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85화
1520화
“알면 진작 말렸어야지.”
“저도 오늘 보고 알았는걸요.”
나도 몰랐어요 하고 웃으며 말하는 라미아.
훌륭할 정도로 믿음이 가지 않는 얼굴이다.
그나저나 맹약의 중심이라니.
“쓸데없는 짓을 꾸미고 있었네.’
괘씸하다. 당사자의 허락도 없이 이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니.
사실 확인은 아직이지만, 내심 거의 확실하다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만간 혼돈의 파편과의 마지막 전투가 예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분명 스케스틱의 복귀였다. 그를 시작으로 많은 드래곤들이 이 땅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는 날 최후의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그것은 이드를 포함한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아마도 검후는 이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기 전, 전력을 가다듬을 생각에서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러한 짐작은 사실이었다.
이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전투를 예상하고 있는 검후는 다양한 전투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 중인 시나리오 중 하나가 바로 양면전쟁이었다.
이 시나리오에서 말하는 양면전쟁 중 하나는 당연히 혼돈의 파편과의 전쟁이다.
이 전쟁의 주인공은 이드와 드래곤들이다.
사실 머릿수만 생각하면 전쟁이라는 말이 아까운 것이 사실. 하지만 이 소수가 가진 힘의 스케일을 생각하면, 전쟁이라는 단어도 부족할 것이다. 다만 이드와 드래곤들이 나서는 이상 이 대륙에 커다란 피해는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뿐.
그리고 또 하나의 양면전쟁.
그것은 바로 국가 간의 전쟁이다.
이 전쟁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카논 제국이다.
혼돈의 파편의 뜻에 따라 굴러가는 나라이자 백 년의 시간 동안 다른 국가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고 있는 닫힌 국가.
검후는 마지막 전쟁에서 혼돈의 파편이 카논 제국을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드와 드래곤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카논 제국은 혼돈의 파편이 가진 강력한 카드인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검후는 궁지에 몰린 혼돈의 파편이라면 충분히 내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카논 제국의 역할은 혼란이다.
세상이 대전쟁의 혼란에 빠질수록 혼돈의 파편은 더욱더 깊게 숨어들 수 있을 테니까.
이 가능성을 떠올린 시점에서 검후는 그 대안으로서 라일론 제국과의 맹약을 생각해 냈다. 라일론과 아나크렌의 힘이라면 전쟁 초기에 카논 제국을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검후는 이드를 사신으로 사용했다.
만약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중심에는 혼돈의 파편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혼돈의 파편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이드뿐이었다.
그러나 라일론 제국이 과연 이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
그레센 땅에 오직 셋뿐인 오만한 제국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검후는 이드를 사신으로 보내어 먼저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제국이 감당할 수 없는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동시에 그런 대적 불가의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영웅의 존재를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검후의 의도는 성공했다.
황제와 대공작들은 이드를 완전히 인정했다.
그것도 저 오만한 제국이 결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고 확실한 형태로.
그 결과, 황제와 대공작들은 이후 있을 전쟁의 중심에 이드를 놓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만, 이는 이드가 바라는 바는 아니었다.
이드도 마지막 전투를 생각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그가 그리는 그림에 국가 간의 전쟁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철저한 소수 정예의 싸움.
그것이 이드가 생각하는 마지막 전투였다.
어쩌면 그건 백 년 전 못다 한 마지막 전투의 연장인지도 몰랐다.
이런데 갑자기 자신을 사람들 앞에 세우겠다고?
아무 예고도 없이 수만 기사들과 수십만 병사들을 이끌라고?
부르르.
상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다. 그런 골치 아픈 일은 전력으로 사양하고 싶다.
십만 대군의 지휘라니.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드는 투덜투덜 불만을 말하며 이마를 두드렸다.
“쓰읍, 당장 소드 팰러스로 돌아가?”
“참아요. 검후도 따로 생각이 있지 않겠어요?”
정말 돌아갈 것처럼 두 눈을 번뜩이는 이드.
라미아는 그런 이드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돌아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서야 여행계획이 다 엉망이 된다.
그건 사양하고 싶은 라미아였다.
거기에 이드와 달리 라미아는 검후의 의도가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드의 걱정처럼 그가 직접 수십만 대군을 지휘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와 대신들, 또 지휘관들에게 이드의 존재를 인식시켜 놓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갈까, 말까로 투덕거리는 중 들려오는 노크 소리.
스폴이었다.
“세 분께서 돌아오셨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잠시 자리를 비웠다던데.”
