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04화
741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라미아와 다임 백작과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다임 백작이 라미아의 말에 감탄을 멈추지 않자 신이 난 라미아가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간 것.
그 이야기가 제법 박진감 넘치고 맛깔스러워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 이그렌까지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드는 그 모습을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야, 너 그거 표절이야!’
[차원을 넘어서 표절 시비 걸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요, 호호.]
라미아가 자기 일처럼 풀어 놓는 이야기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어느 히어로 영화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래, 뭐. 책을 내는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그러는 사이 마차가 결혼식이 치러지는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의 입구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의 마차로 붐볐다.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파티가 있던 날의 황궁과 판박이다.
넓은 출입문의 한쪽은 분주한 반면 한쪽은 한산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귀한 손님들을 위한 출입문이었다. 이드들이 탄 마차가 접근하자 마차의 문장과 마부의 얼굴을 외우고 있던 병사들이 즉시 길을 비켜 주었다. 저택에서 마차를 하나하나 살피고 있던 하리온 백작이 그 모습을 확인하고 눈을 번뜩였다.
“왔구나!”
그는 당장 정문으로 향했다. 중간에 그를 알아본 손님들이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대충 인사를 받고 넘겼다. 신부의 아버지가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에겐 지금 들어오는 마차가 가장 중요했다.
딸의 결혼식을 먹이로 던진 만큼 챙길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챙겨야 했다.
무려 제국의 백작이 신병처럼 정문으로 달려와 선 모습에 입장하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도대체 누가 오기에 하리온 백작이 헐레벌떡 마중까지 나오는 거지?”
“저건…… 다임 백작가의 문장인데?”
그뿐인가. 백작 체면에 정문에 도착한 마차의 문까지 손수 열었다.
그 급한 손질에 마차에서 나서던 다임 백작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리온 백작께서 손수 맞아 주실 줄은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그리고 결혼식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그분께서도 오셨습니까?”
다임 백작은 인사도 받지 않고 튀어나온 하리온 백작의 반문에 피식 웃으며 자리를 비켜섰다. 그의 뒤를 따라 이드가 마차에서 내렸다. 이드를 본 하리온 백작의 얼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본 듯 기쁨이 떠올랐다.
당장 달려가려던 그는 마차에서 내리는 라미아를 에스코트하는 이드의 모습에 잠시 기다렸다가 한걸음에 다가갔다.
“명예 후작님! 저희 딸의 결혼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치 자랑하는 듯한 큰 목소리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놀랐다.
“명예 후작? 그럼 저 사람이!”
“온다더니 정말 왔군. 오늘이야말로 친분을 좀 쌓아야겠어!”
“그럼 함께 있는 여성이 그 소문의 후작 부인이시겠군요.’
“설마 진짜였을 줄이야!”
그들의 시선은 정확히 남녀를 나누어 이드와 라미아에게 향했다. 특히 황금 미녀상에 대해 소문을 접한 여성진의 시선은 마치 라미아의 몸에서 흠이라도 찾아내겠다는 듯 열기를 띠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본뜬 황금 미녀상이라니!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런 건 제국 황후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진은 라미아의 모습에서 황금빛 후광을 보았다. 직접 들고 다니며 자랑할 수 없는 물건이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 자리의 어떤 화려한 보석도 빛을 잃는 것 같았다.
“확실히 몸매가 조각 같기는 하네. 그래도 얼마나 사랑하면 황금 조각상까지 만들어 줄까?”
“칫, 얼굴을 가린 거 보면 분명 몸매밖에 볼 거 없을 거야. 파티장에서 얼굴까지 확인해 주겠어. 아버님, 빨리 들어가요!”
그녀들은 묘한 경쟁심과 함께 질투심을 불태웠다.
이드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리온 백작과 악수를 나누었다.
“저야말로 따님의 결혼식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결혼식 축하 선물도 준비했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따로 시간이 있으니 그때 주십시오.”
이드의 손이 마차를 향하자 하리온 백작이 급히 말리고 나섰다.
“그러면 그렇게 하죠.”
“자,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들어가시죠. 아, 후작 부인께서도~”
“감사합니다.”
이드에게 집중한 하리온 백작은 라미아에게 딱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마차에서 내려 조용히 뒤를 따르는 이그렌은 없는 사람처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드는 하리온 백작의 정성 어린 안내를 받으며 파티장에 들어섰다.
이드들의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들에게 향하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몇 배 높아졌다.
이드는 파티장을 둘러보았다. 여러 가문이 손을 보탠 파티장은 꽃과 조각상이 가득했고, 그림자 진 곳 없이 화려했다.
“대단하군요. 결혼식 준비에 애를 많이 쓰셨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봐 주시니 신경 쓴 보람이 있군요. 참, 제가 마침 명예 후작님께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만.”
자신 때문에 딸의 결혼식을 떠밀린 사람의 부탁이다. 이드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 보지요.”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이드의 말에 하리온 백작이 비교적 한산한 안쪽 자리로 이드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검은 광이 멋진 파이프를 입에 문 후작과 자글자글한 주름의 노백작이 있었다.
“명예 후작님, 트라보 후작님과 미나토 노백작님이십니다.”
“훌훌, 백작은 늙지 않을 줄 아나? 매번 노백작이라고 날 놀리다니.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명예 후작님.”
하리온 백작의 소개에 핀잔을 준 노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구부정한 허리를 굽혔다. 그 옆에서 트라보 후작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파티장 이후 처음이오, 명예 후작.”
