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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05화


642화

“단장님, 데이트는 재미있으셨어요?”

쉴라가 돌아오자, 스폴을 시작으로 기사들이 그녀의 방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예의와 존중을 중시하는 기사단의 기강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모습이지만, 오늘의 데이트가 워낙 특별한 것이었기 때문인지 그녀들은 거침이 없었다. 쉴라가 이 중요한 시점에 데이트를 했던 의도가 100%를 넘어 200% 초과 달성된 순간이다.

물론, 이들이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이다. 단장의 첫 데이트라니. 궁금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어쩐지 자신들의 친언니가 첫 데이트를 한 것 같이 궁금하고 두근거렸다.

‘특히 데이트 상대가 그 흑마법사라고!’

자신들이라면 질색하며 거절했을 것이다. 은색 기사단은 제국 기사들의 우상으로,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애인이나 남편감을 고르는 게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쉴라가 특이한 편이었다. 음침한 흑마법사가 첫 데이트 상대라니.

‘혹시 취향이 특별한 걸지도. 그래서 아직 애인이 없으셨던 거라면? 꺄악~ 단장님도 독특하시다니까?

쉴라 앞으로 모여든 기사들의 무엄한 상상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판을 깔아 줘도 제대로 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은색 기사단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뭘 새삼스럽게 물어? 하루 종일 따라 다녔으면서.”

“그건 그렇지만요. 저희가 단장님의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스폴이 요사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 데이트 소감을 듣고 싶다?

“적국의 작전 계획보다 더 간절히 알고 싶습니다.”

“들려주세요!”

쉴라는 반짝반짝 눈을 번뜩이는 기사들의 모습에 쿡쿡 웃음이 샜다.

“뭐, 재미있었으니까 이야기해 주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그러기 전에, 스폴 수석 기사.”

“넵!”

“생각해 보니 데이트 당시에 내 주변에서 보이던데, 설마 이드 님을 곤란하게 하고 나온 건 아니겠지?”

“이 수석 기사를 어찌 보고 그런 말씀을. 당연히 데일리 경에게 마무리까지 잘 부탁하고 나왔죠.”

책임을 떠넘겼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하고 뻔뻔하게 할 수 있는 것도 나름 재주라고 생각한 쉴라가 다른 기사들보다 한발 물러선 곳에 서 있는 데일리를 찾았다.

“그럼 오늘 가장 고생한 것은 데일리 경이 되는 건가?”

“당연히 제가 책임진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고생은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스폴 수석 기사께서 자리를 비운 직후에 록 경이 달려오셔서 도와주신 덕분에 크게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애초에 수련생들도 말을 잘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수고했다, 데일리 경.”

든든한 대답에 쉴라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칭찬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다른 기사들은 데일리의 말을 다른 방향에서 듣고 해석해서 나섰다.

“잠시만요, 단장님. 데일리 경의 말 중에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폴이 눈을 번뜩이며 나섰다.

“전혀 이상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만.”

“아무래도 오늘 첫 데이트를 개시하신 단장님께서 파악하시기는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거 은근히 기분 나쁜 지적인데?”

뭔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에서 무시당한 느낌에 쉴라가 불끈했지만 이미 그 부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인걸요.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데일리 경!”

“넵.”

또 무슨 실수를 한 것일까. 갑작스러운 스폴의 발언에 바짝 긴장한 데일리가 허리를 쭉 펴고 대답했다.

“내가 나가자마자 록 경이 달려와서 도와주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물론 록 경은 하루 종일 친절했을 테고.”

끄덕끄덕.

“친근하게 말도 자주 하지 않았나?”

끄덕끄덕.

“자신이 수업을 한다며 쉬게 하고, 적당히 마실 것과 디저트도 챙겨 오고?”

끄덕끄덕.

“보지도 않으셨는데 너무 잘 아시는군요. 혹시 네리베르나 케마란에게 들으셨습니까?”

직접 보지도 않은 일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짚어 내는 스폴의 모습에 놀란 데일리가 물었다.

“그건 아닌데. 생각해 봐. 그 모습이 어딘가 은색 기사단의 다른 기사들과 가까워지려던 남자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지 않아?”

스폴의 말에 데일리는 번뜩이며 떠오르는 기억에 깨달음의 손뼉을 쳤다.

“아, 그렇군요. 과연. 어? 그럼 록 경이 저에게 친절했던 것은 설마?”

쉴라가 그 모습에 혀를 찼다. 스폴의 말처럼 연애 관련으로 눈치가 없기는 오십보백보이면서 말이다.

“눈치채는 것이 느리다, 데일리 경. 그나저나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따로 있었구나. 대충 알고 있는 내 이야기보다 우리가 모르는 데일리 경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겠는걸?”

쉴라가 데일리를 방 중앙의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자, 데일리 경. 오늘 록 경과 있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말해 보도록. 이건 명령이다.”

그런 쉴라의 눈은 스폴과 다른 기사들 못지않게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과연 그녀가 기사들의 분위기 전환을 위해 데이트를 택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시각.

비올라도 쉴라와 마찬가지로 그의 데이트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질문 세례를 당했다.

하지만 이번 데이트에 대해서 계속 의심하고 있었던 그의 답변이 건조했던 탓에 화원의 기사들과 달리 저택 사람들의 관심은 의외로 금방 사그라져 버렸다.

“그리고 더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저놈한테 물어봐라. 나보다 더 오늘 있었던 일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난 피곤해서 먼저 들어간다.”

