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07화
844화
“점혈로 재운 건가요?” 과연 일대 제자.
일리나가 프리실라의 상태를 단번에 짚어 내자 이드는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이동해 오는 모습을 보여 줘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제가 할 일은 진실 여부에 대한 판별인 거죠?”
“가장 중요한 일이죠. 정신의 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으니까요.”
비올라 덕에 미완의 마탑에 대한 것과 정신과 영혼, 두 관에 대한 정보도 얻었지만, 그 정보라는 것이 한 다리 건너 전해진 것이라 아무래도 정확성이 부족했다.
자기가 천재라고 떠들어 대는 비올라지만, 결국 생명의 관 붙박이 신세였을 뿐이다.
그런 그가 정신의 관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자세히 알까. 거기에 생명의 관에 통수를 날리고 이드에게 오면서 정보의 업데이트도 없었으니. 프리실라에게 얻을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난 뭐 해요?”
라미아가 두 사람 사이로 머리를 쑥 내밀었다. 사실 질문이야 뭐 어려울 게 있을까. 마법이라는, 세월을 쌓은 학문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이야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정신의 관이라는 단체에 대해서 알아볼 것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것도 토벌전이라는 전투를 대비해서 알아볼 것은 특히 더 제한적이니까.
“하지만 내가 마법 전력이나 특징까지 분석하긴 힘들지. 그건 라미아에게 맡길게. 참, 그리고 이건 저번에 부탁했던 거.”
이드는 마수를 잡으며 확보했던 것들과 초인의 머리가 들었던 상자를 꺼내 주었다.
“우와! 흥미로운 소재였는데. 연구해 보고 결과 나오면 알려 줄게요.”
“아니, 별로. 알고 싶은 건 없는데.”
마법사도 아니고. 설명 듣는 시간이 아깝다. 정확히는 지겨워서 듣다가 중간에 졸 것 같아 무섭다. 조는 순간 라미아의 분필이 날아올 테니까. “마수 공략법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얼마나 끈질긴지 이드도 당혹스러웠던 놈들이다. 이드는 발을 빼던 걸 멈추고 라미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열심히 연구해서 알려 줘! 꼭 알고 싶다.”
“호호홋! 저만 믿으세요.”
사실 마수 공략법은 이드보다 이후 도착할 토벌대에게 더 필요한 정보였다. 끝없이 복원하는 마수라니. 사전 정보가 없다면 사상자가 속출할 것이다.
각자 역할을 정한 후 이드가 프리실라를 해혈하고 깨웠다.
“끄응! 뭐야, 이제 잠도 못 하게 하는 거냐?”
이드에게 끌려다니느라 진땀을 빼서 그런가. 프리실라가 힘겹게 눈을 떴다.
“여긴……?”
“이제부터 즐거운 문답 놀이를 할 거거든. 그러자면 아무래도 조용한 곳이 필요할 것 같아서 자는 동안 자리를 좀 옮겼다. 괜찮지?”
괜찮을 리가 있냐!
소리치고 싶은 걸 애써 참고 마른침을 삼키던 프리실라의 눈이 이드 뒤에 선 두 사람을 향했다.
“…..뒤에는?”
“신문을 위해 특별히 모셨지. 마법은 내 전문이 아니라서 말이야. 소드 팰러스에서도 모시기 힘든 귀한 분들이지.”
이드의 넉살에 라미아가 키득거렸다.
“아까는 못 본 얼굴인데, 그사이 새로 충원된 인원인가? 아니면 따로 숨어 있었나?”
불안을 감추려는 것일까 말이 길다.
이드는 무심한 무표정으로 그녀의 두려움을 부채질하며 입을 열었다.
“질문은 우리가 당신은 답만 하면 돼.”
“…….”
“아까 산에 올랐을 때 나한테 아는 거 다 이야기하겠다고 했잖아. 그 마음 지금도 그대로면 좋겠는데.”
“아니라면?”
“아니면, 즐거운 고문 시간이 이어지겠지. 혹시 바뀌었나?”
이드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최대한 감정 없이 말했다.
