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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94화


631화

비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라울은 황금의 바퀴를 돌려, 방금 전까지 비서가 눈이 빠지게 지켜보고 있던 영상을 불러 올렸다. 그 안에는 화원에서 이동해 온 쉴라의 모습이 떠올라 있었다.

어두워지는 숲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존재감에 라울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과연 검후가 가장 아끼는 기사답네. 동화책 속 기사로 변신한 공주님 같군. 아름다워. 고작 검후를 녹이기 위해서 부서트리기에는 아까운걸.” 

그러나 아깝다 말하는 입과 달리 손은 작전의 실행을 위해서 수레바퀴를 조작하고 있었다. 찰칵거리며 몇 개의 톱니가 돌아가고 황금빛이 아른거리자 라울이 말했다.

“오래 기다렸다. 한 시간 후 은색 기사단장의 생포 작전을 시작한다. 준비를 완료한 후 대기해라.”

“명령 확인했습니다.”

남자의 말과 함께 다시 톱니가 바뀌며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3호 대기 중입니다.”

“한 시간 후 작전을 개시한다.”

“위치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작전 개시 후 10분 안에 완료하겠습니다.”

“아니, 5분 안에 완료해라.”

“5분 안에 완료. 명령 확인했습니다.”

라울의 작전 변경에 23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좋아. 좋아.”

라울은 시원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에서는 쉴라의 출연에 은밀히 몸을 숨기고 있던 두 명의 기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쉴라와 마찬가지로 두껍고 칙칙한 거대한 로브로 은색 기사단의 상징인 파츠 아머를 완벽하게 가리고 있었다. 로브는 번쩍이는 은색 파츠 아머를 가릴 뿐 아니라 잠복에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즐길 수 있겠군.”

라울은 책상에 널려 있던 일거리를 한쪽으로 밀어 두었다. 한 장의 작은 서류에 대륙 전역에서 활동하는 초인파의 움직임이 기록되어 있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라울의 손짓은 가볍기만 했다. 이어 그가 예뻐하는 비서를 불러 가벼운 군것질거리와 함께 음료를 준비시켜 들어오게 명령하고, 그 외 비서들에게는 앞으로 두 시간 쉬는 시간을 주었다.

“나는 관대한 사람이니까.”

중앙에 있던 쉴라의 영상을 크게 키워 뒤로 밀자 사무 공간이 작은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음, 좋아. 완벽해~”

라울은 나긋한 비서의 손길이 어깨를 주무르는 것을 느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다른 비서가 아몬드를 입에 넣어 주는 것을 씹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소드 팰러스의 영감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못했네. 이대로 말도 없이 데려오면 또 길길이 뛰겠어.”

라울은 지금이라도 연락을 해야 할까 생각하며 수레바퀴를 바라보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떠오른 듯 가벼운 미소와 함께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며 뒤에 있는 비서에게 등을 기댔다.

“뭐, 그건 그것대로 의미 있는 일이니까. 그렇지?”

“네, 주인님.”

“그래그래. 하하하.”


부하 기사를 대신해 임무에 나선 쉴라는 정리된 집터를 한 바퀴 돌았다.

‘버릇이 될 것 같군.’

이곳을 직접 찾아온 것은 세 번째. 고작 그 정도로 버릇이라 할 것은 없지만 불타 버린 집터를 볼 때마다 검후가 이곳에서 어떻게 마음을 달래고, 또 변을 당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울렁거려서 올 때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갑작스런 단장의 출현에 잠복해 있던 휀이 달려왔다.

본래라면 조용히 작전지에 도착한 기사를 맞이하기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었다. 은밀한 잠복이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공간 이동하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무너진 건물의 일부처럼 공간 이동을 위한 곳도 만들어 감추었다.

그러나 곧 별일 아니라는 쉴라의 명령에 따라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모습을 감추었다. 쉴라도 원래 산드라가 지키고 있어야 할 곳에 몸을 숨겼다. 갑작스런 단장의 등장에 지루한 잠복 임무에 늘어져 있던 기사들이 긴장하면서 숲의 공기가 살짝 바뀌었다.