비올라는 뻣뻣한 목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쪽에 얌전히 앉아 있는 에단을 힐끗 노려보았다. 에단은 오늘 정말 비올라에게 배를 갈릴 뻔했지만, 다행히 에단에게 볼일이 있는 이드와 클라인의 만류로 지하로 끌려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은 초인의 능력을 흡수하는 에단의 능력 말입니다. 혹시 그렇게 흡수한 초인력이 초인의 힘을 강하게 만든다면 수백, 수천의 초인력을 흡수한 초인이 검후를 쉽게 제압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갑자기 던져진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에 이드가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건 아니야. 검후가 납치된 현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힘의 흔적들이 나왔거든. 한 사람이 아니고.”

“뭐, 그렇다면 쓸모없는 이야기였네요.”

“아니, 쓸모없지는 않아. 분명 생각해 볼 문제긴 해.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초인력을 흡수하는 방법은 이미 있지 않아? 소드 팰러스로 오면서 내가 직접 본 적도 있는데.”

이드가 일리나스에서 만났던, 식인종처럼 초인을 보고 침을 흘리던 하이탈 자작이 떠올라 말했다.

“흥, 그게 가능했으면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건 신과 같은 능력의 초인이겠지. 그 마법엔 한계와 부작용이 존재해 사람들이 그 마법을 쓰지 않는 이유가 불법이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라고.”

“하긴, 그렇기도 하다.”

이드는 즉각 비올라의 말을 인정했다.

그의 말처럼 절대적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그걸 그냥 두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혹 신께서 직접 금지한 일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간이니까.

더구나 마왕과 거래하는 흑마법사처럼 영혼을 대가로 바칠 필요도 없는 방법이다. 가능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그레센은 대륙의 모든 초인을 잡아먹은 어느 괴물의 손에 떨어졌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초인을 잡아먹으면 드래곤이나 혼돈의 파편도 상대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은 살펴볼 필요가 있기는 해. 꼭 검후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고 해도, 당장 에단의 상태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조사는 에단이 이번 일과 같이 진행하고.”

“예, 마스터.”

비올라는 그 모습에 더 관심 없다는 듯 방으로 향했다.

“뭐, 그런가요. 전 들어갑니다.”

“야, 새벽에 출발할 거니까 준비해 둬라.”

곧이어 들려오는 에단의 말에 비올라가 휙휙 손을 저어 보이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허. 저놈 은근히 뒤끝 있는 놈입니다.”

그제야 살았다는 듯 에단이 소파에 늘어졌다.

“그러게 장난도 적당히 쳐야지. 자네 나이가 얼만데.”

클라인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검후의 사생팬에 가까운 그가 할 말은 아니었다.

이드는 고만고만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새벽에 라미아가 검후의 숲까지 데려다주면 되는 건가? 사람들은 다 준비했고?”

“네. 클라인 백작님을 통해서 믿을 만한 특수대 검사들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의뢰했던 사람들도 내일 중으로 자자수 영지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저와 비올라가 합류하는 즉시 조사와 감시를 시작할 겁니다.”

“무언가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희생 없이 무사히 복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 잊지 말고.”

이드는 자신하는 에단에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거야 기본입니다. 특수대 소속으로 트와이스에 숨어 있던 경력이 얼마인데요. 전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정말 암살자를 고용해도 괜찮은 거예요?]

라미아가 조금 미덥지 못하다는 투로 말했다.

갑작스러운 비올라의 합류 때문인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특수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이 적었다. 에단은 그 모자란 인력을 검은돌이라는 암살단 하나를 통째로 장기 고용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어지간한 정보부보다 실력도 좋고, 은밀하며 비밀 엄수가 잘 되어 있기에 그들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다만 단점은 그 정도로 뛰어난 암살단을 구분해서 접촉하는 것이 쉽지 않고,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검은돌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고, 끝없는 자금력을 가진 이드를 뒤에 둔 에단에게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이전에 목숨을 걸고 부딪혔던 상대를 부릴 짜릿한 기대감에 검은돌을 만날 순간이 기다려졌다. 

“몇 번을 이야기하지만 전혀 문제없어. 트와이스에 있으면서 몇 번 부딪혀 봤지만 검은돌은 상당히 믿을 수 있는 놈들이라고.”

[으으, 암살자를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이해가 안 가요.]

“뭐, 그쪽이나 우리나 서로 감정이 있다기보다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일이다 보니………… 원래 정보를 다루는 인간들의 생각이 좀…………… 좀 특별하지.”

[에단도요?]

“당연히 난 아니지. 난 당당한 소드 팰러스의 기사라고!”

의심스럽다는 라미아의 말에 에단이 둥둥 하고 가슴을 두드렸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못 미더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 그런 사실을 아는지 에단은 바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정 힘들다 싶으면 트와이스의 대장에게 손을 벌려 볼 생각도 있습니다.”

이드는 에단이 자신을 처음 찾아왔을 때, 그의 옆에 있던 남자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지. 그 사람은 네가 특수대 소속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감아 준 사람이니까.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믿을 만할 거야.”

“예,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으려고요.”

제국의 암부에 속하는 트와이스에서 일하는 만큼 그물과 같은 감시망이 어디까지 뻗쳐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설혹 에단이 좋은 의도로 접근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비극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이야기를 마친 에단은 새벽에 출발하기 위해서 휴식과 준비를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이드는 그를 위해서 몇 가지 쓸 만한 아티팩트와 스크롤을 챙겨 주었다. 수백의 초인들과 기사단장급의 실력자를 부릴 수 있는 자들인 만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것이었다.

적절히 사용하면 적들을 물리치지는 못해도 도망치는 동안 상대의 발을 묶어둘 수 있을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

라미아의 도움을 받은 에단과 비올라가 소드 팰러스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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