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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80화


717화

토벌 작전 중에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면 모르겠지만, 굳이 찾아가서 도와줄 의리는 없었다.

사실 탈탈 영주도 얌전히만 있었다면 그때 생명의 관에서 빠져나온 기사들과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대접하고 보호한 것으로 적당히 공을 인정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 괜한 탐욕을 부려 록마틴 후작에게 찍힌 것이니까.

자업자득일까. 록마틴 후작이 토벌대 사령관으로 내정되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운이 나빴다.

잠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이드는 혹시 록마틴 후작이 라울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작님, 혹시 엘론드 경이 나서기 전에 제게 초인인지를 물었던 라울이라는 남자를 기억하십니까?”

“누굴 말하는지 알겠소만, 나도 처음 보는 자였다오.”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이 궁금했습니다만…….”

후작이 알지 못한다면 제국의 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의 대답은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그를 보좌하는 자들의 정보를 통합한 것일 테니까.

“자신이 벌인 일이 두려워 사라진 자인데, 신경 쓸 필요가 있겠소?”

후작은 라울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그 뒤에 나선 엘론드의 인상이 보통 강했어야지.

더욱이 라울의 말은 게일의 헛소문에 근원한 것이어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기는 하지요.”

이드는 록마틴 후작의 말을 대충 받아넘겼다. 어쩐지 라울에 대해서는 더 알아보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드는 라울에 대해 묻기를 포기하고 기살의 공간에 함께 숨어 있던 두 남자에 대해서 물었다.

마치 사람 찾는 일을 받은 용병을 대하듯 연속적으로 이어진 질문이었지만, 후작은 티끌만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드의 말과 표정에 집중했다. 아는 사람도 없는 황궁의 파티에서 이드가 관심을 가지는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드가 말하는 자에 대해서 듣고 난 후 그는 궁금증을 접었다.

“누군지 알겠구려. 내가 보지 못한 사이 왔다 간 모양인데, 그라면 후작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하오.’

라울 때와는 확연히 다른 록마틴 후작의 반응을 본 이드의 눈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누굽니까?”

“후작이 본 사람은 발터 오 오휀 백작이 분명하오. 강력한 초인기를 가진 청색 깃털 초인 기사단의 단장이지.”

“초인 기사단이면 초인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드는 낯설게 들리는 발터의 신분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록마틴 후작은 그 모습을 보고 이드가 초인 기사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어떤 오지에 있었기에 초인 기사단을 알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답이오. 기사와 초인은 어지간해서는 섞이지 못하기 때문에, 황궁에서는 황제 직속의 기사단을 제외한 기사단을 두 개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소. 기사들로만 구성된 황색 갈기와 초인들로만 구성된 청색 깃털로 말이오. 덕분에 두 기사단은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라이벌이고, 앙숙 관계로 유명하다오.”

이드로서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삼검왕에 황제, 레오날도 후작까지. 신경 써야 할 거물이 많은데, 기사단까지 살필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살필 이유가 생겼지. 청색 깃털 기사단의 대장이란 말이지.’

설마하니 황제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기사단의 단장이 검후의 납치, 감금과 관계되어 있을 줄이야.

‘이거, 검후의 일에 대해 알아낼수록 황제가 점점 의심스럽잖아?’

수상해도 보통 수상한 관계가 아닐 수 없었다.

“황색 갈기와 청색 깃털, 두 기사단 모두 처음 듣습니다. 제가 들은 제국의 기사단은 대지의 기사단이었지요.”

“대지의 기사단이 바로 두 기사단의 전신이오. 초인이 탄생한 후 어쩔 수 없이 둘로 나뉘었다오. 후작은 두 기사단의 이름이 어째서 황색 갈기와 청색 깃털인지 아오?”

“그렇지 않아도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가 별로 좋지는 않소. 불화로 어쩔 수 없이 나뉘었으니, 두 기사단 모두 몸통이 될 수 없다는 뜻이오. 대신 전대 황제께서 여지를 남겨 두셨지. 각 기사단이 힘을 길러 언젠가 갈기와 깃털이 아니라 용맹한 사자와 썬더버드가 되라는 의미가 담겨 있소.”