어쩔 수 없는 반응들에 쉴라가 쓰게 웃었다. 그녀가 긴장하지 말라고 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저 그들이 익숙해질 조금의 시간이 흐르면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잠복에는 삼십 명의 평기사와 두 명의 상급 기사가 배정되었다.

은색 기사단의 수를 생각하면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상급 기사가 두 명이나 투입되어 있는 시점에서 어지간한 자작 영지의 기사 전력보다 강력한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이상 인원이 늘어날 경우, 한 명의 인원이 더해질 때마다 발각될 가능성이 최소 두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었다. 특히 이런 은밀한 임무에 적합하지 않은 기사들의 특성상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쉴라는 인원을 적게 배정한 대신에 기사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시켜, 언제 전투가 시작되더라도 최상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무엇보다 은색 기사단의 가장 강력한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명의 상급 기사 중 두 명을 상시 투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가 얼마큼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 그녀는 이 숲에서 검후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았다.

검후가 납치된 지금에 와서 당시의 강자들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만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더없이 위험한 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모두의 동일한 의견이었다.

그와 같은 강력한 전력이 공격해 온다면 은색 기사단 전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해도 승리할 가능성보다 패배할 가능성이 수 배 높았다. 검후를 납치한 그들과 달리 그녀들은 검후를 상대로 한 훈련에서 한 번도 검후를 이겨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평기사들만 배치한다면 순식간에 제압당할 것이다. 상급 기사들은 그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패였다. 그 외에 클라인과 쉴라들은 몇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이번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상대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을 완벽히 피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쉴라는 갑자기 하늘에 드리운 황금색 장막에 한숨을 내쉬며 목에 걸려 있던 로브의 끝을 풀었다.

각각 멀리 떨어진 세 그루의 나무 꼭대기에서 시작된 황금의 빛이 이어지며 공중에 삼각형의 황금색 장막이 나타났다.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았던 숨이 황금색으로 환하게 밝아졌다.

동시에 빈틈없이 채워진 황금의 장막에 하나둘 파문이 생겨나며 그 속에서 사람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쉴라는 한두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한 번에 나타나는 모습에 자신들의 잠복을 이미 상대가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색 기사단 모든 기사는 지금 즉시 집결하라!”

다급히 소리친 쉴라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명령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은색 기사단이 분분히 그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적들의 행동도 기민했다.

이미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나타난 그들은 허공중에서 달려 나오는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쉴라의 명령에 그녀 곁으로 모여든 은색 기사단은 고작 열한 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곳곳에 흩어진 채로 적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삼분의 일이 쉴라에게 모여 있어서 숫자에서 밀려 버린 은색 기사단의 형편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많은 기사들이 각기 두 명에서 세 명의 적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떨어져 내린 적들을 빠르게 정리한 쉴라는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모두 능력자들인가! 역시 이들은……?

한순간 파악을 마친 쉴라는 가장 멀리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훤과 눈을 마주쳤다.

쉴라는 그녀에게 가볍게 신호한 후 열 명의 기사들에게 중간에 기사들을 수습하여 훤과 합류하라 명했다.

동시에 적과 대치하던 휀도 적을 떨쳐 내고 기사들과의 합류를 우선하며 움직였다.

“내가 적을 벤다. 리나 경은 기사들을 수습하고 이끌도록!”

“넷!”

그와 동시에 쉴라도 하나 남은 기사와 함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은색 기사단의 기사를 공격하고 있는 적의 등을 노려 검을 휘둘렀다.

“크아악!”

“비겁…

“엘리나 경은 리나 경의 지휘를 따르도록!”

하늘에서 비처럼 내린 적의 실력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지만 쉴라와 비교하기에는 불쌍했다. 그들은 쉴라의 접근도 눈치채지 못하고 피를 뿜고 쓰러졌다.

그런 덕분에 쉴라가 구해 내는 기사들의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적들은 비처럼 내렸고, 사방에서 적과 은색 기사단 기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라면 숫자에서 너무 크게 밀린다. 도대체 얼마나 더 나타나는 거지!’

