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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45화


682화

무엇보다 화원에서 싸움이 나는 걸 그냥 뒀단 말인가?

“쉴라 경은 그걸 그냥 뒀어요?”

그녀가 있다면 싸움이 일어날 수가 없고, 일어나더라도 곧 그쳤을 것이다. 이드는 작은 일이겠거니 하고 지레 결론지어 버렸다. “쉴라 경이 벌인 일인걸요.”

그런데 그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당혹스러운 사실에 이드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쉴라 경이 직접요? 정말?”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명검이나 보검이 관련되면 조금 과격해지기는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완벽한 기사상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나서서 싸움을 붙였다니. 그 이유가 매우 궁금해졌다.

“지원 온 기사들이 저와 케마란, 네리베르가 화원에 있다는 걸 알고 신뢰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어요.”

“오호, 기사들의 신뢰라면 결국 실력일 테고, 쉴라 경은 기사들이 그들을 신뢰할 수 있도록 싸움을 주선했다는 거네요. 아, 그럼 싸움이 아니라 대련이었겠군요.”

이유를 알자 앞뒤 사정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드는 반짝반짝 흥미 가득한 눈빛을 하고 거울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서 대련은 어떻게 됐어요?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이겼어요?”

[으이그, 이럴 땐 일리나에 대한 것부터 물어야죠. 케마란과 네리베르에 대해서만 물으면 어떻게 해요?]

“그건 그렇지만, 단장도 아니고 평기사라고? 일리나가 이긴 게 당연하잖아.”

이드는 뭐가 문제냐는 얼굴을 했다.

사소한 것도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는 여성의 심리를 아직까지 모르는 이드의 모습에 라미아는 혀를 찼지만, 오히려 일리나는 이드의 편을 들었다. 

“호호호, 이드 말이 맞아요. 아무런 문제없이 제가 이겼으니까요.”

그녀의 미소는 진짜였다. 사실 이성적 사고가 발달한 엘프에게는 이드의 말이 당연한 것이다. 물론, 기분과 감정의 문제는 둘째다.

“저 봐,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상대 기사 쪽 이야기겠지.”

[쯧쯧, 우리 이드가 도대체 언제쯤 여자 마음을 알까요.]

“하하하, 그건 두 사람이 평생 알려 주면 돼. 언젠가는 나도 알겠지.”

이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라미아가 쯧쯧 혀를 차고, 일리나가 방그레 웃어 보였다.

그 뒤 이드가 다시 일리나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리고 라미아는 옆에서 아공간에서 팝콘과 콜라를 이드 앞에 꺼내 주었다.

[이런 건 역시 먹으면서 들어야 제맛이죠.]

툴툴거리면서도 이드를 먼저 챙기는 것이 과연 라미아다웠다.

[같이 있었으면 일리나가 먹을 것도 준비했을 텐데. 이번엔 참아 줘요.]

팝콘의 고소함을 떠올린 일리나의 눈꼬리가 아쉬움 때문에 처졌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가 이럴 줄 알았나. 애써 팝콘에서 눈을 돌린 그녀가 대련에 대해 말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대련 제의에 데이노스와 기사들이 술렁였다. 거기에 쉴라가 짧게 더한 말로 인해서 자신들의 실력까지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 버리자 소란은 더욱 커졌다.

“대련으로…………… 직접 확인하란 말씀입니까?”

“그렇다. 검에 모든 것을 건 기사에게 그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지 않은가. 대련이면 자네들의 의심도 씻어 낼 수 있을 것이고.”

과연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지만, 다 큰 성인인 기사라는 작자들도 큰 차이가 없으니까. 괜히 싸우며 정든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대련을 통해 자네들의 실력도 우리 기사들이 확인할 수 있겠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동료인지 말이야.” “끙!”

그 말에 데이노스 뒤에 서 있던 기사들로부터 앓는 소리가 났다.

‘그게 가장 문제입니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명색이 오색 기사단의 기사로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감이 없는 기사는 없다. 그리고 패배하는 것도 익숙하다. 기사들 간의 대련 중에 이기고 지는 것은 기사단 안에서 늘 있는 일이니까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다. 늘 이기는 사람은 없다. 그날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승률이 높은 사람이 지기도 한다. 기사단 안에서 늘 이기기만 하는 사람은 단장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장소와 관전자들이 문제였다. 저 많은 은색 기사단 앞에서 대련을 하라니! 멋지게 잘 보여도 모자랄 판에 혹시 지기라도 하면 그 망신을 어쩔 것인가. 그때는 애인을 구하고 못 구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했다가는 다시는 얼굴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수련 기사들을 경계하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 좋다고 하지만 평기사도 아닌 수련 기사가 실력이 좋아 봤자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도 전날 수련 기사로 입단한 신입들인데.

문제는 일리나다.

은색 기사단장이 실력자로 모셨다고 하니 빈말이기보다는 진짜 뛰어난 실력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말해, 그녀를 상대하는 기사는 이 많은 여기사들이 보는 앞에서 여검사와 싸워 꼴사나운 패배를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누가 그 망신을 자초할 것인가?

순간 데이노스를 제외한 기사들의 시선이 바쁘게 서로를 돌아보았다.

‘난 이 대련 반댈세!’

그 찰나의 순간 집단 지성을 발휘하여 기사들의 생각이 하나로 뭉치며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만에 하나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대련을 포기하자고!

그러나 그들의 지성이 하나가 되는 것보다 데이노스의 대답이 더 빨랐다.

“과연 좋은 방법입니다. 저희는 하겠습니다.”

