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15화
752화
단단한 벽 한가운데 고집스럽게 자리한 창문은 작은 편이었지만,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드나들 정도의 크기였다.
“요새에서 밖을 살피기 위해 뚫어 놓은 창문입니다. 들어가려고 살폈더니 마나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엮여 있었습니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마나라면 당연 마법일 것이다.
이드는 주변을 살폈지만, 작은 창문 말고는 안으로 들어갈 만한 틈은 보이지 않았다. 괜히 요새로 쓰였던 곳이 아니다 싶다.
“라미아.”
[바로 열게요.]
부우우-
이드의 신호를 받은 라미아가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서 창문까지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창문과 그 주변을 살핀 라미아가 말했다. [숨겨진 모습을 보여라.]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창문 위로 뿌연 안개 형태의 마법진이 모습을 나타냈다.
“어, 언령?”
그 모습을 본 비올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대의 위대한 지혜로 만들어진 라미아가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였지만, 언령은 단순한 마법과는 달랐다. 하이 클래스에 이른 마법사가 미지의 깨달음을 얻어야만 첫발을 뗄 수 있는 것이 언령이었다. 그만큼 신비롭고 위대한 힘이다. 괜히 용언 마법을 용의 전유물이자 위대한 마법의 궁극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올라도 언령을 목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새삼 낯선 느낌에 라미아와 이드를 살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러나 비올라가 심란하건 말건 창문의 마법을 모두 살핀 라미아가 아래를 향해 말했다.
[역시 창문을 그냥 둔 이유가 있네요. 단순히 막아 둔 게 아니라 함정이에요. 외부에 드러난 마법을 해제하는 순간 침입 사실이 알려질 거예요.]
그 말에 에단이 가장 먼저 혀를 내둘렀다. 간파의 눈이 있어 마법은 알아봐도, 전문 지식이 없어 마법의 종류까지 파악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휴우~ 갑자기 네가 무능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괜히 어설프게 해제했다가는 그대로 오거 입속으로 뛰어들 뻔했잖아.”
“흥!”
“해제할 수 있지?”
[흣, 컵라면이 익기 전에 돌아오죠.]
오만한 미소를 지어 보인 라미아가 안개처럼 일렁이는 마법진 속으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던 톰이 에단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컵라면이 뭐냐?”
“글쎄요?”
에단이 고개를 저었다. 이드 옆에서 신기하고 새로운 걸 많이 접했지만, 컵라면은 생소했던 것이다.
‘익는다고 했지? 나중에 마스터에게 좀 달라고 해 봐야겠다.’
그러는 사이 라미아가 창문에 설치된 마법을 해제하자 이번엔 검은돌에서 나섰다.
“이만큼 공을 들였으면 마법 말고 물리적인 장치가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고양이 같은 몸놀림으로 손가락 한 마디 넓이의 창틀에 편안히 올라선 스톤이 아기 다루듯 창문을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품에서 장비를 꺼내 달그락거리자 창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창문을 통해 들어선 곳은 긴 복도의 중간이었다. 다행히 복도는 어두웠고, 사람은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지?”
“이쪽이 요새 중심부 방향입니다.”
스톤이 말했다. 주민들에게 단순히 요새 주인에 대해서만 알아본 게 아닌 듯 말에 확신이 어려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에단과 스톤이 선두에 섰다.
“초행길엔 에단이 무조건 선두입니다.”
톰이 다가와 말했다. 자랑스러움이 느껴지는 말에 이드는 톰이 에단을 매우 아끼고 있음을 알았다.
요새 중심으로 나아갈수록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가끔 보였다. 밤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드들이 발각되는 경우는 없었다.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전에 이드의 기감과 에단의 간파의 눈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편하군.”
긴장감 하나 없는 침투에 스톤이 신음처럼 말했다. 그로서는 적 거점에 대한 침투가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이전까지 트와이스의 활약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함정이고, 사람이고 모조리 미리 알 수 있다니. 정말 탐나는 능력이다. 초인기인 듯하니 내가 가질 수는 없고, 그래서 조용히 에단에게 속삭이고 말았다.
“혹시 소드 팰러스 나오면 찾아와라. 특급으로 받아 준다.”
“흐흐흐, 단주 자리 주면 생각해 보지.”
에단이 히죽이 웃었다. 암살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한때 적이던 자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게기분이 나쁘지 않아서다.
“앞에 사람이 많아.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군.”
이드가 앞으로 나섰다. 아직 간파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범위에 에단이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 한참 앞으로 나아가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술에 취해 흥청거리는 소리였다.
“수백의 인원이 입성했으니 술이 빠질 리 없지.”
이드는 뒤에서 들리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겐 나쁘지 않아요. 어지간한 사람들이 모두 저기 모여 있을 테니까. 중요한 서류는 어디 있을까요?”
