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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88화

이드 2부 – 388화


825화

“정말 굉장해요. 이런 내구력이면 싸우다 부러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앞으로 백 년은 쓰겠어요.”

실실 웃으며 검을 쓰다듬는 모습이 변태 같다.

강화 기술자로서는 만족한 고객의 모습이 흐뭇하지만, 저대로 두면 검에 볼을 비비고 뽀뽀라도 할 것 같다.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갈등이 깊어질 때, 스폴이 겨우 하던 행동을 멈추고 말했다.

“그런데 이 강도, 재료로 쓰고서야 새삼 스틸 하트가 대단하다는 걸 알겠어요. 아깝지 않으세요? 이렇게 쓰지 않았으면, 영원히 부러지지 않는 전설의 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천년을 넘어 만 년을 가도 사용하지 않는 검은 전설이 아니라 문화재나, 유물로 남을 뿐이죠. 차라리 이렇게 쓰는 편이 나아요. 그리고 단단하기로 따지자면 일라이져도 스틸 하트 못지않다고요. 무엇보다 일라이져는 다시 전설을 만들 필요 없는 전설이기도 하고요.”

이드가 애정 가득한 손길로 일라이져의 손잡을 쓰다듬었다.

스틸 하트가 아무리 단단한 검이라고 해도 일라이져가 있는 이상 이드에겐 쓸모없는 검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혹시 일라이져를 사용할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야말로 이드가 가장 아끼고 믿는 라미아를 찾을 테니까.

“하하하, 제가 현재의 전설을 두고 미래의 전설을 찾았네요.”

스폴이 껄껄 웃으며 스틸 하트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어차피 이미 원래 형체도 남지 않은 검이지 않은가.

스틸하트의 희생으로 두 명의 뛰어난 기사가 좋은 장비를 얻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이드는 앙상한 가지와 같은 모양으로 한 뼘 정도 길이만 남은 스틸 하트를 손에 들었다. 단검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애매한 크기.

“어떻게 쓰기도 애매하게 남았는데, 혹시 더 강화하고 싶은 건 없어요? 하나 정도라면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리도리.

“없습니다.”

스폴과 이그렌이 고개를 저었다. 찾자면 없지는 않지만,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스틸 하트까지 자신이 쓰고 싶지는 않았다.

“소검후님은 강화하실 물건이 없으신가요? 검이라든가…….”

“아니요. 전 이미 충분해요.”

이드는 거절하는 일리나를 보며 웃었다.

새삼 그녀가 장비하고 있는 물건들에 눈이 갔다. 그 중 몇 가지는 세레니아가 챙겨 준 것이지만, 대부분은 자신과 함께 숲을 떠나는 그녀의 안전을 위해 이드와 라미아가 준비한 것들이었다.

거기다 초인기를 각성하고 금속을 강화할 수 있게 되면서 가장 먼저 강화한 것이 바로 일리나의 파츠 아머였다.

설마 그녀를 두고 스폴과 이그렌의 물건부터 강화했을까.

“아차, 제가 이렇게 눈치가 없네요. 당연히 가장 먼저 단장님이 강화해 주셨을 텐데.”

거기다 일리나의 파츠 아머를 강화하는데 스틸 하트를 사용하지 않은 걸 보면 그보다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한 것이리라. 뒤늦게 그런 사실을 깨달은 스폴이 부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드는 일리나의 파츠 아머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스폴을 보자 보람과 함께 마음이 든든해졌다.

“좋아. 결정했다.”

덕분에 남은 스틸 하트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했다. 이드는 남은 스틸 하트를 떼서 꼬고 펴며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투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십수 년 전 무림의 기억이었다.

“어머나, 예뻐라. 단장님. 이거 장미죠?”

그 추억이자 경험을 담아 만들어진 것은 한 톨의 빛도 반사하지 않는 한 송이 검은 장미였다.

이드는 그 장미를 일리나의 머리에 장식처럼 꽂았다.

“선물이에요. 암기로 유명한 당가의 물건과 비슷하게 만들어 본 물건이에요. 위급한 상황에 내력을 주입하면 꽃잎이 쪼개지면서 발사될 거예요.”

