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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60화


797화

저택으로 돌아오니 쉴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스터. 꺅~ 왜 꼬집어!”

“명예 후작님이에요. 수련생도 아니고, 기사라면 예의를 지키세요.”

틀린 것 하나 없는 네리베르의 잔소리에 케마란이 옆구리를 문지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생각보다 빠른 재방문에 놀랐던 이드는 변함없는 두 사람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괜찮아. 두 사람에게는 여전히 가르칠 게 남았으니까 마스터로 불러도 좋아. 대신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알아서 주의해야겠지만.”

“야호! 역시 마스터가 최고에요.”

“휴우~”

좋다고 팔짝팔짝 뛰는 케마란.

어쩌다 이 철없는 망아지 같은 여자와 친구가 되어서 이 고생을 하는지. 네리베르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기뻐하는 케마란의 모습이 몰래 한숨을 쉬었다.

‘마스터가 반겨 주시는 건 고맙지만, 쉴라 님이 보는 앞에서 아이처럼 굴면 어쩌자는 건가요!’

힐끔힐끔 쉴라의 모습을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자신들과 이드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라발 님도…..’

쉴라와 나란히 서 있는 남자. 자신들과 함께 저택까지 동행한 적색 기사단의 당장 라발. 네리베르는 아무래도 타 기사단의 단장이 그가 신경이 쓰였다.

아무래도 그가 자신들을 예의 없다 말하면 그것은 곧 쉴라의 망신이니까. 하지만 그건 네리베르가 라발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었다. 라발의 눈에는 케마란이나 네리베르는 아직 온전한 기사가 아니었다. 이제 막 수련생을 벗어난 귀여운 새내기랄까?

무엇보다 지금 라발의 관심은 오로지 이드를 향해 있었다.

얼굴이 뜨끈할 정도로 강렬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이드가 고개를 돌리자 라발이 기사의 예를 취했다.

“명예 후작님께 적색 기사단장 라발이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라발 단장. 오래간만에 보는 제자들이 반가운 마음에 두 분 단장을 먼저 반기지 못했습니다.”

오색 기사단의 단장이라면 백작급. 아무리 후작이라도 그런 인사를 두고 새내기 기사들을 먼저 챙기는 것은 옳지 않았다.

“오히려 보기 좋았습니다. 제자를 아끼는 명예 후작님의 마음이 말입니다. 저도 제자를 두어 봐서 알지요. 하하하.”

다행히 라발은 전혀 기분 나빠 하지 않는 것 같다.

“저야말로 명예 후작님을 소드 팰러스로 모신 후 가장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러지 못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작위를 받기 전에 만났다면 편하게 말씀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 늦장을 부리다 정말 다시없을 귀한 기회를 놓쳤군요.”

라발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가득하다. 말을 편하게 한다는 것보다는, 좀 더 스스럼없이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때문이다. 이어 쉴라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이드는 마차에서 기다릴 황녀를 떠올리고는 말을 줄였다.

“이야기를 좀 더 나누고 싶지만, 우선 두 분께서 인사를 올려야 할 분이 계십니다.”

이드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라미아와 일리나를 따라 황녀가 마차에서 내렸다.

“황녀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그와 동시에 쉴라와 라발이 기사의 예를 취했다. 두 사람 모두 황녀의 얼굴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화, 황녀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두 단장의 모습에 네리베르가 재빨리 케마란의 목덜미를 잡고는 몸을 숙였다.

“일어들 나세요. 오늘은 명예 후작님께 마차를 빌려 드리고 후작 부인의 활약담을 듣기 위해 가볍게 방문한 것이니, 과한 예는 차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황녀 전하.”

황녀의 말에 네 사람은 곧 편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이에요, 쉴라 경 경이 이끄는 은색 기사단의 활약은 잘 듣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마치 제 일처럼 기뻤답니다.”

쉴라에게 다가간 황녀가 그녀를 가볍게 포옹했다. 최대한의 친근감의 표시였다.

“화, 황공하옵니다. 황녀 전하.”

쉴라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어색한 몸짓으로 굳어 버렸다.

이드는 미녀끼리의 포옹이라는 보기 좋은 광경을 더 보려다 돌처럼 굳어 가는 쉴라가 불쌍해 나섰다.

“문 앞에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황녀 전하.”

이드가 황녀를 에스코트하며 저택으로 들어섰다.

두 오색 기사단장에 이어 황녀까지 방문하자 집사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보이지만, 귀한 손님이 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빠지는 법이다.

당장 손님이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즉시 내갈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언제든 뜨거운 찻물을 내어 갈 수 있도록 물도 계속 끓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드는 이전 황녀를 만났던 방으로 모두를 데려가며 빨리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토벌이 시작되면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레센 대륙을 떠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테니까.

이번만 해도 그렇다. 쉴라와 함께 온 것이 라발이 아니라 카일란이었다면 서로 곤란했을 것이 뻔하다.

집사와 하인들이 저택에 있는 가장 귀한 차와 과자를 내어왔다.

“이그렌에게 인사할 손님들이 있으니까 씻고 오라고 전해 줘요.”

이드는 그 말과 함께 집사와 하인들을 내보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워낙 대단한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하인들이 긴장하면서도 힐끔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 저러다 실수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드가 내보낸 하인들을 대신해서 모두의 빈 잔에 손수 차를 따라 주며 말했다.