“라일론 제국 황궁 기사단에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습니다.”
“황궁 기사단이? 왜?”
“소속 기사 중 살짝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절 알아보고 보고를 올렸던 모양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사단을 소개해 주겠다고 초대를 하네요. 마침 세 분도 자리를 비운 때라서 다녀왔는데,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호위가 호위 대상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것은 명백한 실책이랄 수 있었다.
이는 아무리 별궁이 안전한 장소라 해도 타국에서는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는 부분이었다.
“에이, 괜찮아요. 그런데 기사단 소개라니. 그건 스폴을 영입하고 싶다는 뜻 아니에요?”
라미아의 말에 스폴이 그럴 리가 없다며 손을 흔들었다.
“제가 은색 기사단과 검후 님을 두고 가긴 어딜 갑니까.”
“하긴. 그런데 어땠어요? 여기 기사단은?”
과연 황궁 기사단에 대한 스폴의 평가는 어떨까.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기사를 평가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스폴의 얼굴이 쓸데없을 정도로 진지해졌다.
“대단했습니다. 괜히 황궁 기사단이 아니더군요. 아나크렌 제국의 황궁 기사단에 비교해 크게 모자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을 지키는 기사들이다.
제국 전역에서 최고의 기사들을 고르고 골랐을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기사들 개개인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인 만큼, 선발된 이 중에 거부하는 이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최고가 모일 수밖에.
아무리 라일론이 아나크렌에 비해서 기사의 질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대신 숫자가 많지 않은가. 그 많은 기사들 중에 고르고 고른 정예라면 아나크렌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 모습을 보니, 저희 은색 기사단도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감상을 말하는 스폴.
그녀의 얼굴에는 단단한 각오가 떠올라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대로 돌아간다면 은색 기사단을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훈련뿐일 테지만.
이드는 굳이 이런 스폴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스폴의 모습이 대전에서 만났던 바이언 공작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로서가 아니라 성향적인 면에서 말이다.
만약 황궁 기사단이 아니라, 바이언 공작이 직접 스폴을 영입하려고 애를 썼다면 그녀도 흔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수련은 언제나 옳지. 응원할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황제 폐하를 알현하는 일은 잘 끝나셨습니까?”
“모든 일은 검후의 뜻대로!”
스폴의 물음에 이드가 오만한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스폴의 모습에 이드는 바로 표정을 풀고는 말했다.
“잘 끝났지. 모자란 부분은 검후가 직접 나서서 해결했고.”
“검후 님께서 다녀가셨습니까? 혹시 마법 통신으로?”
“비슷해. 검후가 나서는 순간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풀리는데, 내가 사신으로 올 필요가 있었나 싶더라고.”
“흐흐. 안 봐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검후께서 직접 나서시는 일은 대부분 그렇게 해결이 되지요.”
스폴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얼굴도 잠깐이었다.
그녀는 곧 용건이 떠올랐는지, 급히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제가 돌아오는 길에 황녀 전하를 봤습니다.”
“올리비아 황녀?”
“예. 걸음 방향을 보니, 여기 별궁으로 향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황제로부터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가. 이드는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편하게 앉아 있는 일리나와 라미아.
하지만 올리비아 황녀가 도착하면 편하게 쉬긴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곤란한 부탁을 해오면 그걸 거절하는 것도 부담이다.
“어쩔까? 어쩌면 좋겠어요? 일리나.”
“전 상관없는데.”
괜찮다 말하는 일리나와 달리 라미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현 상황 자체를 의심했다.
“어쩌면 황제가 보낸 것일지도 몰라요.”
가능성은 충분했다.
전날의 인연도 있고, 대전에서 ‘증명’을 받은 다음이지 않은가.
황제 입장에선 관계를 단단히 하고 싶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편하게 쉬는 쪽이 좋겠지?”
“말씀하시면 방문을 거절하겠습니다.”
라일론 황궁에서 자국 황녀의 방문을 거절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만, 스폴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했다.
참으로 대담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드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아니, 그보다는 그냥 자리에 없다고 말해줘.”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드.
“어디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라일론까지 왔으니. 수도는 한번 둘러봐야지. 두 사람도 같이 갈 거죠?”
“네.”
“물론이죠.”
두 사람의 대답에 당장 문으로 향하는 이드.
그에 스폴이 급히 말했다.
“잠시만, 호위는
“사신 임무는 끝났으니, 필요 없어. 올리비아 황녀가 도착하면 잘 설명해서 돌려보내고. 그럼 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