아름다운 외형과 달리 상당히 흉흉한 물건이지만, 이 앞 목적지에서 정해진 전투를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머리에 장식된 흑장미를 만지는 일리나에게는 그런 세세한 부분보다 그저 이드의 선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쁠 뿐이었다.

“고마워요. 쪽!”

“……아, 부럽다. 나도 흑장미를 선물해 줄 애인 어디 없나. 왜 요즘은 찝쩍거리는 놈도 없는 거냐고!”

보답의 입맞춤을 바라보던 스폴이 인생의 패잔병이 되어 하늘을 향해 외쳤다.

“쿨럭.”

이그렌은 헛기침을 하며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스폴을 보지 못한 척했다.

스폴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 간단하다.

전 애인과 헤어졌다는 그녀의 말과 달리 대부분은 여전히 그녀와 프랑 기사단의 부단장이 연인 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별거 없다. 헤어졌다고 하면서 너무 친하게 지내고 있어서다. 괜히 근거 없이 스폴을 두드리면 용기사가 튀어나온다고 수군거리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즉, 대외적으로 스폴에게 구애하려면 그냥 기사도 아니고, 와이번을 타는 프랑 기사단의 부단장을 상대할 각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거기에 용기사는 스폴 몰래 그 소문을 적극 부채질 중이고.

이러니 소문의 용기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안타깝지만, 스폴 경에게 흑장미를 선물할 새로운 애인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물론 이런 이야기를 당사자 앞에서 할 담력은 없는 이그렌이다.

혹시라도 그 이야기를 듣고 스폴이 새로 강화된 검을 들고 프랑 기사단으로 달려가면 어쩌려고?

“이제 검집과 손잡이만 처분하면 스틸 하트가 완전히 사라지겠네요.”

이그렌이 말했다.

그 말대로 정말 알뜰하다 싶을 정도로 확실하게 써먹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는 해 둘까?’

손잡이만 남은 스틸 하트를 본 이드가 막사 구석에 치워진 부서진 무기들을 바라보았다.

마음대로 써먹기는 했지만, 전대 황제도 아니고 현 황제의 하사품인 만큼 언제 다시 꺼내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

들고 싸울 일이 없기 때문에 더 중요한 물건이 하사품이다.

이드는 부서진 무기에서 적당히 강철을 뽑아냈다. 이미 초인기를 들켰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삼매진화로 철을 달구는 퍼포먼스도 하지 않았다. 츄루루룩.

순식간에 원래 형태를 잃은 금속이 야구공처럼 뭉치자, 이드는 거기에 스틸 하트의 손잡이를 박았다가 뽑았다.

그러자 금속의 공이 점점 작아지며 순식간에 스틸 하트의 사라졌던 검날이 생겨났다. 색도, 크기도 이전의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강도는 일반 강철과 다를 바 없지만, 모양만은 분명한 스틸 하트였다.

어차피 공식적인 자리에서 보여 주기용으로 쓰기 위한 것. 검의 강도는 상관이 없다. 굳이 그것을 확인하자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위(僞) 스틸 하트 완성!”

“아예 가짜라고 광고를 하시지 그래요!”

“뭐, 어때요. 우리만 아는 이름인데.”

이드는 스틸 하트를 검집에 넣었다. 라미아가 돌아오는 대로 아공간 한구석에 던져둘 것이다.

부디 다시 꺼내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혹시 몰라서 만들기는 했지만, 가짜는 가짜. 위조는 범죄니까!

황제의 하사품의 가짜를 만드는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마치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그것부터 물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었네요.”

“참, 빨리도 물어보네요.’

그렇지 않아도 감시조로 가게 됐다는 사실을 알려야 했던 이드는 막사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이넬 기사단의 부단장인 스폴은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아이넬 기사단은 스폴이 이끌어야 하니까.

“그런 이유로 아무쪼록 내가 없는 동안 황녀 전하와 기사단을 잘 부탁해요, 스폴 부단장님. 믿고 있을 테니까요.”

