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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79화


816화

인체 실험. 키메라 제작.

마법사들이라면 한 번은 도전해 볼 것 같은 단어들이지만, 결고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몬스터건 생명의 배를 가르고, 이어 붙이는 일은 어지간한 독심이 아니고서는 하지 못할 일이다.

그리고 방에 모인 마법사들은 그런 독심들 중에서도 제일 냉혹하고 단단한 자들이었다.

토벌대라는 화살 앞에 서며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순간이었다.

새로운 이론, 새로운 마법, 대륙 제일의 마탑이라는 목표를 다시 환기시킨 키릴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에 몸을 떨었다.

키릴이 토벌대를 환영할 준비를 맞기고 자리를 뜨자, 정신의 관 부관주가 나섰다.

랜달과 마찬가지로 직책만 부관주이지 정신의 관의 실질적인 관주이자 지배자가 바로 해더웨이다. 관주는 당연히 미완의 마탑의 탑주이자 각 관의 공동 관주인 키릴이고.

“그럼 준비하기 전에 보는 눈을 치우도록 합시다.”

“호호, 당연히 그래야죠. 애써 준비한 깜짝 선물인데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까요.”

새빨간 입술만큼 진한 미소를 지은 여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도 있었지만, 상대에게 필요 이상의 경각심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냥 두었던 눈이지만, 토벌대도 출발했으니, 더 이상 불쾌한 눈을 그냥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일은 랜달 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관주의 말에 랜달의 눈썹이 움찔했다. 생명의 관이 사라지며 더 이상 생명의 관의 부관주가 아니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의 실력이 사라진 것도 아닌 이상 그가 직접 나서기에는 너무 하찮은 일이다.

그러나 불쾌한 내색을 하기도 애매했다.

해더웨이 부관주는 극도로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타입으로 절대 랜달을 조롱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꺼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판단해도 키릴을 제외한 마법사들 중 랜달 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감시자들을 처리할 수 있는 마법사가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오늘 안으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랜달 님과 함께 정리할게요.”

빨간 입술의 마법사가 랜달을 향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감시자들의 처리에 두 분이 나서는 것은 전력 낭비입니다만?”

“어차피 잉여 인력인데 상관없지 않나요? 거기다 랜달 님과 오붓하게 데이트도 하고 말이죠.”

“켈켈켈, 데이트는 무슨 얼어죽을. 진짜 속내는 피를 보고 싶은 게지.”

“그럼 안 돼? 일석이조잖아, 할멈.”

입술을 삐죽이는 빨간 입술 마법사의 말에 노파는 켈켈거리며 가래 끓는 웃음만 흘렸다.

그 뒤 부관주도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허가했다.

“그럼 각자 준비한 일의 마무리와 점검을 부탁하겠습니다. 탑주께서 주관하는 일입니다. 실수가 없도록 합시다.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부관주가 회의를 끝내자 방을 나서는 마법사들 사이로 빨간 입술의 마법사가 랜달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랜달 님.”

랜달은 윙크까지 날리는 상대를 보며 내심 신음했다.

“에스코트는 조금 이따가 하지요. 준비할 것이 있으니 잠시 후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어머나, 섭섭해라. 그럼 제가 먼저 나가서 정리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제가 에스코트하지요.”

랜달은 민망하다는 듯 팔랑거리는 마법사의 손을 잡으며 이를 갈았다. 아무래도 바벨에서 파견된 감시자들을 철수시키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수도를 떠나 한나절을 달린 토벌대에 첫날 밤이 왔다. 수도가 가깝고, 미리 계획을 짜 둔 덕분에 노숙이 아닌 자작의 영지에 편하게 머물 수 있었다.

아이넬 기사단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이드는 황녀와 함께 록마틴 후작의 부름을 받았다.

록마틴 후작은 자작의 집무실을 빌리고 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제법 큰 집무실이 비좁았다. 기사들 전력이 주가 된 기형적인 토벌대이다 보니, 각 기사단을 지휘하는 지관들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그나마 록마틴 후작과 황녀가 중심을 잡아 주고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배가 산으로 갔어도 벌써 산으로 갔을 것이다.

보통 장교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군대라면 오합지졸이 되기 딱 좋은 환경이지만, 그나마 토벌대의 최고 지휘관이자 장군인 록마틴 후작과 부지휘관인 황녀가 제대로 중심을 잡아 주고 있어서 원활한 지휘가 가능했다.

“오늘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토벌대의 목적지를 밝히기 위해서요.”

황녀와이드에게 옆자리를 내어 준 후작이 사람들을 부른 이유를 밝혔다.

“그거 반가운 말씀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목적지를 몰라 답답했습니다.”

“일단 남서쪽 마스 왕국 방향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설마 본국의 국경을 넘는 것은 아니겠지요?”

토벌대에 참가한 마스 왕국의 공관장이 흉흉한 얼굴을 하고 나섰다. 그러자 그와 함께 모여 있던 타국의 참가자들이 혀를 찼다.

“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이대로 국경을 넘으면 전쟁이 난다는 것은 열 살 아이도 아는 일인데, 그걸 질문이라고 하시오?”

“마스 왕국 출신답게 전쟁에만 정신이 팔렸으니 저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너무 그러지들 마세요. 마스 왕국에서는 당연한 걱정이니까요. 후작님께서 빨리 오해를 풀어 주셔야 할 것 같네요.”