“그런데 케마란과 네리베르를 보고 싶다고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데려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토벌대가 출발하기 전에 두 기사를 데려올 시간이 없더군요. 그래서 예고 없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쉴라도 내일과 모레 있을 회의와 파티 뒤에 토벌대가 출발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확실히 삼 일 후에 출발한다면 오늘이 아니고서는 시간이 없기는 했다.

그에 대해서는 이드도 황제에게 들었던 것이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라발은 어떻게 동행한 것일까?

이드가 라발을 바라보자 그것을 알아챈 쉴라가 말했다.

“그리고 라발 단장님은 토벌대가 출발하기 전에 명예 후작님과 얼굴을 익혀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모셔 왔습니다.”

“하하하, 제가 조금 억지를 부렸지요. 아무래도 같은 전장에서 싸우게 될 것이니, 미리 명예 후작님에 대해 좀 더 알아 두고 싶었습니다.” 라발이 쉴라의 말을 보충하고 나섰다.

이드는 그 속에 든 진심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쉴라 경은 다른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이드는 쉴라가 황녀의 눈치를 보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라발을 데려와 이드와 할 이야기에서 황녀의 눈치를 볼 일이 몇 있을까? 그것도 토벌을 앞두고.

‘아마도 미완의 마탑과 삼검왕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겠지. 지금 여러 가지로 의심스러운 행적이 나왔으니까. 어쩌면 검후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려나.’

그렇다면 확실히 황녀 앞에서 함부로 꺼내기 힘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삼검왕은 검후, 오색 기사단과 함께 소드 팰러스를 상징하는 자들이다.

그 상징의 그림자에 숨은 추악함을 타인 앞에서 쉽게 꺼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쉴라 경」

이드는 전음으로 라발을 데려온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더해 물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어젯밤에 클라인 백작님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라발 단장님께도 협조를 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드 님께 허락을 구한 후에 라발 단장님께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설마 황녀 전하께서 행차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당연하다. 황녀의 동행은 이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까. 설마 황녀씩이나 되어서 스타를 찾아오는 팬처럼 황궁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서 어쩔 생각입니까?]

「이드 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기사단의 숙소로 돌아가 라발 단장님과 따로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라발 경은 확실히 믿을 만한 겁니까?』

오색 기사단이 누구를 지지하고 따르는지는 확실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런 이드의 마음을 아는지 쉴라는 망설임 없이 즉답했다.

믿을 수 있습니다. 이때를 위해 그간 클라인 백작님께서 꼼꼼하게 조사도 새로 하셨습니다.』

정말 정성들인 조사였다. 그때까지 보유하고 있던 자료는 폐기하고, 이드가 지원한 넉넉한 자금을 쏟아 오색 기사단장들에 대해서 다각도로 조사한 결과였다.

결과 분석을 위해 클라인이 몇 날 밤을 새기까지 했다.

「그렇군요. 그럼 이번 기회에 라발 경과 함께 황녀 전하와도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흠칫.

갑작스러운 이드의 말에 쉴라가 소리 없이 놀랐다.

그녀의 눈은 반사적으로 황녀를 향했다. 그녀는 한창 케마란의 호들갑스러운 이야기에 빠져 정신을 놓고 있었다. 황녀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을 앞에 두고 신이 난 케마란이 화원이 공격당하던 때의 일을 최선을 다해 떠들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한참 복잡한 마음으로 황녀를 바라보던 쉴라가 말했다. 묘하게 잠긴 쉴라의 목소리에 그녀의 고민이 느껴지는 듯했다.

괜찮겠냐고?

‘괜찮지 않을 것도 없지. 세상일에 100%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겠어. 더구나 기계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인간을 믿을 수 있느냐는 문제는 부딪혀 보기 전에는 답이 없지.’

하지만 이드에게는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황녀가 황제 몰래 검후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짧지만 인상적인 사건과 격렬했던 대련을 통해 파악한 황녀의 성품은 나쁘지 않았다.

몇 시간의 대화나 인터뷰보다 짧은 대련을 통해 상대에 대해서 더 잘 헤아릴 수 있는 것이 무인이라는 족속이다. 입술은 쉽게 거짓을 말해도 몸은 그러지 못하니까.

그리고 마침 이 자리에는 천연 거짓말 탐지기나 다름없는 일리나가 있다. 화경의 끝자락에 이른 그녀의 육감과 엘프로서의 선천적인 능력은 깊은 깨달음과 합쳐져 이제는 차라리 권능에 가까워진 상황이다.

이에 대해서 라미아는 악마라고 해도 일리나를 속일 수는 없을 거라고 장담을 했었다. 그러니 자신과 일리나 앞에서 거짓말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사실 웃긴 이야기였다.

이드의 속을 알자면 일리나보다 더 쉽고 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라미아가 할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거짓말할 일이 뭐 있냐고. 두 사람을 두고 바람을 피울 것도 아니고.’

확!

‘으헉!’

문득 당시를 떠올리고 투덜거리던 이드는 바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무섭게 자신을 돌아보는 라미아에 뒤통수의 머리털이 바짝 섰다. 라미아는 자신도 왜 이드를 돌아본지 모르겠다는 듯 이드에게 불렀느냐 묻고는 다시 케마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드는 쿵쿵거리는 가슴을 몰래 쓰다듬었다.

정정하자.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을 떠나 생각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든든하다.

일리나와 함께 떠올린 것이 라미아의 기어스다. 황녀만 동의한다면 그녀가 이 자리에서 듣게 되는 비밀은 완벽히 지켜질 것이니까.

『황녀 전하라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이드 님이 그러시다면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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