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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72화


809화

‘모, 모두 알고 있으시구나…

최소 시녀 발언이 나오기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든 사건을 축소, 무마해 보려던 베르나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거참, 내가 어지간히 얕보인 모양이네. 당사자들 다 있는 자리에서 스리슬쩍 넘어가려고 하는 걸 보면.’

그렇지 않고서야 사소한 오해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과연 다른 고위 귀족을 상대로도 저런 식의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곳에서 이드는 유명인으로 알려지긴 했어도, 무서운 인물로 알려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대답은?”

“……은색 기사단을 모욕한 테러발 경에 대한 일을 즉시 기사단에 보고하여 올바른 징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드는 그의 말에 반사적으로 움찔 놀라는 기사의 모습에 혀를 찼다.

“글쎄. 내가 들어야 할 대답은 그게 아닐 텐데? 설마 내 질문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베르나 상급 기사?”

이드의 재촉에 베르나는 입안이 바짝바짝 탔다. 도대체 이드가 대답을 재촉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니, 모욕적인 언사로 조롱받고 가만히 있을 기사가 세상천지 어디 있단 말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한 가지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은 은색 기사단의 공격을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꼴이 된다.

‘명예 후작은 정말 우리와 은색 기사단이 싸우도록 하려는 것인가.’

설마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답을 재촉하는 모습이 너무 불안했다. 그때 수련장으로 들어온 일리나가 이드 곁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기사들의 시선이 모였다.

“저분은 혹시….”

“쉿!”

일리나를 알아본 듯 누군가 입을 열었지만, 분위기에 눌려 입을 닫았다. 일리나를 직접 보진 못했어도 그녀에 대한 소문과 자연스럽게 이드의 귓가에 속삭이는 모습을 보고 그녀의 정체를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베르나 역시 마찬가지.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외쳤다.

“명예 후작님, 부디 두 기사단 간의 불화를 조장한 기사를 벌하도록 허락해 주시고, 오해를 풀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흥.”

억울한 피해자처럼 절절한 목소리에 스폴은 코웃음을 쳤다. 저러는 이유는 알겠지만, 그의 행동은 틀렸다. 이드도 일리나도 그런 적당한 감언이설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이드는 까탈스럽지 않고 격의 없이 지내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허술한 인간도 아니었다.

씨익.

아니나 다를까. 스폴과 시선이 마주친 이드가 하얗게 웃으며 말했다.

“베르나 경, 경은 아무래도 내가 우스운 모양이지? 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똑같은 대답이 다시 나오는 것인가. 명예 후작의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나?”

“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은색 기사단의 실력 행사는 옳은 것입니다. 그것이 제 대답입니다.”

어떻게든 어물쩍 넘겨 보려던 베르나였지만, 권위에 대한 말까지 나오자 화들짝 놀라 외쳤다.

“늦었지만, 자네의 대답은 잘 들었다. 그럼 은색 기사단의 실력 행사는 문제가 없는 것이고, 기사단 간의 문제는 차후 처리하겠다. 우선은 베르나 경의 말처럼 기사의 품격을 훼손시키고 기사단 간의 불화를 조장한 자에 대한 처리부터 하도록 하지. 문제의 기사를 불러내도록.”

이미 말로서 이드에게 한 번 꺾였기 때문일까. 베르나의 눈짓을 받은 두 명의 기사가 테러발을 끌고 나와 이드 앞에 무릎 꿇렸다.

“오늘 문제를 일으킨 테러발 경의 일은 즉시 기사단에 보고되어 처벌이 결정될 것입니다.”

“아니, 그에 대한 처벌은 내가 한다.”

테러발 옆에 선 베르나의 말에 이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호위 기사단에 차출되었지만 그는 황색 갈기 기사단 소속의 기사로, 그에 대한 처분 권한은 오로지 기사단장님과 황제 폐하께 있습니다.”

“아니, 호위 기사단에 차출된 기사들에 대한 권한은 온전히 나와 황녀 전하께 있다. 이것은 그 사실을 증명하는 황녀 전하의 친서다.”

이드는 일리나에게 전해 받은 친서를 베르나의 손에 쥐여 주고는 기사들을 향해 돌아섰다.