거친 분노도 두려움을 주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조용한 무심함이 상대를 더 두렵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교실에서 혼자 공포에 미쳐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처럼 빤히 보이는 분노보다 예측되지 않는 무심함이 공포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드의 의도대로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고문 방법을 상상하던 프리실라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변하지 않았다.”
“좋았어. 그럼 인터뷰를 시작해 보자.”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금제인가?”
“그래. 흑마법으로 계약했다. 비밀을 발설하려 할 경우 내 영혼이 뽑혀 나가고 말 거야.”
이드가 바라보자 일리나가 고개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이란 뜻.
그 말에 이드는 오히려 납득할 수 있었다.
“과연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가 없다는 거네. 그러니 포로로 잡혀도 급할 것도 없고, 역시 만만치 않은 곳이네, 미완의 마탑. 라미아, 해주할 수 있을까?”
이드가 라미아를 돌아보았다. 마법 관련은 그녀의 전문이었으니까.
잠시 후 라미아는 흑마법에 대한 확인과 계약 방식에 대한 확인을 마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주 단단히 묶어 놨어요. 해주가 불가능할 것 같아요.”
“꼼수도 안 통할까?”
왜 있지 않은가. 인간의 꼼수에 골탕 먹고 패배하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계약에 영혼을 제물로 바친 고위 흑마법이에요. 어설픈 꼼수는 안 통해요. 아마 시도만 해도 바로 영혼이 뽑혀 나갈 걸요. 장담해요.”
장담이란다. 라미아가 이렇게까지 확신한 경우는 뒤집히는 상황이 절대 오지 않았다.
이드는 해주에 대한 기대를 깨끗하게 접었다.
“그럼・・・・・・ 필요 없겠네?”
쪼그려 앉았던 이드가 일어서며 씁쓸하게 말했다.
오싹!
프리실라는 본능적으로 목숨의 위험을 직감했다. 필요 없겠다는 말이 죽일까, 로 들렸다.
가치 없는 포로는 식량만 축내는 짐 덩이에 불과하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살려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잠깐, 잠깐만. 내 말 좀 들어 봐. 비록 계약에 걸려 있는 건 알려 주지 못하지만, 그것 말고도 알려 줄 수 있는 게 있다! 그러니 살려 줘. 제발!”
“별로 영양가 없는 것뿐일 것 같은데?”
계약으로 금제되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과 일맥상통이 아닌가. 이드가 프리실라가 잡고 늘어진 바짓가랑이를 당겼다.
프리실라가 그 힘에 철퍼덕 앞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팔을 들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들어 봐. 우리 정신의 관은 그 역사가 50년이고, 총 30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또 부관주 아래 6장로가 있고. 또…… 그래, 5클래스 이상의 연구 마법사가 103명, 4클래스 이하의 조수 마법사가 260명 있어. 또또………”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는지 프리실라는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을 두서없이 쏟아 내기 시작했다.
등을 돌렸던 이드는 그 모습에 라미아, 일리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일리나도 따로 신호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저것이 모두 진실인 것이 분명했다.
이드가 천천히 돌아섰다.
“정신의 관의 역사, 대략적인 크기. 대략적인 마법사 전력.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네. 확실히 그런 거라면 중요한 정보지. 그런데 그런 중요 정보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거지? 계약에 묶여 있다는 거 거짓말이었던 건가?”
물론 진짜 거짓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미 일리나와 라미아의 확인을 거치지 않았는가. 다만 이렇게 계속 의심하는 티를 내면 대답하는 사람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절대 아니다! 사실은 나도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내가 말했던 것은 탑주가 비밀로 하지 않았다. 아니, 비밀이긴 하지만 흑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 그가 흑마법으로 막아 놓은 건 초인 마법에 관련된 것들뿐이야.”
“초인 마법? 미완의 마탑에서 연구하는 새로운 마법을 말하는 건가?”
평소 비올라가 입에 달고 사는 새로운 마법이 생각난 이드가 물었다.
