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86화
623화
– 이드는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아니다. 그는 소드 팰러스의 혼란을 노린 타국의 스파이다.
-세상 멍청한 소리다. 어떤 바보가 멍청하게 이런 식으로 스파이를 쓰냐! 그렇게 주장하고 싶으면 증거를 가져와라!
– 이드의 만검수련은 가짜다. 그 정체는 저주받은 밴딩 훈련법. 그걸 따라하면 실력이 퇴보한다.
– 과거에서 왔냐? 마르텔 님께서 밴딩 훈련과 다르다고 확인하셨다.
– 마르텔 님과 이드라는 자의 대결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거짓이다.
– 바보다! 바보가 나타났다! 사실을 부정한다고 거짓이 되는 건 아니다!
클라인이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자신한 지 이틀 만에 생긴 변화였다.
오전에 이드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이 떠돌면, 오후에는 그것을 반박하고 비웃는 소문이 생겨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문이 뱅글뱅글 돌았다.
마치 문 뒤에 숨은 두 사람이 말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싸움은 격렬해졌다. 단순한 의심에서 인신공격으로 수준도 떨어졌다.
이때 사검왕의 타이틀을 손에 넣은 이드에 대한 소문은 이미 제국을 반쯤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 생겨난 소문의 힘이 얼마나 거센지 순식간에 앞선 소문을 따라잡고, 사검왕의 타이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펴져 나갔다.
그러다 보니 악의적인 소문보다 그것을 반박하는 소문이 먼저 도착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드 팰러스에서 생겨나던 악의적인 소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철저한 사실 확인과 증거를 들고 나오는 반박에,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솔솔 연기를 피우던 것이 저 뒷골목 노골적인 음담패설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악의적인 소문은 순식간에 싸구려 맥주와 함께 씹히는 안줏거리로 전락했다.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음해도 그럴 듯해야 먹힌다. 이렇게 수준이 떨어져 버리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오히려 이드라는 이름이 귀와 입에 더 친숙해지게 도움만 줄 뿐이었다.
“더 이상 이런 소문은 먹히지 않습니다.”
소문을 만들어 내던 사람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문제는 클라인 백작입니다. 그자가 나서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소문은 저들이 하나로 모일 구실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으면 결국 도태될 뿐이야. 승패와 상관없이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인테그란 후작은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라고 생각했다.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정의 성과는 있었다. 완전무결한 형태로 높아지던 이드의 명성은 유명인 수준에서 멈추었다. 그냥 두었다면 진짜 사검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상대측도 클라인 백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는 했지만, 후작은 차라리 그러한 형태가 좋다고 생각했다. 형체가 없는 유령보다 그 실체가 분명한 조직이 경계하고 공격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후작은 오히려 그 부분을 이용하자는 생각이었다.
“지금 상황은 우리에게도 기회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선다. 물밑에 있던 게일의 지지자들을 표면으로 끌어 올려!”
“소문 작업은 어떻게 할까요?”
“갑자기 빼지는 말고, 천천히 방향을 바꿔. 이드의 비방이 아닌 게일에 대한 응원으로 그렇게 힘을 모은 후에 이번 황궁에서 진행하는 흑마법사 토벌에 참여한다!”
“조치하겠습니다.”
후작의 결단에 은밀히 일을 진행하던 기사들이 바빠졌다.
수련 열풍이 불던 소드 팰러스에 정치색이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런 변화를 에단을 통해 매일 저녁 보고받았다.
악의적인 소문도 너무 어이가 없어 웃어넘겼다. 매일 밤 새로운 콩트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크게 할 일은 없었다. 클라인은 그저 꾸준히 수업만 진행하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지구의 정치인처럼 이드에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 치즈 케이크라도 먹으라고 했다면 소문이고 뭐고 때려치웠을 테니까!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어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대신 이드 님의 수업 신청자들 중에서 이 사람들을 뽑아 주십시오.”
매일 상황을 보고받던 어느 날, 클라인이 리스트를 뽑아 왔다. 거기에는 이드가 알지 못하는 수십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클라인이 그 자신과 록, 네리베르와 케마란의 인맥이 닿는 사람, 그리고 소드 팰러스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골라서 뽑아 올린 골든 리스트였다.
“그러니까 제 수업을 미끼로 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겠다는 거네요?”
“그런 지저분한 거래는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드 님의 수업을 받고 싶어서 신청서를 냈을 테니까요. 수업을 받는 수련생인 이상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뭐, 차라리 잘됐네요. 빨리 신청 마감을 해야 했으니까요. 까딱하다가는 신청서에 밀려서 잘 방이 없어질 수도 있거든요.”
이미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신청서는 그 옆방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제국 전역에서 신청서가 날아드는 날에는 정말 사람이 거주할 공간을 모두 빼앗길지도 몰랐다.
골든 리스트에 실린 신청자를 뽑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신청 접수가 되었다고 소드 팰러스 전체에 통보하면 끝나는 일이다. 소드 팰러스에 이 수업의 신청서를 쓰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인테그란 후작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지 않은 때에 재빨리 행동했던 것이 주효했다. 덕분에 그중에 끼어 있던 게일의 지지자들도 누구 하나 거부하지 않고 수업에 등록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자동적으로 이드의 지지자로 분류되었다.
골든 리스트에 실린 사람의 수는 적지 않았다. 다섯 명을 뽑으려던 처음 생각은 멀리멀리 사라진 후였다. 처음부터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변명처럼 꺼내 든 추가 신청자 모집이었는데, 생각 외로 일이 커져 버린 것이다.