이드는 그 이야기 속에서 전대 황제의 고심을 엿볼 수 있어 감탄했다.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이군요.”

“그렇소. 안타까운 것은 그 좋은 뜻이 온전히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오. 두 기사단은 여전히 앙숙이며, 서로 먼저 사자와 썬더버드의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니 말이오.”

“뭐랄까. 화합이라는 단어를 오래전에 땅에 매장해 버린 것 같은 이야기로군요.”

록마틴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었소. 그런데 발터 경은 이런 자리에는 잘 나오지 않는데………… 이번에 나온 것을 보면 그도 어지간히 후작에 대해서 궁금했던 모양이오. 허허허허.”

“발터 경만큼이나 저도 그에 대해서 궁금하군요.”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의 출생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 스토리를 모조리 심문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사이에 벌어질 강제적 조치나 사생활 침해 같은 건 상관없었다. 이드는 죄인에게는 합당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니까.

록마틴 후작 덕분에 발터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라미아의 모습이 떠오르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드.]

굳이 기운이 빠진 목소리가 아니라도 이드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추적이 끝났다고 하기에는 너무 빨리 연락했기 때문이다. 

‘혹시 놓쳤어?’

[미안해요. 앗, 하는 사이에 그만. 출궁한 후에 공간 이동의 초인기로 사라져 버렸어요. 남아 있는 흔적으로 봐서 수도를 벗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앞서 큰소리를 떵떵 쳐 놓은 것이 있어서인지 그녀는 굉장히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깨가 축 처진 라미아의 모습이 떠오른 이드는 가볍게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어서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겨우 눈에 들어온 범인인데・・・・・….]

‘괜찮다니까. 라울은 몰라도 같이 있던 남자가 누군지는 알아냈어. 지금은 놓쳤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정말이요? 어떻게 알았어요?]

금세 밝아진 라미아의 목소리를 들은 이드는 록마틴 후작에게 들었던 사실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와 대화한 순간의 기억을 통째로 라미아에게 넘겨 버리면 되었다.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는 참 쉬운 방법인 데다, 마음이 연결되어 있으니 성의 없다고 느껴지지 않는 점이 특히 좋다.

[초인 기사단 단장이란 말이죠. 그럼 혹시 황제도?]

과연 부창부수. 이야기를 들은 라미아도 이드와 비슷한 의심을 꺼내 놓았다.

‘그건 모르지. 그러니 일단 돌아와. 나도 적당히 사람들 떨쳐 내고 나갈 테니까 같이 움직이면서 찾아보자.’

이드의 말에 잠시 답이 없던 라미아가 이드를 말렸다.

[아니에요. 저 혼자 살펴볼 테니까. 이드는 거기 그대로 있어요. 괜히 지금 움직였다가는 그쪽에서 눈치챌지도 모르잖아요. 보는 눈도 많은데.]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달려 나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찾아내고 붙잡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괜히 저들에게 경계심을 심어 줄 수가 있었다.

저들은 이드와 라미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도청해서 들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괜히 나서서 그들의 경계심을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이드는 라미아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알았어. 그럼 난 여기 있을 테니까 수고해 줘.’

[이번엔 꼭 성공해 보일 테니까 믿어 주세요.]

어이없는 실패에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한 듯, 그녀의 목소리에서 은근한 오기가 느껴졌다.

‘물론 믿고 있지. 조심해.’

이드는 멀어지는 라미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간단한 당부의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는 마주한 록마틴 후작을 상대로 다시 인물 조사에 들어갔다. 

“그럼 발터 경과 함께 있던 사람도 초인 기사단의 초인이겠군요?”

“발터 경이 아끼는 보좌가 있다고 들은 듯한데………… 아쉽게도 그 보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오.”

“아닙니다. 발터 경의 보좌까지 후작님이 알아 두실 필요는 없지요. 후작님 덕분에 궁금했던 것을 알 수 있어서 속이 시원합니다.”

