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16화
753화
도대체 고양이를 어디에 쓰겠다는 것일까? 무시무시한 몬스터도 아니고, 전진에 풀기에는 너무 귀여운 생명체가 아닌가.
이드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빙글 웃으며 고양이의 턱을 긁었다.
고로롱. 고로롱.
고양이가 골골송을 부른다.
술판이 벌어지는 곳에서 멀어지자 조심해야 할 인기척은 더욱 줄어들었다. 이드에게 느껴지는 것도 잠자는 듯 조용한 숨소리뿐이다. 거기다 이 새벽에 깨어 있을 사람이라면 이곳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요새의 심부인 만큼, 요새의 높으신 분들의 방이 있는 곳일 테니까. 괜히 그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다간 높은 분이 경을 칠 것이고, 좋은 분위기만 흐릴 뿐이다.
성주의 방을 찾는 것은 금방이었다.
제국이 사용하다 폐기한 낡은 요새인 만큼 제국의 축성 양식을 따르고 있어 찾기가 쉬웠던 것.
끼이익.
먼저 안의 기척을 살핀 이드가 문을 열어 성주의 집무실을 찾았다. 방 안은 깔끔하게 꾸며져 있고, 한쪽에 책장과 탁자 그리고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특히 서류는 바로 이드들이 찾던 정보의 덩어리가 아닌가.
이드가 그것을 보고 눈을 반짝이자 톰이 이 방을 중심으로 조금 떨어진 곳과 아래층에도 주요 인사 전용의 집무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 두 곳에 각각 검은돌과 기사들이 가면 될 것 같네요.”
[영상 보관용 수정구에요. 중요한 정보는 여기 담으면 돼요.]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아공간에서 수정구 두 개를 꺼내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검은돌과 기사들이 방을 나가자 이드가 방 안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이드의 시선이 멈춘 곳은 한쪽에 놓인 탁자 위였다. 술잔이 몇 개 놓여 있는 것이 아마도 성주가 새로 방문한 손님들과 한잔을 한 듯하다. “그럼 뭔가 새로운 정보를 전했을 가능성도 높지.”
이드는 품에 안은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성주의 의자에 앉아 책상 위의 서류를 살폈다.
그사이 톰은 혹시 있을지 모를 비밀 공간을 탐색했고, 라미아는 닥치는 대로 모든 서류의 내용을 기록했다.
부스럭 부스럭.
책상 위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던 이드의 손이 한순간 멈추었다. 앞서 본 내용이 대부분 성을 운영하는 보급품과 돈의 출납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 서류에는 병력의 출입에 대해 적혀 있었던 것.
“대략 두 달 사이 이 요새를 거쳐 간 인원이 삼백이라…….”
삼백이라면 많은 것 같지 않지만, 위장한 요새를 거쳐 간 병력이 그러하다면 결코 작은 수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삼 백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을까를 생각하면 제국 수뇌의 심장이 뜨끔하지 않을까?
그 서류를 라미아에게 넘기고 남은 서류를 살핀 이드는 중요한 내용이 없자 손을 털고 일어나 톰을 따라 혹시 있을지 모를 비밀 공간을 찾아 나섰다.
후두둑, 와르르르.
그리고 이드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책장과 탁자 위에 있던 물건들이 사정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몰래 집무실에 침입한 사람치고 참으로 무자비한 수색이 아닐 수 없다.
그때마다 움찔거리던 톰은 결국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많이 참은 것이었다. 그의 부하가 저런 식으로 움직였다면 주먹이 날아가도 진작에 날아갔을 것이다.
“후, 후작님, 그렇게 어지럽히면 원래대로 정리할 수 없어서 저희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성주가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아,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이렇게 어지럽혀도 다 방법이 있으니까. 톰도 조심할 것 없으니까 맘 놓고 뒤져요.”
“…….”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하는 이드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톰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방금 충성을 맹세한 이드에게 어떤 방법이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 에단이라도 있으면 물어볼 테지만, 아쉽게도 그는 기사들과 함께 다른 방으로 가 있었다. 톰은 끙끙거리며 하던 대로 조심해서 집무실의 탐색을 이어 갔다.
달깍!
그러다 바닥을 더듬는 이드의 손에 무언가 걸렸다. 책상 다리 바로 옆의 돌이었다.
“여기 뭔가 있는데?”
이드의 말에 톰과 라미아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고 후다닥 달려왔다.
[마법은 아니에요.]
“기관 장치입니다. 마나가 사용되지 않아서 마법으로는 찾을 수 없지요. 대신 어렵지 않게 열 수 있습니다.”
돌에 장치된 기관을 알아본 톰이 돌의 네 귀퉁이를 눌러 본 후 그중 한곳으로 조심스럽게 대거를 집어넣어 여러 번 얕게 찔렀다. 그러자
그르륵거리며 바닥의 돌이 살짝 올라오고, 그걸 치우자 깊지 않고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투박한 작은 상자와 서류 뭉치가 들어 있었다.
라미아가 상자를 열자 마나석과 보석들이 나타났다.
[역시 성주라면 이런 비자금이 필수인 거죠.]