“으~ 결국 강화는 이 일에 대한 뇌물이었군요!”

감시조에 자원했다고 말할 때부터 흉할 정도로 입을 벌리고 경악하던 스폴이 눈을 부라렸다.

“아니, 그런 뜻은 전혀 없어요.”

이드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전혀 믿음을 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단장과 상의도 없는, 단장의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 그리고 혼자 감당할 기사단의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었으니까.

특히 현재 아이넬 기사단에는 황녀의 기사단 방문이라는 이벤트로 인해 제국 각지의 유명 기사단의 요청이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 이드가 빠져 버리면, 온갖 기사단의 요청을 가장한 압력을 온전히 스폴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상상에 보물처럼 안고 있던 검을 내밀며 말했다.

“혹시 이거 반품되나요?”

“그거 뇌물 아니라니까 그러네. 거기다 이미 록마틴 후작님의 허락이 떨어진 임무라서 그거 반품해도 어차피 무르지도 못해요.” 

방금 전 그렇게 좋아하던 강화를 무르겠다니. 진짜 어지간히도 하기 싫은 모양이라고 생각한 이드가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

“일단 황녀 전하의 기사단 방문은 당분간 정지될 거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하게 되더라도 방문 순서는 황녀 전하께서 정하실 테니까. 스폴 경이 힘들 일은 없을 거예요.”

“뭐, 일단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스폴이 건성으로 답했다. 측근 비리와 로비라는 단어에 대해서 설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무를 수 없는 일. 설명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벌컥!

그때 막사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라미아가 뛰어 들어왔다.

“이드. 감시조로 정신의 관에 간다는데. 이게 무슨 말이에요?”

“벌써 소문이 퍼진 거야? 엄청 빠르네.”

“아뇨. 황녀 전하에게 들었어요.”

과연. 이드와 헤어진 황녀가 아이넬 기사단의 훈련장으로 갔던 모양이다.

“내가 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 가겠다고 했지. 그보다 이것부터 좀 아공간에 던져둬.”

이드가 던진 스틸 하트가 허공중에서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그럼 전 돌아가 보겠습니다.”

범행의 증거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이그렌이 조용히 막사를 떠났다. 괜히 남았다가 불똥이 튈 것 같아 피한 것이다.

그리고 이그렌이 나간 문이 닫히다가 다시 열리며 비올라가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날 따돌리고 정신의 관으로 간다는데, 사실입니까?”

“…..설명할 테니까 일단 앉아라.”

라미아와 똑 닮은 등장에 이드가 의자를 가리켰다.

“바이트 타블렛은 절대 포기 못합니다. 그걸 처음 보는 건 나라고요. 저하고 했던 약속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비올라가 지옥에서 올라온 아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이드가 자신을 두고 정신의 관에 간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겼다.

“그것도 설명해 줄 테니까 앉아.”

이드는 비올라가 흥분을 가라앉히자 라미아와 그에게 록마틴 후작의 막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감시조에 자원했지. 감시조가 모두 당하고 나면 저쪽에서 깐 함정에 그대로 당하게 될 것 같아서 말이야.”

“흥, 마법사의 땅에 발을 들이는 일입니다. 그 정도 각오는 당연한 겁니다. 당하는 놈이 멍청한 거지요. 그럼 바이트 타블렛을 노리고 가는 건 아니란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정신의 관을 만만하게 보고 덤비는 토벌대의 분위기에 어처구니가 없어 내심 비웃고 있던 비올라가 차갑게 말했다.

그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미완의 마탑을 배신하고 이드를 따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법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현재 토벌대는 마법사를 얕보고 있었다.

내심 토벌대가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보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 비올라의 은밀한 희망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감시조를 이끌고 가는 거야. 정신의 관에는 절대 진입하지 않아. 당연히 바이트 타블렛을 볼 일도 없어.”

“뭐, 그럼 됐습니다.”

이드의 확답에 비올라가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바이트 타블렛만 아니라면 이드가 감시조를 하건 무얼 하건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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