순식간에 마스 왕국을 성토하는 분위기에 황녀가 나서자, 거칠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러지요. 마스 왕국의 공관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우리 목적지는 마스 왕국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니까.”

록마틴 후작이 탁자에 지도를 펼치고는 한 곳을 찍었다.

그곳은 마스 왕국와 라일론 제국의 국경과 레이논 산맥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은 중간 지점으로, 각국의 국경과 가깝고 몬스터들이 들끓는 레이논 산맥과 가까워 대부분이 미개발 지역인 곳.

“캬~ 이놈들 아주 절묘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려.”

“과연, 과연! 저러니 지금까지 들키지 않은 것이겠지요.”

“저는 예상했습니다. 남서쪽으로 향하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요! 에헴!”

위치를 확인한 사람들이 모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개중 똑똑한 척을 하며 나서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관심을 끌려고 헛소리하는 놈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 제일이니까.

그때 적의 본거지가 자국의 국경과 가까운 것을 확인한 라일론과 마스 사람들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나섰다.

“혹시 이자들이 본국에도 발을 들였다는 정보는 없습니까?”

“그렇게 자세한 정보는 확보하지 못했소.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오.”

“제가 보기에는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출신 국가에 따라서 초인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놈들 편한 곳에서 잡아 왔겠지요.”

자국과 무관한 상황에 조용히 지켜보던 시리카의 공관장이 한 말이었다.

“아무래도 본국에 알려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빨리 알려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라일론과 마스의 공관장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록마틴을 바라보았다.

“허허허, 어쩔 수 없지 않소. 이제야 적의 본거지를 밝히는 것도 적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것인데. 미리 밝혀서야 소용이 없지 않소. 이 작전이 소용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혹시나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오.”

후작이 그냥 후작이 아니다. 록마틴 후작은 공관장의 따가운 눈을 허허로운 웃음으로 받아 넘기며 말했다.

그러나 말과 달리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공관장들의 반응을 보아서도 알 듯, 미리 밝혔다가는 자국도 피해를 받았다며 라일론과 마스에서도 나설지 몰랐다. 그렇게 되면 타국의 전력이 자국의 땅을 밟게 되는데, 황제와 제국은 그런 일을 허락할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감시는 붙여 두셨겠지요?”

가만히 지도를 내려다보던 이드가 물었다.

“당연히 저들의 본거지가 밝혀지는 순간부터 확인을 겸해서 감시를 붙여 두고 있소이다. 그뿐 아니라 적의 본거지와 가까운 두 영지의 영주에게 명령하여 저들이 도망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병력을 모아 두었소이다.”

“과연 준비가 잘되어 있습니다.”

“고맙소. 여러분들께는 적의 본거지에 대해 지금 밝혔지만, 기사들과 병사들에게는 레이논 산맥의 초입까지는 밝히지 않도록 해 주시길 바라겠소.” 

록마틴 후작의 부탁에 사람들은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드는 재빠른 대답과 달리 이, 삼일 안에 이 사실이 토벌대 안에 전부 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토벌대 전력의 핵심이 병사들이 아니라 기사들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이야 이 자리에 모인 지휘관들과 따로 만날 일도, 의견을 나눌 일도 없지만, 기사들은 다르기 때문이다.

기사단의 지휘관으로 토벌에 참가한 귀족들에게 어떤 때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것이 기사들 아닌가.

차후의 일과 기사단의 작전을 짜기 위해서라도 밝힐 것이 분명했다. 작전 지역의 지형과 환경을 미리 아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록마틴 후작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

‘아마 이제는 알려져도 괜찮다는 것이겠지. 그러면서도 비밀을 당부하는 것은 지휘관의 기도 살리고, 알려졌다는 것을 빌미로 주도권도 확실히 하자는 것일 테고.’

회의를 마치고 집무실을 나서며 이드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황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록마틴 후작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죠. 제국에 록마틴 후작님처럼 직접 전장에 많이 참가하신 분도 드무니까요. 괜히 제국에서 유이하게 용기사를 두고 운용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황녀의 발언에는 록마틴 후작에 대한 믿음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만큼 록마틴 후작과 황실의 관계가 단단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록마틴 후작님에 대한 황녀님의 믿음이 보기 좋네요.”

“후작님의 충성심은 높이 칭송할 만큼 대단한 것이니까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 앞에 화려한 적발을 길게 기른 젊은 기사를 앞세운 일단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코넬리온 자작이 황녀 전하와 명예 후작님께 인사드립니다.”

“반가워요, 자작님.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목적지까지의 긴 여정에 황녀 전하께서 저희 기사단과도 잠시 함께해 주시는 영광을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황녀 전하 곁에 설 기회를 가진다면 기사들에게 큰 자랑이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자작의 말에 황녀가 이드를 돌아보았다. 나쁜 의견은 아니지만, 현재 아이넬 기사단과 황녀는 단순히 이동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과 동시에 호흡과 유동적인 진형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황녀의 눈길을 받은 이드가 나섰다.

“좋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현재 황녀께서는 실전을 대비해서 아이넬 기사단과 일정을 조율 중이니, 차후 기회를 보아 그리하도록 하지요.’ “황녀 전하의 연락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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