쩌적!

“자, 잠깐만. 왜 자네 마음대로 그런 결정을………….”

기사 중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없으니 승낙하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설마 자네… 이길 자신이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

기사로서 실력을 의심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여기사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 없다는 말이 나오겠냐, 이 새끼야! 왜 혼자 결정하고 난리야!’

기사는 속으로 온갖 악을 쓰는 것과 달리 가까스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같은 기사라면 누굴 상대로도 진다고 생각지 않아.”

“그럼 더 말할 필요도 없군. 하시죠, 쉴라 단장님.”

기사는 등 뒤로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내심 피눈물을 흘렸다. 이제 꼼짝없이 대련자 중 하나가 자신이 될 것이라는 불길하면서도 확실한 예감이 들었다.

그 모습을 살피던 스폴이 쉴라 뒤에서 낄낄거리며 진하게 웃었다.

“이거 재미있네요. 데이노스라는 기사, 앞으로 화원 생활이 편하진 못하겠어요. 저렇게 동료 기사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기도 힘들 텐데.”

“기사들이 단합하기 위해서는 이런 작은 사건도 나쁘지 않아.”

“저 기사만 빼고 나쁘지 않죠. 이런 일의 제물은 괴롭다고요.”

스폴의 말에 ‘씨익’ 하고 웃어 준 쉴라는 배부른 고양이가 지을 법한 미소를 달고는 말했다.

“좋다. 그럼 대련은 바로 시작하지. 장소는 이곳이면 될 테고.”

주변을 돌아본 쉴라가 손을 들어 신호하자 주변에 빽빽하게 모여 있던 여기사들이 순식간에 물러서며 대련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쪽은 세 명이 대련에 나설 테고, 그쪽은 누가 나설 텐가? 아무리 봐도 쉽게 고르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러나 데이노스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렇군요. 모두 서로 나서려 하겠지요. 잠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데이노스의 생각과 달리 출전자는 순식간에 정해졌다.

“데이노스 경은 일리나라는 여검사를, 그리고 수련 기사 중 하나는 누굴 상대로도 지지 않는다는 알폰스 경이 상대하는 것으로 하지.”

“흐음, 자네들은 대련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건가?”

“전혀! 절대로! 우린 자네가 승낙한 일이니 자네가 끝까지 책임져 주기를 바랄 뿐이네. 알지?”

꾸욱!

데이노스의 양 어깨를 잡은 기사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격려가 아니라 압박이고, 협박이다.

이쯤 되자 데이노스도 기사들의 분위기를 모를 수가 없었다.

‘이런…………… 또 실수한 건가.’

이와 비슷한 일이 황색 기사단에서도 있었다. 상급 기사를 제외하고 가장 실력이 좋은 그는 항상 대련에 목말라했고, 동료 기사들은 패배가 뻔한 그와의 대련을 극력 회피했었는데, 지금 모습이 그와 비슷했던 것이다.

“으음, 알았네. 내가 책임지고 이기도록 하지.”

진심이 깃든 그의 말에 기사들은 잠시 침묵했다.

‘이 자식, 진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쉴라 단장님의 말씀을 듣고도?”

설마 그분이 없는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기사들의 심정은 비슷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쉴라의 설명에 승복한 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하겠다는 동료 기사의 의욕을 꺾을 수는 없는 법. 

“그래, 우리도 열심히 응원하지!”

응원만 말이다.

이어 나머지 한 명도 쉽게 뽑혔다.

누구도 수련 기사를 상대로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어제 입단한 수련 기사를 이겨 먹는 모습이 속 좁아 보일까 봐 쉽게 나서지 못한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결국 마지막 한 사람은 대련을 승낙한 데이노스와의 연대 책임을 물어 황색 기사단 소속의 더글라스 기사가 대련자로 결정되었다. 

“젠장, 데이노스 놈 때문에 왜 내가!”

“꼭 이기게! 지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같은 기사단의 기사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설마 내가 질까 봐 이러는 것 같나!”

“좋게 생각해. 단번에 이겨 버리면 오히려 은색 기사들 앞에서 네 강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고?”

“그럼 자네가 해 보지 그러나?”

“정중히 사양하지.”

이야기를 나누는 두 기사 모두 수련 기사에 대한 패배는 생각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보던 데일리는 대차게 코웃음을 쳤다.

“흥, 어디 대련을 시작하고도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지 보자고.”

실전 경험이 부족할 뿐 두 후배 수련 기사들의 실력은 평기사들 중에서도 뛰어난 것이었다. 아마 저 중 대련에 나서는 기사는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린 후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대련 순서는 네리베르와 더글라스, 케마란과 알폰스, 마지막으로 일리나와 데이노스 순으로 정해졌다.

“이번 대련은 은색 기사단 상급 기사 스위트 스위니 경이 주관한다.”

“한 치의 치우침 없이 신중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쉴라의 말에 스위트가 대련장 중심으로 나아갔다.

쉴라나 스폴이 나설 줄 알았던 기사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금방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쉴라 단장님은 이후 화원에 남을 기사들을 지휘할 스위트 경에게 대련을 주관하게 함으로써 지금부터 힘을 실어 주려는 것이구나.’

과연 단장급의 인물답게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불안해지기도 했다.

“저런 쉴라 단장님이 밀어붙인 대련이야. 결과가 심상찮을 수 있어.”

“그래 봤자 데이노스의 경의 패배지.”

“그렇겠지?”

기사는 조금 찝찝한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스위트 경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첫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네리베르 경과 더글라스 경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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