막대한 돈과 인력을 갈아 넣고도 얻기 힘든 최상급 무공을 공짜로 얻을 기회를 각국에선 그냥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노신하의 말에 다른 신하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들은 같은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퇴궐하여 돌아가는 대로 가문의 인재들을 소드 팰러스로 보내야겠다.’
‘드디어 우리 가문도 최상급 무공을 가질 기회다!’
‘절대 놓칠 수 없지! 반드시 얻고 말겠다!’
힘과 권력을 쥐어 본 만큼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신하들의 눈에는 번들번들 광기가 흘렀다.
왕도 이런 분위기를 읽었지만 보지 못한 것으로 했다. 이건 그가 나선다고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왕국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겠군.
-그렇습니다. 최악의 경우 멜팅 블러드를 먼저 손에 넣은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에 기사 전력에 있어 큰 차이가 벌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은…… 백작은 그 정도로 크게 보는 것이오?
기사는 국가의 주요 전력이다. 그에 대해 논하는 노신하의 말에 왕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자 어느새 함께 논의에 참가하고 있던 또 다른 신하가 즉각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폐하. 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설명해 보라.
-다른 누구도 아닌 검후의 무공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오래된 일이오나 과거 검후가 직접 무공을 공개할 때, 그 무공은 언제나 새로운 이론을 포함하고 있었고, 각국은 그것을 연구하여 자국의 무공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옵니다만, 무시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이로써 서둘러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제부터는 속도전이다. 누가 먼저 멜팅 블러드를 얻느냐에 따라 국가 전력의 강화가 이뤄질 수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할 가능성을 따져 본 왕의 표정이 절로 굳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순간이지만 검후가 이런 혼란을 바란 것인가 싶을 정도로.
왕은 즉각 통신구 너머에서 조용히 대기 중인 사절단장을 불렀다.
-사절단장은 들으라.
“예. 폐하.”
-그대가 가져온 정보는 다른 사절단에서도 가지고 있겠지?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왕의 얼굴 위로 섬뜩한 기운이 스치는 것을 본 사절단장은 황급히 답했다.
“각국의 사절단은 물론이옵고, 소드 팰러스의 방문객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건 다른 사절단의 입을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뜻을 담은 사절단장의 말에 왕은 짧게 입맛을 다셨다.
그에 사절단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안도했다.
그와 함께 왕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렇다면 좋다. 내 그대에게 새로운 명을 내리겠다.
“황공하오나 폐하. 아직 보고할 것이…….”
-그만, 지금은 이보다 급한 일이 없다. 내 그대에게 백지 위임장을 내어 주겠다. 그대는 지금 당장 검후를 만나 아국의 기사들이 멜팅 블러드를 가장 먼저 익힐 수 있도록 교섭하라.
“폐, 폐하! 배, 백지 위임장이라니…….”
그것이 가진 위력에 깜짝 놀라는 사절단장이었지만 왕의 명령은 흔들리지 않았다.
-무엇 하는가. 그대는 속히 움직이라! 만약 다른 나라에 뒤지는 날에는 그대에게 그 책임을 묻겠다!
“화, 황공하옵니다!”
으르렁거리는 것만 같은 왕의 말에 사절단장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