수련장 안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알아챈 이드가 수련장에 나타나기 전 일리나에게 부탁해 황녀에게 받아 온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기사들도 모두 들었을 것이다. 이 수련장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너희들은 원래 소속된 기사단이 따로 있는 차출된 기사가 아니라, 완전한 호위 기사단의 기사다. 그리고 호위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의 판단에 따라 동료 기사를 조롱함으로써 기사단의 화합을 허무는 이적 행위를 한 테러발에 대한 판결은 참형이다.”

이드의 말이 떨어지자 기사들은 물론 당사자인 테러발과 베르나가 벼락을 맞은 듯 놀랐다.

“무, 무슨・・・・・・ 겨우 이만한 일에 참형이라니요. 인정할 수 없습니다.”

“명예 후작님, 참형은 과한 벌입니다. 부디 다시 생각을・・・・・・ “

특히 목이 날아가게 생긴 테러발은 발악하듯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드는 그에게 그런 반항할 여지를 주지 않고 스틸 하트를 뽑아 휘둘렀다. 판결을 내렸으니, 집행할 뿐.

“인저……엉……”

설마 이렇게 단호하게 검을 뽑을 줄은 짐작하지 못한 테러발의 입이 목에서 떨어지며 다하지 못한 말을 뻐끔거렸다.

그 모습에 조롱당한 당사자이자 검후의 숲에서 적들을 향한 거침없던 손속을 목격했던 은색 기사단의 기사들도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내심 가슴의 응어리가 내려가는 듯한 짜릿함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그녀들과 달리 이드에 대한 예비 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베르나는 황녀의 친서를 손에 쥐고서 굴러가는 테러발의 머리를 망연히 바라보아야 했다.

다른 기사들 역시 황제의 기사에 대한 망설임 없는 손속에 두려운 눈으로 이드를 보았다.

아무리 황녀의 허락이 있다지만 황제의 기사인데, 저리도 쉽게 목을 자르다니. 그것도 동료 기사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그와 같은 일이 있어도 보통은 자숙과 강등으로 끝날 일을!

부르르.

단호하다 못해 냉혹한 손속을 확인한 기사들이 어깨를 떨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허리를 펴고 눈은 전방 사십오도를 향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바짝 군기가 든 모습이다.

“이, 이건……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는데………….”

이건・・

베르나는 제 발 앞으로 굴러온 테러발의 머리를 보며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드는 스틸 하트를 휘둘러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면서 물었다.

“베르나 경은 황녀 전하의 친서를 다 읽었나?”

“아, 아직…….”

“그럼 지금 즉시 나머지를 읽어라.”

“……예.”

이드의 명령에 할 말이 있는 듯 우물거리던 베르나는 결국 친서를 손에 들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정신을 집중해 읽었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 적힌 글에서 숨이 멈추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보아하니 끝까지 읽은 모양이군. 자네의 모습에 호위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도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기사들을 위해 마지막 부분을 읽어 주도록 하게.”

“이…… 에 나 밀리아리아 드 아이넬 아나크렌도 명예 후작의 뜻에 동의하는 바. 본 황녀는 호위 기사단 내의 분열을 조장한 죄인에 대한 처형의 권한을 명예 후작에게 일임한다.”

이 많은 기사 앞에서 이드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을 줄은 알았지만, 황녀가 직접 처형을 언급해서 그 권한을 넘겼을 줄은 몰랐던 기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드 뿐 아니라, 황녀의 처분도 과감하고 단호하다.

이제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이 온전히 이드와 황녀에게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친서의 내용을 들었을 것이다. 이에 불복할 자는 나서라.”

이드의 말에 스폴이 내심 쓰게 웃었다.

이런 분위기에 누가 나설 수 있을까. 또 황녀의 친서에 누가 불복할 수 있을까. 애초에 대답이 불가능한 말이었다.

“아무도 없군, 좋다. 그럼 지금 이 시간부터 경들은 황녀 전하의 호위 기사단의 기사다. 거기 있는 죄인과 베르나 상급 기사를 제외하고.”

이드에게 지목당한 베르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명예 후작님?”

“베르나 상급 기사는 거기 있는 죄인의 시신을 가지고 황색 갈기 기사단으로 돌아가서 제대로 된 기사를 다시 차출할 수 있도록 전하도록 하는 김에 상급 기사도 함께.”