록마틴 후작이 아니었다면 발터에 대해서도 지금 알 수는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목소리가 여럿 있었다. “두 분의 분위기가 참으로 좋습니다.”

“후작, 오늘의 주인공을 너무 혼자만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록마틴 후작은 자연스럽게 다가온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이드에게 그들을 소개해 주었다.

“후작이 제국에 살다 보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는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소.”

그들을 황제를 제외한 제국의 최고 권력자들이었다.

이드는 다른 일로 바빠진 라미아를 대신해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어쩐지 라미아와 함께 라울들의 행방을 탐색하는 것보다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느끼는 이드였다.

이드가 새로운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고생하는 사이, 라미아는 어느새 저택에 돌아와 집사를 만나고 있었다.

[초인 기사단 단장의 집이 어딘지 알려 주세요.]

늦은 시간이지만 이드를 기다리며 꼿꼿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던 집사는, 갑자기 들이닥친 라미아의 요구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수도의 모습이 그려진 지도를 가지고 와서 펼쳐 들었다. 수도의 모습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도였다.

[이건 무슨 지도에요?]

“하인들의 원활한 심부름을 위해 사용되는 지도입니다.”

지도의 존재 이유를 간단히 언급한 집사는 지도 위의 세 지점을 짚어 보였다.

“여기가 이 저택이 위치한 곳입니다. 이 중앙이 황궁, 그리고 이곳이 발터 오 오휀 백작님의 저택이 있는 곳입니다.”

[대충 위치는 알겠어요. 혹시 그 저택을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은 없어요?]

“저택은 삼 층이고, 지붕은 갈색이며, 정원수 대신 큰 바위가 정원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고마워요, 집사.]

라미아는 저택에 들어올 때처럼 다급히 저택 밖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집사는 지도를 다시 돌돌 말아 정리했다.

그때, 벌써 멀리 날아간 줄 알았던 라미아가 푸드덕거리며 돌아와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저도 이드도 많이 늦을 것 같으니까 집사도 먼저 자도록 해요.]

다다다 바쁘게 말을 쏟아 낸 라미아가 다시 어두운 하늘로 사라졌다.

대답할 상대가 사라져 버린 집사는 지도를 원래의 위치에 돌려놓은 후 방의 불을 껐다.

그는 끝까지 발터가 소유한 저택의 위치를 묻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사이 라미아는 발터의 저택을 발견했다. 과연 기준이 될 건물과 저택의 특징을 알고 있으니 찾기가 쉬웠다.

단번에 찾아낸 발터의 저택은 주변의 다른 저택과 마찬가지로 불이 밝혀져 있었다. 하인들이 파티에 참석한 주인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라미아는 저택의 내부를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멀리서, 이후에는 가까이에서, 그런 후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마법으로 확인까지. 그리고 그 결과 현재 발터가 저택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황궁 앞에서 사라진 그들이 저택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갔다는 뜻이다. 

[어쩐지 집에 없을 것 같긴 했는데. 어쩌지? 이러면 곤란해지는데.]

라미아가 톡톡 이마를 두드렸다.

발터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그가 집에 없다면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짐작되는 곳이 없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뒤지기에는 이 수도가 너무 넓었다.

방법을 궁리하는 라미아의 눈에 문득 창으로 비치는 저택 내부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법으로 확인한 결과, 저택 안에는 몇 명의 초인과 하인이 있을 뿐이었다.

초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심이 들지 않았다. 초인 기사단의 단장씩이나 되는 자의 저택인데 그 집에 초인이 하나 없으려고.

대신 라미아가 관심을 가진 것은 저택 그 자체였다.

그냥 저택도 아니고 범인의 집이 아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저택을 한번 뒤져 볼까? 혹시 알아? 따로 두고 있는 아지트에 대한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지?]

혼잣말로 스스로를 납득시킨 라미아의 눈이 보물찾기에 나선 악동처럼 번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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