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565화


1001화

“절대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무조건 구하셔야 해요!”

불쑥 얼굴을 들이민 스폴이 말했다.

마치 애원하듯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진지했다.

그녀뿐 아니라 그 뒤로 보이는 쉴라도 급한 마음을 애써 참고 있는 듯하다.

“스폴 경, 예의를 지켜. 어렵다 하셨을 뿐, 포기하신다는 게 아니다.”

분명 스폴을 나무라는 말인데 어째서 검후 구출을 당부하는 것처럼 들리는지 모르겠다.

“그렇죠. 골치 아프댔지, 포기한다고 한 적은 없죠.”

이드는 서둘러 나온 대답에 퍽 안도하는 두 사람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예민하다, 예민해.’

난감함에 무심코 나온 말인데, 사춘기 소녀보다 예민한 현재의 두 사람에겐 다르게 들린 모양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기보다 과한 반응도 그렇고, 두 사람에게 검후는 단순한 주군이나 스승이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슈카칵.

날개에 뿌연 바람을 휘감고 라미아가 돌아왔다.

“뭐예요? 또 스폴 경이 헛소리라도 했어요?”

눈치 빠른 그녀답게 장내의 묘한 분위기를 단숨에 캐치해 냈다.

“섭섭합니다! 절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매도를!”

스폴이 억울하다는 듯 불끈 성을 내자, 날개에 남은 바람의 흔적을 톡톡 털어 내고 일리나의 어깨 위로 내려앉은 라미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매돈지 아닌지,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그런 소릴 해요!”

“큼큼. 확실히 틀린 말씀은 아니지.”

“정말 단장까지 이러기에요?”

어색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셨다.

슬슬 얼굴이 붉어지는 스폴을 보며 이드가 끼어들었다.

“쉐어 가든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어. 가장 가까이서 봐서 알겠지만, 구출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정말 그래요. 누군지 몰라도 저런 성을 만들다니. 진짜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해요!”

밖에서 보면 성이라기보단 요새 같고, 더 가까이서 보면 요새보단 감옥 같은 기묘한 설계. 그에 혀를 내두르는 라미아다.

사실 쉐어 가든의 설계자는 과거 마스의 변경백으로,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즉, 절대 미친놈 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영웅이면 누군가에겐 악당일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일.

스톤은 콩콩 발을 구르는 라미아에게 변경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던 걸 포기했다.

대신 넣어 두었던 용병패를 다시 만지작거렸다.

“좀 더 가까이서 보면 달리 보이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이드는 스톤의 말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서로를 돌아본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저었다. 특히 라미아는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격렬히 거부했다. “저건 가까이서 본다고 답이 나올 구조물이 아니에요.”

“……라는군.”

“완벽한 신분을 준비했는데. 아쉽군요.”

이드를 위해 특별히 준비했던 것이기 때문에 재차 말을 꺼냈던 스톤이 결국 만지작거리던 용병패를 손에서 놨다.

“그건 다음에 쓰기로 하고, 오늘은 이미 돌아가지. 더 살펴본다고 나올 것도 없어 보이고.”

이드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빠른 포기였다.

사실 아무리 단단해 보여도 틈이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잘 찾아보면 작은 구멍이 있을 수 있고, 없던 구멍도 실수를 통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면 오랜 시간 쉐어 가든을 살핀 검은 돌이 찾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드는 두 눈으로 확인한 검은 돌의 실력을 믿었다.

게다가 곧 발터와 초인들이 정신의 관에서 미완의 마탑과 소드 팰러스가 손을 잡고 공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계는 더욱 단단해지고, 실수가 생길 가능성도 줄어들게 되리라.

물론 반대로 급한 변화에 없던 구멍이 생길 수도 있지만, 언제 떨어질지 모를 감 같은 그런 작은 가능성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돌아가서 생각을 모아 보자고.”

이드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이드의 뒤를 따라 말을 달렸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스톤이 일행들을 안내했다.

말을 달리던 이드는 고개를 돌려 쉴라와 스폴을 확인했다.

두 사람을 마음이 심란한 듯 올 때와 달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긴, 복잡할 만하지. 그나저나 진짜 저 감옥을 어떻게 뚫지?’

이드는 아까 보았던 쉐어 가든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현실과 한 치의 다름이 없는 가상의 쉐어 가든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살폈다.

그러나 여전히 구멍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

애초에 만들지 않은 구멍이 있을 리가 있나. 스톤의 말에 의하면 출입도 철저히 통제되어 있단다.

얼마나 철두철미하면 출퇴근도 없단다. 불쌍하게도,

그나마 있는 출입이라고는 소비된 식재료 등을 채우기 위한 배달인데, 이것도 배달원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고 내부 인원들이 입구에서 받아 간다고 했다.

영화처럼 짐수레에 숨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이걸 철저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병적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진짜 땅이라도 파 봐야 하나?’

문제는 그런다고 해서 방법이 보이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라미아도 그리 생각하는 듯, 이드의 생각에 끼어들었다.

‘저만큼 철저한데, 땅속이라고 뚫어 뒀겠어요?’

‘하지만 이드와 라미아라면 흔적 없이 뚫을 수도 있지 않나요?’

‘음? 일리나?’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이어진 일리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마음속으로 대화 중인데 그녀가 어떻게?

그러자 일리나의 어깨에 있던 라미아가 날개를 움직여 엄지를 척 들어 보인다.

‘중계 중이에요. 우리만 이야기하면 비겁하잖아요.’

이드는 피식 웃었다. 겨우 이걸로 무슨 비겁씩이나.

‘일리나 말도 맞지만, 그것조차 대비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정확히 어디에 검후가 갇혀 있는지도 모르고. 저 안을 뒤지다 발각되면 그것도 문제고,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아요.’