“당연히 성주의 집무실에 있을 겁니다. 일단 그리 가려면 저 중앙을 지나가야 합니다. 돌아서 가시죠.”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섰다.
이드는 일부러 한창 술판이 벌어진 요새 중앙 가까이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요새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새 중앙에는 곳곳에 불이 피어올라 있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잔을 들고 있었다.
자유롭게 먹고 마시는 모습이 마치 용병 같았다. 그러는 중에 간간히 자신의 재주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그들이 모두 초인이라는 사실도 재확인했다.
은밀하게 몸을 숨긴 수백의 초인, 공식적으로 등록된 용병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는 것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음?”
그들을 살피며 걸음을 옮기던 이드는 한쪽에 따로 모여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가볍게 먹고 마시고 있지만, 저기 대부분의
초인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움직임에 무게가 있고, 절도가 있다.
대부분의 초인들이 용병이라면 이들은 기사에 가깝다.
“이드님?”
이드가 한곳에 집중하자 에단이 다가왔다.
그에 이드가 자신이 발견한 자들을 가리켜 보였다.
“저자들. 다른 초인들과 좀 다른 것 같지 않아?”
이드의 말을 들은 에단의 눈에 자리한 두 개의 별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간파의 눈으로 이드가 말한 자들을 살피는 것이다.
“음, 확실히 다른 초인들과 격이 다른 놈들이네요.”
“자자수에서 추적하던 자들 중에 없던 자들이지?”
“예. 저런 놈들이 있었다면 벌써 말씀드렸을 겁니다. 추적도 쉽지 않았을지 모르고요.”
“그 정도야?”
에단의 말에 톰과 스톤이 좀 더 매서운 눈으로 사람들을 살핀다.
“크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놈들, 내 생각보다 더 덩치가 클지 모르겠는데? 저 많은 초인에 훈련된 기사급의 초인들, 그것도 저들이 이런 거점에 있을 정도라면 저만한 정예가 더 많다는 이야기잖아. 차라리 군대라고 해도 믿겠어.”
이드의 말에 에단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진짜 어떤 나라에서 운영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심각해진다. 단순히 제국 내부의 세력 다툼이 아니라 전쟁이다!
“모르지. 아직 정확한 증거가 나온 건 아니니까.”
중 하나. 그런 여성의 알몸을 감상했으니….
“이젠 죽어도 좋아~”
“그럼 죽어! 이 새끼야!”
째지는 욕설과 함께 여성의 전신으로부터 불꽃이 쏟아져 나와 남자를 덮쳤다.
푸화아악!
퍼어엉!
불꽃의 파도에 당한 남자는 폭음과 함께 방문을 뚫고 밖으로 튕겨 났다.
“뭐야! 적의 침입이냐!”
“아니, 어느 멍청이가 불고양이 방에 침입했어.”
“오랜만에 용자가 탄생했구나!”
남자가 튕겨 나온 방을 확인한 누군가의 말과 동시에 방에서 침대보로 몸을 둘둘 만 여성이 튀어나왔다. 불고양이라 불린 여성은 쓰러진 남자를 향해 무자비하게 불의 비를 쏟아부어 응징을 시작했다.
놀라던 초인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더욱 낄낄거리며 목청을 높였다.
누군가 바닥을 구르는 남자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저러다 정말 죽는 거 아냐?”
“불고양이 알몸 값이면 죽을 만하지 않냐?”
“……하긴.”
곧 무시당하고 만다.
이드는 거기까지 보고 몸을 돌렸다. 아무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적당한 자극제도 추가했으니 더 잘 놀겠지. 이제 가자.”
그 말에 어이없는 듯 난동을 바라보던 일행들이 급히 이드를 뒤따랐다.
“설마 노리신 겁니까?”
“그렇지. 겸사겸사.”
이드의 나머지 일행들은 불꽃에 구워지는 남자에게 묘한 동정을 느꼈다.
‘뭐・・・・・・ 저만한 미녀의 알몸 구경이면…… 저 정도 구워지는 것도 괜찮으려나.’
누군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녀석은 왜 챙기셨습니까?”
“당연히 챙겨야지. 이 녀석이 저 방을 고른 진짜 목표인데.”
“네?”
이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단을 보며 품에 안은 고양이의 턱을 긁었다.
녀석은 방문이 터질 때 놀라 방에서 뛰어나온 녀석이었다.
이드는 난동 중에 그놈을 허공섭물로 은밀히 잡아당겨 확보한 것이다. 이드의 품에 안긴 녀석은 그때부터 울지도 않고 조용했다.
동물의 예민한 감으로 이드가 자신을 헤치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또한 절대적인 강자 앞이기에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있는 것이다.
“기다려 봐. 다 생각이 있어서 데려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