“맞다. 정신의 관에서는 마탑에서 연구 중인 마법을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초인 마법과 관련 없는 것들은 함부로 발설하지는 못해도 흑마법으로 제약받고 있지는 않아. 오히려 한번은 은근히 이런 점을 내세워 마법사들을 포섭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마탑에서 연구하는 새로운 진리를 자랑스러워하라면서 말이야.”
이드는 턱을 쓸었다. 저 말대로라면 탑주라는 인간은 정말 독특한 인간이다.
그러니 초인을 연구해서 새로운 마법을 만드는 짓을 하는 것이겠지만.
천재는 살짝 미쳐 있다는데 탑주도 그런 범주에 속하는 모양이다.
“어…… 때? 이 정도면 쓸 만・・・・・・ 하지 않나?”
이드는 살살 눈치를 살피는 프리실라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올라면 몰라도 초인 마법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이드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로지 전투에 있어서 토벌대의 희생을 줄이는 데 쓰일 정보였다.
그런 면에서 프리실라가 주는 정보는 황금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제법. 아, 한 가지 더. 장로씩이나 되면서 왜 이렇게 쉽게 협조하는 거야?”
“당연히 살고 싶으니까.”
“정신의 관에 대한 충성심은 없는 거야?”
“그런 건 없어. 정신의 관에 있는 건 초인 마법과 초인 그 자체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탑주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야. 그리고 난 아직 연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릴 만큼 연구에 미치지도 않았지. 대답이 되었어? 날 살려 주는 거겠지?”
“일단은 말이지. 결국 최종 결정은 록마틴 후작님이 하시겠지만, 당신이 가진 정보의 양과 중요도에 따라 후작님이 당신을 살려 주실 가능성도 높아지겠지.”
“알겠다. 최대한 협조하겠다.”
일단 긍정적인 답을 얻은 프리실라가 조금은 안심한 듯 얼굴을 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라미아가 가자미눈으로 이드를 보았다.
정말 살려 줄 거에요?』
『거래는 정직해야 하니까. 일단은. 그리고 여기 와서 안 사실인데. 나 생각보다 인간을 부품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
그렇게 싫다면서 프리실라를 살려 주겠다고? 라미아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냥 나중에 록마틴 후작에게 슬쩍 한마디만 해 두려고. 저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죄인은 죽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야. 』
『거짓말쟁이!』
『어째서? 난 그저 내 개인 의견을 내는 것뿐이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드가 죽여야 한다고 말하면 록마틴 후작도 흘려듣지는 못할 것은 분명한 일
결국 프리실라의 죽음은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형은 록마틴 후작이 내리겠지만, 사실 이드가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봐야 한다. 프리실라는 현재 진행형으로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프리실라에게 그 사실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누가 봐도 죽을죄를 지은 것이 사실이니까.
“자~ 밤이 길지 않아. 빨리빨리 정리하고 쉬자고.”
이드의 재촉에 라미아가 필기구를 꺼내 들었다.
그 후 이드와 일리나가 나란히 지켜보는 가운데 정신의 관에 대한 프리실라의 설명이 이어졌다.
정신의 관의 역사와 설립 목적. 정신의 관의 대략적인 구조와 마법사와 용병을 비롯한 보유 전력까지.
그리고 깨알같이 전해진 정신의 관 주변 함정과 그것을 설치한 랜달에 대한 것까지.
‘호오~ 생명의 관 부관주가 여기 있다는 건 생각 못한 정보인데?’
아마 토벌대와 함께 오고 있을 비올라에게 전해 주면 몸서리칠 정도로 기뻐하면서 당장 죽이고 싶다고 날뛸 것 같다.
신문이 끝날 때까지 옆에 서 있던 일리나는 한 번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이드는 그 상으로 부상의 통증을 멈춰 주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정신의 관에서 당신을 구하러 올까?”
“…잘 모르겠다. 우린 보통 조직처럼 끈끈한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 아마, 오지 않을 것 같다.”
이드는 그녀의 말에 일리나와 라미아를 돌아보았다. 일리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라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는 이드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제가 구출해 오겠습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프리실라의 말이 틀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