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08화
745화
마법사는 어떤 존재인가.
아이들에게 물으면 주문을 외워 성을 불태우거나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고, 어른들은 주로 방에 틀어박혀 마법을 연구하거나 기사들의 뒤에 숨어 마법을 지원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전투 마법사는 조금 다르다. 마법사라는 카테고리에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마법사의 성격적 특성과 개성의 차이다.
이들은 몸에 수십 가지 마법을 상비하고 있어 어지간한 기사들 이상으로 위험하다.
가장 무서운 점은 날붙이로 베는 기사들과 달리 마법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공격법이다. 이들과 싸우다 보면 독, 물, 흑, 불 등 어떤 끔찍한 방법을 죽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차라리 깔끔하게 심장을 찔리거나 목이 베이는 것이 낫지, 독에 몸이 녹아내리거나 불에 타 죽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건드리면 폭발하는 위험물 수준으로 여겨진다.
짧은 시간 용병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하녀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단숨에 죽지도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몸서리쳐지는 그 모습. 그녀가 용병을 그만두고 하녀를 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그 두려운 전투 마법사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흑마법사를 퇴치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치챘어야 하는데. 흑마법사라 하면 타고난 전투 마법사들이 아닌가. 생긋.
그런 생각 때문일까, 후작 부인의 가면 속 눈동자가 위험하게 웃는 듯 보였다.
“…….젠장, 망했다.’
라미아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고개를 숙인 하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일어났다.
“치료는 제 전문이 아니다 보니, 이후의 치료는 신관님께 부탁드려야겠어요.”
“아이고, 이 정도만 해도 후작 부인께서 큰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하리온 백작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라미아를 칭찬했다. 혹시나 결혼식에서 피를 보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칭찬 또한 진심이었다.
이런 사고를 일으킨 상대에게 친절한 조언에 치료까지 해 주었으니 실로 그녀의 마음이 넓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리온 백작 말처럼 후작 부인의 성격이 참 좋으시군. 명예 후작께서 좋은 아내를 얻으셨어.”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물론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 잘도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전 오히려 저 손속이 무서운데 말이에요.”
“흥, 모르는 소리. 부서진 얼굴은 고치면 되지만, 목은 떨어지면 못 붙지? 나라면 목을 쳤을 거라고. 살아 있으니 고마워해야지.”
“…….”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대답에 말을 꺼냈던 사람은 끽소리도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소리를 들은 이드는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고의가 아닌 척 라미아가 연기를 했지만, 누구나가 이 결과를 라미아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분위기가 아닌가.
이드는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라미아에게 고개를 기울이며 속삭였다.
“이거, 이미 범인 확신인데? 실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뭐, 어때요. 말로 나오지 않으면 그걸로 된 거지. 누구도 저한테 묻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나저나 제 솜씨 어때요? 이드가 처리하는 방식대로 처리했는데.”
“넌 첫 경험에서 이미 날 앞질렀어. 청출어람을 인정한다.”
“히히히.”
방금 한 사람의 얼굴을 부수고 돌아와서 어린아이처럼 웃다니. 하지만 이상하게 그 모습이 이뻐 보인다.
‘확실히 내 사람이긴 한가 보다.’
묘하게 흐뭇해하며 라미아를 보고 있으려니 그 옆으로 하리온 백작이 다가왔다.
“후작 부인께서 소란에 말려 드셨으니, 제 관리가 부족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그 소란을 일으킨 이들 중 제 사람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보다 결혼식은 언제 시작되겠습니까? 지금 일도 있고, 슬슬 번잡해지는군요.”
이드는 쓸데없이 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내보였다.
“아, 예. 곧, 곧 결혼 예식이 바로 시작할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리온 백작은 당장이라도 이드가 돌아갈 것 같은 마음에 급히 대답하고는 서둘러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원래 결혼 예식은 파티를 충분히 즐긴 후 마지막 순서로 예정되어 있었다. 충분한 파티란 당연히 이드와 친분을 쌓을 시간이고.
그런데 그 계획이 지금 소란으로 끝장나기 직전이 되어 버렸다.
하리온 백작은 이 시점에서 어쭙잖게 시간을 끌려고 했다가는 이드가 돌아가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처럼 느꼈다. 그렇게 되었다간 이드 없이 결혼식을 올려야 할지 모른다. 이건 절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드가 돌아가면, 황녀도 돌아가고, 김이 빠진 후작도 가 버릴지 모른다.
“뿌드득, 내가 이번을 위해 얼마나 공을 쏟았는데, 하잘것없는 년이 욕심을 부려 망쳐? 해도 적당히 해야 할 거 아냐! 빌어먹을 내 이것들을 가만히 두나 봐라. 집사!”
하리온 백작은 당장 집사와 오늘부터 사돈이 되는 리뷰드 자작을 불러 결혼식을 즉시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벨로우는 쉽게 화를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자신이 여자를 가지고 노는 경우는 있었어도, 자신이 여자의 손에 놀아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정말 못 견디는 성격이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여성 편력에 대한 반성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밟아 버리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아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두고 보라지. 절대 그냥 두지는 않는다!”
“좋은 방법은 있나요?”
조용하고 품위 있는 목소리였다. 은은한 향기와 함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돌아선 벨로우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황녀를 발견하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화, 황녀 전하를 뵙습니다.”
“전 좋은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만?”
“바, 방금 제가 했던 말은…….”
황녀가 자신의 말을 듣고 책망하는 것일까? 벨로우는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을 하려 했지만, 황녀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다른 오해는 없으니까. 그저 말대로의 의미일 뿐이에요.”
