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35화
772화
“퇴로부터 차단해!”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라미아들에게 달려드는 초인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들은 마음이 급했다. 오랫동안 이드의 발을 묶어 둘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이드가 풀려나기 전에 인질을 잡지 못하면 자신들은 죽는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 움직였지만, 하필 그것이 잠자는 드래곤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일 줄이야.
제발 뭔가를 하려면 상대에 대한 조사를 해라! 하고 소리치고 싶지만, 일은 이미 벌어져 버렸다.
‘내가 왜 힘든 훈련도 버텼는데, 절대로 이렇게 어이없이 죽고 싶지는 않다고!’
죽는다면 초인들의 권리를 위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싸우다 죽고 싶지 절대자의 발에 채인 이름 없는 잡초로 꺾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간절한 마음에 어느 초인이 고함을 질렀다.
“무조건 생포해!”
“멍청하게 이런 실수를!”
한편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적을 본 톰은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자책했다. 주군으로 모신 이드의 경악스러운 능력에 놀라 넋을 놓고 지켜보다가 뒤늦게 적들의 행동을 눈치챈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을 목표로 하는 이유야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분명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는 일인데, 한눈을 팔다 피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입술을 질끈 깨문 톰은 검을 들고 라미아의 앞을 막아섰다. 사방에서 적이 몰려오는 상황에 앞뒤가 있겠냐만.
“저와 검은돌이 최대한 적들을 막을 테니. 마법으로 몸을 피하십시오.”
‘아니, 가만히 있는 우리는 갑자기 왜!’
톰의 말에 그와 비슷한 표정으로 이드의 활약을 구경하고 있던 검은돌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자신들 셋으로 저 많은 적을 상대하는 것은 중과부적, 의미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라미아를 지키다가 죽으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거부하지도 못했다. 그랬다가는 이후 상황이 정리된 후에 돌아올 이드의 분노가 두렵기 때문이다.
라미아는 결연한 톰과 우물쭈물대는 검은돌의 암살자의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드와 마찬가지로 나도 저들을 피해 도망가야 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톰은 쉽게 그녀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강제로 라미아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킬 수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라미아를 데리고 즉시 피했을 테니까.
“그래도 위험하면 저희는 상관치 마시고 바로 피하셔야 합니다.”
톰이 재차 당부하며 라미아의 다짐을 받아내고는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이제 그야말로 적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너희 두 사람도 전투를 준비해라. 그리고 후작 부인께서는 제가 신호하면 실드를 잠시 풀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들이 실드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실드 안에서 가까이 다가온 자들만 공격해요. 내가 공간을 열어 줄 테니까요.]
라미아를 보호하는 실드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가도록 하려던 톰은 처음에는 거부하려다 마음을 바꿨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실드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톰과 두 명의 암살자는 라미아를 중심으로 세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 실드 앞에 도착한 초인들이 실드를 깨기 위해 공격을 시작했다.
“공간을 열어 주시면 바로 공격하겠습니다!”
[걱정 말고 공격해요. 그러면 공간이 열릴 테니까.]
“끄음.”
자꾸 라미아가 자신의 주장을 세우며 고집을 부리자 톰은 작게 신음했다. 먼저 몸을 피하라는 것을 거절한 것은 자신감과 의리라고 이해를 해도, 지금의 것은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법 실력이 뛰어나도 어떻게 무인이 검을 내지르는 속도에 비할까.
그것도 실드 코앞에서!
마법사들이 접근전을 피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가 아닌가. 뛰어난 천재들은 무영창으로 마법을 발현한다고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톰은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며 라미아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앞서도 라미아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어차피 전투가 시작되어 자신의 공격이 실드에 막히면 바로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돌을 향해 신호를 준 톰이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씨발, 당장 실드 열지 못해!”
“열어. 열라고! 열란 말이야!”
그러자 애원에 가까운 욕설을 던지며 실드를 두드리는 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로서는 한시가 급할 것이다. 이드가 제압을 풀어내면 제일 목표가 자신들일 테니까!
톰은 그중 가장 입이 험한 자를 목표로 검을 찔렀다. 실드에 막히겠지만, 빠르게 찔렀다. 그래야 검속을 따르지 못한 라미아가 인정을 할 테니까. 검봉이 실드 앞에 다다르자 톰은 곧 이어질 충격을 예상하며 손목에 단단하게 힘을 주었다.
푸욱!
하지만 곧 이어진 감각은 강한 반탄력이 아니라 살과 뼈를 잘라내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크헉!”
심장에 검이 박힌 초인이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실드에서 돋아난 듯이 튀어나온 검을 보다 뒤로 넘어갔다. “이게 무슨…….”
그 모습을 보며 버릇처럼 검을 회수한 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분명 실드에 막힐 거라고 예상했는데, 검은 물을 가르듯 실드를 가르고 적의 가슴을 갈랐다. 하지만 톰은 분명 보았다. 검봉이 실드에 닿기 직전 실드가 검날의 크기만큼 열리는 것을. ‘설마 그 짧은 사이에 검의 귀도와 속도를 읽고 실드에 공간을 만들었다고? 그런 게 가능해?’ 톰에게 이것은 가부의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기현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톰은 이 믿어지지 않는 현상을 확인하듯 다시 검을 찔렀고, 그의 검에 또 한 명이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밖에 있는 자들이 그 모습에 악을 썼지만, 단단한 실드가 버티고 있어서 톰에게 아무런 해도 줄 수 없었다.
