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87화
724화
그렇게 휴식 시간이 수다 시간으로 변질될 때였다.
딸그랑!
일리나가 찻잔을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급하게 일어나 수련장 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힘이 없어 휘청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일리나 님, 왜 그러세요?”
“지금 이 일대에 마법이 사용된 것 같아요.”
“이 일대라고 해도 화원인데, 누가 감히 화원에 그런 일을 할 수가……”
네리베르가 고개를 저으며 일리나의 말을 부정했다.
일리나는 굳게 닫혀 있던 수련장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실시간으로 유동하는 마나의 흐름이 확연하게 느껴지며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법 결계!”
“정말이요?”
일리나의 말에 절뚝거리며 다가온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기감을 가다듬어 보지만, 아직 멀리 떨어진 마법의 기감을 느끼기에는 두 사람의 실력이 모자랐다.
일리나가 두 사람에 포션을 주고 마시게 했다. 한계까지 몸을 혹사한 두 사람은 비상사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도망을 갈 수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위험한 밤이 될 것 같군요. 두 사람은 지금 바로 데일리 경과 스위트 경을 찾아서 침입자의 존재를 알린 후 검후의 방으로 몸을 숨기도록 해요.”
일리나의 말에 호쾌하게 포션을 비운 케마란이 빈 병을 뒤로 던지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일리나 님이 저희를 염려해 주시는 마음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와 네리베르는 지금 보호받아야 할 수련생이 아니라 당당한 은색 기사단의 기사에요. 기사가 동료와 수호해야 할 성을 두고 숨거나 도망칠 수는 없죠. 저희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어요.”
“최근 했던 말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케마란, 당신 말에 동감이에요.”
네리베르가 흐트러졌던 옷자락을 단단히 조이며 말했다. 좀 전까지의 괴로워하던 표정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수련생이 아니라 기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리나는 두 사람의 결심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길게 두 사람을 설득할 시간도 없었다.
떠덩!
“크악! 침입자다!”
때마침 폭음과 함께 침입자를 알리는 비명 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자신들의 말을 증명하듯 동료 기사의 비명 소리에 조건반사처럼 튀어 나가려고 했다.
그에 일리나가 급히 두 사람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일리나 님!”
“막지는 않아요. 대신 파츠 아머를 착용하세요. 두 사람이 무작정 뛰어나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일리나의 말처럼 두 사람은 간편한 수련복 차림이었다.
“알겠습니다.”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서로를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한밤중의 습격은 분명 어디서 검과 화살이 날아들지 모르는 흉흉한 전장이 될 것이 확실하다. 경험이 풍부하지 않아도 그런 전장에 맨몸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다시없을 멍청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방어구를 착용한 후 선배 기사들과 함께 행동하도록 하세요!”
일리나는 방어구를 찾아 자신들의 방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등에 대고 말하고는, 출입문이 있는 반대쪽으로 향했다.
마침 그곳에서는 다른 기사들과 함께 달리고 있던 데일리와 스위트가 있었다.
모두 오색 기사단 소속의 뛰어난 기사라는 것을 증명하듯 짧은 시간에 완벽한 무장을 갖춘 모습들이었다.
“일리나 님!”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정문이 뚫렸습니다.”
“침입자의 수는 약 백오십 정도이며 무기를 들지 않은 자가 삼분의 일입니다.”
시급한 중에도 적을 살핀 듯 두 기사가 자신들이 파악한 정보를 전했다.
“적의 수가 적지 않군요.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화원은 결계 마법 안에 있어요. 일부러 외부와 단절시킨 것 같아요.”
“그렇겠지요. 그런 준비 없이 화원을 공격할 수는 없으니까요.”
한밤중에 화원에서 폭발과 비명이 들려 봐라. 소드 팰러스의 모든 기사가 쫓아올 것이 뻔했다. 화원을 습격할 자들은 필히 폭음과 비명을 막을 방법이나, 달려오는 기사들을 막을 방법을 준비해야 했다. 선택은 당연히 전자일 수밖에 없다. 후자를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습격이 아니라 전쟁이 될 테니까.
“밖으로 나가는 즉시 일리나 님은 적의 결계를 살펴 주십시오.”
“알았어요.”
일리나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기묘하게 꿈틀거리는 검은 하늘, 꽃밭을 무참히 짓밟으며 달려오는 적의 모습, 그리고 그 앞을 막아선 십여 명의 기사들이 보였다.
화원의 경비를 서던 인원이 먼저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백오십의 적을 막기에는 무모한 수(數)다.
“전방에 대치한 기사들은 즉시 물러나 합류하라!”
스위트의 명령이 날카롭게 전방으로 뿌려졌다. 그와 동시에 마법등과 등불이 일제히 밝혀지며 적들의 모습을 드러났다. 스위트의 명에 따라 기사들이 물러나자 적들이 급히 공격했다. 사냥하기 좋게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먹이를 그냥 두지 않는 맹수와 같은 공격이었다. 쉬쉬쉭!
꽈과광!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초인기가 기사들을 향해 쏟아졌다.
기사들이 최선을 다해 방어했지만, 공격자들이 너무 많았다. 순식간에 여섯이나 되는 기사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모두 검기로 적의 접근을 막아라. 청색 기사단은 아군과 부상자를 확보하고, 흑색 기사단은 그들을 보호하라!”