두 사람을 소개받은 이드는 이 두 사람이 다임 백작이 말한 귀족파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그러나 그게 다였다. 이드에겐 이들과 친해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 최소한 아직은 말이다.
파티에 참석해 있던 사람들은 네 사람이 함께한 자리를 부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아쉽고 배 아팠다.
‘나도 결혼식에 적지 않게 지원을 했는데, 처음부터 명예 후작을 독차지하면 어쩌라는 거야!”
그러나 어쩌겠는가. 본래 단체에서 하는 일이 그렇다. 책임은 공동으로 지고, 이익은 수뇌가 가장 많이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보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움직여야지. 먹이를 줄 때까지 기다리는 사냥개들 주제에…….”
보석같이 반짝이는 와인 잔을 굴리던 페니메나는 그런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비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물레오르 자작이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주의를 주었다.
“어허, 목소리가 크다.”
“쓸데없는 걱정이세요. 주변에 들을 사람 없다는 건 이미 확인 끝났다고요.”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어디에 귀가 붙어 있을지 모른다.”
“아버님은 너무 걱정이 많으세요.”
건성으로 답한 페니메나가 잔을 들어 입술을 적셨다. 물레오르는 그런 딸의 모습에 좀 더 주의를 줄까 하다 이후의 일을 생각해 참고서 말했다.
“어떠냐. 휘어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두 부녀는 다임 백작이 언급한 것처럼 이드와의 혈연관계를 노리고 있었다.
“어려울 것 같진 않아요. 딱 봐도 순진해 보이는 얼굴이에요. 충분히 제 치맛자락 안에 가둘 자신 있어요.”
“너무 자신하지 마라. 저리 보기엔 순진해 보일지 몰라도 부인이 둘이나 있다. 여자에게 면역이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부인이 둘이나 있으니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거겠죠. 제가 어디 한둘 낚아 보나요. 제 눈엔 다 보이니까 걱정 마세요.”
페니메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이전에도 몇 명의 남자를 자신의 손에 넣고 좋을 대로 놀아 본 경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100% 활용하는 방법도 잘 알았다. 아들을 보지 못한 물레오르 자작이 차라리 좋은 데릴사위를 잡겠다는 욕심으로 미인계를 가르친 덕분이다.
그 도가 지나쳐 페니메나가 남자 몇의 인생을 말아먹는 상황이 벌어져 머리를 아프게 했지만, 드디어 그 경험을 써먹을 최고의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페니메나는 붉은 와인에 젖어 빛나는 입술 끝을 요염하게 올리며 이드와 나란히 앉은 라미아를 노려보았다.
‘파티장에 입장해서도 얼굴을 꼭꼭 숨기고 있는 걸 보면 얼굴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재단사도 얼굴을 보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야. 몸매만 예쁘면 뭐해? 아무리 아름다운 몸을 안고 있어도 마주한 얼굴이 오크면 사내가 도망가지.’
그녀는 라미아의 얼굴에 문제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굴을 가릴 이유가 없다. 몸매가 예쁘다고 얼굴도 이쁘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그녀의 경험상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 남자일수록 쉽게 넘어왔었다.
분명 소드 팰러스에 소문이 자자한 아름답고 강한 부인이 있는데도 왜 지금의 부인을 데려왔는지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잘되었다.
첫째 부인이야 당장 방법이 없지만,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추고 있던 못생긴 얼굴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면 어떨까?
‘다행이도 내겐 꽁꽁 감추고 있는 후작 부인의 진짜 얼굴을 드러나게 만들 방법이 있지.’
둘째 부인 자리에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분명 황금 미녀상도 몸과 얼굴에 문제가 있어서 만들어 둔 것이 분명해. 호호, 저 여자를 쫓아 버리고 내가 후작 부인이 되면 그땐 그 황금을 녹여서 내 조각상을 만들어야지.’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황금 조각상을 상상한 페니메나는 기쁨에 몸을 떨며 말했다.
“저만 믿으세요, 아버지. 제가 꼭 황금 조각상을 가지고 말 테니까. 그리고 명예 후작의 둘째 아들이 자작 가문을 잇게 만들 테니까요.”
자신만만한 페니메나의 말에 물레오르 자작은 불안하면서도 저 욕심과 자신감만은 확실히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자면 일단 명예 후작이 저 자리를 끝내고 파티장 중앙으로 나와야 했다.
“칫, 도대체 무슨 바보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빨리 명예 후작님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데.”
이번엔 목소리가 좀 컸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바보 같은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제발 자신들에게도 명예 후작과의 시간을 주었으면 싶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이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이 쓸데없는 시간이 정말 지겨웠다. 트라보 후작은 끊임없이 이드를 치켜세웠고, 또 자신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내 소개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건 마치 이드의 머릿속에 자신들에 대한 존재를 박아 넣기라도 하겠다는 기세다.
특히 미나토 백작은 나이가 많은 것을 내세워 마인드 마스터와 검후에 관련한 추억 팔이를 하였는데, 그 뒤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드에게는 전혀 흥미로운 것이 되지 못했다.
그에 중간중간 끼어드는 하리온 백작까지.
‘적당히 좀!’
그리고 그런 이드와 사람들의 바람을 듣고 해결사가 강림했다.
“황녀 전하께서 참석하셨습니다!”
황녀의 등장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아무리 트라보 후작이라도 이야기를 멈추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