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58화
795화
쉴라는 고민했다.
과연 모이엔이 무슨 일로 게일을 찾았을까. 무슨 일이기에 모이엔이 직접 움직였을까.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게일은 모이엔이 직접 찾아가 만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도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그럴 만큼 중요한 일이란 말인데.”
이리저리 궁리해 보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 별이 초롱초롱한 창밖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쉴라가 일어섰다. 한참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클라인 백작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를 깨워야 할 것 같았다.
이드는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일리나와 함께 체온을 나누는 것이 기분 좋아 일어나기 싫었던 것. 몇 달이나 떨어져 있던 것도 아닌데 뭐가 오랜만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따지지 말자. 신혼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마음 같아서는 며칠 꼼작하지 않고 싶은 이드였지만, 황제의 연락에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기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에 만나고 싶다는 요청에는 바쁘다 하던 양반이 황궁으로 들라는 연락을 해 왔기 때문이다.
“잠깐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이 바쁘다던 분이 일리나가 오니 바로 보자고 하시네. 상당히 일리나가 보고 싶으셨나 보네.”
[조심해야겠어요, 이드, 잘못하다 황제가 일리나를 뺏어 가려고 하면 어떡해요?]
“훗, 그땐 전쟁이지!”
[오오~! 패기가 장난 아닌데요~ 일리나는 좋겠어요. 사랑을 위해 제국과 싸우겠다는 남자가 있어서.]
라미아의 말에 행복한 얼굴로 이드에게 기대고 있던 일리나가 방그레 웃었다.
“그건 라미아도 마찬가지잖아요. 이드라면 라미아를 위해서 제국이 아니라 대륙 전체와도 싸울 것 같은데요?”
[흐응, 정말 그래 줄 거예요?]
라미아가 어떤 대답이 나올지 기대된다는 듯 눈을 빛냈다.
“뭐, 어쩔 것 있나? 싸울 일 있으면 싸우는 거지.”
[칫, 그런 말은 분위기 잡고 멋지게 해 주면 좋은데.]
덤덤한 말에 라미아가 투덜거리면서 이드의 팔을 안았다. 말과 행동이 완전 따로다.
이드는 팔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압박감에 새삼 감탄을 터트렸다.
“몇 번을 말하는 거지만, 그 아바타 정말 대단해. 라미아가 인간일 때의 감촉과 똑같단 말이야- 아악! 아파!”
말을 하던 이드는 옆구리를 찌른 라미아의 손에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없는 분위기를 더 깨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드도 눈치가 있어 조용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황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 도착이네. 두 사람 모두 오늘 잘 부탁해.”
[맡겨 주세요. 황제가 잡아먹지 못하게 확실히 지켜 줄 테니까요.]
“호호호.”
호언장담하는 라미아의 말이 재미있었는지 일리나가 까르르 웃었다.
일리나를 만나고 싶다는 황제의 전언에 이드가 라미아까지 함께 황궁으로 데려가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혹시라도 황녀의 부탁을 위해 말을 꺼낼 때 황제가 두 사람 간의 사이를 확대해석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아무렴 황실의 체면이 있지. 이렇게 당당하게 두 명의 아내를 자랑하는 사람에게 황녀를 세 번째 부인으로 보내진 않을 테니까. 이그렌은 황제를 너무 그런 쪽으로 경계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그건 권력의 비열함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마차가 황성에 도착하고 세 사람이 마차에서 내렸다. 이드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세 사람을 향해 모였다. 그들 대부분이 소검후가 궁금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과연, 검을 들고 있는 분이 소검후인 모양입니다.”
“오~ 검후님의 후계자!”
“어허! 그저 떠들기 좋아하는 자들이 붙인 별명일 뿐입니다.”
“그래도 소드 팰러스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까. 무시할 수는 없지요.”
“그보다 명예 후작은 좋겠소. 후작 부인이 저리 미인일 줄이야.”
“두 후작 부인이 각각 검과 마법으로 뛰어난 것을 보면 후작은 능력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여기저기 모인 사람들이 각자 편한 대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자리만 만들어지면 하루 종일 세 사람을 주제로 토론이라도 할 기세다.
그 모습을 자신의 집무실에서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던 발터가 칸을 향해 말했다.
“검후가 가니 소검후가 왔군. 이러면 검후를 치운 의미가 없게 되는 건가? 어떻게 생각하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소검후라지만, 검후를 대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우리 목적은 검후였고, 목적은 이뤘습니다. 소검후가 아니라 새 검후가 나타나더라도 그건 우리 문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죠.”
“후후, 그래. 우리 일이 아니지.”
진하게 입 꼬리를 말아 올린 발터는 창에서 몸을 돌렸다. 칸의 말처럼 소검후와 이드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삼검왕의 일이었으니까. “게일 경은 아직 연락이 없나?”
“없습니다. 대신 전날 모이엔 당장이 게일 경을 만나고 갔습니다.”
발터는 게일을 만난 날부터 그를 감시하는 자를 붙이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고?”
“아무래도 모이엔 단장의 눈을 속이고 접근할 실력은 아니니까요.”
“나와 만났던 일을 모이엔 단장에게 말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쪽의 제안을 듣자마자 소드 팰러스에 알렸다면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 말해 봤자, 자신이 흔들렸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니까. 이런 일은 아는 즉시 알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래서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주의하도록.”
“알겠습니다. 대신, 게일 경이 우리 제안을 받는다면 모이엔 단장이 무슨 일로 왔는지도 자연히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겠지. 그러지 말고 자네가 한번 더 만나 봐. 시간이 없다고 은근히 등을 밀어 주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은밀히 찾아가보겠습니다.”
칸이 고개를 끄덕이자 발터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게일만 확실히 우리 쪽에 붙으면, 검후를 설득하는 작업도 금방이다.”
“어서 오시오, 명예 후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이드와 두 아내는 아무런 기다림 없이 곧장 황제에게로 안내되었다. 황제는 이드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마 지금 제국에서 황제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드일 것이다.
“이전에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후작을 볼 수 없어서 참으로 아쉬웠다오.”
“지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하하하, 당연히 없어도 만들어야지 않겠소. 그보다 후작이 동행한 아름답고 신비한 두 여성분들을 소개해 주지 않겠소?”
“예. 두 사람 모두 제가 사랑하는 아내입니다.”
이드의 소개에 일리나와 라미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일리나 세레스피로가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라미아 그래이드론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시오. 이런 아름다운 분들을 아내로 두고 있는 명예 후작이 참으로 부럽구려.”
황제는 인자하게 인사를 받는 한편 두 사람을 데려와 이드가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내심 쓴웃음이 났다.
‘이쪽으로는 일말의 빈틈도 주지 않겠다는 뜻이겠지.’
굳이 두 사람을 소개할 때 사랑한다는 말을 강조한 것이나, 소검후를 만나고 싶다는 요청에 라미아까지 데려온 것 때문이었다. 즉, 사랑하는 두 아내가 있으니 엉뚱한 제안은 거절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한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했다.
아직 말도 꺼내지 않은 일을 거부하고 있으니까. 황제로서 자존심이 상한달까? 보통이라면 저쪽에서 황제의 사위가 되고 싶어 안달을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