갑작스런 대인원에 수업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졌다.
나누고 보니 나쁘지 않았다.
클라인과 록이 끌어모은 사람은 대부분 기사로 임명받거나 실력을 인정받은 평기사들이었고, 네리베르와 케마란이 추천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련생이었기 때문이다.
나누고 보니 실력과 경험에 따라 수련생과 평기사로 잘 나누어진 것이다.
그 직후 수련 신청자가 모두 뽑혔다는 플래카드를 걸고 신청서를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세 번째 방이 가득차기 일보 직전이었다.
“음……… 이 신청서들을 다 어쩐다.”
이드는 방을 가득 매운 종이를 앞에 두고 고민했다. 장작으로 쓰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서 아까웠다.
“우선 이면지로 활용을 해 볼까?”
[이걸 이면지로 다 쓰려면 수백 년은 써야 할걸요?]
문득 올라온 라미아가 태클을 걸었다.
생각해 보니 집에서 종이를 사용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특히 반대쪽에 적힌 신청서의 내용 때문에 밖으로 내돌리기에도 좋지 못했다. 이드는 고민 끝에 방 세 개를 종이들에게 내어 주기로 결심하고 봉인해 버렸다.
“이 방을 쓰고 싶은 사람은 숙박비 대신 종이를 책임지라지!”
그렇게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주 후보자가 생겼다.
후보는 록이었다. 일하던 자리에서 잘렸단다.
클라인 백작의 명령으로 활동하다 보니 본직을 소홀히 해 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꼭 그 때문은 아닐 겁니다. 보통은 일차 경고를 하지, 이렇게 바로 잘라 버리지는 않거든요. 일종의 경고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드는 그런 록의 어깨를 두드리고 종이로 가득한 방을 보여 주었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니, 내가 책임지지. 만약 주거에 문제가 있다면 이 방은 어때? 종이만 처리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이드 님이 월급만 잘 주시면 지금 제 집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즉답이다.
일단 록의 월급은 기존 급여의 두 배로 정해졌다. 아무래도 기존 업무보다 힘든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하는 김에 에단의 급여도 지급되었다. 모아 둔 돈이 제법 된다며 너스레를 떨던 에단도, 수개월 간의 급여를 한 번에 계산해서 지급하자 목돈이 생겼다며 싱글벙글 기뻐했다.
역시 충성도 의식주가 충분히 해결된 후에 나오는 것이다.
이드는 하는 김에 클라인 백작을 불러 자신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 체계를 잡았다.
하는 일과 작위에 따라서 차이를 두고 체계를 잡고 보니, 이들의 급여로 들어가는 돈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재산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이드였다.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넉넉히 챙겨 줄 능력은 차고 넘쳤다.
이드는 자신의 사람에게 인색할 생각이 없었다.
“이건 클라인 백작님이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공금으로 사용하세요.”
이드가 건네는 작은 주머니를 열어 본 클라인은 그 안에서 뿜어지는 보석의 광채에 혀를 내둘렀다.
“허, 돈이 들어갈 일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많습니다. 이 보석들을 처분하면 작은 남작 영지를 사고도 남을 겁니다.”
그 말에 에단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던 록이 보석을 햇살에 비춰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겨우 보석 열다섯 개로 말입니까?”
“모두 최상급의 보석들이야. 맑고 투명한 광채에, 커팅도 예술이네.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 귀한 물건들이야.”
한때 검후에 대한 불타는 애정을 보석으로 표시하려고 관심을 기울인 경험이 있는 클라인의 말이었다.
이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의 창고에 들어 있던 물건이 평범할 리가 없지.’
시중에 나오는 매물과는 기본 레벨 자체가 달랐다.
클라인이 주머니에 있던 보석 중 하나를 꺼내고는 주머니를 밀었다.
“이거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번 일도 그렇지만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나머지도 챙겨 두세요. 미리 말해 두지만, 괜히 아낄 필요 없습니다. 쓸 곳에는 과감히 쓰세요. 더 필요하면 언제든 저나 라미아에게 말씀하시고요.”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자신만만한 이드의 말에 클라인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과감히 쓰라니!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자유로운 자금 운영권을 가지라는 말은 달콤하고 은혜로운 신의 말씀과도 같았다.
쓸 돈이 없어서 못 쓰지, 쓰려고만 하면 쓸 곳은 널리고 널렸다.
“물론입니다. 그 돈의 백 배가 투입되어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아하하하하! 알겠습니다. 필요한 곳에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클라인은 더 거절하지 않고 주머니를 챙겼다. 이 돈의 백 배를 써도 괜찮다니!
그로서는 이드가 마르텔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말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이드의 소문을 진압하면서 제법 돈이 들었다. 일단 그에 들어간 비용은 자신의 사비로 충당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올바른 운영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드에게 상담을 하려고 했는데, 뜻밖에 간단히 해결되어 버렸다.
클라인은 좋은 기분에 반가운 소식을 더했다.
“황궁에서 이드 님을 모시기 위해서 사람이 온다고 합니다.”
“황궁에서요?”
“뒤늦게 이번 대결에 대해서 들은 게지요. 아마 깜짝 놀랐을 겁니다. 이드 님이 그 유명한 블러디 혼을 이겼으니까요. 껄껄껄.”
“원래는 토벌대 편성에 맞추어서 움직이기로 했던 게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이드 님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너무 달라졌으니까요. 황궁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겠지요.”
쩔그럭. 쩔그럭.
클라인은 주머니 안에서 보석이 부딪히는 소리에 즐겁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삼검왕도 적극적으로 바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