“충!”
즉각적인 스위트의 명령에 기사들이 복명하며 달려 나갔다. 상황이 급한 것도 급했지만, 시의적절한 명령이기에 망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초인기와 검기가 난무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 이상의 사망자를 만들지 않고 부상자를 보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적의 대장이 한 발 물러서며 공격을 멈췄다.
“좋은 판단이다.”
“화원은 허락받지 않은 자가 함부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체를 밝혀라!”
스위트가 기사들의 공격을 멈추고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듯 기사들이 정련된 살기를 뿜으며 으르렁거렸다. 이미 동료 기사 여섯이 죽고, 부상자도 나왔다. 평소 경쟁하고 으르렁거려도 수련 기사 시절부터 함께한 동료들이었다. 정체 모를 자들의 손에 허무하게 죽어 버린 모습을 본 기사들의 분노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평범한 자라면 쏟아지는 살기로 인해 주저앉아 똥오줌을 싸질렀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대장은 그런 살기가 우습다는 듯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정체를 밝힐 것 같았으면 애초에 얼굴을 가리지 않았겠지. 쓸데없는 질문은 사양하겠다.”
그의 말처럼 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놈들은 화원에 대한 불법 침입과 기사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 또는 즉결 처분하겠다.”
“흐흐, 이번엔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는군. 스위트 경.”
“……”
스위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자, 내 이름을 알고 있고, 병력도 우리의 반 배가 많다. 생각 이상으로 우리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거야.’
결코 좋은 의미로 읽히지 않았다.
“당신만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불공평하군. 다시 말한다. 정체를 밝혀라. 이곳은 소드 팰러스 내의 화원이다. 설마 이곳을 습격하고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하다. 내가 자살하러 온 미친놈으로 보이나?”
“감히 소드 팰러스와 화원을 범하고, 오색 기사단의 기사를 죽였으니 그대는 미친놈이 맞다. 곧 제국의 모든 기사들이 네놈을 잡아 죽이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흥, 기사 따위가 우리를 잡을 수 있을까! 허접한 협박이다. 스위트 경, 저기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이 보이나?”
“저것은 이 화원과 화원 밖을 나누는 벽이다. 저것이 있는 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밖에서는 알지 못한다. 소리를 질러도, 마법 통신을 시도해도 불가능하다. 경과 기사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싸워도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분명 사실이겠지.’
스위트는 상대의 말을 인정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밤에 화원을 습격했다는 사실이, 한번 강력한 충돌이 있었는데도 밖이 조용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편 뒤에서 상황을 살피던 일리나는 남자의 말에 깜빡하고 있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라미아가 부탁한 걸 깜박하고 있었네….”
일리나가 주머니에 든 부적을 꺼내 부쉈다. 라미아가 습격이 있을 때 부수라고 했던 부적이다. 상급 정령의 힘으로도 쉽게 뚫을 수 없는 결계를 넘어 전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될 수 있다면 꼭 전해졌으면 좋겠네. 이대로라면 사상자가 더 늘어날 거야.’
일리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스위트와 남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너희들이 숲에서 사로잡은 포로를 넘겨라. 그만 넘긴다면 우린 서로 피를 볼 필요가 없다.”
“네놈이야말로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군. 지금 여기에 네놈들의 공격에 숨이 끊어진 기사의 피는 피가 아니고 무엇이냐!”
“그럼 이 이상 기사들의 피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말을 바꾸지.”
마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기사들의 목을 벨 수 있다는 듯 행동하는 오만한 태도에 스위트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뿐 아니었다. 이름 높은 오색 기사단이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 보았겠는가.
스위트는 당장에라도 목을 베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를 더 들어 주려니 내 귀가 썩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시 묻겠다. 네놈들의 정체가 무어냐?”
“기사들의 사신・・・・・・ 정도일까?”
“후~”
스위트는 길게 숨을 뱉었다. 어떻게든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론이 났다. 이자에게 질의응답이라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얻기는 틀렸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말과 주장만 밀어붙이는 미친놈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딱 하나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면 기사에 대한 적대감이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낄낄거리는 남자의 입가에 떠오른 잔혹함이 그것을 말해 준다.
대화가 틀렸다고 결론을 내린 순간.
스팟!
스위트의 검이 최고의 속도로 다가들어 남자의 목을 베었다.
“과연 누가 누구의 사신일지 확인해 보지!”
그그ᅳ
“굳이 죽고 싶다면 죽여 주도록 하지.”
남자가 하얗게 얼어붙은 손으로 스위트의 검을 움켜쥐고 말했다.
그 순간 기사들이 복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휘관의 공격은 그 자체로 공격 신호와 같으니까.
양측의 지휘관이 공격을 주고받은 이상 전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기사들의 생각 이상으로 철저히 준비를 해 온 듯했다. 복면인들은 기사들이 달려들자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여전히 검을 움켜쥐고 있던 대장인 자가 스위트를 향해 냉기를 뿜어 공격하며 소리쳤다.
“멍청한 기사들이 죽고 싶은 모양이다. 대(對) 기사전 형태로 모두 쓸어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