벨로우는 바닥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말 그대로의 의미로 받으라니. 복수 방법이 궁금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혹, 제게 하실 음・・・・・・ 조언이 있으십니까?”
“개인적으로 제국의 영웅 앞에서 보인 추태를 경이 대신 처벌해 주길 바라요. 그런 의미에서 한 번의 처분으로 끝내지 말고 오랫동안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게 해 주었으면 해요. 아마・・・・・・ 부인으로 두게 된다면 경이 쉽게 그녀의 잘못을 교정해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겨, 결혼을 말입니까?”
“어디까지나 조언일 뿐이니까요. 그럼.”
말을 마친 황녀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벨로우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국 모든 레이디의 정점!
난봉꾼으로서는 탐나지만 손대서는 파멸뿐인 꽃.
“확실히 결혼해서 부인이 되면 날 이용한 대가를 두고두고 갚을 수 있긴 하지. 황녀 전하의 말씀이기도 하고…….”
마침 집에서도 여자 문제로 결혼하라고 용돈을 슬슬 줄이고 있으니, 차라리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흐흐흐, 일단 성격과는 별개로 얼굴과 몸매가 이쁘긴 하지. 좋아, 페니메나. 너로 정했다! 내가 얼마나 미친놈인지 확실히 알게 해 주마.”
하녀들에게 옮겨지는 페니메나를 보며 군침을 삼킨 벨로우는 즉시 아버지를 찾았다. 페니메나의 아버지도 파티에 참석했을 테니, 바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생각 없이 서두른 것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등지고 걷던 황녀가 중얼거렸다.
“이런 수작질을 벌였는데 빼지는 못하겠지.”
“저 남자, 결국 말씀대로 할 건가 보네요?”
황녀를 따르며 뒤를 힐끔거리던 릴리가 벨로우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구나. 소문으로 들은 그의 성격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왜 굳이 결혼하라 시키신 거예요? 페니메나에게 벌을 주실 거면 황녀님께서 명령하시면 될 일인데.”
“본래 솜씨 좋은 사냥꾼은 하나의 화살로 두 마리의 사냥감을 잡기도 하는 법이란다.”
“어, 그럼 황녀님은 페니메나뿐 아니라 벨로우 경도 같이………….”
묘하게 목소리를 줄이고 묻는 릴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황녀는 그 모습이 귀여워 릴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두 사람 때문에 속상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잖니. 마침 두 사람을 한데 묶어 둘 좋은 기회였으니까. 문제아 둘이 붙어 있다 보면 서로를 잡아먹느라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시간은 자연히 줄어들 테니까.”
“으햐~ 황녀님도 드디어 그런 사악한 생각을 하시게 되었네요.’
“흐음, 방금 그 말은 말레나 부인에게 일러 줘야겠구나.”
“앗! 그러면 저 또 혼난단 말이에요. 취소할게요, 황녀님. 취소!” “호호호.”
황녀가 사정하는 릴리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드는 황녀에 대한 첫인상을 고치게 되었다.
“흐음, 황녀에게 저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네. 하녀하고 장난도 치고, 의외로 성격이 좋을지도 모르겠어.”
“저런 모습이라고 할 것도 없이 저희가 황녀에 대해서 아는 게 없잖아요. 알 필요도 없고.”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위치상 황궁 대표로 자주 볼 것 같지 않아?”
“쩝.”
과연 라미아도 이드의 의견에는 할 말이 없었다. 이드의 검증에 황녀가 나선 것도 그렇고, 당장 이번 파티에 황녀가 참석한 것만 보아도 확실하다.
“이제 곧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집사가 예식의 진행을 큰 목소리로 알렸다.
하리온 백작에게 한마디 해 둔 것이 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할 것을 그랬다.
이드가 조금 후회하는 사이 그의 뒤로 이그렌과 다임 백작이 다가와 앉았다.
과연 본격적인 결혼식은 성대했다.
한 가문이 아니라 귀족파라는 한 세력이 준비한 것이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웨딩드레스도, 절차도, 음악도 상당한 볼거리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레센 대륙의 결혼식은 이드도 처음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겐 익숙한 모습과 생활이 타국의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인 것처럼 말이다.
괜히 관광 코스에 전통 혼례가 끼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으로 두 사람이 칼마님의 실로 묶여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신관의 선언을 마지막으로 한 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이제 덕담과 함께 선물을 증정하면 결혼식은 끝이 납니다.”
다임 백작이 조용히 마지막 순서에 대해 설명했다.
마지막 순서는 새로운 부부가 직접 움직여야 했다. 결혼식 축하에 대한 감사이며, 고위 귀족을 직접 움직이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작위에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이드는 부부가 찾는 세 번째 사람이 되었다.
이드는 특별할 것 없는 축하의 말과 선물을 전했다.
그런데 신부가 앞에서와 달리 이드가 내민 선물을 받지 않고 말했다.
“무례할지 모르지만, 후작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것 말고 다른 선물을 받고 싶습니다.”
술렁,
윗사람이 내리는 선물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겠다니.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이드는 새신부의 당당함이 싫지 않아 물었다.
“원하는 것이 있소?”
“예. 본래 나라의 큰일이 있기 전에는 올리지 않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니, 제가 과부가 되지 않도록 후작께서 토벌에 나서는 제 남편을 돌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무사히 제게 돌아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일 것 같습니다.”
제법 당돌한 말이 아닌가. 돌려 말하긴 했지만 결혼식을 서두른 이유가 이드에게 있음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드는 하리온 백작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하리온 백작께서는 참 지혜로운 딸을 두었고, 새신랑은 사랑스러운 아내를 얻었구려.”
공식적으로 토벌에서의 이드 옆자리가 새신랑의 것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