“명예 후작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빠진 인원을 채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째서 자신도 빠진 것인가?

이드는 그의 의문을 즉시 해소해 주었다.

“베르나 상급 기사는 분란을 조장하는 부하 기사들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지 않은가. 기사들을 지휘해야 할 상급 기사가 무능한 것은 실력이 모자라는 것 이상의 죄다. 또 베르나 상급 기사는 내가 세 번 묻고서야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그렇게 말귀가 어두운 자를 어떻게 아래에 두고 쓸 수 있겠는가. 황녀 전하를 지키는 호위 기사단에 모자란 자는 필요치 않다.”

“흐으으윽!”

가차 없이 무능을 헤집는 말에 베르나는 숨넘어가는 신음과 함께 꽉 문 입술 사이로 피를 흘렸다.

하지만 가장 미칠 것 같은 사실은 이드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 무엇 하나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크흑…….”

이드는 베르나의 눈가에 눈물이 어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청색 깃털 기사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나? 펄헴 상급 기사.”

“명예 후작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펄헴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내심 더욱 긴장했다.

자신을 향한 이드의 시선과 질문이 경고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다음은 청색 깃털 기사단원이 희생될 거라는. 그는 내심 부하들을 다시 단속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베르나가 힘없이 테러발의 시신을 들고 수련장을 나선 후 모든 기사가 줄을 맞춰 이드 앞에 도열했다.

테러발의 목에서 쏟아진 피가 여전히 그 자리에 흥건했지만, 그쪽으로는 누구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동료가 죽었지만 황색 갈기의 기사들은 달리 불만을 보이지 못했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잘잘못이 확실했고, 이드가 단호했으며, 황녀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기 싸움에서 시작한 일이 이렇게 끝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황색 갈기와 청색 깃털의 기 싸움은 일상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다.

이드는 그런 기사들의 모습에 피 웅덩이를 돌아보며 작게 혀를 찼다.

기사들이 내심 과하다 여길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이드가 보기에 테러발의 행동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세상에 시녀라니. 그의 존재는 호위 기사단을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로 나눌 폭탄과 같은 것이었으며, 도저히 기사라고 보아 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의 존재를 용납하는 것은 은색 기사단을 죽이는 행위와 같다. 그 하나를 살려 은색 기사단의 사기를 죽이는 것보다, 그 하나를 죽여 은색 기사단의 자존심과 사기를 살리는 것이 옳다. 그렇기 때문에 황녀도 이드의 의견에 동의하고 처형을 허락한 것이다.

이드는 기사들이 준비된 듯하자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기사들 중 나를 모르는 기사는 없을 것 같지만, 정식으로 내 소개를 하겠다. 나는 이번 토벌에서 황녀 전하를 수호하는 임무를 맡은 호위 기사단의 단장직을 맡게 된 명예 후작 이드 예천화다. 나는 우리 호위 기사단이 해체되는 날까지 맡은 바 임무를 완벽히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에 호위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 역시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부탁하는 바이다.”

“목숨을 다해 단장님의 명을 받들어 황녀 전하를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짝짝짝짝.

이드의 말에 화답하듯 한 기사가 외치자, 이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호위 기사단에는 무인도, 초인도, 마법사의 구분도 없다. 황녀 전하의 친위 기사단이 있음에도 호위 기사단을 따로 만든 황제 폐하의 뜻을 깊이 새겨 보길 바라는 바이다.”

황제의 뜻, 과연 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다.

호위 기사단이 자신의 기량 파악을 위한 제물이라고 여기고 있는 이드는 내심 혀를 쏙 빼물었다.

굳이 찾아 붙이자고 하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글쎄, 그중 진실이 있을까?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들이 스스로 가져다 붙이는 이유가 적당할수록 기사들은 열심히 임무에 최선을 다해 줄 텐데. 그거면 된 거지.

“그리고 친서를 통해 황녀 전하께서 우리 호위 기사단의 이름을 하사하셨다. 영광스럽게도 황녀 전하의 이름에서 따온 우리 기사단의 이름은,

아이넬 기사단이다.”

“우악! 황녀 전하 만세~!”

“아이넬 기사단 만세!”

“이드 단장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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