일리나에게 하나하나 대답해 주다 보니, 정말 생각해 봐야 할 게 한둘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는 이드였다.

그래도 덕분에 여러 문제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답은 나왔다.

‘검후가 갇혀 있는 위치에 대한 확인, 그리고 놈들이 검후를 데리고 도망가지 못하게 조치하는 것. 그게 최우선이네.’

그리고 언제나 이런 문제의 담당은 따로 있다.

‘잘 부탁합니다. 라미아 님!’

‘어휴. 그럴 줄 알았어요.’

라미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수 시간을 달려 저택에 도착하자 에단이 이드들을 맞았다.

“은색 기사단은 현재 식사 중입니다. 쉐어 가든은 잘 보고 오셨습니까? 거기 높은 성벽이 특히 사람 질리게 만들지요?”

“성벽은 모르겠고, 일단 내성이 사람 성질나게 만들어진 건 확실하더라.”

지도를 펼쳤던 방에 이드들이 다시 모였다. 스스스슥.

이드의 손이 지도 위를 정신없이 훑었다.

움직임을 더해 감에 따라 대충 윤곽만 그려져 있던 내성이 현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찍어 낸 듯 정확히 그려졌다. 그뿐 아니라 전후좌우에서 본 모습까지 그려 내고는 펜을 놓았다. 그러자 이번엔 라미아가 나섰다.

“일루젼 이미지.”

빛이 일렁이더니 지도위에 내성의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검후가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모두 자세히 보고 떠오르는 게 있으면 말해 봐요.”

“이게 쉐어 가든!”

이드의 말에 입체 영상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쉐어 가든을 살피기 시작했다.

특히 가까이서 보지 못한 쉴라와 스폴이 두 눈을 번뜩였고, 비올라도 그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괜히 이드와 라미아가 고개를 흔들었을까.

보기엔 그럴듯하게 지어졌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면 창문 하나 없는, 말 그대로 답 없는 건축물이다. 오래 살피지 않아도 구멍이 없다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젠장,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물건이야. 이딴 걸 만든 변경백이란 놈이 변태인 거지.”

가장 먼저 비올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하루 먼저 와 에단이 정리한 쉐어 가든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모양인지, 거침없이 변경백을 욕하는 비올라다.

하지만 그런 그와 달리 쉴라와 스폴은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중간중간 라미아에게 확대까지 요청해 가며 집요하게 영상을 살폈다. 그래 봐야 나올 것이 없겠지만, 이드는 굳이 두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똑똑.똑.

묘한 노크 소리였다. 두 번 짧게, 한 번은 길게.

에린이 일어났다.

“검은 돌 안에서 사용하는 암홉니다.”

그녀가 문을 열자 밖에 있던 남자가 작은 쪽지 하나를 건네고는 돌아갔다.

방해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굳이 지금 가져왔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그녀는 바로 쪽지를 펼쳤다.

원래는 스톤이 먼저 봐야 하지만, 급한 정보에 한해서는 그녀가 먼저 확인한다. 정보 분석 능력 때문이다.

“모두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을 살핀 에린이 쪽지를 들고 말하자 스톤이 손을 내밀었다.

“무슨 일인데?”

“국경 기사단이 움직였어요.”

“국경 기사단? 변경백?”

“네, 타란 기사단이 움직였답니다.”

“그게 왜 중요한 정보라는 거지? 기사단이 이쪽으로 오기라도 해?”

아무리 놀던 곳이 아니라고 해도,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에 눈살을 찌푸린 스톤의 말에 에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곧장 쉐어 가든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동시에 림몬에 있는 타란 백작이 수도 기사단과 함께 내려오고 있고요. 당연히 목적지는 쉐어 가든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네가 판단하기에도 그래?”

“네. 수도에서 출발한 타란 백작과 국경에서 출발한 기사단이 만나는 지점이 정확하게 쉐어 가든이거든요.”

급히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드가 끼어들었다.

“그 타란이라는 백작이 쉐어 가든과 관계가 있소?”

“저희 정보에 걸린 건 없습니다. 대신 변경백과 타란 기사단, 거기에 수도 기사단까지 같이 움직여야 할 만큼 큰일이 쉐어 가든에 있다는 건 명예 후작님도 아실 겁니다.”

“검후. 그럼 마스에서 검후가 여기 잡혀 있다는 걸 알았다는 거로군.”

“그게 아니고는 이만한 전력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

확신하는 에린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아니라도 모두 머릿속에 검후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스라면 분명………”

・・・・・・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검후 님만 차지할 수 있다면, 힘에 미친 마스는 그런 나라니까요.” 이마를 쓸어내린 쉴라가 한숨처럼 말했다.

“이거・・・・・・ 생각지도 못했던 경쟁자가 나타나 버렸네.”

이드가 쉐어 가든의 입체 영상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 크고 웅장하지만 거친 야성미가 깃든 회의실 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정말 황금 같은 기횝니다. 드디어 우리 마스에도 승리의 여신이 미소 짓기 시작한 것이 분명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무조건 검후를 손에 넣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반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검후가 납치되었다는 사실도 몰랐고, 납치된 검후가 우리 땅에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니.”

“맞습니다. 거기에 그런 사실을 이제 꿈틀대는 마탑을 통해 알다니요.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건 차차 고칠 일입니다. 지금 중요한 건 검후입니다.”

“일단 타란 백작께서 직접 움직이신 만큼 검후 확보는 확실할 겁니다.”

“왕실 마법사단도 따라나섰어요.”

“일단・・・・・・ 초인들은 뺐습니다만. 이거 참 씁쓸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파라켈 후작님이 이런 문제를. 거참.”

파라켈 후작의 이름을 언급한 남자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연신 혀를 차기만 했다.

랜덤 이미지