대신 적들은 톰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언제 다시 실드를 가르고 검이 튀어나올 줄 알고?
반대로 톰은 놀라움과 함께 자신감이 차올랐다. 자신은 적을 벨 수 있지만, 적은 자신을 공격할 수 없다. 이 얼마나 멋진 현상이란 말인가.
“크아악!”
“어떻게 실드를 가르고・・・・・・ 이런 개 같은!”
그런 재미에 검은돌의 암살자들이 먼저 날뛰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그래, 네 맘이 내 맘이다. 개같이 환상적이지?”
자신들의 안전을 확인한 암살자들은 특유의 빠르기를 이용해서 실드 가까이 붙은 자들은 열심히 찔러 댔다.
그 모습을 일견한 톰도 곧 검을 휘둘렀다.
이 꿈같은 환경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으니, 실드가 유지되는 동안 최대한 많은 적을 쓰러트려야 했다.
쉬익!
“크컥!”
실드를 사이에 두고 세계가 갈렸다.
“저런 게 가능하다고?”
뒤에서 지휘를 하던 헹크가 신음하듯 말했다. 언제나 진지하고 진중한 그였지만, 지금의 상황은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사이 실드를 깨기 위해 붙어 섰던 자들이 서서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가까이 갔다가는 실드를 가르고 튀어나온 검에 속절없이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자들이 실드를 부수기 위해 나섰지만, 실드는 손톱만큼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더, 더 퍼부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라고!”
“벌써 그러고 있다고! 도대체 왜 안 깨지는 건데!”
모든 힘을 쥐어짜 공격하던 초인들의 얼굴이 탈진으로 시꺼멓게 변했다. 그러나 실드는 여전히 건재했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두드려도 말짱한 실드는 지금까지 보지를 못했다.
무인이 실드를 힘으로 깨부순다면, 초인은 얼었다 녹는 것을 반복하며 바위를 쪼개는 물처럼 다양한 속성으로 실드의 마나 구성을 헐겁게 만들어 무효화시킨다.
이렇게 하면 대마법사의 실드라도 흔들리기 마련인데, 어떻게 된 것이 자신들의 앞을 막은 실드는 철벽처럼 단단하기만 하다.
놀라기는 실드 안에 있던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 원래 실드가 이렇게 대단한 마법이었습니까?”
초인들이 모두 실드에서 떨어져서 싸울 상대를 잃고 다가온 검은돌이 말했다.
“글쎄. 이건 마법이 아니라, 마법사가 대단하기 때문일 테지.”
톰이 허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어쩐지 후작 부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려고 했던 자신의 결심이 바보처럼 느껴져서다. 결국 약하지 않다는, 실드 안에서 공격만 하라는 라미아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새삼 대단한 분들을 주군으로 모셨다는 것을 알겠군.”
이 대단한 분들을 어떻게 보좌하고 모셔야 할지 고민이 되었지만, 지금만큼은 조금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후작 부인이라・・・・・・ 실로 좋은 울림이야. 흐흐흥~”
수많은 초인들 앞에 절망의 벽을 세운 라미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후작 부인이라는 말을 음미하는 마음과 달리, 그녀의 손과 두뇌는 인간이 따를 수 없는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초인들의 초인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실드의 비밀은 톰의 말처럼 라미아에게 있었다.
그녀는 실드를 두드리는 초인기의 속성에 맞추어 시시각각 실드의 속성 방어력을 바꾸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나의 연결이 헐거워질 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보통의 인간이 절대 할 수 없는 재주로, 오로지 라미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재주였다.
“어디의 용사 파티냐…….”
헹크는 실드 앞에 막혀 버린 부하들을 보며 극도의 허탈감을 느꼈다. 평소 항상 진지하고 진중한 그였지만 지금의 상황은 꿈만 같았다. 전설 속 용사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이드에, 수십의 초인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실드를 펼치는 마법사. 그리고 그들의 일행인 기사와 암살자로 보이는 자들까지.
용사 파티의 전형이 아닌가.
“농담이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버린 헹크는 답답한 마음을 담아 요새가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명 진리를 훔쳐보는 황금안을 가진 라울이라면 지금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불길한 예감과 뒤이은 이드의 절대적인 힘을 보고도
후퇴하지 못했던 이유.
바로 라울이 지켜보고 있을 것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유일하게 그가 매달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헹크의 기다림이 보답받기 전.
먼저 움직인 것은 이드였다.
이드는 적들이 라미아의 실드 앞에 철저히 막혀 절망하는 모습을 확인한 후 몸을 보호하고 있던 호신강기로 자신을 묶고 있던 초인기를 밀어냈다. 초인기에 꼼짝없이 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호신강기 심령을 보호한 이드는 처음부터 제압당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적들의 힘에 둘러싸여 제압당한 척을 했을 뿐.
왜?
‘바로 지금을 위해서지.’
짜악!
출렁!
이드의 손이 마주치는 순간 호신강기가 물풍선처럼 출렁이며 초인기를 흔들었다.
이드는 오행대천공의 핵심 무리인 만류상생의 흐름에 따라 초인기의 흔들림에서 나오는 힘의 움직임을 이끌었다. 어디 하나 굽어지지 않은 원융의 흐름,
만류귀종의 연장선에서 돌고 돌아 상생의 길을 찾는 만류상생은 이화접목이라는 화경의 극한이기도 했다.
이드는 그 흐름에 따라 호신강기와 초인기의 반탄력에서 생긴 상생의 기운을 굴려 외부의 초인기를 자신의 뜻에 따라 유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