쉴라는 익숙한 목소리의 비명을 들으며 입술을 악물었다. 설마 이렇게 화려하게 전격적으로 공격해 들어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대대적으로 밀고 들어올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공간 이동 마법의 사용이 어려워진 지금 상황에 이를 사용했다는 점은 정말이지 의외였다. 쉴라는 그 부분에서 적이 가진 능력에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바짝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자신이 아끼는 기사들을 챙겨야 할 때였다. “누구든 앞을 막는 자는 죽으리라!”

쉴라는 앞을 막아서는 적을 무자비하게 베어 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의 장담처럼 그녀의 검을 막아선 자는 삼검을 넘기지 못하고 냉혹하게 잘려 나갔다.

서거걱!

난장판 같던 전장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쉴라나 훤과 같은 뛰어난 강자가 기사들을 이끈 덕이었다. 전장은 쉴라와 휀을 중심으로 두 개로 나뉘었다. 더 이상 따로 떨어진 기사들은 없었다.

그러나 쉴라와 휀은 오히려 그 사실에 분노했다. 더 구할 수 있는 기사들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협공을 받아 죽어 간 기사만 아홉 명이었다.

하지만 아직 적들은 가득했다. 더 이상 황금 장막에서 적들이 떨어져 내리지는 않지만 가볍게 눈에 드는 인원만 해도 백이 넘었다.

상대편에 쉴라와 휀을 막아 낼 실력자가 없기는 했지만, 방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 다시 저 황금 장막에서 적들이 비처럼 내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휀 경, 공터로 향한다. 뒤따라 합류하도록.

우우웅!

오러텅으로 말을 전하고, 쉴라의 검이 울자 강맹한 검강이 뿜어지며 그녀에게 달려들던 적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 강렬한 모습이 마치 전장의 지배자 같아 정신없던 중에도 적들의 시선이 두려움으로 차 그녀에게 향했다. 특히 그녀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한 자들은 송곳 같은 살기에 몸이 굳고 말았다. 하지만 전장에서 몸이 굳으면 그대로 죽음과 직결된다.

“이익!”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진 그들을 덮친 것은 태산의 무게를 담은 방패였다. 방패에 강기를 휘감은 쉴라가 마치 충차처럼 치고 나온 것이다. 엉!

마치 성벽이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전장의 모든 소리를 잡아먹었다.

방패 치기를 정면으로 맞은 자는 산산조각이 나서 부서지며 섬뜩한 피 안개를 만들었고,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은 낙엽처럼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도저히 인간의 손에 들린 방패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끔찍한 위력에 그녀의 전방에 있던 자들이 한 발 물러서며 작은 길이 생겨 버렸다. 쉴라가 싸늘히 웃으며 그 길을 달리자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적들이 잠시 주춤한 사이 두 개로 나뉘어 있던 기사단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 모습에 난잡하던 적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따라붙어! 곧 렉터 님이 오신다!”

“단장님.”

휀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검을 든 손으로 힘을 더했다.

쉴라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들로 끝이 아닌 모양이야. 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그 순간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좀 전부터 조용하던 황금 장막에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며 황금색의 빛 한 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딱 봐도 예사롭지 않은 모습에 모든 기사들이 신경을 바짝 조였다.

쉴라는 그 속에서 나무 사이로 흐리게 보이는 공터를 돌아보았다. 

‘이미 연락을 했을 텐데.’

잠복하고 있는 기사들은 상급 기사를 포함해서 서른두 명이다.

그러나 그들과 공터 사이에는 만약의 순간에 대비해 응급 상황이 생기면 기사단에 연락을 취하라는 임무를 받은 기사가 잠복해 있었다. 기사는 공격이 시작된 순간 화원에서 은색 기사단을 데려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뜻하지 않은 목소리에 의해 부서졌다.

“당신이 기다리는 자는 오지 않는다.”

동굴 속에서 울부짖는 곰의 울음처럼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함께 쉴라를 향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은색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그건 피투성이가 된 은색 기사단의 기사였으며, 연락을 취하라는 임무를 받고 숨어 있던 기사였다.


짝짝짝짝!

라울은 영상에 비치는 모습에 박수를 치며 크게 웃었다.

“멋져! 멋진 등장이야! 꺄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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