그에 라미아가 피식 비웃으며 상자를 닫고 내려놓았다. 일반 도둑이라면 몰라도 보석이 아공간에 산처럼 쌓여 있는 라미아에게는 이런 보석 따위 돌멩이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이드는 꺼내 든 서류를 살폈다.
그 서류의 대부분은 비자금을 조성하며 조작한 비리 장부였다. 보석과 같이 두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별 의미가 없나 싶은 순간 이드의 손이 멈추었다.
“탑 감시자 교체 명단・・・・・・ 으음…….”
딱히 중요 표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있는 어떤 탑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드는 그것이 묘하게 걸렸다.
그렇게 간단한 내용이 적힌 서류만 3장이다. 이 짧은 내용의 서류가 왜 이 금고에 들어 있는 것일까?
[뭘 그렇게 봐요? 중요한 내용이라도 있어요?]
이드가 오랫동안 한 장의 서류에 집중하자 라미아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서류를 살핀다.
“아니, 특별한 건 아닌데… 묘하게 눈이 가서 말이야.”
[혹시 이 단어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이드는 말과 함께 감시자라는 단어를 짚은 라미아의 손가락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그러자 라미아가 한쪽에 있는 톰을 돌아본 후 마음을 통해 말을 전했다.
[시르피 때문에요?]
‘너무 넘겨짚은 것 같기도 하지만…………… 여기 보면 탑에서 뭔가를 감시한다기보다 탑에 있는 무언가를 감시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져.’
[그럼 일단 챙겨서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들어 봐요.]
‘그러자 아무래도 정보 분석에는 나보다 고수일 테니까.’
이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라미아에게 서류를 넘겼다. 이후 이드의 손을 멈추게 하는 서류는 나오지 않았다.
서류를 모두 살핀 이드는 서류를 금고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그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다른 방으로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동시에 방에 들어선 그들은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방을 왜 이 꼴로・・・・・・ 대장, 치매라도 걸렸어요? 뭘 이렇게 어지럽힌 거예요. 아주 들키려고 작정…….’
“마스터가 하신 일이다.”
“……하신 게 아니라, 아까 소동과 같은 절묘한 생각이 있으신 거지요. 아무렴, 마스터가 하신 일인데요.”
“피식!”
에단의 재빠른 말 바꾸기에 유일한 여성인 에린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에단은 얼굴색 하나도 바꾸지 않고 말했다.
“하하하, 마스터, 이번엔 또 어떤 기발한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저 에단, 마스터의 깊으신 생각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드는 옆에서 살살거리는 에단의 모습에 혀를 차고는 바닥에 떨어진 책을 손에 들었다.
“아무리 티가 나지 않게 뒤지고, 들어왔을 때의 모습으로 원상 복귀시켜도 흔적이 전혀 남지 않을 수는 없잖아. 너나 비올라가 갔던 방도 그렇고.
법을 따로 익힌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 발톱이나, 호랑이 발톱이나, 독수리 발톱이나. 결국은 거기서 거기인 법.
이드는 정신없이 손톱을 휘두른 후.
일행과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어쩐지 굉장히 불길한 느낌에 벌벌 떠는 고양이를 방에 남기고서………………
요새를 탈출하는 일은 침입 때보다 쉬웠다.
침입 때도 취해 있던 사람들이 그사이 아주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날 때 확인해 본 바로는 이드가 제물로 삼았던 남자는 술판이 벌어진 곳 중앙에 박힌 통나무에 묶여 있었다.
머리와 옷이 바싹 타 버린 채였다.
잘도 죽지 않았구나 싶을 정도였다.
일행이 침입했던 경비창의 장치와 마법까지 원래대로 돌리자 그야말로 완전범죄가 되었다.
혹시나 고양이 말을 할 줄 아는 통역사가 있다면 이후에라도 이 일이 밝혀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을 끝내고 출발했던 오두막으로 돌아오자 뿌옇게 하늘이 밝아져 오기 시작했다.
농사일에 바쁜 농부라면 눈을 뜨고 하루 일을 준비할 시간인 것이다.
“휴우~ 적당한 시간에 끝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조금만 더 머물렀으면 탈출하는 데 곤란했을 겁니다.”
“다른 방에서는 뭐 얻은 거 있어?
이드가 기지개를 켜는 에단을 보며 물었다.
“아니요. 제가 갔던 방은 회의실로 사용하는 방이었습니다.”
“이쪽 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류는 있지만, 의미 있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내용은 저장했습니다.”
스톤이 말과 함께 라미아에게 수정구를 반납했다.
“아무래도 성주의 집무실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뭐 나온 거 있나요?”
“살펴봐야 할 내용들이 제법 있어. 라미아. 저장해 온 영상.”
이드의 눈짓에 라미아가 수정구를 작동시켜 오두막 벽에 저장해 온 서류의 내용을 출력시켰다.
“이걸 하나하나 살펴봐야지. 이제부터.’
“휴…… 진짜 일은 여기 있었네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에 에단이 머리를 감쌌다.
그에 라미아가 달달한 먹거리를 쏟아내며 말했다.
“여기 단 거 좀 먹으면서 해요. 머리 쓰려면 당분을 섭취하는 게 좋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